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 카세 료 닮았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무례하게 들렸을 수도 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첫인사도 하기 전에 내뱉은 말이었으므로. 그 말을 하고만 당사자인 나도 놀랐지만 그는 태연스럽게 “카세 료, 알아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오만해보일지라도 그는 내게 첫눈에 이끌렸다는 표현을 써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눈빛, 말투, 거리감에서 관심표명이 분명했다. 나 역시 카세 료를 닮은 남자가 해사하게 웃어주는데 싫을 리 만무했다. 말이 잘 통한다거나 공감대가 형성되어서라기보다는 나는 그의 얼굴에 대단히 끌리고 있었다.

 
누굴 닮았다는 사람들은 어딘가 어설프다. 그러나 그는 선한지 악한지 알 길에 없는 눈을 하고 고집스럽고 강단 있으나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을 줄 아는 남자였다. 부러질 듯 말랐지만 연약해보이지 않는 남자. 그러나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에 들게 만드는 카세 료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바닥이 빤한 이곳에서 같은 업종의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런 얼굴은 흔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연애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호감을 가진 두 남녀가 한 침대에서 눈을 뜨는 건 적당한 알코올 섭취와 (과해서는 안 된다. 취한 상태에서의 섹스는 무의미하다.) 약간의 솔직함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섹스가 필요한 청춘들이 아닌가.


그와의 섹스는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삭막하지도 그렇다고 다정이 지나치지도 않은 서로가 선을 잘 지킨 행위였다. 이를테면 파트너십이 좋았던 섹스라고 해야 할까. 주기적으로 데이트를 하고 몇 번의 밤을 함께 보낸 어느 날, 그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티셔츠를 입으며 ‘단지 섹스’로 끝나기보다는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쉽게 잘 수 있는 여자는 그저 섹스를 위한 상대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그저 그런 남자들과 다른 태도를 보여준 것은 자존감에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 역시 ‘그가 좋다’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면서 마주쳐야 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건 구실이 좋은 핑계였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카세 료’라는 환상을 안고 싶었다. 그의 얼굴과 몸에 내가 덮어씌워둔 모습이 아닌 ‘그’라는 사람이 보이는 게 싫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라는 사람에 대해서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첫사랑과 가슴 아프게 헤어진 뒤 오직 그 첫사랑의 대체물로 여자를 안는 남자의 심정과도 같은 것이랄까. 자고 난 뒤 밀려드는 허무함과 허망함, 아마 이해할 수 있는 남자들은 내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 우스꽝스럽다.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내가 담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들뜬 마음을 반영하듯 붉어진 두 뺨 그리고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들통 나버리고 마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내가 아닌 모습으로도 누군가를 안을 수 있고, 또 그 누군가는 나를 애틋하게 생각해준다는 게 참으로 거지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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