남자는 호텔 문이 닫히자마자 나를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매번 반복되는 그만의 시작이었다. 물러날 곳에 없는 막다른 곳에 세워놓고 커다란 손으로 내 목을 감싸며 키스를 했다. 등에 닿은 벽의 차가운 기운과 입술에 닿은 뜨거운 숨결의 온도차는 이 관계의 마음과 몸을 반영하고 있었다. 


남자는 나의 가장 냉담한 일면과 마주했다. 우리는 다정한 눈빛을 교환하거나 상냥한 말투를 주고받지 않았다. 애교도 없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밖에 없다는 거짓 뉘앙스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위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1/n. 그저 내가 섹스 할 수 있는 여러 남자 중 한 명. 그 사실을 감추지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남자의 좋은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효율적이었다. 그를 흥분시키기 위해 내가 뭔가 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 자체로 허벅지를 찌르는 이미 충분한 단단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고 남자를 흥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겨운 나에게, 나와 함께 밀폐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발기하고 그걸 유지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집중력이었다. 내가 원하는 섹스를 하기엔 결함이 많은 그의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교접으로 끝나지 않고 만남이 지속되고 있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내게 몰입하는 감각이 좋았다. 이 순간 머릿속에 나와 몸을 섞는 것 밖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명쾌한 발랄함이 마음에 들었다. 오직 이 몸만을 애타게 기다려 온 사람처럼 젖가슴을 양손으로 모아 쥐고는 오른쪽 왼쪽 모두 놓치기 싫은 듯 얼굴에 비벼대는 걸 볼 때면 그의 작은 페니스는 용서할 수 있었다. 


시간이 쌓이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부터 그의 손은 형상기억합금처럼 내 몸을 만지는 강도가 딱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내 몸을 다루는 방식에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게 그를 격려하는 방식이었다. 


남자는 목을 깨물며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넣고 싶어.” 서둘러 삽입해봐야 즐거움의 시간이 줄어들 뿐이었다. 그의 페니스는 내 몸 안에서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사정할 것처럼 괴로워하다 몸을 빼곤 했다. 


그렇게 소박한 페니스로도 내가 조이는 걸 그토록 잘 느낀다니 신기하기도 했고 그렇게 감탄하며 못 견뎌하는 모습 때문에 신이 나기도 했다. 좀 더 괴롭혀주고 싶다는 못된 기분도 솟아올랐다. 몸을 움직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생동감이 넘쳤다.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둘 다 요동쳤다. 그에게 좀 더 버티라고 요구하고 정신을 못 차리려고 하면 그의 뺨을 후려치는 게 좋았다. 그의 가슴팍을 발로 밀어내면서 내 몸에서 떨어뜨려놓고 그걸 왜 못 버티냐며 힐난의 말을 쏟아내는 것도 좋았다. 


남자는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기분 나빠하거나 자존심 상해하기는커녕 부족한 자신을 만나주고 있는 나를 은혜롭게 여겼다. 그 지점, 섹스 하는 동안 숭앙을 받는 기분. 삽입할 때마다 내뱉는 그의 탄성은 항상 마음에 들었다. 낮게 읊조리며 내뱉는 욕도 좋았고, 긴 탄성과 함께 “이게 섹스지.”라고 말하는 것도 좋았다. 다른 애들이랑은 이런 느낌이 없다고 빈말이라도 그렇게 내뱉는 칭찬이 듣기에 거슬리진 않았다. 


남자는 섹스에서만큼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내가 자기를 왜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곤 했다. 그에게 답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궁금해 할수록 섹스의 기회를 조율하기 쉬울 테니까. 그가 자신 말고도 내가 섹스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나았다. “못하는 남자랑 하더라도 섹스는 다다익선이지.” 그렇게 말하는 내 말을 의심도 하지 않고 믿는 게 나았다. 그러면 된 거라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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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행자부, 가임기 여성을 위한 종마 서비스 제공

 

행정자치부가 야심차게 제안했던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가 여성비하적이라는 비판을 수용, 가임기 여성들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임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종마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종마 서비스요?

