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직 '섹스'만이 목적인 관계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할 때 
그 말이라는 것은 "콘돔 써" 라고 말하면 "알았어"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은 펠라 하고 싶지 않아"라고 하면 "굳이 안 해도 돼" 라고 답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해서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섹스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 싫고 좋다라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그런 관계에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와 나보코프의 첫사랑에 대한 강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아트 블래키의 대범한 리더십에 대해 논하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 옳은 생명체인 고양이에 대해서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몇 년이나 살아왔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리는지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나이도 이름도 어떤 정보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섹스에 필요한 의사소통 이외에 그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다.
그 관계에서 대화가 대체 무슨 소용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잘 듣는 것이 훈련된 내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불거리지 않을수록 더 섹시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모른 채, 
동시에 나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무의미한 일에 절절하게 매달린다. 
그들이 나에 대해 안다고 나를 이해하는 것도 우리 사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없는 정보들을 나열하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인데 집요하게 물어댄다.
마치 자신들에게는 대화가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대화의 자질과 능력을 갖춘 남자들은 정말이지 드물다.
곡해하지 않고 듣는 법도 잘 모르면서
발화하는 내용들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들이 내뱉는 다정한 말들이란 대부분 여자와 자기 직전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좋은 대화상대인 남자들도 있으니까. 
내가 모든 남자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발끈하지마라. 내 글이 불쾌할 정도로 나쁜 것이 아니라 네 녀석이 찔려서 뜨끔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전제로 퍼블릭에 썼던 글은 여러모로 오해 가능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나는 대화 어쩌구 하는 남자들은 잘 믿지 않는다. 남자들의 언어란 결국 섹스일 뿐이라는 걸 굳이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지 않아도 늘 느끼면서 살아왔다. 




이 퍼플릭은 그날 다른 SNS에 A가 쓴 글에 대한 내 단상이었다. A의 글은 아래와 같다.

 "내 이상형은 예쁜 여자야"라고 하는 남자애들 중에 실제로 외모가 아닌 다른 데 꽂혀버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 "난 성격을 봐. 대화가 통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라고 공언하는 남자애들은 백퍼 외모에 꽂히더라. 나도 예외를 발견해 99퍼......라고 쓰고 싶으나 지금까지 보고 들은 케이스들 중에 예외는 없던데? 



A와 나는 먹물 남자들의 이중성에 대해 치를 떨며 까대곤 했다. 모르면 멍청해서 그렇다고 동정이나 할텐데 자기 유식은 만천하에 떠벌리면서 정작 행동이 필요할 땐 자신의 지식과 연결짓지 못하는 X 때문이었다. X는 공공연하게 대화 통하는 상대에 대한 열망을 말하고 다녔지만 그가 꽂혀서 졸졸 쫓아다니는 여자들은 그와는 대화가 통할 리 없는 영역의 그저 예쁜 여자들이었다. (비단 그 남자 하나만 그래왔던 게 아니라 피로감이 폭발한 것이다.) 자기 반성도 못하고 (물론 자기 반성하는 남자는 위선적이라고 버나드 쇼가 그랬던 것도 같지만) 그러면서 엄한 여자한테 들이대다 잘 안 되서 징징거리며 언어적 공해를 일으키는 그로 인해 다들 너무 질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맥락과 상관없지만 M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남자들이 더 이상 발기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왔을 때의 그 절망감이 왠지 이해가 간다. 언어를 잃은 하나의 식물로 남은 인생을 보내야 될테니까.



아니, 왜? 그걸 왜 이해를 해? 라는 생각이 든 거였다. 동정하지마. 자업자득이야.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베넷과 결혼한 이사도라는 정신분석학회에 취재차 참석했다가 에이드리언을 만나게 된다. 결혼의 안정감과 모험의 열정 사이에서 고뇌하며 여성의 삶과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고 있던 책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사도라를 그렇게 달콤한 말로 꼬여내던 에이드리언이 결정적 순간에 발기가 되지 않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남자에게 욕망과 섹스라는 것은 여자보다 더 강렬하고 마치 더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특히 그걸 대표하는 페니스라는 건 남자의 긴 인생을 두고 봤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 시기란 찰나일 뿐이다. 그것은 결국 늘 패배의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들에겐 겸허함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공포감 혹은 두려움을 정면에 마주하지도 못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나를 욕망한다고 말했으면서 나와 침대에 들어가서 제대로 서지 않는 페니스로 덤벼들던 남자들이 생각났다.
나를 꾀어내기 위해 술을 잔뜩 먹이다 보니 자기 주량을 넘어서서 자기 몸이 통제가 안 되는 남자도 있었고
자신의 판타지 속에 있던 내가 실재하자 지나치게 긴장한 남자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내게 뻔뻔하게 요구한 것은 펠라치오였다.
그렇게 하면 흐물한 그것이 단단해져서 내 몸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내게 모멸감을 준다. 
(사실 모멸감까지는 아니고 그저 그 남자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지만 
그 순간의 분함을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그렇다고 할까나.)
펠라치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할 수는 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규칙이 있었다. 만족스러운 섹스 후에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뤄지는 것이 펠라치오였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섹스로 이어지기 위해서, 난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쓰고 말았다. 

