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SNS에서 알게 된 몇 명의 친구들로 이뤄진 모임에 나갔을 때 그 중 한 명이 “oo님이 현정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라고 되물었다. 마치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 그것이 내게 어떤 깊은 내상이라도 입힐 수 있는 사실인양. “, 말해보세요.”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40대 여성 유저에게 내가 쓰는 글이 불편함을 준다는 것. 사적이고 은밀해야할 성적 경험을 풀어놓는 것이 얼마나 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공적 루트가 아니라 정제되고 걸러진 글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관계나 나의 상태에 대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나의 음란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수용하기 힘든 주체성이 그녀들을 불편하게 했다. 결혼과 육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아서, 그러면서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소위 여성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공격적이지 않게 말하는 법으로 글을 쓰지 않아서가 그 이유였다. 150, 태그까지 포함해서 300자 정도의 글로 설명되지 않는 맥락을 툭 던져놓기 일쑤였고 나도 내가 그런 글쓰기를 하는 것이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해명이나 풀어쓰기 같은 걸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내 글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고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의도한 바도 있었다. 내게도 실험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쓰고 말하는 것이 여성적 가치를 폄하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남성혐오가 두드러졌다면 모를까.

 

그 무렵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가 성적 대상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하는 것. 그래서 그것을 즐기기 위한 포지션도 취해보고 혹은 위악적으로 그걸 이용하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내게 어떤 만족감이나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모순의 간극만 넓혔다.

 

내가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남자를 못지않게 누리자’,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 갖자에 있었지만 내 성을 팔고 있는 건 아닌가, 여성이 성적 경험을 누설하는 것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남성에 대한 회의감만 깊어지고 있었고 사랑 자체에 냉소하게 되었고 동시에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적 태도에 대해서도 종종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점에서 내가 과연 올바른가? 내가 여성을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가? 내가 여성의 권리를, 양성평등을 바란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어떤 확신 같은 걸 가지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럴 때 페미니스트로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기도 하고 각종 진보적 운동을 해오던 친구 D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내왔지만 한 번도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각 같은 걸로 내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의 균형을 잡게 도와주는 조언, 그리고 내가 공식적으로 작성하는 원고에서 페미니스트로 의식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자신의 삶 자체에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고 사회적으로 연대를 이루고 활동을 하는 게 아닌데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여성성을 이용하고 있는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해도 될까? 하는 고민도 나를 휘감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페미니스트라는 선언은 내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대학 입학 후 얼마되지 않아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강하게 드러내며 내게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길 바랐던 선배의 훈수가그리고 그 사람이 그 뒤에 보여준 자기 배반적 행보와 인간적 무매력이 나로하여금 페미니스트라는 동류로 묶이는 걸 질색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대학 내내 나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라며 교묘하게 그리고 비겁하게 말을 돌렸다. 자라오면서 양성평등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으면서도 리사 터틀이 말하는 "성차별이 존재하고 여성이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에 페미니즘의 필요성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페미니스트로 인식되기 싫어하는 경향. 페미니스트라는 표지에 의해 사납고 경직되고 유머 없고 교조적이며 정치적 올바람에 사로잡힌 여성이자 남성혐오적인 레즈비언 이미지로 비춰질까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나는 나고 자라오면서 해온 모든 행동과 사고들의 근간에는 페미니즘이 있었다. - 그 얘기부터 풀어쓸까 하다 다들 그런 서사를 가지고 있을텐데 싶어서 생략,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 사회적으로 여성이 우월하다거나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동등함을 바랐다. 내 삶과 나 자신 그 자체가 페미니즘의 요구였다. 그럼에도 기질적 오만함이나 시행착오 속에서 나의 정체에 대해서 명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내게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안겨준 선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어떤 선언이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다그쳐서 깨우쳐질 의식도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되기까지 주변의 자극 없이 혼자 눈을 뜨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게는 너무나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준 친구 D가 있었고 내가 하는 일로 인해 고민을 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계기들 덕분에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갈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D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움직임이 주저하고 있던 누군가에게 그렇다면 나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동지의식을 갖게 만들 수 있다면 그간 취해왔던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를 폐기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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