 

. 그렇습니다. 생소한 표현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니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그 종마가 맞습니까? 그 뜻을 풀어서 설명해주시죠.

 

종마, 번식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수컷 또는 암컷의 말을 뜻하는데요. 행정자치부가 이번에 제시한 서비스의 내용을 보면 가임기 여성이 이용하는 서비스이므로 종마의 의미에는 남성만을 포함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허허, 흥미로운 이름이군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지난 1229일 행정자치부는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임기 여성의 인구수를 지역별로 표시한 지도를 게시하였습니다. ‘가임기여성인구수를 클릭하면 지역별로 가임기 여성 현황이 나타납니다. 행자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20~44살까지의 여성을 임의로 분류해 집계했습니다. 통계청의 자료를 활용해 제공한 것이라고 했지만 통계청은 가임기 여성의 범위를 15세에서 49세까지로 집계하고 있으며 통계청의 인구 및 출생 통계 내용을 살펴보아도 그 어디에도 가임기 여성 인구수는 없었습니다. 출처뿐만 아니라 사용처와 의도가 불분명한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가임기 여성의 수를 한자리 단위까지 세세하게 표기하였습니다. 이에 여자가 아이를 낳는 기계냐’, ‘여성이 자궁으로 보이냐는 등의 거센 비판 여론이 일자 30일 해당 홈페이지를 닫고 수정 공지문을 게재했습니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알리고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각 지역의 가임기 여성 분포도가 어떤 효율이 있는지 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에 많은 여성들도 가축 취급을 당한 것 같다고 분노를 했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행정자치부는 여성만을 그렇게 보고 취급하고 있다는 논란을 일축시키기 위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우선 서비스 취지를 설명하는 관련자 인터뷰부터 보시죠.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2일 발간한 국제성평등지수를 통해 본 성 불평등 실태 및 시사점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성평등 수준은 국제적으로 최하위군에 속해 있습니다.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각종 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성평등지수는 여전히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지요. 이에 저희 행정자치부에서는 여성들이 겪는 불편을 통감하고 실질적인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로써 여성비하적이라고 비난이 일었던 가임기 여성 분포 지도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행정자치부가 얼마나 양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 서비스라는 것이 어떤 것입니다. 가임기 여성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까한 발 더 들어가보도록 하죠. 

 

행정자치부는 현대 여성이 임신을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이런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의 근심과 우려를 저희 행정자치부도 통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된 미래와 뛰어난 인재 양성이라는 목적을 두고 본다면 행정자치부도 어머니와 같은 마음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에 나와 닮은 훌륭한 유전자를 남기는 것의 축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임신과 출산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한 끝에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군요. 그 서비스라는 것이 대체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까?

 

혁신에 가까운 서비스입니다. 관련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더 이상 남성의 경제력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여성 자신과 아이를 끝까지 양육하고 책임져주는 것을 바라고 의지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통념부터가 잘못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여성 역시 사회에 진출해서 경제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여성에게 남성의 경제력에 종속되어 임신과 출산을 담보로 결혼이라는 억압적인 제도 안으로 들어가라고 강권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행정자치부는 이러한 서비스를 마련한 것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가임기 여성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인지요?

 

아무래도 출산과 육아 장려를 위해서는 복지 이전에 임신이라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에서 착안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자부가 처음 제공했던 가임기 여성의 지도는 저출산과 가임 여성수를 직결시켜 마치 특정 성별에게 저출산 책임을 미루는 것으로 보인다는 비판을 적극 수용한 뒤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 같아 보입니다.

 

, 말씀 잘 들었구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공하기로 결정한 그 서비스의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관련자 인터뷰를 보시죠.

