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에 발을 들인 후 M의 첫 번째 고민은 상대의 거부였다.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M에게 내가 해준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나쁜년. 넌 어떻게 내 편을 단 한 번도 안 드냐?”였다.

친구라는 감각 없이 냉정하고 차갑고 지나치게 현실을 보게 해줬다고 말했다.

환상에 기대는 건 상관없지만 순수한 게 아니라 순진한 꼴을 못 봐주겠더라.

팔이 아무리 안으로 굽는다 한들,

비정상적으로 굽어들길 바라는 팔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M은 어리고 두려움 많고 조심스러웠던 나에게

섹스의 즐거움에 대해서 가르쳐주었고,

섹스의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섹스 후 밀려드는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훌륭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던 친구였다.

내가 지금껏 써온 이야기의 상당 부분도 M에게 빚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연애 이후 리셋된 듯 모든 걸 잊어 혹은 잃어버린 듯한 M의 행동은 당혹스러웠다.

 

 

몇 번의 격정적인 섹스를 나눈 M과 상대는 급격하게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그는 바빠서 라는 아주 좋은 핑계를 둘러댔다.

M은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엉엉 울면서 자기가 뭘 어떻게 해야 그를 다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까지 한 섹스 중에 나랑 한 섹스가 가장 좋았다고 했어.

다음에도 나랑 하고 싶다고 말했어. 그런데 연락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해?”

 

그 말이 100% 진심이라면 아쉬울 때 연락 오게 되어있다. 기다리면 된다.

몸을 섞어 만든 연이라면 언젠간 또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조급한 마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두둥! 바로 그 지점!

 

예상 가능한 기만의 지점을 분명히 듣고도

어떻게 M의 입에서 여자친구랑 하는 섹스는 좋지 않대. 섹스 안한지 오래 됐대.”

흘러나오고 우리는 정말 섹스 말고도 대화가 너무 잘 통해서 좋았어로 이어지는지.

그런 말들을 관계에 대한 희망으로 접수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섹스하면 감정이 생기는 게 종특?

마음이 왠지 나도 모르게 움직여지는 그 순간의 기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섹스를 목적으로 하겠노라 했다면

자기 무장 정도는 하자는 거다.

무턱대고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달콤한 말에 현혹되지 말고!

 

남자들이 무의미하게 내뱉는 다정한 말, 특히 앞으로의 둘에 대한 이야기는 치명적이지.

함께 뭘 하자. 다음엔 이걸 하자. 이런 말에 여자가 흔들리니까

픽업아티스트 교본 읽어봐라. 꼭 나온다.

여자에게 미래를 약속하는 말을 하라고.

그러면 잘 수 있다고.

 

그런 남자들도 문제지만

남자들의 별 생각 없이 한 무의미한 행동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성을 가진 건 여자 입장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관계는 지속적일 것이며 특별한 관계가 된 것 같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 남자들이 그 말의 얼마나 지킬 것 같은가?

만났을 때는 나만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최고인 것처럼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의 냉랭함 혹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상황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심지어 더 나아가 내가 뭘 잘못한 거지까지.

이전 남자친구들보다 아니 지금껏 이처럼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는 없었는데.

제법 경제력을 갖춘 남자라면 대접받아 마땅한 여자처럼 아낌없이 돈도 썼을지도 모른다.

섹스도 너무 좋았다.

이러면 정말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어 미칠 것 같지.

 

하지만 그 남자는 호기심으로 다가왔고 호기심을 충족했으니까 다음! 하고 넘어간 것뿐이다.

넌 왜 다 읽은 페이지를 붙잡고 몇 번씩이나 다시 읽으며 되새김질까지 해?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되지? 남자들처럼 섹스해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되지?

그럴 수밖에 없어. 남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

. 정말 쓸쓸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냉정해지자.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라.

적어도 섹스가 목적인 게 분명한 관계에서는!

지금 내 눈앞에 어떤 행동으로 그가 자신의 마음을 증명 전까지는

그의 말로 이뤄진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거다.

 

 

 

 

덧붙여 몸을 섞어서 느낀 기쁨.

오르가슴을 그에 대한 감정이라고 착각하지마라.

섹스를 해도 옥시토신, 세로토닌, 엔돌핀 다 나오잖아.

 

 

우선 M을 달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도닥여주면서

정신 좀 차리라는 요지의 말을 주고받았다.

너랑 자고 싶었고, 너랑 잤고. 그래서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거잖아.

딱 그 정도로만 널 생각한 남자에게 왜 이래? 다시 봐야할 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야.”

 

나한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나한테 잘해줬단 말야

지금은? 지금도 그래? 그게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사실이냐고?”

섹스 외적으로도 훌륭했단 말야.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게 뭐가 잘못 됐다는 거야

네가 다시 그를 보고 싶어 하는 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그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게 문제지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너무나 잘 알고

심지어 페니스도 컸다고.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단 말이야

 

뭔가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들어 결국 좀 더 감정적으로 격앙되고 말았다.

 

하아. 네 말대로라면 말이다. 그런 애가 왜 너하고만 자겠냐?

그리고 그렇게 괜찮은 남자이지만 하는 행동을 봐.

오래 만나지 않아도 결국 너도 알게 될 거야.

