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섹스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겨웠다. 결국 나는 올바르지 못한 질문을 그에게 던지고 말았다.

"왜 나랑 자는 거야?"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 이 관계를 지속할 생각이라면 해서는 안 될 말 중에 하나였다.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은 견딜 수 있지만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 그런 질문은 그저 몸과 몸의 관계에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랑 자는 거 재미없을 것 같아." 나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은 상호적인 것이니까. 그러나 주기적으로 서로를 찾는 상태에서 그런 말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그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굳이 내가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창의적이진 않았지. 앞으로 색다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면야..."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걸 모르진 않았다. 그 색다른 상황을 '연출'까지 하는 수고로움을 그와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그 답을 찾고 싶은 것이었다. 그에게 할 질문이 아니었다.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왜 지겨운 섹스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거지?" 서로의 몸을 사물적으로 대하는 관계는 분명 사랑하는 남자와 보내는 밤과는 다른 것이다. 건조함. 그 퍼석거림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쾌락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삭막함을 동반하고서도 서로의 몸이 일으키는 마찰력이 감동스러울리 없었다.

 

 

섹스를 하기 전 그는 다정하고 친밀한 사람처럼 장난스럽게 행동을 했다. 그러나 섹스를 하고 난 뒤엔 본인 스스로 어색하다 말할 정도로 뻣뻣하게 행동했다. 둘은 밋밋해졌다. 그의 팔베개를 베는 것조차 뭔가 잘못된 행동인 것처럼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사랑해선 안 될 여자, 혹여나 어떤 감정이라도 한 방울 섞일까봐 두려워 벌벌 떠는 것처럼 보였다. 몇 겹의 보호막을 둘러쌓고 자신을 드러내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낯선 남자와의 새로운 움직임.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내 몸을 만진 적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섹스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설렘을 안겨주었던 그였다. 분명 흥미로웠다. 다른 경험이라는 것은 흥분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시 행해졌을 때 기계적이었을 뿐이었다. 태엽시계를 감듯 주기적인 행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반복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도 반복되는 일인데 어째서 더 쉽게 지겨워지고 노력하기 싫어지는 것일까. 나는 이토록 에너지가 희박한 인간이었나. 섹스,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었나. 스스로 에너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인간. 타인에게 기대하지만 타인조차 그 한 번의 부싯돌이 될 뿐인 그런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버린 것. 그건 현명해진다는 느낌보다는 늙어간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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