 

[종마 서비스. 종마. 그런 표현에 불편함을 느끼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직관적인 이름을 붙인 것 뿐이니까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 것입니다. 여성만을 자궁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임신이라는 것은 생물학 시간에 배우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 행자부는 여성이 원하는 정자란 무엇인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건강검진을 통해 가족력을 통해 잠재적으로 큰 문제가 없고 신체 건강한 20세에서 33세까지의 남성을 선별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신장은 175~185cm, 15%의 체지방률을 유지하고 임신과 결정적으로 관련은 없다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과 뉴멕시코 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 여성들은 세계 평균으로 알려진 발기 길이 13.1cm, 둘레 11.7cm보다 다소 길고 두꺼운 성기를 선호하고 이상적으로 여긴다고 하여 발기 시 길이 16.3cm, 둘레 12.7cm가 평균인 남성을 다시금 추려냈습니다. - 오르가슴이 임신의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일석이조의 만족스러움을 여성에게 제공하려는 저희의 야심찬 깊은 뜻이 담겨있는 기준이지요.

얼굴 역시 엄격한 기준을 바탕으로 여성이 선호하는 유형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고 지능 역시 IQ135 이상을 선발하였습니다.

특성 분야도 다양하게 마련 예체능 계열뿐만 아니라 이공계열 등 아이에게 원하는 재능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유전 결합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생활 습관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지난 3개월간 흡연이나 음주로 인한 정자 손상이 없으며 강한 전자파나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한 신경을 썼습니다. 정자운동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도 이뤄졌습니다. 

배란기에 있는 여성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해당 남성과 임신을 위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인적 자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지금까지 국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으로 제시했던 것이 임신할 수 있는 여성에게 국한되어 마치 여성의 책임인양 전가하는 모양새를 보였던 것에 비하면 아주 적극적으로 남성을 이 문제에 참여시킨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임신이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 주체적인 여성이 임신을 원할 때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고심한 흔적을 느낄 수 있는 항목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에 대해서 남성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종마 서비스에 선발된 남성들과 그렇지 않은 남성의 반응 차가 있나요?

 

대한민국의 남성 대부분이 군필자이지 않습니까? 군대 경험을 통해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철저하게 교육받아 온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국가의 건강한 미래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종마 서비스 제공자로 선발된 남성들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우성 수컷임을 인정받아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남성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앞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많은 남성들은 자연 도태의 안타까움과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항해봐야 지금 자신이 가진 수명조차 다하지 못하고 곧바로 안락사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불만 표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은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고 여성들은 삶에서 늘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왔는데요. 이런 서비스를 통해 번식의 기회를 박탈당한 남성들의 분노가 국가가 아닌 여성에게로 향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이 종마 서비스와 더불어 종마의 특별함을 유지하기 위해 행자부에서는 탈락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중성화 수술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반려 동물을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성화 수술로 유순해지는 효과도 얻을 수 있기에 그들의 분노 역시 잠재워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행정자치부에서 별도로 마련한 홈페이지에는 각 지역별로 종마로 선별된 남성의 프로필이 제공되어 있습니다. 벌써부터 가임기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상형에 따라 행정지역을 이동하려는 시도도 일어나는 등 참여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렇게 안전하고 분명한 남성의 정자를 제공해준다면 임신을 해볼까 하는 도전 의식을 품게 되더라구요. 함께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열여덟 살 동생은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기준이 20세에서 44세가 아니라 통계청 기준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을 보아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탁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남성을 보니 육아의 어려움 같은 건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대책을 마련한 걸 보면 앞으로 정부가 출산 이후의 복지에 대해서도 해결방안을 충분히 마련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이군요.

 

오랜만에 정부가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하여 저출산 문제 해결에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저 역시 기쁩니다











오늘의 픽션












여성혐오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탓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여성 혐오는 남녀에게 있어 비대칭적으로 작용한다. 남성에게는 '여성 멸시', 여성에게는 '자기 혐오'이기 때문이다.


