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미의 친절한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무 살 때부터 10년간, 자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한 것의 딱 절반이 되는 시간 동안 한국어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의 한국어 나이는 10살. 물론 서른의 사고로 걸러져 나오는 10살의 언어는 10살 남자아이의 언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소년같이 맑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그 언어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타쿠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이 언제나 쉽게 관철된다고 생각했다. 타쿠미가 이끌어낸 결론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상대의 선택에 대해서 안 돼요 혹은 싫어요라는 부정적인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도 조타 지휘를 훌륭하게 해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유유하게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곤 했다.

 

"자에도 모자랄 적이 있고 치에도 넉넉할 적이 있다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무능력함에 질려 투정이라도 부릴 때면 타쿠미는 한국인들도 잘 쓰지 않는 속담으로 그 상황을 위로했고,  능청스럽게 단어를 지어내고, 가끔 섹스를 연상케하는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태연한 얼굴로 그런 말을 했다. 생각없이 내뱉은 말인 게 분명한데 나는 그의 앞에서 쉽게 정색하고 크게 웃었다가 무너지길 반복했다. 나보다 한국말이 서툰 사람에게 한국어로 놀림 당하는 기분은 썩 좋진 않았다. 가끔 그와 헤어진 뒤 서로 나누었던 대화를 되짚어보다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의 말에 반응이 오고 맞받아칠 말들이 생각났다. 타쿠미와 있을 때는 농담의 깊이가 훅하고 들어왔다 금세 쑥 빠져버리지만 그가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가 쿡쿡 쑤셔 왔다. 타쿠미가 내뱉은 농담의 질이 나빴던 게 가장 큰 원인이고 그걸 냉정하게 받아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반복되도록 내버려둔 내 잘못도 컸다. 그렇다고 그에게 "야메떼!" 라고 말하기도 우스웠다.

 

타쿠미는 자신이 가진 언어보다 더 큰 사고를 했다.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지 못 했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자신의 세상을 규정하고 확장시켰다. 어렵지 않게 사람들을 그 세계로 끌어들였다. 타쿠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자신만만함이 있었다. '내겐 적이 없어'와 같은 태도. 하지만 그에겐 제대로 된 아군도 없었다. 친구들은 많았지만 타쿠미가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울리는 것, 굳이 우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함께 어울리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타쿠미는 만족스러워했다.


소위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혼네(본심), 타쿠미의 본심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국민성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게 그 사람 특유의 진심을 알 수 없는 느낌이었다. 앞에선 잘 감추고 뒤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정말 마음이 없는 사람. 언어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그랬다. 친절하지만 다정하진 않았다. 몸을 담그고 있다보며 미지근하게 식어서 갑자기 한기가 끼쳐오는 그런 언어를 사용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견디지 못했을텐데 나는 타쿠미의 그런 점들을 속상해 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루는 아무렇지 않게 타쿠미가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듣다보니 예전에 한 번 들은 적 있었다. 팩트는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발화된 순간이 달라서인지 이야기가 가진 비극성이 짙게 느껴졌다. 낯선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동안의 고생스러움은 지나고보니 희극처럼 표현되었지만 그 당시의 타쿠미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잔했다. 하지만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공감을 하지도 못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능력을 쓰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제대로 느낄 수 없음을 감추기 위해 포즈를 취한 것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투영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애를 써야했다. 과장된 공감의 언어를 쓸 땐 오히려 관심이 전혀 없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타쿠미가 일본 어느 현에서 살았으며 며칠에 태어났으며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사실 정보도 생각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지라며 기억하는 것도 어떨 땐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곤 했다.



타쿠미는 그런 나의 망가진 일부분을 그냥 바라보았다. 고정되거나 응시하는 시선이 아닌 카메라로 어떤 장면을 담듯 ​판단하지 않고 보았다. 아니 본인 나름의 판단을 내렸겠지만 그걸 내게 들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만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느낌에 도취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이 들어가 자신에게 매료된 한 여자를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이 지금 그에게 새로운 유희일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타쿠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받아들여준다.

 

 

우린 서로가 너무나 맞지 않고 의견 조율이 쉽지 않으며 나는 그에게 투정만 부리고 내 의견을 설득의 작업없이 관철시키려 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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