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엄마는 나를 불러 앉혀놓고 동생이 생기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단호했다. "싫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집으로 이사 온 날부터, 그때까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맡아서 키워주셨던 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동안 외동딸처럼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면, 그날 이후로는 엄마의 관심을 서로 끌기 위한 투쟁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엄마의 애정을 반으로 나누는 것도 용납이 안 되는데 1/3 아니, 갓난아이라면 나와 동생은 뒷전이 될 게 뻔했다.

"동생 따위 필요 없어요."
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엄마의 애정을 나눈다는 점이 가장 컸지만, 11살의 어린아이가 생각해봐도 아이가 하나 늘어가는 건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뻔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나의 의견이 수렴된 것인지 어느날 갑자기 동생이 태어나는 일은 없었다. 다만 <M>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당시, 엄마가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뒤늦게 눈치를 채고 말았다.







윤리적,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낙태는 죄악이다. 생물학적으로 태아를 언제부터 생명으로 볼 것이냐를 놓고 입장이 달라지기도 한다지만 그런 것 따위야 편의를 위한 구분이고 이러니저러니해도 낙태란 하나의 생명을 없애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남용되어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감당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는 생명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하나?



낙태를 불법으로 만들고, 단순히 금지시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나?
낙태율을 낮추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는 것인가?



낙태문제가 이슈화된 배경을 보자면,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름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 것 같은데.1970년대에는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 낙태를 조장했던 정부가, 이제 저출산이 문제가 되니 낙태를 금지시키는 이런 정책을 보면서
이처럼 단순하고 어리석은 조치가 어디있나 싶다.

낙태를 금지시킨다고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사람들이 낙태를 하지 않게 될까?
오히려 음성적인 시술로 산모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1984년에 이미 낙태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의 경우, 낙태의 천국이 되어 있어야 하겠지만 실상 낙태율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로 첫번째, 철저한 성교육이다. 학교에서 일년에 한 시간 특별활동 시간에 진행되는 남녀의 신체도나 보여주는 단순한 성교육에 그치지 않고, 임신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피임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부모와 사회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피임이 얼마나 부당하게 여성의 책임으로만 강요되는 것인지, 얼마나 무지하고 이기적인 남자들이 손쉬운 콘돔을 쓰는 것 조차 싫어하고 거부하는지 생각해본다면 피임을 똑바로 안 했다고 임신한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낙태를 반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책임이라는 측면을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아닌가?

섹스를 쉽게 즐기고, 책임은 지지 않은 남성들의 태도나 성폭력에 대해서 무감각한 혹은 성폭력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대한 잘못을 추궁받아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런 것들에 대한 교정은 이뤄지지 않은 채, 원치 않은 임신할 한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아이를 낳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이런 식으로 낙태를 못하게 해서 당장 집계되는 낙태율이 떨어졌다고 만족할 수 있는 문제인가?



두번째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경제적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한국사회와의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된다. 미혼모나 입양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고 보수적인 한국에서, 아버지가 책임지지 않는 아이를 낳아 키울 여건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만 낳으면 된다. 출산율만 높이면 된다?
그 아이가 국가의 인재가 되리라는 보장은?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결정권을 빼앗으려는 목적이 국가를 영위해 나가는 수단인 인구를 조절하기 위함이라면, 사회적 인간으로 자라나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한 조건 속에서도 머리 수만 채우면 된다는 것인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미국 연쇄살인범들의 많은 수가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살인의 판타지를 키워나갔다. 미혼모의 가정환경이 그러하다 단정짓겠다는 건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를 돌보는 훌륭한 어머니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힘든 여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방치해둘 수밖에 없고, 원치 않았던 출산이었기에 아이와 소통하거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이 존재한다. 그런 불행한 환경 속에 살아나가는 것이 생명을 가졌기에 누려야 하는 권리인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생각이 없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낙태도 쉽게 생각하는 어린 산모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이 자기 뱃속의 생명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룰루랄라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낙태를 하진 않을 것이다. 결혼제도 외의 출산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회적 인식과 경제적으로 자립한 상황이 아닌 경우에 대한 제도적 원조도 없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고려되지 않은 채, 낙태금지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아닌가?

낙태를 행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무분별한 낙태에 대한 제지를 가하는 것도 아닌 지금의 이런 상황은 납득이 쉽지 않다.

이런 식이라면 해외원정낙태가 판을 칠 것이고, 국내 낙태율을 떨어지겠지만, 산모 사망율을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프로라이트 의사회의 한 의사가 자기 딸이 강간 임신을 당해도 아이를 낳게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과연 그 딸은 동의한 것인지 모르겠다. 혹은 자신의 딸이 그런 일을 당할리 없다는 자만에서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당해보지 않고 확신하는 말들,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자신들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맹신이야말고 광신이다.






참고 : 네덜란드인들은 낙태를 어떻게 생각하나
         프레시안 - 저출산 탓에 낙태 단속? , 낙태 단속·퍼플잡으로 출산율이 올라가나요?
         이채공간 - 그녀와 잔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껏 엄마는 나를 믿고 꽤나 많은 이야기을 공유해주었고, 일반적인 모녀 사이 치고는 제법 소통을 하는 애증 관계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엄마는 한 번도 낙태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눈치껏 그랬을 거라는 지레짐작을 할 뿐이다. 그런 얘기를 내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서 엄마가 얼마나 그 일에 대해서 자책하고 죄의식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힘들게 선택한 그 결정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짐작했을 때, 나역시 나의 당돌한 발언으로 아직 작고 어린 생명이었던 동생이 죽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출산계획을 세우면서 나의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라, 이미 생겨버린 아이에 대해 어떻게 해야할 지 엄마 스스로도 답을 내기 어려운 상태에서 나의 의견을 물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아마 그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나의 사악함에 치를 떨면서 저런 언니, 누나였다면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 애정을 반토막으로 나누어가졌던 내 동생의 진술에서 따온 것이므로 막내도 결코 다르게 느끼지 않을 것이리라.

게다가 책임감 강한 장녀로서, 10년 터울의 동생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뼈 빠지게 일할 게 분명할텐데, 그렇다면 유유자적을 모토로 하는 내 인생을 뜻하는대로 살 수 없었을 것이며 나는 불행해졌을 것이다. 곧 나의 불행은 주변의 불행으로 번지게 만들었을 것 역시 분명함으로 - 나는 어쩔 수 없는 책임감은 강하지만 역시 사악하기도 하니까.

가난한 집에 아이 셋은 너무 많잖아. 한량과 같은 아버지는 동생과 내가 자라는 동안, 소위 아버지의 역할 혹은 적어도 양육에 대한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역할에서 조차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막내가 태어났다면, 몸도 건강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엄마가 얼마나 더 많이 일해야 했을까? 일하는 동안 아이를 맡기는 비용 또한 엄청나다. 그걸 엄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동생 밑으로 들어가는 교육비만으로도 벌이의 절반 이상을 써야했고, 그 당시 엄마는 우리의 대학등록금을 걱정하며 모아두느라 사고 싶은 화장품도, 먹고 싶은 음식도, 이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온 엄마였다. 

뒤늦게 발견한 엄마의 병이 유전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건강하지 않게 태어날 확률이 높은 그 아이에게도 여러모로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녀의 선택에 돌을 던지려 한다면, 그들을 그녀와 같은 삶 속에 던져주고 싶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아니, 낙태 이전에 그 삶을 감당이나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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