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선 절대 안 할 거야!” 그가 인적이 드물고 어두침침한 곳에 차를 세우자 그간의 경험을 미루어 반사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속내를 들킨 듯 당황스러워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건 아니었다. 카섹스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얼렁뚱땅 분위기 타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단호하게 거절, 일말의 희망도 품지 못하게 냉정히 거절이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으로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애틋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키스를 나누는 것까지는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 우리 둘의 사적인 행위를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스릴을 주거나 색다른 감각을 자극하기보단 불편하고 불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아우디, 사브, 푸조 심지어 나의 드림카였던 BMW까지 차종을 막론하고 이 남자, 카섹스를 하기 위해 차를 산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카섹스에 대한 그들의 열망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 장단을 맞춰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서로의 몸을 탐닉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는데 섹스할 장소가 마땅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순간에는 나와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카섹스가 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느낄 때도 있었다.

 

좋다. 남자들은 베이비페이스가 아니라 뉴페이스를 좋아하고, 남자들의 이상형은 낯선 여자라는 쿨리지 이론을 최대한 존중해서 내가 새로운 사람은 될 수 없어도 색다른 섹스를 시도할 순 있다. 가터벨트도 좋고, 손을 묶어도 좋다. 코스튬을 하든, 볼기짝을 때리든 그런 건 맞춰갈 수 있지만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싫은 건 존중받아야 하지 않나. “선팅을 했으니까 밖에서 안 보여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포드의 토러스를 타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뒷좌석으로 넘어가 앉은 그는 내게 이쪽으로 오라고 재촉했다. “뒷좌석에서 하면 앞좌석 시트가 앞 유리를 가려주잖아.” 퍽이나 가려지겠다. 게다가 좌우에는 창문 없나? 밖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선팅한 유리창에 코를 박고 유심히 안을 들여다보는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기겁을 했다는 친구의 카섹스 경험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좋아. 누군가 볼까봐 그게 걱정이라는 거지?” 그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불편했던 마음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얼굴로 바닥만 툭툭 치고 있었다. “그럼 이리로 들어와.” 어딘가 거리감이 생긴 그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그는 뒷좌석에 없었다. 두리번두리번. 시트 너머 트렁크 속에 들어간 그는 이 안이라면 괜찮은 거 아냐?”라고 말했다. 정말 그 순간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 집요함. 하긴 우리 둘의 첫 데이트도 그의 끈질기고 성실한 시도 덕분에 시작되었지. 하여간 못 말리겠다.

 

 

 

 

김영하의 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 그게 아니라면 그걸 원작으로 한 영화 <주홍글씨>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트렁크 안에서의 정사를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 소설을 좋아했기에 뒷좌석의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며 고조되어 가는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숨이 좀 가파졌는데?” 엉큼하면서도 느끼한 말투로 나를 맞이하는 그를 보니 귀엽기도 했다.

 

둘은 관 속에 누운 (물론 무릎은 살짝 접은 상태였지만) 것 마냥 조용히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 트렁크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막상 서둘러 덤벼들지 않는 걸 보니 그 순간만큼은 신뢰해도 될 것 같았다.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었다. 에쿠우스보다 차체가 크다고 하더니 트렁크도 넓네. 굴러다녀도 되겠다. 생각보다 쾌적해서 좋다는 둥, 처음 차 트렁크에 들어와 보는 건데 나쁘지 않다는 둥, 안에서도 트렁크를 열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그 소설처럼 트렁크 안에 갇혀 죽는 일은 없을 거라는 둥.

 

콘돔은?” 이 질문은 무드를 깨는 게 결코 아니었다. 확실히 발동을 걸어보겠다는 의미하는 시동장치였다. “뒷주머니오히려 막상 그 순간에 콘돔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거나 허겁지겁 찾는 것이야 말로 산통을 깨는 일이었지. 그의 대답을 듣고 확실한 게 좋은 나는 그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안심이 되는 단단함. 그것이 첫 번째 흥분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시각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 어둠의 공간에서 촉각은 중요한 작용을 한다. 내가 옆에 있는데 딱딱해지는 내 남자만큼 섹시한 것도 없었다.

 

트렁크 공간이 다른 차에 비해 넓더라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둘이 포개져서 어떤 행동을 할 순 없었다. 내가 몸을 모로 세우자 그가 뒤에서 나를 안은 형태로 서로의 몸을 밀착했다. 손을 뒤로 뻗어 그의 페니스를 자극하면서도 허리와 골반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주었다. 못 견디겠다는 듯 내 어깨를 꽉 누른 팔의 힘을 느끼는 것도 좋았고 우리가 내뱉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려 다시 내 귓가에 닿는 것도 흥분되었다.

 

시선에 대한 걱정이 없으면서도 살에 닿는 야외의 서늘한 공기도 존재하고 동굴의 아늑함까지 갖추고 있어 트렁크 안에서의 섹스는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었다. 더듬더듬 옷을 챙겨 입고 나오느라 매무새가 제법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가 집 앞까지 모셔다 줄 테니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게다가 편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그토록 원하는 카섹스에는 성공한 것이니 오늘은 둘을 만족시킬만한,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는 찍어도 되는 그런 날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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