'호색'한 남자가 여성을 혐오한다고 하면 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들이 반응하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기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여성을 '여자'라고 하는 하나의 범주에 일괄처리하는 그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여성 혐오 사상의 소유자는 여성에 대해 무관심하게 있을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여성 혐오 사상의 약점이다. '남성성'이라는 성적 주체화를 이루기 위해 '여성;이라는 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그들이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고 불결하며 이해 불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와 원한이 바로 여성 혐오의 내용이다.


'자기 여자'란 말은 참으로 잘도 만들어낸 표현이다. '남자다움'은 한 여자를 자기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써 담보된다. 호모소셜리티는 여성 혐오에 의해 성립되고 호모포비아에 의해 유지된다.


경계선의 관리와 끊임없는 배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남성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역으로 증명한다



남자는 진정으로 성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나 음담패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실제로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해오지 않았고 정형화되지 않은 경험에 관해서는 언어화를 억압해온 것이 아닐까? 아니 반대로 그만큼 남성의 성적 주체화에 대한 억압이 강렬한 것은 아닐까? 라캉이 '욕망이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갈파한 것처럼 남자는 다른 남자의 성적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가 된다. 때문에 남성됨의 방식에는 다양성이 없다. 남자가 발기능력과 사정 횟수에 집착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만이 남자들 사이에서 비교 가능한 일원적 척도이기 때문이다


성별이원제, 가부장제의 핵심은 여성혐오(창녀)와 여성숭배(성녀)라고 보고 있으며 이는 여성 타자화라고 부른다. 차별이란 어떤 이(여성)를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남성)와 동일화하는 행위이라고 말한다.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타자이다. 즉, 이방인, 이교도와 같은 맥락으로 여성은 남성들이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다. 우리들로 부터 추방하는 양식이 타자화이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케이조쿠 SPEC 보고나서. 이케부쿠로 교자 스타디움 가서 먹부림 부렸었는데 아예 촬영지였던 교자집 虎(토라)를 찾았다.

http://blog.naver.com/kazenomukoue/30184684362


세부미상이 멋진 이유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 다정하게 위로하지 않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등 뒤에 서 있다. 그만해(야메로)라는 말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남자. - 그게 카세 료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맞아. 게다가 세부미상은 토우마가 세부미상 세부미상하고 부르면 언제든 나타났어. 부르면 응답해주는 존재. 아 궁극의 판타지. 게다가 절대적으로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며칠동안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나오지 않는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스펙의 결말을 보고 쏟아내고 나니 후련한 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선인류의 논리에 동조하고 토우마의 노력은 헛된 느낌이 강하지만 세부미가 알아준다면야 그런 결말도 나쁘지 않아!


세부미상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스펙홀더라는 이질적 존재, 특이하고 제멋대로에 여성성을 느끼기 힘든 토우마라는 캐릭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오히려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아무런 능력이 없지만 의지와 신의로 사람들을 지켜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희미하게 부유하는 토우마의 왼손을 상처투성이가 되어 엉망이된 세부미상이 잡는 순간 그녀가 뚜렷해지고 실재하는 존재가 된 듯 서로 연결된 채 끝나는 것도 병맛스럽고 괴상한 연출임에도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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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박함을 경멸하는 이유는 나 역시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거려서 일 것이다.





일대일 관계를 지향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것은 허구에 불가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의혹을 품게 된다. 상대의 신의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도 상대의 애정이 급격히 줄어들 때 다른 애정을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와 이별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만족할만큼의 섹스나 애정표현이 부족하기에 그것을 충족시켜줄 상대를 찾는 경우가 있다. 남자들은 그것을 생물학적 본능으로 포장하고 호기심이라는 말로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즐기곤 한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를 두고 양다리 같은 바람이 아니라 가벼운 섹스를 하는 정도로 바람피는 남자들은 질리도록 듣고 봐왔다. 그들이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본 적 없다. 너랑 사귈 마음은 없으니 섹스나 하자 당당하게 말하며 성적 매력을 드러낸다


반면 여자들은 어느 선에 가서는 이상할 정도로 과도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지나치게 섹스를 밝히고 음란한 게 아닐까 하는 자기 비판을 하며 모든 관계를 정리하곤 조신 모드를 유지하지만 생생한 욕망을 억누르고 있기에 그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애정결핍이 원인이든 성적 욕구의 불만족이든 기존의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다른 관계를 통해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런 관계는 끝내는 게 현명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별을 감당하기 싫고 모험이 두려워서 그런 방식으로 해소를 한다.


