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호텔 문이 닫히자마자 나를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매번 반복되는 그만의 시작이었다. 물러날 곳에 없는 막다른 곳에 세워놓고 커다란 손으로 내 목을 감싸며 키스를 했다. 등에 닿은 벽의 차가운 기운과 입술에 닿은 뜨거운 숨결의 온도차는 이 관계의 마음과 몸을 반영하고 있었다. 


남자는 나의 가장 냉담한 일면과 마주했다. 우리는 다정한 눈빛을 교환하거나 상냥한 말투를 주고받지 않았다. 애교도 없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밖에 없다는 거짓 뉘앙스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위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1/n. 그저 내가 섹스 할 수 있는 여러 남자 중 한 명. 그 사실을 감추지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남자의 좋은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효율적이었다. 그를 흥분시키기 위해 내가 뭔가 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 자체로 허벅지를 찌르는 이미 충분한 단단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고 남자를 흥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겨운 나에게, 나와 함께 밀폐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발기하고 그걸 유지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집중력이었다. 내가 원하는 섹스를 하기엔 결함이 많은 그의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교접으로 끝나지 않고 만남이 지속되고 있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내게 몰입하는 감각이 좋았다. 이 순간 머릿속에 나와 몸을 섞는 것 밖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명쾌한 발랄함이 마음에 들었다. 오직 이 몸만을 애타게 기다려 온 사람처럼 젖가슴을 양손으로 모아 쥐고는 오른쪽 왼쪽 모두 놓치기 싫은 듯 얼굴에 비벼대는 걸 볼 때면 그의 작은 페니스는 용서할 수 있었다. 


시간이 쌓이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부터 그의 손은 형상기억합금처럼 내 몸을 만지는 강도가 딱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내 몸을 다루는 방식에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게 그를 격려하는 방식이었다. 


남자는 목을 깨물며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넣고 싶어.” 서둘러 삽입해봐야 즐거움의 시간이 줄어들 뿐이었다. 그의 페니스는 내 몸 안에서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사정할 것처럼 괴로워하다 몸을 빼곤 했다. 


그렇게 소박한 페니스로도 내가 조이는 걸 그토록 잘 느낀다니 신기하기도 했고 그렇게 감탄하며 못 견뎌하는 모습 때문에 신이 나기도 했다. 좀 더 괴롭혀주고 싶다는 못된 기분도 솟아올랐다. 몸을 움직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생동감이 넘쳤다.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둘 다 요동쳤다. 그에게 좀 더 버티라고 요구하고 정신을 못 차리려고 하면 그의 뺨을 후려치는 게 좋았다. 그의 가슴팍을 발로 밀어내면서 내 몸에서 떨어뜨려놓고 그걸 왜 못 버티냐며 힐난의 말을 쏟아내는 것도 좋았다. 


남자는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기분 나빠하거나 자존심 상해하기는커녕 부족한 자신을 만나주고 있는 나를 은혜롭게 여겼다. 그 지점, 섹스 하는 동안 숭앙을 받는 기분. 삽입할 때마다 내뱉는 그의 탄성은 항상 마음에 들었다. 낮게 읊조리며 내뱉는 욕도 좋았고, 긴 탄성과 함께 “이게 섹스지.”라고 말하는 것도 좋았다. 다른 애들이랑은 이런 느낌이 없다고 빈말이라도 그렇게 내뱉는 칭찬이 듣기에 거슬리진 않았다. 


남자는 섹스에서만큼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내가 자기를 왜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곤 했다. 그에게 답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궁금해 할수록 섹스의 기회를 조율하기 쉬울 테니까. 그가 자신 말고도 내가 섹스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나았다. “못하는 남자랑 하더라도 섹스는 다다익선이지.” 그렇게 말하는 내 말을 의심도 하지 않고 믿는 게 나았다. 그러면 된 거라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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