발기하려고 섹스하는 거면 그냥 입이랑 해. 나랑 하지말고. 잘 했기 때문에, 날 만족시켰기 때문에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위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것은 나는 절대 할 수 없다. "되게 까탈스럽네. 시발!" 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사랑한다.

그 사람이 나를 욕망하느냐 욕망하지 않느냐 하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백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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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라 북적이는 기차 안에서 그녀는 미동 없이 울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가 옅은 울음을 삼켜버렸지만 그녀의 오른쪽 뺨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도 숨길 수 없었다. 옆자리의 낯선 사람일뿐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로 하여금 슬픔을 고요하게 꾹 누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그만 두었다. 애인과 헤어져서 그럴 것이라는 내가 바라는 답만 떠올랐고, 그러자 속절없이 실체도 없는 그 남자가 미워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를 울리는 건 같은 남자로서 용서가 되지 않았다. 동시에 그것이 나에게 기회가 되길 바라는 게 한심했다.

 

손수건을 찾으려는 듯 천으로 만든 가방을 뒤적이던 그녀는 갑자기 허둥거리며 가방 안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작은 파우치, 손거울, 휴대전화, 선글라스, 물티슈와 손수건이 나왔지만 그녀가 찾는 건 없는 듯 했다.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의 발밑을 살펴보더니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라며 자신이 나갈 공간을 요청한 그녀는 기차 통로에서 다시 한 번 좌석 바닥을 살펴보았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 표정. , 타인의 곤란함에서 음욕을 느끼다니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욕지거리를 스스로에게 내뱉었다. 그때 기차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차가 정차할 곳은 조그마한 간이역이었다.

 

그녀가 잃어버린 건 지갑이었다. 더 이상 어딘가로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듯 그녀는 선반에 올려놓은 작은 여행 가방을 내렸다. 그 순간 나역시 본능적으로 배낭을 둘러맸다. 그리고 안도했다. 그 간이역에서 내린 사람은 그녀와 나 둘뿐이었다. 상심한 그녀는 벤치로 가서 앉았다. 나도 함께 내렸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누군가와의 전화통화는 지나칠 정도로 담백했다. “나 지갑을 잃어버렸어. 도중에 내렸는데 데리러 올 수 있어?” 몇 통의 전화를 했지만 다들 사정이 여의치 않은 듯 했고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제가 도와드릴까요?” 목소리를 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그 시선이 지긋해서 나는 관통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안심되는 목소리네요.”라고 말했고 살짝 웃었다. “우선 뭐 좀 먹을까요? 신경을 썼더니 머리도 아프고 허기지는군요.” 우리는 간이역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녀와 발맞춰 걸으면서 지도를 검색하니 한 1km 정도는 걸어야 했다. 그녀는 조금 전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답지 않게 아니 눈물을 흘렸던 여자답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이 난 듯 발걸음을 옮겼다. 이래서 오스카 와일드가 ‘여자는 사랑받을 존재이지, 이해돼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것일까.

 

식당은 작고 허름했다.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듯 세 가지 밖에 없는 메뉴 중에서 그녀는 소머리국밥을 시켰다. 국물까지 싹 다 비웠다. “잘 먹죠? 뭔가 위기상황에선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배를 채우고 나오니 찌뿌드드하던 하늘은 좀 더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어디론가 들어가야겠어요.” 식당에 물어보니 민박집을 하나 알려주었고 그곳을 향하는 길에 억수같은 비가 갑자기 쏟아져 얇은 블라우스에 반바지 차림이던 그녀는 완전히 젖어버렸다.

