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남자친구

남자친구는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될 것 같다 해요. 날 사랑하지 않는거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From…

저는 23살 Y입니다. 친구가 소개시켜준 지금 남자친구와는 3개월 정도 친구처럼 지내다가 사귀게 되었습니다. 동갑내기 커플로 6개월째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의 유일한 불만은 남자친구가 절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유난히 애틋하고 좋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느끼는 그런 날. 제가 먼저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남자친구에게서 돌아온 말은 “응, 나도”였어요.

처음엔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럽고 익숙하지 않아 그러는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제 쪽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남자친구에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었어요. 물론 아무 때나 그런 말을 했던 건 아니고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해주니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퐁퐁 샘솟는다’고 말하거나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사랑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런 말을 듣고도 그는 절대 나도 사랑해라는 대답은 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불편해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사이좋고 서로 잘 맞는 연인 사이인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주저하고 어색해 한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고, 그 전의 연애에서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낌없이 들었던 터라 그 말을 하지 않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참고 참다가 직접 물어보았어요. 나 사랑하지 않는 거냐고. 그랬더니 많이 좋아하고 아낀다고 대답하더군요. 절대 사랑한다곤 하지 않더군요. 그럼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그 말을 듣고 싶다고 요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사랑이라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거예요. 날 사랑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더군요. 그렇다면 마음을 표현해 달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는 왜 굳이 그걸 말로 해야 아는 거냐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도록 자기가 잘 하지 않냐고 반문하더군요. 남자친구는 자신에게 여자는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에서 그 마음을 느낄 수 없는 거냐고, 오히려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더라고요.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가 현재 저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만큼 저를 생각하는 건 아니라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합니다.

물론 저도 몇 번의 연애 경험을 통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고해서 변함없고 영원한 감정을 약속한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감정의 표현을 행동이 아닌 말로도 듣고 싶다는 것인데 그는 대체 왜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면서 제게 해주지 않는 것일까요?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To…

Y양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본인만의 정의가 있겠죠? ‘사랑해’라는 말도 그 정의에 부합되기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남자친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나요?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어떤 상태에 대해 사람들마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나이트 스탠드를 두고도 ‘오늘 밤, 사랑을 나누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숭고하고 희생적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걸 조심스러워합니다. Y양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여자들이 사랑이라는 말에서 기대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책임감과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고 남자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신중하게, 나쁘게 말하면 비겁하게 굴면서 사랑이라는 말에 인색하죠. 단순히 지금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라고 하기엔 그 말에 대한 여자들의 민감함을 남자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사랑이 대체 어떻게 변하니?” 이별의 순간 당하게 되는 이런 힐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Y양의 사연만으로는 그가 왜 사랑이라는 표현을 아끼는 것인지 파악하기는 힘드네요.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명사형을 띠고 있어도 동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말로 관계를 치장하는 것보다 좀 과묵하더라도 행동하고 있다면 그걸 믿을 필요도 있다고 봐요. 표현해야 사랑이지, 라고 한다면 그는 언어가 아닌 행위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지 않나요? Y양이 남자친구의 진심을 느끼고 있다면 단지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안해하거나 불만스러워 할 필요는 없어 보여요.

남자친구가 어떤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정의를 공유하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사랑해라는 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대학내일 718호Love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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