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섹스를 하며 계속해서 키스를 나누길 원했다. 서로 입을 맞추지 않을 때에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형용이 가득한 미사여구나 은유적인 표현들, 가끔은 직설적인 야한 말들을 내뱉었다. 동시에 나 역시 자신의 귓가에 ‘너랑 하는 게 좋다’와 같은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는 섹스 도중에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지금 좋은지 항상 물어봤다. 그럴 때마다 섹스의 리듬이 묘하게 깨졌다. 가빠졌던 호흡을 가다듬게 되고 K의 몸과 함께 움직이던 허리도 정적인 상태가 되었다.

“내가 내뱉는 신음소리나 몸의 반응만으로도 알 수 없는 거야?” K는 안도하지 못했다. 자신이 잘하고 있음을 그와 섹스를 하는 것이 내게는 즐거운 일임을 말로 표현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인정받고 격려받고 싶어 했다.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너랑 더 이상 섹스할 일은 없을 거야. 오늘도 내가 널 먼저 보고 싶어 했잖아.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K는 섹스 하는 도중 의식하고 그런 요구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섹스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내뱉고 마는 말이라고 했다. 하긴 K는 자신의 쾌락보다는 여자를 만족시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남자였다. 내가 충분히 느끼기 전에 먼저 사정을 해버리면 손가락을 이용해 후희를 선사할 줄도 아는 성실한 남자였다. 그러니 자신의 노력에 대한 어느 정도 보상, 립서비스를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기교를 과신하는 남자들에 비하면 K의 노력하는 자세는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나는 K가 자신이 항상 오르가슴을 선사해야 하고 만족감을 줘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주길 바랐다. 섹스파트너로서 K와의 관계를 지속함에 있어 나도 모르게 K의 바람이 부담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맨스가 없는 기간에도 정기적인 섹스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섹스는 애정을 확인하는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 너무 건조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유연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내게 섹스는 취미생활처럼 영유되어야 하는 일이다. 섹스를 한다는 사실 자체, 오르가슴이라는 부가적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함도 있지만 실은 누군가의 체온을 통해 지친 삶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가 끝난 뒤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짧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순간을 위해 섹스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내게 원하는 것을 이 관계에서 얻고 있다면 나도 K의 귓가에 그가 흡족해할만한 말을 속삭여주는 것이 옳은 일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필요에 의해 섹스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 남자 특전’은 남겨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섹스라이프를 지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여자들도 애정없는 섹스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섹스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섹스의 즐거움이 그 어떤 것에 비할 바가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기에 내 남자에게만 해줄 수 있는 것을 남겨두고, 구분을 지음으로써 나의 로맨스를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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