 

방에 단둘이 남게 되자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며 옷에서도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빗물에 그녀의 눈물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나는 그녀를 와락 안았다. 뺨을 맞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멈췄다. 그녀는 죽은 새처럼 가만히 안겨있었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은 찰라 그녀는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입을 맞췄다. 그녀의 몸에서는 관능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처절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또 그런 것이 날 빳빳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이번 여행에서 얻으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 몸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으로 포장하자면 그러했다. 여행지에서 낯선 여자와의 난데없는 섹스를 꿈꾼 적이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애초에 베푼 선의의 목적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내버려둘 순 없었다. 하지만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어쩌면 이라는 기대를 품은 건 사실이었고 하늘은 역시,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젖어서 온 몸을 휘감고 있던 옷은 벗어버렸다. 체온이 낮아져 서로의 몸엔 닭살이 돋아있었지만 몸 구석구석을 차례대로 데워나갔다. “오늘 내가 겪은 불운을 봤죠? 그래도 나를 안고 싶어요?” 그 말은 어떤 주술처럼 들렸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맨몸의 그녀를 다시 한 번 꼬옥 껴안았다.

 

그녀는 요를 두 겹으로 깔고 나를 눕혔다. 그리고 내 몸 위로 올라탔다. 낯선 것에 대한 흥분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대로 잘 짜인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를 요란하게 움직였고 허벅지로는 내 몸을 꾹 눌러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절정에 오른 그녀는 내 몸 위로 풀썩 쓰러졌고 이제 내 차례라는 듯이 반듯하게 누워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날이 올 때까지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며 어둠 속에서 서로를 더듬어 빈틈을 채워나갔다. 그것만이 애초의 목적이었다는 듯이.

 

상행선 기차를 타고 그녀가 먼저 떠났다. 간이역에 홀로 남겨진 나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화창하게 맑아진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밤을 지새우는 동안에도 그녀는 자신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가 도달하려는 지점에 갈 수 있도록 나의 움직임이 바른 곳을 공략하고 있는지만 물어보았다. 그녀가 왜 울었는지는 완벽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혹여나 계좌이체를 통해 그녀의 이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틀 뒤 확인한 통장에는 이름 대신 그날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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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연애, 버틸 수 있을까요?

남자친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너무 걱정되고 싫어요




From…

저는 22살 J라고 합니다. 제 고민은 제가 곧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남자친구는 26살이고 사귄 지는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근처에 살아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습니다. 사귄지 3개월 정도 될 때까지는 풋풋하게 데이트를 했지만 그 이후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격정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둘 다 처음 연애하는 건 아니라서 서툰 면은 없었어요. 그렇다고 서로가 특별한 기술 같은 걸 가진 것도 아닌데 속궁합이 정말 존재하는지 저는 ‘이게 이렇게 좋은 거였나’ 싶을 정도이고, 남자친구도 만족스러워하는 게 느껴져요. 보통의 대학생들처럼 데이트 코스를 순방하는 것보다 자취 중인 남자친구 방에서 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좋을 정도였죠. 불만 같은 걸 품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게 무릉도원에서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것도 모르고 지냈죠.

저는 재수를 하고 학교에 들어가서 아직 2학년이지만 4학년인 남자친구는 이래저래 진로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와 사귀게 된 것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었어요. 저랑 사귀면서도 이런저런 계획을 말해주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이었어요. 그때는 계획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는 저랑 사귀는 동안에 차근차근 구체화하고 있었던 거죠.

영어 말고 중국어도 마스터하고 싶어 해서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갑니다. 멀리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늘 곁에 있다가 떨어지면 그게 부산이든 중국이든 영국이든 무슨 소용이겠어요. 영어를 배우러 가는 거라면 저도 부모님을 설득해서 같이 떠나기라도 할 텐데, 중국어는 제가 하는 공부와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는 언어거든요. 그렇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떨어지지 않을 방법이 없는 거예요.

