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Show time에서 방영한 미드 <페니 드레드풀>


TV판 젠틀맨리그라고 불리는 미국의 유료케이블채널인 쇼타임의 신작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유명 소설의 등장인물(도리안 그레이,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드라큘라의 미나 등)들이 각종 괴물과 초자연적 생물들을 물리치며 미스터리를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시종일관 관능적이고 오싹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에바 그린, 조쉬 하트넷, 빌리 파이퍼, 로리 키니어 등 출연진의 이름만 들어도 섹시한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누드 사진을 찍기 위해 고용한 창녀가 옷을 벗다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하자, 권태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도리안 그레이가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그녀에게 다가가 키스를 한다. 폐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그녀와 섹스를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며 죽어가는 걸 박아보는 건 처음인데라는 대사는 퇴폐미의 절정을 찍는다. 모든 것이 새로울 게 없는 불멸의 존재가 흥미를 보이는 순간의 동물적인 움직임. 어떠한 자극적인 설정보다도 부도덕하고 병적이며 동시에 탐미적이다. 그 씬 전체에 바그너의 <트리스타과 이졸데> 사랑의 죽음이 흘러나오는 것도 데카당스한 감각을 자극한다




<Penny Dreadful> 1x02, 도리안 그레이의 등장. 퇴폐미 쩌는 장면의 연출. 2분 7초 부분의 대사. 어우

네네. 청소년 유해 영상이라서 차단될 정도입니다 









X-Art Angelica - Good Night Kiss


X-Art는 다른 AV에 비해 고화질의 화면에 뽀샤시한 효과가 더해져있는 데다가 연인 사이에서 나누는 강도로 섹스를 연출한다. 대체로 '미남'미녀가 출연하기에 여성도 부담없이 볼 수 있는 AV 레이블이라고 입소문 나있다.


남자의 사무실에 찾아가 여자는 입고 있던 트렌치 코트를 벗는다. 속옷과 가터벨트 차림의 여자. 남자의 손을 결박해놓고 질펀한 섹스를 즐긴다. 여기까지는 흔히들 판타지로 삼고 상상하는 장면이었다. 섹스가 끝난 뒤 하반신이 노출된 남자를 묶어 놓은 채로 볼일을 다 봤다는 듯 자기 옷만 챙겨 입고 나가는 여자의 표정과 당혹스러워 하는 남자를 보며 짧은 씬이었지만 누가 섹스 권력을 가지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악하고 짓궂지만 섹시함이란 힘을 가지고 상대를 통제함에서 느낄 수 있다는 걸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특히 싸이의 강남스타일 가사에서 나왔던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와는 반대로 

풀어헤친 머리를 야무지게 묶는 게 섹시해 보이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 그 포인트!
























<구남친은 구세계에>


“성장하면 이별한다. 헤어지는 사람들은 문제가 아니다. 이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문제이다.” 구남친과 얽혀 엉망진창인 감정 상태로 나 자신을 소모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에 친구가 해준 말이었다. 그와 끝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장하면 이별한다는 말의 의미를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에게서 완벽하게 벗어 나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정체된 나, 과거 속에 사는 나, 현실을 부정하는 나를 버리고 한 발을 겨우 내딛고 나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게 되고 그와의 이별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와 영원을 바랐던 시간이 있었다. 내 미래에 그릴 때 그가 함께인 것은 당연했고 그것만이 완벽한 모습이라고 믿었다. 그런 탓에 그와의 이별은 지지부진했다. 단칼에 잘려나가지 않았다. 단호해지지 못했다. 그를 끊어내는 것은 나의 일부를 산산조각 내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갑갑해졌다. 마치 아주 조금 자란 탓에 이전의 틀이 옥죄인다고 느꼈다. 이대론 안돼. 허물을 벗듯 내게서 그를 벗겨냈다.  


이별을 겪은 뒤 새로운 사람과 친밀해지는 과정은 피곤하기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 함께 있어주길 바라는 밤은 매일 찾아왔다.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내고 홀로 누워있으면 이 견디기 힘든 쓸쓸함을 위로 받고 싶어졌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밤의 시간, 타인의 체온이 필요해지는 외롭고도 야릇한 그런 밤. ‘날 쓰다듬어주던 손길이 있었지. 내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눈길이 있었지.’ 그런 날이면 한때는 영혼이 이어져 있었다 믿었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도 비슷한 주기를 가지다니, 그래서 연인이었던 것이라고 그 순간의 진실에 몰입했다. 우리 둘만 아는 뉘앙스로 그에게 원하는 신호를 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랑은 관계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그 모양이 변하기 마련인데 처음 그 모습이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둘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편안함을 권태롭게 여겼다. ‘열정’이 사그라진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에게 이별을 선언한 건 나였지만 서로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어져서 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관계의 무게를 덜어낸 상태에서 여전히 친구처럼 지내길 바랐다. 그런 탓에 약해질 때면 나도 그를 찾곤 했고, 그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해주었다. 사귈 때보다 수월하게 내가 바라는 것이 얻어졌다. 그런 탓에 습관처럼 굳어져가고 있었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연인처럼 그에게 안겨 기만스러운 만족감에 취했다. 


서로에게 연인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그에게 얽매여 있는 내가 그 감정을 품은 채 새로운 사람에게 빠져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홀로 튼튼해질 필요가 있었다. 단순한 외로움을 타인을 통해 해소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가졌어야 했다. 이미 헤어진 연인과 나누는 섹스는 아슬아슬한 미봉책일 뿐이었다.