이건 포장이 잘된 쓰레기야. 버리라고

 

그러다 M이 결국 내뱉은 말에서 결정적 단서가 나왔다.

내가 선택한 거잖아. 내가 고른 게 나빴다고 말하는 거 싫어. 그만해!”

 

 

정말 많은 여자들이 나쁜 관계에서 저지르는 실수.

......

이걸 부정하면 동시에 내가 부정하게 되는 듯한 기분 때문에 그를 옹호하게 되는 것.

그리고 더 감정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것.

M의 지난 연애에서 반복되었던 패턴이었고

그랬기에 이 부분에서만큼은 내가 책임지고 말려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섹스! 섹스! 섹스만 하라고!

 

내가 촉을 세워 선별하고 고르고 고른 남자가

결국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때

처참하게 무너지는 기분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도 똑똑한 척, 바른 말만 하는 척 하지만 그게 다 실수를 바탕으로 나오는 거지.

그런 걸 가지고 자학해서는 안 된다.

그가 내게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다시 만나게 되면

지금 이토록 불안하고 부서진 마음이 회복될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 감정은 다시 반복된다. 분명히! 100%! 확실히!

끝난 거다. 그냥 한 번에 알아먹고 끝내면 한 번만 아프면 된다.

질질 끌면 끄는 내내 아플 것이다.

만난다고 한들 그간의 그런 기분을 상대가 알리도 없고 보듬어줄 의지나 능력도 없다.

상대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

 

섹스가 목적인 관계에서

지나치게 다정한 사람은 경계하는 게 좋다.

그리고 진짜 예의가 있는 사람은 섹스가 목적인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얽매이게 만들지 않는다.

좀 건조하더라도 섹스를 위한 섹스를 한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할 수 있지만 쓸데없이 나불거려 상대의 마음을 흐트려 놓지 않는다.

상대가 너무 달콤하게 군다면 내 선으로 냉랭해져도 된다.

그런 달달함에 취하려고 섹스하는 건데. 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에만 충실히 즐겨라.

역할극인거지 그 감정을 섹스 이후까지 끌고 가지 않아야 다치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남자)친구가 있든, 유부남()이든, 여러 명의 섹파를 이미 가지고 있든

세컨 유저가 될 수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컨을 사용하는 거니까.

그걸 숨기든 혹은 대놓고 밝힘으로써 즐기기만 할 거야라는 포지션을 확실하게 취하든

각자의 선택이다.

 

세컨 유저이긴 하지만 여자(남자)친구가 있고 그래서 섹스오프는 할 마음이 없고

즐겁게 온라인의 야함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세컨이기 때문에 비열하고 기만적인 게 아니라

그저 그런 인간이 세컨을 하는 것뿐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세컨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좋아한다고 해서 사귀었더니 숨겨놓은 애인이 있더라 이런 사연들 말이다.)

다만 더 두드러질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할 뿐이다.

 

 

세컨에서 연애할 수 있고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서로 잘 맞아서 부농부농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게 아니다.

세컨이 진짜 냉엄하기만 동물의 세계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동물의 세계도 얼마나 훈훈한가!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일만 있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다칠 수 있다는 거, 기대만큼 친절하지 않다는 거

그리고 감정의 제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거

누누이 기억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는 거다.

적어도 울지 않고 즐겁기 위해서!

다치지 않고 오르가슴을 누리기 위해서!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내성이나 감각 없이 뛰어들었다가 상처받고 아파하는.

혹은 분명히 머리로 알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겪게 되었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나 상처로 힘들어하는

여성 유저를 볼 때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경험을 통해 내성을 기르게 되긴 한다.

거의 포기에 가까운 감정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일종의 남성혐오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거.

그걸 최소화하길 바라면서

오로지 최고의 섹스를 위한 다음, 그리고 그 다음만 생각하면서 즐거웠으면 한다는 거!

 

 

 

 

(+)

세컨을 이루는 요소가 글이기에 내 흥미를 끌었다.

섹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공간이기에 그 말들에 주목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마음이 가는 몇몇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지켜보게 되었다.

비단 M만이 겪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관계적 속성은 트위터 세컨 안에서만의 특수한 관계도 아니었다.

세컨 보고서라는 이름이 거창한 건지도 모르지.

관찰해서 글로 옮겨야지 하는 목적으로 세컨을 시작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두드러지는 일이 있고

그렇기에 섹스에 대해 글을 쓰는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뿐이다.

 

 

한동안 방치해둔 블로그에 이 글을 쓰고

유입수가 확 늘어서 제법 사람들이 봤구나 싶었다.

 

세컨에서 오랜 유저들이라면 고작 몇 달 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나불거리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걸 비난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경솔하게 재미삼아 시작한 건 아니다.

세컨을 들어가 보지 않고 내가 쓴 글로만 세컨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편견도 생길 거라는 우려도 잘 알겠다.

그런데 오히려 내 글을 읽으면

세컨이라는 거 그저 섹스나 하고 싶어 하고 음란하고 밝히는 애들이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그 편견의 폭을 오히려 넓혀주지 않나?

 

덧붙여 나는 세컨이 음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하고 있잖아.

게다가 돈 벌고 관심 끌 생각이었으면 이런 거 쓰는 것보다

제안 받은 방송이나 출연하고 실용서나 쓰면 그만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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