안 가면 안 되느냐고 투정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제 욕심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남자친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고 시간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남자친구가 잘생기진 않았어도 어디 가서 빠지는 외모도 아니고, 오히려 무난해서 부담 없는 느낌인데다가 키도 커서 훈훈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그의 주변을 신경 써서 관리하는 편인데 제가 곁에 없는 외국에서, 그것도 외로움 때문에 심리적인 틈이 생길 수밖에 없을 상황에서 그가 혹시라도 한눈팔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저만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남자친구에게 넌 내 걱정은 안 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둘처럼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이 쉽게 나타날 것 같냐며 나를 믿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자기도 그럴 테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정말 다정하게 말해주었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잖아요. 이렇게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이 걱정되고 싫은 제 마음이 이상한 걸까요? 늘 함께 붙어 있던 남자친구가 없는데 제가 과연 6개월 동안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To…

연인과 떨어져 지내게 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걱정되고 싫은 일입니다. 다만 떨어져 지내는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진심이 있다면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 거예요”라고 안심시켜주는 말도 저는 해줄 수가 없어요. 본인도 말했지만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남자친구가 한눈팔까봐 우려된다는 것도 어쩌면 남자친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일종의 거울처럼 자기를 바탕으로 남자친구를 판단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한동안 두 사람은 친밀하면서도 은밀한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그건 꽤나 중독성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6개월 동안 그의 손길, 체취, 체온 같은 걸 느끼지 못한다니, 그를 통해서 몸이 느끼는 즐거움을 충분히 알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한 금단현상도 두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외로움을 타게 될지도 모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서로의 꿈을 지지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죠. 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내가 얻게 되는 기쁨을 한동안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결국 단속해야 하는 건 지금 처하게 된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통해 또 다른 설렘을 경험하고 다른 여자를 만날까봐 전전긍긍해봐야 멀리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되는 것이겠죠. 반대로 J양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고요. 그렇다면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지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겠죠. ‘믿음’일 수도 있고 ‘다른 기회’를 내가 먼저 찾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 최대한 서로 소원해지지 않도록 몇 가지 룰을 정해보세요. 지금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애정을 확인하는 시간을 꼭 가지세요. 멀리 있어서 애틋해진 마음을 자주 표현하면서, 변함없는 마음을 확인하는 거죠, 그러면서 J양 역시 그와 함께하느라 못 했던 일들을 해보세요. 각자의 일상에 충실하게 지내다보면 6개월은 정말 금방 흘러갑니다.

지금 당장은 떨어지기 싫고 불안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닥치게 되면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친구를 따라 중국에 갈 게 아니라면, 6개월 간의 장거리 연애는 정해진 결론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싫다면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선언하는 수밖에 없겠죠.




대학내일 721호Love Letter







이별과 재회를 무한 반복 중입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니까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이렇게 다를까 싶어요.헤어지는 게 답인지 아니면 서로한테 맞춰나가며 인연을 지속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From…

저는 25살 N양이라고 합니다. 제게는 뫼비우스의 띠같이 결코 끝나지 않는 관계로 지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랑은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냈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성장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허물없이 지냈죠. 그렇다고 정말 단짝 여자친구처럼 생리 현상을 튼다든지 하는 막역한 사이는 아니고 서로 남자, 여자라는 인식은 있어요. 시간이 맞으면 커피 한 잔 하고 같이 영화 보러 다니는 식이죠. 

이성에 눈을 떠 일찍부터 연애를 하며 늘 남자가 인생의 관심사인 저와 다르게 그 친구는 초식남 스타일이었어요. 여자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학업이라는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서 똑똑하지만 까탈스러운 공대남으로 자라더군요. 제가 몇 번의 연애를 하는 동안 정말 한 번도 연애를 안 하더라고요.

그러다 그 친구가 군대에 가게 됐고 간간이 나오는 휴가 때 어울려 놀다보니 정이 들어 친구에서 연인으로 관계가 변하게 됐어요. 서로 알고 지낸 시간도 길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서로가 좋아한다는 감정을 확인한 이후로는 연애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완전 착각이더라고요. 만나다보니 안 맞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다툼과 싸움이 잦아지면서 참지 못 해 이별을 말하고, 그러다 또 몇 개월 후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악순환을 22살 후반부터 25살인 지금까지 무한 반복하고 있습니다.

