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박3일 동안 칩거한 상태로 섹스하고 먹고 자고 섹스하고 먹고 자고 반복하는 거 해보고 싶다. 

미리 구호식량 준비해서. 

한 끼는 식은 피자와 김빠진 콜라나 하루 지난 커피로 엄청난 허기를 허겁지겁 채우고 싶다.


일관성있게 나를 대해주는 태도가 좋더라구. 

자주 보지 못하고 멀리 있지만 만나게 되면 그 시간의 간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전의 섹스와 이번의 섹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그런 거 말야





나눗셈과 분수는 처음 배울때부터 그 개념을 너무 싫어해서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오롯한 형태로 분산되지 않은, 나눌 수 없는 마음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럼에도 솔로몬왕이 아기를 반으로 갈라 가지라고 한다면 아기가 죽으니 그럴 수 없다가 아니라 

어차피 빼앗길게 자명하다면 차라리 죽여서.. 나눠져 죽은 너를 영원히 소유하겠다는 마음도 있어. 

언제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지.


박고 싶다의 주체는 남성인데 어째서 내가 그런 욕망을 품고 있게 되는 거지? 

박힌다는 것보다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그래. 라고 그가 대답했다. 귀여워.







남자들은 소년이나 어른이나 똑같아서 재미가 없다. 

물론 어리다면 어설픈 점을 감안해야하지만 생기가 있고 지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 

당장의 것에 매달리는 애달픈 성정을 괴롭히는 재미도 있지만 그런 것엔 곧잘 피곤함을 느끼게 돼. 


남성이란 생물 자체에 에로틱함을 발견할 요소가 드물다는 것. 

아니 자신의 에로스에 근원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는다는 것.


여자들은 자신을 욕망하는 그 욕망에 반응하고,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에로스를 극대화시키는 건지도. 가끔 상대가 너무나 객관적으로도 무매력한 존재임에도 페니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견뎌내는 이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건 그가 욕망하는 '나'를 보고 버티는 것 같다.


시무룩하고 세상에 무관심한 그러나 직관을 가진 소녀에게 가장 큰 적은 시간이다. 

신동에게도 그러하듯이 나이가 든 사람에게선 놀랍지도 않은 일이 

단지 어리기 때문에 신비하고 신기하게 보이기도 하는 법이지. 

물론 그때를 잘 이용해야지. 적당히 벌리고 적당히 채우고



적나라한 것이 추한 모습이여서는 안 된다. 솔직한 것이 불쾌해서는 안 된다. 유념하고 유념할 것.





섹스를 하면서 야한 얘기를 잔뜩 듣고 싶다. 

애정어린 마음으로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내뱉아주는 거. 

'역시 나랑 너랑 이구나' 싶은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거. 

야함이 고조되어 신나게 되는 말들 사이로 

처벅처벅한 의태어와 의성어가 뒤섞인 침대 위를 되새김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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