신의를 저버리는 나쁜 짓을 하고난 뒤 죄책감 느끼는 여자들의 상담메일을 제법 받게 되는데 그럴 수 있어라고 내가 이해를 해준다한들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런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쁜 짓이라는 인식이 있고 그걸 선택했다면 끝까지 위악을 떨던가! 


아니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던가! 사귄다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다른 욕구들도 채우려고 욕심을 내는 건 탐욕스러운 거 맞고, 이기적인 것이며, 나쁜 짓이다. 죄책감 느껴도 되는 일이다. 죄책감 느낀다고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2014년 7월 6일








  


그는 뒤에서 나를 안았다. 뒷덜미에 머리를 파묻고 흡입력 있는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안돼. 미숙한 애들이나 함께 보낸 밤의 흔적을 눈에 띄는 곳에 남기는 거야. 그런 거 촌스러워.” 단호하게 거부하는 목소리가 그를 더 자극한 것일까? 목선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선을 따라 키스를 퍼붓던 그가 어깨를 깨물었다. 


놀람과 고통을 동시에 느낀 나는 치타에게 목을 물려 꺼져가는 생의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내는 가젤처럼 바동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는 두 팔로 나를 붙잡고 반동을 줄 때마다 그만큼 더 강해진 악력(顎力)으로 나를 물었다. 참으려 해도 입에선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뱉어낸 신음소리였지만 스스로를 흥분시킴과 동시에 그를 만족시키고 있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대신에 저항하기를 멈췄다. 그 역시 턱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하지만 내 허벅지에 닿은 그의 페니스는 빈틈없이 단단해져 있었다. 


다음날 침대에서 나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미묘하게 변한 몸을 관찰했다. 긴장감과 호르몬, 지난 밤 동안 그 둘은 적절하게 작용하여 몸을 탄력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좋은 섹스를 하고 난 뒤 즐기는 비밀스러운 유희. 거울 속 내 몸에는 그와 보낸 격정적인 시간이 새겨져있었다. 어깨에 선명하게 남은 잇자국. 그는 치열이 고른 편이여서 동그란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자국 주변으로 장난삼아 물었다고 하기에는 제법 심한 멍이 들어있었다. 그뿐 아니라 서로의 뼈가 부딪혔던 곳에도 고스란히 멍이 남아있었다.


잇자국이 남은 곳을 지긋이 눌러보았다. 통증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견딜만한 가치가 있었다. 둘의 격렬했던 몸짓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침대에 나를 눕히고 저돌적으로 내 몸 위에 올라탄 그의 무릎과 계속해서 부딪혔던 허벅지에도 멍은 남아 있었다.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던 그 자리에도 희미하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피부가 약해 멍이 잘 드는 체질인 것이 오히려 섹스를 재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 몸 구석구석 그가 만졌던 곳들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기억으로 몸을 쓰다듬을 때마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와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연쇄살인범의 희생자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잇자국과 멍을 생각한다면 끔찍스럽겠지만 내 몸에 남은 것은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라 내가 허락한 행위였다. 고통을 인내한 것은 나 자신이었지만 관계를 통제한 것도 바로 나였다. 


타인의 신체부위나 어떤 물건보다도 내 몸에 남아있는 멍을 통해 성적 쾌락을 되살릴 수 있었다. 우리 둘이 보낸 밤은 반듯하지 않은, 사악한 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섹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마술적이고 영적인 힘이 내안에서 차올랐다.


