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일상적이다.


두통이 올 때마다 침대 헤드에 머리가 박힐 정도로 격렬한 섹스를 떠올린다.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두통을 느끼고 있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섹스밖에 없잖아.

가만히 누운 채로 인공호흡기처럼 네 걸 물고 빨고 싶어


새벽에 어렴풋이 깬 채로 섹스를 한 후 다시 정신을 잃고 잠들었다가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코가 먼저 반응하여 잠이 깬 뒤 눈을 부비며 나가서 아침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그에게 잘잤냐는 인사를 건넸다. 맛있는 커피를 타기 위한 자신만의 공정을 가진 그를 도와 미션을 수행하듯 그 준비를 돕고 간단하지만 정성스러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느긋하게 누리는 일요일 오전. 그 시간에서 충만함을 느꼈다.


그가 내게 "나라고 평소와 다른 너를 모를 것 같아? 이상한 걸 못 읽어내는 줄 알아?" 라고 말하며 화낼 때 그제야 나를 사랑한다는 걸 확신했다. 가끔은 화를 낸다는 행위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진실에서 안도를 하기도 한다. 그것이 연인과 싸우는 묘미이다. 게다가 그런 날의 섹스는 훨씬 좋을 수밖에 없다. 감정의 격앙이 만들어낸 전희는 제법 거칠지만 쓸만하다. 증오와 사랑은 붙어 있는 것이니까. 상대가 뭘해도 담담하고 뭘해도 상처받지 않고 그러든말든 하는 건 애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흥분시키는 건 목소리다. 어조. 말투. 말의 속도. 글이 아닌 말, 문자로 박제된 것이 아닌 생생한 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목소리라면 말과 말 사이의 침묵만으로도 젖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다.. 대체로 목소리를 사랑하고만다.


스며든 권태를 적극적 변태의 기회로 만드는 부지런함과 애정이랄까.


지속가능함이란 엄청난 미덕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하는 섹스가 필요하다. 탐욕스러움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꼭 기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텅빈 마음으로 안지 말고, 상대를 소모하지 말고. 꼭 사랑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껴주고 좋아해주고 대화하는 일들. 이런 것들이 왜 어려운 것이어야 하는 걸까?


사랑스러운 화법이 있다. 그것은 듣기 좋은 칭찬이나 달달한 어조나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 말들이 아니다. 숨길 수 없는 진심.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전하고자 하는 마음. 그렇게 드러나는 감정을 약간은 들뜬 어조로 차근차근하게 풀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귓가에 달콤하고 세련되게 내려앉는 말엔 적당히 반응한다. 굳이 외피가 화려하거나 능숙하지 않아도 닿으려는 것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언어를 구별해 내려고 노력한다.


절망적인 기분을 이해하고 섹스할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해.


취향이 일종의 연애 권력이 되는 요즘 같은 때에 좋아하는 작가, 영화, 음악 뭐 이런 걸 공유하면서 교집합의 크기를 키우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커다른 교집합은 둘 사이에 어떤 무엇도 보장하지 않는다. '운명'이라거나 '선함'이라거나 관계에서의 '의리' 그 무엇도 상관이 없다. 인간은 취향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취향은 그저 표피에 머물 뿐이다. 


비단 문학판만 그렇겠냐마는 예술 전반의 분야에 낭만적 환상을 품은 소녀들의 그루피짓도 마음에 안드는 건 사실. - 자아성찰을 기반으로 - 나도 한때 지망생이었기에 더 나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과 어울리면 어떤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사적친밀감이 형성되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모든 예술은 혼자서 하는 것이다.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내 안에서 새롭게 해석해내지 못하면 그건 그저 영향받은 것에 머문 아류가 될 뿐이다. 그렇기에 그루피짓을 하다 운 좋게 그들의 눈에 띄어 사랑받게 되었다치더라도 그건 결코 자신의 예술적 성과가 될 수 없다.


자신들의 그루피들에게나 잘 먹힐 방식으로 치근덕거리며 피곤함을 더해주는 소위 예술한다는 인간들과 엮이는 일도 피곤하다.


나는 입바른 소리만 하는 인간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바른 소리만 하는 인간이 되는 것도 싫다. 남들에게 반듯해 보일만한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더니 처절하게 실패하고 망가졌어서 다신 안 그러고 싶다는 의미이고, 그럼에도 사실 나역시 매번 그걸 제대로 못 지키지 못해서 스스로 그 말을 어기고 넘어져서 엉망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나는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내가 하는 말을 지켜내는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 물론 인간이 쉽게 갱생이 되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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