친구일 때는 그렇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연인일 때는 또 다르구나 실감하게 되었어요. 둘 다 연애 경험이 부족해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우리의 사랑이 모자라서 이러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엉켜버린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둘 다 성격이 둥글둥글하지 못하다보니 할 말은 하는 편이고 입장 차이가 생기면 누가 먼저 져주려고 하지도 않는 편인데, 나중에 속을 터놓고 얘기해보면 서로 배려했던 측면도 크더라고요. 서로 조심하고 배려해도 이렇게 각을 세우게 되는 관계가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서로 안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나한테 이럴 순 없어!’라는 생각으로 헤어지자고 말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그 친구 생각이 납니다. 둘 다 헤어졌던 시간에 한눈판 다른 이성은 없었어요. 제가 마음 정리를 제대로 하려고 소개팅을 하고 새로운 사람과 잘 지내봐야지 생각을 하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이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저도 단호하지 못해서 그 연락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려 버리고요. 저는 18살부터 22살까지 쉼 없이 연애를 해왔지만 그간 사귄 남자친구들과는 이런 트러블이 없었어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니까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이렇게 다를까 싶어요. 그런 친구와 헤어지는 게 답인지 아니면 맞춰나가며 인연을 지속하는 게 맞는지 현명한 해결책 부탁드립니다.




To…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겠죠.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완벽하게 맞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잘 맞춰주는 노력을 현명하게 해내는 사이를 두고 우리는 천생연분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아무리 함께 보낸 시간이 길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연인은 역할이 다르고 기대하는 바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베스트 프렌드라고 연인으로서도 잘 지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죠. 누구를 만나도 관계에서는 조율하는 기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전 연애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지만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 서로 노력을 했겠죠. 두 분 사이의 돈독한 역사에 대해선 알 길이 없지만 오히려 서로 막역한 사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각자 처한 감정이나 상황을 상대에게 굳이 말로 전하지 않더라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좀 싸웠다고 헤어지자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도 관계가 단박에 끝나진 않을 거란 믿음이 작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보험 심리 때문에 헤어지자는 말을 입 밖에 계속 내뱉으면서 습관이 되어버린 거겠죠.

게다가 이 관계를 지속하더라도 가망이 없는 이유는 결국 문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 하나가 자신을 굽히고 져주지 않는 이상 그렇겠죠. 그렇다고 한 사람만 져주는 연애는 결코 건강할 리 없고요. 본인도 헤어지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 겁니다. 다만 연인만 잃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친구도 잃게 되는 상황이 싫은 거겠죠. 그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품어봅니다. 하지만 사랑이 부족해도 헤어지는 게 맞는 거고, 서로 맞춰보려고 노력하는데도 싸움과 헤어짐을 반복한다면 헤어지는 게 나을 겁니다. 이별을 할지 말지 고민할 게 아니라 이번에 헤어지면 어떻게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물론 연을 끊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모질어질 필요가 있어요. 결코 쉽지 않겠지만 친구로도 그를 곁에 두지 않고 버텨보세요. 견디세요. 조금은 성장한, 다음의 연애를 바란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내일 719호Love Letter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남자친구

남자친구는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될 것 같다 해요. 날 사랑하지 않는거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From…

저는 23살 Y입니다. 친구가 소개시켜준 지금 남자친구와는 3개월 정도 친구처럼 지내다가 사귀게 되었습니다. 동갑내기 커플로 6개월째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의 유일한 불만은 남자친구가 절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유난히 애틋하고 좋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느끼는 그런 날. 제가 먼저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남자친구에게서 돌아온 말은 “응, 나도”였어요.

처음엔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럽고 익숙하지 않아 그러는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제 쪽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남자친구에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었어요. 물론 아무 때나 그런 말을 했던 건 아니고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해주니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퐁퐁 샘솟는다’고 말하거나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사랑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런 말을 듣고도 그는 절대 나도 사랑해라는 대답은 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불편해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사이좋고 서로 잘 맞는 연인 사이인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주저하고 어색해 한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고, 그 전의 연애에서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낌없이 들었던 터라 그 말을 하지 않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참고 참다가 직접 물어보았어요. 나 사랑하지 않는 거냐고. 그랬더니 많이 좋아하고 아낀다고 대답하더군요. 절대 사랑한다곤 하지 않더군요. 그럼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그 말을 듣고 싶다고 요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사랑이라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거예요. 날 사랑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더군요. 그렇다면 마음을 표현해 달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는 왜 굳이 그걸 말로 해야 아는 거냐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도록 자기가 잘 하지 않냐고 반문하더군요. 남자친구는 자신에게 여자는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에서 그 마음을 느낄 수 없는 거냐고, 오히려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더라고요.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가 현재 저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만큼 저를 생각하는 건 아니라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합니다.