 

사태는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생겼고 나에게 그 사실을 함구한 채로 나를 찾았다. 어리석게도 선을 긋지 못한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연애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나를 찾는 거잖아. 진짜 서로 잘 통하고 함께 있을 때 좋은 건 나라는 걸 의미하는 거야.’ 이런 멍청한 생각으로 무장해서 내가 사랑했던 남자를 순식간에 형편없는 놈으로 전락시킨 것도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위악적으로 굴며 완전히 망가진 관계 안에서 절대 괜찮을 리 없는 자신에게 ‘나는 괜찮아’를 되뇌었다. 동물적 욕구에 굴복해버리고 난 다음날 쓰나미처럼 밀려올 자괴감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하지 않은 채 그 순간의 즐거움과 따스함의 강렬함에 취했다. 


그렇게 애매한 관계와 상태를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친구들에게 ‘그가 나를 찾아왔어. 나를 잊지 못했나 봐. 어쩌다 보니 같이 자게 되었는데 그래도 괜찮아. 끝난 사이니까. 되돌릴 건 아니야.’ 라며 허세부리듯 말했지만 결코 괜찮지 않았고 그 일을 자주 반복되었다. 나의 필요, 그의 필요들이 만들어낸 이 기간 동안 자제력이 없는 무너진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자존감도 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나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까지 내려와서야 바닥을 실감했다. 그는 과거였다. 다시 두 사람이 잘 될 일도 없었다. 이 현재가 미래로 이어질 일이 없었다. 속정만 남은 과거의 연을 끊어 낼 때 비로소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나의 세계를 종결 짓는 일은 하나의 세계를 닫는 일이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와 그를 직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대로 본다는 건 아프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과거를 끊어내고 홀로 설 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면서 주변의 기운들이 거짓말처럼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폐쇄시킨 과거의 세계가 다시금 내게 달려드는 일은 온 힘을 다해 막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의 연인 때문에 감상에 젖어 드는 것은 어리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제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다. 과거는 과거다. 구남친은 구세계에. 그가 내게 돌아올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친구 사이라는 그녀석들>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는가? 이 문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하게 된다. 나의 이성 친구를 경계하는 남자친구에게는 “우린 친구 사이야. 걱정하지 마.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라고 말하기 마련이지만 애인이 구여친과 여전히 친구로 지내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그런 관계 불쾌해!”라고 화가 나기 마련이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가능 하려면 우정의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10년 이상 알고 지내서 서로의 연애사도 꿰고 있고 성적 농담이 자유로워진 친구끼리 “야, 친구가 발정 나서 헉헉거릴 땐 섹스도 할 수 있는 게 좋은 친구 사이 아냐?”라는 농담을 던지곤 깔깔거리기도 한다지만 남녀 사이의 우정에서는 스킨십의 범위는 민감한 주제가 될 것이다. 여자친구들끼리 손도 잡고 안아주기도 하니까 그 정도는 문제 없을까? 횟수나 빈도는? 그런데 그런 스킨십을 하더라도 서로가 전혀 이성적인 끌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정이라는 관계 안전망 안에서 분위기의 미묘함을 즐긴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연인 사이였던 이들이 연애 종결 후에 친구로 관계를 전환했을 때이다. ‘남녀 사이에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어?’라고 반문할 때 가장 짙은 의혹과 혐의의 시선을 받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알만큼 알지 않는가? 몸을 섞은 경험이 있는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기류. 그 둘만이 아는 느낌들. 그걸 무시하고 우정을 유지하는 자제력? 혹은 시원한 성격에 감탄하며 친구라는 걸 믿어줘야 하는 것일까?


각자 싱글인 상태라면 이성과 친구를 하든 사랑을 하든 그건 그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뿐이다. 꼬꼬마 시절부터 알고 지내 도무지 이성으로 느낄 구석이 하나도 없는 그런 친구가 아니라면 친구로 시작한 이성은 얼마든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두 사람이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친구의 영역에서 호감을 쌓아나가며 연인으로 발전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녀 간의 우정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한창 연애 중인 상대에게 호감을 품게 되었지만 친구로 머물면서 둘 사이의 균열을 바라며 인내심 많은 사냥꾼처럼 기회를 노리거나, 친구로 잘 지내다가 한쪽이 먼저 상대를 이성으로 인식하게 되었지만 섣불리 고백했다가 연인이 되기는커녕 어색해져서 친구로도 지내지 못할까 봐 용기내지 못하는 관계도 있다.


그런데 상처만 남은 연애를 막 끝내고 당분간 깊은 관계를 기피하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육체적인 쾌락, 타인의 관심과 친절은 즐기고픈 이들에게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적당히 관계를 봉합하고 거리를 유지하려는 비겁한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두어 연인인 듯 아닌 듯 우정의 호의를 이용하는 관계도 있다. 혹은 그 친구와는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의 분위기, 이를테면 평소와는 다르게 이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옷차림 더하기 혈중 알코올 농도의 짙음이 만들어낸 충동적 하룻밤 이후 애매한 관계들이,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이라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경우가 아닐까. 



































주최측의 진행도, 강연의 호응도 좋아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야함에 플러스 요인이 되었길 바라면서.

















대학 OT때 첫 눈에 서로에게 이끌려 절친이 되어 우정을 나눠 온 친구와

각자의 분야에서 제 몫을 하다 이렇게 나란히 강연하게 되는 것.























http://www.thesingle.co.kr/common/cms_view.asp?channel=56&subChannel=58&gotoPage=2&idx=8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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