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탓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여성 혐오는 남녀에게 있어 비대칭적으로 작용한다. 남성에게는 '여성 멸시', 여성에게는 '자기 혐오'이기 때문이다.


'호색'한 남자가 여성을 혐오한다고 하면 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들이 반응하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기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여성을 '여자'라고 하는 하나의 범주에 일괄처리하는 그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여성 혐오 사상의 소유자는 여성에 대해 무관심하게 있을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여성 혐오 사상의 약점이다. '남성성'이라는 성적 주체화를 이루기 위해 '여성;이라는 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그들이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고 불결하며 이해 불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와 원한이 바로 여성 혐오의 내용이다.


'자기 여자'란 말은 참으로 잘도 만들어낸 표현이다. '남자다움'은 한 여자를 자기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써 담보된다. 호모소셜리티는 여성 혐오에 의해 성립되고 호모포비아에 의해 유지된다.


경계선의 관리와 끊임없는 배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남성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역으로 증명한다



남자는 진정으로 성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나 음담패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실제로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해오지 않았고 정형화되지 않은 경험에 관해서는 언어화를 억압해온 것이 아닐까? 아니 반대로 그만큼 남성의 성적 주체화에 대한 억압이 강렬한 것은 아닐까? 라캉이 '욕망이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갈파한 것처럼 남자는 다른 남자의 성적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가 된다. 때문에 남성됨의 방식에는 다양성이 없다. 남자가 발기능력과 사정 횟수에 집착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만이 남자들 사이에서 비교 가능한 일원적 척도이기 때문이다


성별이원제, 가부장제의 핵심은 여성혐오(창녀)와 여성숭배(성녀)라고 보고 있으며 이는 여성 타자화라고 부른다. 차별이란 어떤 이(여성)를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남성)와 동일화하는 행위이라고 말한다.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타자이다. 즉, 이방인, 이교도와 같은 맥락으로 여성은 남성들이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다. 우리들로 부터 추방하는 양식이 타자화이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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