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뒤에서 나를 안았다. 뒷덜미에 머리를 파묻고 흡입력 있는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안돼. 미숙한 애들이나 함께 보낸 밤의 흔적을 눈에 띄는 곳에 남기는 거야. 그런 거 촌스러워.” 단호하게 거부하는 목소리가 그를 더 자극한 것일까? 목선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선을 따라 키스를 퍼붓던 그가 어깨를 깨물었다. 


놀람과 고통을 동시에 느낀 나는 치타에게 목을 물려 꺼져가는 생의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내는 가젤처럼 바동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는 두 팔로 나를 붙잡고 반동을 줄 때마다 그만큼 더 강해진 악력(顎力)으로 나를 물었다. 참으려 해도 입에선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뱉어낸 신음소리였지만 스스로를 흥분시킴과 동시에 그를 만족시키고 있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대신에 저항하기를 멈췄다. 그 역시 턱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하지만 내 허벅지에 닿은 그의 페니스는 빈틈없이 단단해져 있었다. 


다음날 침대에서 나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미묘하게 변한 몸을 관찰했다. 긴장감과 호르몬, 지난 밤 동안 그 둘은 적절하게 작용하여 몸을 탄력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좋은 섹스를 하고 난 뒤 즐기는 비밀스러운 유희. 거울 속 내 몸에는 그와 보낸 격정적인 시간이 새겨져있었다. 어깨에 선명하게 남은 잇자국. 그는 치열이 고른 편이여서 동그란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자국 주변으로 장난삼아 물었다고 하기에는 제법 심한 멍이 들어있었다. 그뿐 아니라 서로의 뼈가 부딪혔던 곳에도 고스란히 멍이 남아있었다.


잇자국이 남은 곳을 지긋이 눌러보았다. 통증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견딜만한 가치가 있었다. 둘의 격렬했던 몸짓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침대에 나를 눕히고 저돌적으로 내 몸 위에 올라탄 그의 무릎과 계속해서 부딪혔던 허벅지에도 멍은 남아 있었다.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던 그 자리에도 희미하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피부가 약해 멍이 잘 드는 체질인 것이 오히려 섹스를 재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 몸 구석구석 그가 만졌던 곳들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기억으로 몸을 쓰다듬을 때마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와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연쇄살인범의 희생자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잇자국과 멍을 생각한다면 끔찍스럽겠지만 내 몸에 남은 것은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라 내가 허락한 행위였다. 고통을 인내한 것은 나 자신이었지만 관계를 통제한 것도 바로 나였다. 


타인의 신체부위나 어떤 물건보다도 내 몸에 남아있는 멍을 통해 성적 쾌락을 되살릴 수 있었다. 우리 둘이 보낸 밤은 반듯하지 않은, 사악한 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섹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마술적이고 영적인 힘이 내안에서 차올랐다.


나의 사소한 성도착, 나만의 페티시즘. 그건 내 몸에 남겨진 멍자국이다. 사실 그 사람처럼 무자비하게 날 물어 줄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았다. 머릿속에 어떤 판타지를 품고 있든 현실의 나와 섹스를 하는 동안에는 정상 범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걸린 것처럼 남자들은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로 나의 소망을 좌절시켰다. 오, 제발. 그대여, 부디 날 물어주세요. 당신의 달콤한 입술보다 단단한 이를 내 몸에 박아주세요. 



<음담패설-나는 소망한다, 금지된 것을> 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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