물론 저도 몇 번의 연애 경험을 통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고해서 변함없고 영원한 감정을 약속한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감정의 표현을 행동이 아닌 말로도 듣고 싶다는 것인데 그는 대체 왜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면서 제게 해주지 않는 것일까요?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To…

Y양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본인만의 정의가 있겠죠? ‘사랑해’라는 말도 그 정의에 부합되기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남자친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나요?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어떤 상태에 대해 사람들마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나이트 스탠드를 두고도 ‘오늘 밤, 사랑을 나누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숭고하고 희생적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걸 조심스러워합니다. Y양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여자들이 사랑이라는 말에서 기대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책임감과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고 남자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신중하게, 나쁘게 말하면 비겁하게 굴면서 사랑이라는 말에 인색하죠. 단순히 지금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라고 하기엔 그 말에 대한 여자들의 민감함을 남자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사랑이 대체 어떻게 변하니?” 이별의 순간 당하게 되는 이런 힐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Y양의 사연만으로는 그가 왜 사랑이라는 표현을 아끼는 것인지 파악하기는 힘드네요.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명사형을 띠고 있어도 동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말로 관계를 치장하는 것보다 좀 과묵하더라도 행동하고 있다면 그걸 믿을 필요도 있다고 봐요. 표현해야 사랑이지, 라고 한다면 그는 언어가 아닌 행위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지 않나요? Y양이 남자친구의 진심을 느끼고 있다면 단지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안해하거나 불만스러워 할 필요는 없어 보여요.

남자친구가 어떤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정의를 공유하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사랑해라는 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대학내일 718호Love Letter







매번 기념일 챙기기 힘들어요

제 여자친구는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려고 연애하는 것 같아요


From…

저는 23살 H라고 합니다. 제 여자친구는 스무 살이예요. 아직 어린데다가 저랑 사귀는 것이 첫 연애랍니다. 그래서 연애에 대한 환상도 많은 것 같고 아직 철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것이 귀여워 보일 만큼 예쁘고 애교도 많습니다. 지금 현재 저희 둘 사이의 문제는 바로 각종 기념일입니다. 여자친구가 기념일 챙기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힘이 듭니다. 사귄 지 22일 되는 날에는 투투데이라 기념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야 오래오래 사랑하고 사귈 수 있다나요. 제 입장에서는 당최 어이없고 납득하기도 힘든 기념일이었지만 둘이 사귀고 한창 알콩달콩하던 시기이고 처음 기념일이니까 장미 스물두 송이도 사고 저녁 식사도 근사한 곳에서 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50일도 챙기고 100일도 챙겼습니다. 매월 14일마다 유래를 알 수 없는 기념일들도 모두 다 챙겼습니다.

그때마다 여자친구가 기뻐해서 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기념일마다 꼬박꼬박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우리의 연애를 전시하는 건 제 입장에서는 불편하더라고요. 사진은 안 찍으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이게 다 추억이고 기록이라고 말해서 내버려두긴 했지만 그런 게 불만이긴 했어요.

여자친구를 좋아하니까 좋은 마음으로 기념일을 챙기긴 했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얼마 전 지나간 빼빼로데이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빼빼로데이도 서로 챙겨주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과자, 특히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빼빼로 같은 거 상술이라고 대신 다른 맛있는 거 먹으면서 데이트하자고 했더니 뾰루퉁해지더군요. 그러더니 뭔가 결심했다는 듯 의연하고 뻔뻔한 표정으로 “그래? 오빠가 안 주면 뭐 다른 오빠한테 받지 뭐!”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순간 저도 열이 받아서 “누구? 누구한테 받으려고?”라고 따져 물었죠. 그랬더니 자기 주변엔 자기한테 빼빼로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다며 엄청 얄밉게 말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연애하는데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도 못 받고, 내일 인스타엔 연애하는 친구들은 죄다 빼빼로 사진 올릴 텐데!”라고 하는 겁니다. 그놈의 빌어먹을 인스타그램! 여자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지금은 마음이 너무 상해서 도저히 같이 못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집에 돌아가더니 그 이후로 카톡도 확인 안하고 전화도 안 받는 겁니다. 정말 미처버리는 줄 알았어요. 저는 하는 수 없이 당일 아침 빼빼로 사들고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안겨줬죠.

