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범주

정확하게는 여성성이라는 코드에 반응하는 남자를 낚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위장을 해야한다면 제법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상대와는 몸과 몸, 단순한 시각적 반응이라 한 번, 단 한 번 그 이상의 효용은 기대하기 힘들다.



맨얼굴에 목이 늘어난 면티쳐츠를 입고 있어도 말을 거는 남자들이 있다. 

굳이 친절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를 관찰하다 말을 걸 찰나를 찾아내는 그 관심에는 

내가 속한 범주가 아니라 '나'라는 캐릭터에 대한 것일 때가 있다.

물론 그건 틈새를 내어준 그러니까 나의 경계를 풀어지게 만든 어떤 특정한 공간이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나를 포장한 날은 경계심도 한껏 올라간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낚여들지 않길. 어설픈 것이 딸려오지 않길. 자연스러울 수 없는 거다. 눈웃음은 짙은 아이라인때문에 가려진다. 굳이 다양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런 걸 신비하다 섹시하다 여긴다니..


나의 말괄량이 같은 생기, 혹은 병신같은 기복, 또는 똘기 충만한 바보짓과 결정장애의 순간을 무덤덤하게 여겨주는 남자들은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망상 속에서 잔뜩 이상화하여 부풀려놓은 내가 현실의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하는 경우를 종종 겪을 때가 있는데 그런 멍청이들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 


그는 비단 연애가 아닌 문제에서도 꽤 괜찮은 안목 같은 게 있었다. 보이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해석할 수 있는. 그런 걸 가진 일차원적이지 않은 인간이 좋다. 인간으로서 존경할 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오래 봐지지는 않는다. 


그는 내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어리광부리고 싶었구나! 라고 말했다. 으구으구 이러면서 머리를 쓰담쓰담해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만져준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아무에게 어리광을 피우진 못했던 탓에 그 말을 듣은 그때 그와 섹스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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