나의 사소한 성도착, 나만의 페티시즘. 그건 내 몸에 남겨진 멍자국이다. 사실 그 사람처럼 무자비하게 날 물어 줄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았다. 머릿속에 어떤 판타지를 품고 있든 현실의 나와 섹스를 하는 동안에는 정상 범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걸린 것처럼 남자들은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로 나의 소망을 좌절시켰다. 오, 제발. 그대여, 부디 날 물어주세요. 당신의 달콤한 입술보다 단단한 이를 내 몸에 박아주세요. 



<음담패설-나는 소망한다, 금지된 것을> 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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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몇 편 읽다보면 인상에 깊게 남게 되는 것 중 하나가 파스타를 삶는 남자일 것이다. 지금이야 파스타 정도는 간편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재료가 인스턴트화 되었지만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흔치 않았던 90년대 후반에 파스타를 요리하는 남자의 이미지라는 건 이국적이고 희귀한 느낌이었다. 하루키 소설을 장악하고 있는 섹슈얼한 분위기 덕분에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매력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이미 출근한 오전, 느지막하게 일어난 남자가 파스타를 삶는 모습이란 찬밥만 남은 밥솥, 식탁 위의 마땅치 않은 찬거리를 보고 포기한 듯 냄비에 물을 담고 라면을 끓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제안보다 내가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줄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더 유혹적으로 들린다. 거부감 없이 집으로 초대해 섹스를 유도하는 것이 오늘의 요리가 가진 목적이라면 조금 더 정성이 더해진 요리일 때 낚시에도 입질이 더 잘 오지 않겠는가. 물론 빠뜨릴 수 없이 중요한 것은 요리의 맛이겠지만 그 순간 여자들이 끌리게 되는 것은 맛에 대한 기대보다는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남자의 태도에 있다.

 

독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뛰어난 문장도 아니요 재미있는 줄거리도 아니요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던 하루키의 말처럼 결국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특출하게 뛰어난 자기만의 레시피나 타고난 손맛보다는 요리하는 남자라는 분위기. 남자의 요리는 일상이 아니라 환상을 파는 도구가 된다. 그렇기에 섹스를 위한 수단으로 요리를 이용할 줄 아는 남자는 영리한 셈이다.

 

식욕과 색욕, 둘 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서로가 비교되고 비유된다. 잘 요리된 음식을 탐하는 방법은 섹스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입으로 집어넣어 삼키는 단순한 매커니즘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으로 대상에 접근한다. 미각적 표현을 넘어선 음식의 시식평을 보고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섹스를 연상할 수 있는 묘사가 가득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섹스 역시 상대를 먹음직스러운 음식에 비유하고 섹스의 과정을 어떻게 맛 볼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나가며 흥분을 고조시킨다. 그렇기에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요리에도 섹시한 구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요리하는 여자인 는 과연 섹스어필할까? 내가 남자를 위해 요리를 할 때는 전날의 섹스가 만족스러우면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셨던 어째서인지 의문스러웠던 어떤 날의 화려한 아침 밥상처럼 나에게도 요리란 밤 동안의 실력 발휘를 하고 지친 그를 위한 보양이었다. 내가 느낀 만족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었다. 그러한 노동이 남자들에게 특별히 섹시하게 여겨지는 지점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을 위해 준비한 요리를 보고 처음에는 호들갑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마움을 표현하곤 했지만 반복되면 될수록 당연한 일이 되어 갔다. 요리하는 내가 섹시해지기 위해서는 알몸에 앞치마만 두른 채 스테이크가 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그를 유혹해 싱크대 위에 걸터앉아 섹스로 이어질 게 뻔 한 진한 키스를 할 때뿐이었다. 그를 위해 요리에 매진할수록 식사 후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정리하는 모든 뒤처리 노동까지 묵묵히 해내야 하는 그저 부엌데기가 되어 갈 뿐이었다.

