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애를 시작한 리을이 서로 눈만 마주치면 화르르 타오르는 연인과의 시간을 자랑하면서 덧붙인 이야기는 바로 침대 위 음담패설이었다. 그동안 리을은 남자들이 자신을 안으며 흥분한 마음을 솔직하고 적나라한 언어로 내뱉는 것에 대해서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서 진정성은 결여된, 오로지 동물성만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탈적 관계에서는 모욕적이고 역겹다고 느꼈던 말이 이제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관계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은 여자가 침대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 기분에 한껏 빠져 신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리을을 보니 부러운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애인 씨는 섹스를 하면서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를 할 때 결코 저속한 단어는 쓰지 않는 정숙한 남자였다. 그렇다보니 우리의 섹스에는 어딘가 추임새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리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를 원한다는 말을 조금 더 원초적인 언어로 듣고 싶어졌다. 침대 위에서 어린 아이를 어르듯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뱉게 유도를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에겐 쉽지 않은 일인 듯 했다.

 

조금 더 야한 제스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내 안으로 들어오고 싶게끔 그를 흥분시키면서도 아직 문을 열 수 있는 주문은 듣지 못했다는 듯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밀어내거나 몸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 역시 침대 위에서 섹스를 하며 자연스럽게 내뱉게 되는 신음소리나 탄성 이외에 한 번의 사고가 필요한 언어를 내뱉는 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라 생각해서, 행동을 지시하는 말 이외에는 잘 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이러한 시도가 우리 둘 사이에는 달에 착륙하는 것만큼이나 진일보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는 ‘넣고 싶어’라고 작게 읊조렸다. 나는 짐짓 못들은 척 ‘뭐라고? 뭐라고 했어?’라고 되물었다. ‘넣고 싶어’ 그의 눈빛이 조금 더 흔들렸다. ‘응?’ 나는 한 번 더 되물었다. 그는 못 견디겠다는 듯 ‘박고 싶다구’라는 말을 내뱉었다.

 

박다라는 동사는 ‘두들겨 치거나 틀어서 꽂혀지게 하다. 가운데에 들여 넣다. 은밀히 넣어 두다’라는 뜻을 가진 ‘넣다, 삽입하다’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표준어이다. 그러나 어린 남자들 사이에서는 SEX를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그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그의 소년 같은 면모가 귀엽게 느껴졌다.

 

다만 하나의 부작용이 생겼다. 그날 밤이 지나치게 동물적이었던 탓에 그 동사가 너무 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못을 박아야하는데’ 라는 사소한 말도 볼이 빨개져서 못할 만큼 박다라는 단어는 인상이 깊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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