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일교차가 커져 차가워진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역시 이 치마인건가?’라고 생각했다.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할 수는 없었다. 아직 잠든 그를 내버려두고 먼저 나왔다. 택시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빛을 받아 강물은 반짝이고 있었다. 여자의 블랙 새틴 스커트처럼 매끄러워보였다.

 

여자의 치마는 무릎까지 내려왔지만 튤립 모양이었기 때문에 앉을 때는 허벅지가 살짝 드러났다. 엉덩이는 풍만하고 다리는 길어보이도록 만들어진 치마였다. 같은 소재의 딱 붙는 블라우스와 함께 입었을 때 여자의 몸은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인지 이 치마를 입고 출근한 날이면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 직원들의 눈빛이 흔들린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자가 퇴근하고 한 잔 할래요? 라는 말을 했을 때 사양하는 남자는 없었다.

 

여자는 호기심이 강했다. 이 남자랑 자보면 어떨까? 하는 은밀한 상상은 무료한 직장생활을 버티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몇 번의 연애가 끝나고 나니 결국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지겨워지기 위해서 하는 소모적인 행동 같았다. 여자는 연애보다는 섹스를 즐기기로 결심했다. 서로가 생동감 넘치게 궁금할 때 자보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진 않았다. 여자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질 생각도 없었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 서로의 몸을 맞춰가는 기간 같은 건 원하지 않았다. 옷을 벗었을 때 그의 반응과 태도가 궁금할 뿐. 섹스가 반복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적절한 상대를 선별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관계를 복잡하게 생각할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갈 사람들을 골랐다. 자신이 열린 태도를 갖추었다는 걸 교묘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잘 알았다. 그럴 때 여자의 치마는 섹스를 위한 유니폼이었다. 언제나 이 치마였다.

 

 

 

 

 

남자들은 쉽게 흥분했다. 치마는 앞이 트인 디자인이라 단둘의 공간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키스를 나누며 여자의 허벅지 안으로 손을 넣는 건 쉬운 일이었다. 여자가 방어하지 않으므로 수월하기까지 했다.

 

살결보다 부드러워 스커트를 벗기기보다는 팬티만 내려서 못 견디겠다는 듯 급하게 삽입 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철저하게 콘돔을 사용하게 했지만 제대로 삽입도 못하고 스커트에 사정해버리는 미숙한 남자도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인내심을 갖기 어려운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틴 소재에 잘 지워지지 않는 단백질 정액의 흔적은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일출의 붉은 빛이 감도는 택시 안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여자는 치마 끝자락에 살짝 묻은 하얀 자국을 보며 다음부턴 치마는 곱게 벗어두고 섹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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