빼빼로를 받았지만 여전히 토라져서는 오늘 데이트는 못 하겠다고 말해놓고, 여자친구는 인스타에 ‘오빠에게 받은 빼빼로 ♥’ 라며 사진을 올려 두었더라구요.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준 게 아니라서 그런지 그 인증샷을 보니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는 날을 챙기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안 챙겨준다고 다른 남자들한테 받겠다고 말한 것도 다 너무 미운 거예요. 11월 말에는 여자친구 생일도 있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와요. 중요한 날들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기념일들도 다 챙겨가면서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합니다.





To…

H군의 여자친구는 지금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게 당연한, 인생의 그런 때를 지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마도 그런 걸 남자친구인 H군이 알아줬으면 싶어서 그런 얄미운 말을 한 거겠죠. 물론 저런 표현이 긍정적인 건 아니지만요. H군은 여자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있잖아요. 이런 고민도 ‘이러니 싫다 헤어져’가 아니라 어떻게든 개선해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테고요. 그러니 본인은 원치 않았던 빼빼로도 사가지고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간 거겠죠.

‘대학에 들어가면 달달한 연애를 할 거야’ 같은 환상과 기대로 가득한 스무 살. 그러니 여자친구에게는 현실의 연애보다 상상된 연애의 어떤 정해진 모습이 있을 겁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전시해야 안심되는 건 비단 여자친구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시류에 휩쓸려 있는 것뿐이죠. 그걸 깨트리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다 맞춰주고 기대를 채워줘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연애가 아니라 진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게 무엇인지 배워가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H군과 해나가야 하는 거겠죠.

아직은 소녀스러운 순수한 마음에서 한껏 예쁨 받는 연애의 달콤함에 취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연애 소녀기를 보내고 있는 거죠. 연애란 예쁨 받고 예뻐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끊임없는 협상과 두 사람의 자아가 부딪히는 싸움의 장이라는 걸 아직 인지하지 못한 거죠.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기념일을 목전에 두고 하는 건 그다지 좋은 전략은 아닌 것 같아요. 왠지 이 기념일을 챙기지 않고 넘어가려고 치사한 이유를 대는 것 같아 보이잖아요. 이 모든 것이 서로의 다름을 마모시켜나가는 연애의 총체적인 문제이므로 평소에 서로의 연애관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게 좋겠죠. 설득이든 이해든 둘 다 쉬운 건 아닐겁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H군이 자신의 연애관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를 위해 빼빼로데이를 챙겼다는 그 마음을 알아야 하니까요. H군도 기념일에 대한 부담을 너무 크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이 여자친구에게 기념일이란 H군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해주는 날이라고 생각하니까 서로 타협점을 잘 찾아내길 바랍니다.




대학내일 717호Love Letter








.

사랑을 분석한 다양한 인문학 서적들을 읽어나가고 있지만 

머리로 아는 그 지식들을 그 다음의 사랑에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사랑을 경험하기에 사랑이 배울 수 있고 숙달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는 것 같다.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이번 사랑에서 진화의 흔적을 찾는 것은 

사랑에 빠진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사랑에 능숙해졌다기 보다 기대를 덜 하게 되었다 정도로 태도가 변한 것 뿐인데 

그게 사랑을 '잘'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

'사랑의 기술을 표피적으로 습득한 이들의 훈련된 무능'

연애계발서 같은 글을 통해 연애를 배운 이들은 사랑에 대한 조언을 원할 때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면서 자기맘대로 되길 바라며 부담은 떠안지 않으면서 원하는 걸 가지려한다.





.

'무슨 대학의 무슨 박사가 연구한 결과 어떤 통계로' 

이런 방식으로 연애의 방식을 조언하는 걸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연애가 소위 연구결과의 평균 안에 들어가 있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방식은 상담하기 편하다. 우선 권위에 기대'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 박사들과 그 연구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게다가 사례들이 대부분 외국의 것이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일치하기도 어렵다. 

케바케로 접근하면 힘드니 그런 게 필요할 때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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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계획과 유혹의 닮은 점을 역설하는 매력적인 남자의 대사가 마음에 들어서..



물론 이 장면의 묘미는 이 다음 이어지는

쇼에 대한 루트의 믿음을 깬 소시오패스인 쇼가 흥미를 느끼는 이 남자의 또다른 반전이지만..


대사 자체가 흥미롭고 쇼가 반응하는 모습도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를 통틀어 

베어 이외에 남자 앞에서 이렇게 귀여웠던 적이 있었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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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섹스 어필하는 쇼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자보고 싶다'는 성희롱보다 섹시함에 대한 최상급 찬사가 아닌가 싶다. 

