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 에르노처럼 두려움을 걷어 낸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그 사람이 떠나자 엄청난 피로가 나를 짓눌러왔다. 곧바로 집안을 정리하지 못했다. 나는 글라스, 음식 부스러기가 남아 있는 접시,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 방바닥과 복도에 흩어져 있는 겉옷과 속옷들, 카펫에 떨어져 있는 침대 시트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하나 어떤 몸짓이나 순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물건들을, 그것들이 이루는 생생한 무질서를 지금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것들은 미술관에 소장된 다른 어떤 그림도 내게 주지 못할 힘과 고통을 간직한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지니고 있기 위해 다음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중에서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껏 미혼 여성들에게 피임을 강조해왔고 나 역시 순간의 안일함으로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철저하게 피임을 해왔다. 콘돔을 사용했고 피임약을 복용할 때라도 콘돔을 사용하여 안전에 안전을 기했다.

 

타협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가임기간이 아닌 것이 분명할 때에 콘돔 없이 섹스를 하는 시도를 한 적은 있었다.(나는 굴복하고 말았지만 이 글을 읽는 미혼 여성에게는 절대 타협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안전한 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고 난 후에 생리예정일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불안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은 겪지 않는 게 좋다.) 물론 삽입한 채로 사정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액이 내 몸 안에 머무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임신을 계획하고 생식이 목적인 섹스를 하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는 결코 해볼 수 없는 경험인 것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 뒤 우리가 나눈 섹스의 기운과 그의 체취가 옅게 남은 이부자리에서 나오지 않은 채 온종일 침대 안에서 뒹굴다 느지막이 샤워를 하고 이불을 세탁기 안에 집어넣는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열정이 그 문장에서 느껴졌다.

 

“애인과 섹스를 하고 나면 둘 다 침대에 머물지 않고 재빨리 샤워를 하러 가는데 성실하고 꼼꼼하게 씻어내도 두어 번은 몸 안에 남은 정액이 흘러나와. 처음엔 이상이 생겨서 냉 같은 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씻어내는 걸로는 빠져나오지 않은, 내 몸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았던 그것이 나오는 거였어. 값비싼 속옷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질내사정을 한 날에는 팬티라이너를 써야해.”  

 

그러나 M의 실질적인 후기보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정할 때의 느낌이었다. 꿀과 라즈베리를 넣어 달달하면서도 새콤한 수제 요거트를 떠먹으며 M은 말을 이었다.

 

“사정을 한다고 해서 정액이 ‘발사’된다는 느낌이 주는 남자는 극히 드물어. 그가 사정했는지 내 몸이 인지 못할 때가 더 많아. 흘러나온다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지. 지금 애인과 5년  넘게 사귀는 단 하나의 이유는 건강함이 남달랐기 때문이었어. 지금껏 내가 자본 남자와는 다르게 그가 내 몸 안에 사정을 하면 자궁벽까지 가닿는 느낌이랄까나. 분명하게 그 순간이 느껴져. 나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체력도 약해서 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를 만나곤 다음 세대에 내 유전자를 극복할 만한 2세를 남길 수 있을 거란 기대감 같은 걸 가질 수 있었어.”

 

M뿐만 아니라 결혼 후 출산까지 경험한 친구들에게도 그 느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호기심과 환상을 품기 마련이지만, 그녀들에게 질내사정이라고 하더라도 M이 경험한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인지되는 일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접근한 M과는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따듯하다. 아니 그 순간만큼은 데인 것처럼 뜨겁다고 느꼈어. 내 몸 안으로 뭔가 들어왔다는 느낌. 그리고 그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움찔거리면서 두세 번 이어지는데 그럴 때 힘을 주며 표정이 일그러지는 남편의 얼굴이 무척 사랑스러웠어. 애를 쓰고 있구나. 토닥거려주고 싶다 이런 느낌이야.” 갓 돌이 지난 잘생긴 아들을 둔 A는 처음으로 질 안에 사정을 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그렇게 회상하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지. 하지만 정액의 온도는 생경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이 아닌 내 몸 내부를 감싸주는 느낌이었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라서 그랬는지 의미를 더 부여하는 것 같지만 소중하게 느껴졌어.”

 

언제 체험하게 될지 모를 그 일에 대해서 나는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듯한 섹스라이프에 빈곳을 찾아낸 느낌. 그것까지 채우게 되는 순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지는 밤이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동의 효과  (0) 2012.11.01
트렁크로의 초대  (0) 2012.10.25
지겨워지는 섹스  (0) 2012.10.17
섹스를 공상하라  (4) 2012.09.27
My First Kiss  (0) 2012.09.20
여자의 블랙 새틴 스커트  (0) 2012.09.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