 

그러나 요리하는 여자와는 반대로 요리하는 남자는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문화와 소비를 주도하는 2~30대 여성의 취향에 맞는 남성 셰프나 연예인이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리하는 모습이 인기를 끌면서 요섹남같은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리하는 남자는 섹시하다남자들은 요리가 가진 성적 매력을 그대로 덧입고 여성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요리한다라는 특성이 남성의 새로운 매력의 요소로 부각되면서 실장과 본부장으로 대표되던 로맨스풍의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의 직업군에 오너 셰프가 추가되기도 했다. (<멘도롱또똣><오 나의 귀신님>은 이러한 트렌드를 재빠르게 드라마에 차용해 흥미로운 소재로 녹여냈다.) 픽션의 세계뿐만 아니라 실제 셰프의 인기도 나날이 높아졌다. 요즘 화제가 되고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의 소재는 가상연애나 육아가 아닌 요리에 집중되고 있으며 셰프의 TV 출연은 요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 끌어 모았다.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원시시대부터 먹을 걸 구해오는 남자야 말로 몸을 던져 함께 후손을 만들어낼 밤을 보내기 딱 좋은 우성인자이지 않았는가! 이제는 수렵이나 채집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술이 발달하고 물질이 풍족해졌으니 통상적으로 밥을 잘 사주는 남자, 거기서 더 나아가 내게 요리를 해주는 남자가 그에 대적할 만하다.

 

요리는 생각보다 강도 높은 노동이다. 그렇기에 요리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체력과 열정 그리고 일에 대한 집중력, 덧붙여 창의성까지 엿보게 되면 섹시하다는 형용을 붙이는 것이 결코 과한 수식이 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요리하는 남자가 새로운 경향이 되고 있고 남자들 역시 요리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타 셰프의 열풍과 일인생활자의 증가로 요리를 배우는 현대 도시남성들이 늘어나고 주방용품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건 안타깝게도 일상적으로 요리하는 남자는 여전히 그 수가 드물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체의 주요 소비층인 여성들은 TV속에서 근사한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나 어설프긴 해도 하나씩 배워나가며 요리를 해나가는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위해 요리해주는 남자를 바라고 꿈꾸게 된다. 요리하는 남자는 결국 무료한 삶의 이벤트이다. 섹스어필이 희소성에 있다는 말이 정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리를 할 줄 아는 남자가 평생 내게 요리를 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요리는 여자의 몫, 요리하는 시간을 삶의 일부로 삼게 되는 건 여자들이다. 그렇기에 연애와 섹스의 판타지 리스트에 요리하는 남자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리하는 남자의 진짜 섹시함이란 목적을 성취한 후에 드러나게 되는 게 아닐까. 이 식사가 끝나고 나면 섹스 할 게 뻔 한 분위기 속에서 그가 해주는 요리를 맛있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여자는 드물다. 볼록 나온 배로 섹스에 임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곤란하다. 배에 힘을 준채로 섹스하면 성감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공복으로 임한 격렬한 섹스가 끝난 후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게 기꺼운 마음으로 요리를 해주는 남자야 말로 내게 섹시하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관계는 과정이 달콤하고 애틋했다 한들 한 번의 섹스로 종결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섹스만으로 충분하다. 굳이 또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기 전엔 섹시했지만 섹스가 해소하면 애초의 섹시한 매력은 소멸된다. 진짜 섹시한 사람은 섹스 후에 결정된다. 요리하는 남자의 섹시함도 마찬가지이다. 유혹을 위함이 아닌 관계의 지속이라는 긍정적 의미와 나를 배려하고 아낀다는 신호로써의 요리라면 그것이야 말로 신뢰할만한 섹시이자, 섹스의 기술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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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칼럼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하면 남자들은 곧잘 '제 얘기도 언젠가 쓰겠네요'라고 반응하는데 그럴 때마다 '소재거리도 안 되는 게 깝치지 마세요'라는 말 대신 '전 실제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쓰진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섹스칼럼니스트라는 걸 알면서도 섹스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 자신과 만나는 중에 그렇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냐고 항의를 듣기도 하는데..