곽정은의 발언도 그 맥락의 연장선이었다는 생각. 

물론 던져진 말만 보면 공중파라는 특성 상 무리수가 있었고 불쾌하다 여길 수 있지만

정말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이었다면 편집상에서 잘라냈어야 하는 것이다.

연출과 작가가 무리없다고 판단했다면 그 발언자보다 최종 결정자의 선택에 대해서 비난을 해야한다.



그 발언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에 집중을 해야하는데 

장기하가 곽정은에게 그렇게 말했으면 옹호하고 지지해주는 사람 하나없이 다들 변태 미친놈 취급할 것이라며

여성과 남성의 발언권의 차별에 대해 말하며 논점을 흐트리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가 여자한테 자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칭찬으로만 듣기에 불쾌한 지점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그 욕망을 일으키는 가치 기준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는지 묻고 싶다.


섹시함 소위 자보고 싶다라는 충동이 일게 만드는 성적 매력은 아주 중요하고 훌륭한 매력포인트이지만, 

그럼에도 남성의 섹시함과 여성의 섹시함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다르게 매겨지고 있다. 

남성의 섹시함은 다른 능력 +의 요소라면 여성의 섹시함은 섹시함에만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단순히 생물학적 여자라서(남성이 보았을 때 섹스 충동이 들 정도로 여성이라는 기호성을 가진) 

단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피해 사례를 고스란히 겪으며 자라난 여성과 

그런 불쾌한 경험이 부재한 남성이 섹시함에 대해 같은 태도를 가지기 힘들다.



사실 섹시함은 권력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남성들의 머릿 속에 자리잡고 있는 팜므파탈 봐. 

엄청한 매력을 가진 여자는 '남자들을 파멸시키지'라며 두려운의 대상이 되지만  

사실 그러기 전에 그 여성은 여성 무리에서 우선 은근하게 배척 당하고 온갖 루머의 대상이 된다. 

(물론 그럼에도 남자들은 그녀를 섹스대상으로 본다)



요즘 사회적 무리가 될 발언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데.. 

그닥 영향력도 없는 개인의 섹스 취향 혹은 욕망에 그토록 난리인건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 아무도 품어보지 않은 것처럼! 

어떤 말은 발화하면 솔직한거고 어떤 말은 무리라는 건지. 기준을 모르겠다.



(+) 평소에 자보고 싶은 사람 리스트 많은 1인이라 제 발 저려서 이러는 거 아님.

<섹스앤더시티>의 작가 신디 슈펙의 <러브 바이츠>에 1화가 떠오르는 사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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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연애 실용서를 읽는 사람들이 있다.

- 나 역시 일종의 그 분야에서 그런 종류의 책을 내는 사람이긴 하다.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조심하는 것이 소위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요소이다. 


좋은 연애를 위한 필수 과정은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이다.


전략적 연애기술과 남자가 좋아하는 여성적 태도로 위장하는 건 깊이있는 관계 맺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나에 대해서 할애를 할 필요가 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불안과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살펴본다면 상대가 채워줄 부분과 아닌 부분에 대한 구분이 가능해진다.

그런 것도 모르고 상대에게 제대로된 요구도 없이 상대가 자신을 채워 완벽하게 만들어 줄거라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 결코 가능할 리 없는 일을 바라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연애와 관련하여 남의 사연들을 읽는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고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연애 상담을 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소위 다른 사람들의 연애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들여다 보지 않는다.

네이트 판 같은 곳을 들여다보지 않는 건 내가 하는 상담만으로도 여자는 전부 쌍년같고 남자들은 개쓰레기이며 결혼생활은 불륜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도드라져 보인다고 모든 관계가 문제 투성이인 것은 아니다.

반듯한 사람들이 시선을 끌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과 연애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런 불안을 자극해서 남성 상담가들이 쓴 연애전략서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들이 서술하고 있는 케이스는 상담을 받으러 온 '문제가 있는 남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만족시킬 방법이라는 것이다.


제대로된 관계맺음이 무엇인지. 자신을 들여다 본 적 없는

소위 포식자나 사냥꾼에 어울리는 남자들에게 그들에게 맞는 먹잇감이 되라고 알려주는 책이란 거다. 

남자들이 사랑을 모르고 감정을 교류할 줄 모르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연애를 통해 훈련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책들이 여성으로 하여금 남자들을 잘못 트레이닝 시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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