일 좀 하자. 일. 내가 마치 다른 남자랑 자기라도 한 것처럼 매도할 때는 진짜 딴 남자랑 자고싶다. 섹스칼럼이긴한데 방점이 글 쓰는 거에 안 붙고 섹스에 붙어서 피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건 이젠 내상을  덜 입는다쳐도 관계에 대한 성의있는 성찰없이 쎅쓰 쎅쓰하는 글만 쓴다는 편견이나 문학적 소양이나 깊이가 없다는 생각도 좀 웃겨. 네네. 저 4년제 대학 나왔고 문예창작 전공했어요 (그런데 그게 글 잘쓰는 거랑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섹스도 할만큼 해봤고 제법 잘 하기도 해요. (자기입으로 이렇게 말하니까 웃긴 거 알겠죠?)

또 뭐 말해야 하지?



아. 클럽은 잘 안 가고 원나잇도 잘 안해요. 나이가 많단 이유만으로 꼰대질하고 성적 능력이 감소하기 시작해서 괜히 자격지심있는 남자보단 차라리 서툴지만 가르치는 만큼 역량 발휘를 하는 나이 차가 제법 나는 귀여운 연하들을 좋아해요. 섹스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천박한 수준까지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진 않아요. 그러니까 글을 쓰는데 공교롭게 섹스가 소재인 거지 제가 섹스섹스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걸 아마도 영리한 사람들은 알겠죠. 뭐. 섹스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건 제가 어릴 때부터 공포감 조장이 아닌 바른 성 교육을 받았다는 걸 증명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사랑과 섹스를 동일선상에서 다루지 않는 점이 바르지 않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과 섹스에 대한 분홍빛 헛된 환상이 아니라 짙은 파랑의 냉소 가능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바닥에 발을 딛고 서서 모험을 해보자는 거죠. 백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궁극의 긍정적 쾌락을 찾아서. 외로움 때문에 섹스하진 않아요. 사랑받고 싶어서 섹스하지도 않아요. 섹스하고 싶을 때 섹스합니다. 물론 대체적으로 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남자같은 뇌구조일지도) 물론 그렇다고 인생이 섹스로 점철된 건 아닙니다. 차라리 미드나 일드면 모를까.ㅎ

 








섹스로 관계를 통제하고 상대의 존재나 섹스능력치에 대한 과도한 칭찬으로 그의 낮은 자존감을 도닥여서 상대를 옭아매면서 '나랑 헤어지면 나같은 여자는 다시 못 만날거라'는 반협박조의 태도로 연애했을 때의 내가 가장 형편없었다.


내 남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만나는 남자에 대한 환상성을 과장하고 그의 다양한 면모보다 섹스로 부각된 장점들을 지나치게 서술할 때의 심정은 만족이 아니라 불안이다. 섹스말고는 증명되거나 느껴지지 않는 둘 사이의 감정에 대해 대안이 없으니 그걸 믿을 수 밖에 없는 것. 지금 가장 좋은 걸 가졌으니 이걸 잃을 순 없다는 절박함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다. 비겁함이나 멍청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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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늘 똑같던 얼굴의 광채가 조금 다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배란기 알람이 울린다. 몸이 너무나 정확하다.



농담처럼 365일 발정기라고 말하곤 하지만 

배란기를 전후로 해서 몸이 반응이 확실히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박혀들어와 부딪히는 감각에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거나

입안 가득 물린 채 일그러진 모습에서 자신감 같은 걸 뿜어낸다.

집중하는 게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판판하고 단단한 가슴을 양손으로 밀어내지만 

그 아래 깔려서 무게감을 느끼고 싶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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