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기념일 챙기기 힘들어요

제 여자친구는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려고 연애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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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3살 H라고 합니다. 제 여자친구는 스무 살이예요. 아직 어린데다가 저랑 사귀는 것이 첫 연애랍니다. 그래서 연애에 대한 환상도 많은 것 같고 아직 철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것이 귀여워 보일 만큼 예쁘고 애교도 많습니다. 지금 현재 저희 둘 사이의 문제는 바로 각종 기념일입니다. 여자친구가 기념일 챙기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힘이 듭니다. 사귄 지 22일 되는 날에는 투투데이라 기념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야 오래오래 사랑하고 사귈 수 있다나요. 제 입장에서는 당최 어이없고 납득하기도 힘든 기념일이었지만 둘이 사귀고 한창 알콩달콩하던 시기이고 처음 기념일이니까 장미 스물두 송이도 사고 저녁 식사도 근사한 곳에서 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50일도 챙기고 100일도 챙겼습니다. 매월 14일마다 유래를 알 수 없는 기념일들도 모두 다 챙겼습니다.

그때마다 여자친구가 기뻐해서 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기념일마다 꼬박꼬박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우리의 연애를 전시하는 건 제 입장에서는 불편하더라고요. 사진은 안 찍으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이게 다 추억이고 기록이라고 말해서 내버려두긴 했지만 그런 게 불만이긴 했어요.

여자친구를 좋아하니까 좋은 마음으로 기념일을 챙기긴 했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얼마 전 지나간 빼빼로데이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빼빼로데이도 서로 챙겨주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과자, 특히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빼빼로 같은 거 상술이라고 대신 다른 맛있는 거 먹으면서 데이트하자고 했더니 뾰루퉁해지더군요. 그러더니 뭔가 결심했다는 듯 의연하고 뻔뻔한 표정으로 “그래? 오빠가 안 주면 뭐 다른 오빠한테 받지 뭐!”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순간 저도 열이 받아서 “누구? 누구한테 받으려고?”라고 따져 물었죠. 그랬더니 자기 주변엔 자기한테 빼빼로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다며 엄청 얄밉게 말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연애하는데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도 못 받고, 내일 인스타엔 연애하는 친구들은 죄다 빼빼로 사진 올릴 텐데!”라고 하는 겁니다. 그놈의 빌어먹을 인스타그램! 여자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지금은 마음이 너무 상해서 도저히 같이 못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집에 돌아가더니 그 이후로 카톡도 확인 안하고 전화도 안 받는 겁니다. 정말 미처버리는 줄 알았어요. 저는 하는 수 없이 당일 아침 빼빼로 사들고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안겨줬죠.

빼빼로를 받았지만 여전히 토라져서는 오늘 데이트는 못 하겠다고 말해놓고, 여자친구는 인스타에 ‘오빠에게 받은 빼빼로 ♥’ 라며 사진을 올려 두었더라구요.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준 게 아니라서 그런지 그 인증샷을 보니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는 날을 챙기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안 챙겨준다고 다른 남자들한테 받겠다고 말한 것도 다 너무 미운 거예요. 11월 말에는 여자친구 생일도 있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와요. 중요한 날들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기념일들도 다 챙겨가면서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합니다.





To…

H군의 여자친구는 지금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게 당연한, 인생의 그런 때를 지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마도 그런 걸 남자친구인 H군이 알아줬으면 싶어서 그런 얄미운 말을 한 거겠죠. 물론 저런 표현이 긍정적인 건 아니지만요. H군은 여자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있잖아요. 이런 고민도 ‘이러니 싫다 헤어져’가 아니라 어떻게든 개선해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테고요. 그러니 본인은 원치 않았던 빼빼로도 사가지고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간 거겠죠.

‘대학에 들어가면 달달한 연애를 할 거야’ 같은 환상과 기대로 가득한 스무 살. 그러니 여자친구에게는 현실의 연애보다 상상된 연애의 어떤 정해진 모습이 있을 겁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전시해야 안심되는 건 비단 여자친구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시류에 휩쓸려 있는 것뿐이죠. 그걸 깨트리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다 맞춰주고 기대를 채워줘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연애가 아니라 진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게 무엇인지 배워가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H군과 해나가야 하는 거겠죠.

아직은 소녀스러운 순수한 마음에서 한껏 예쁨 받는 연애의 달콤함에 취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연애 소녀기를 보내고 있는 거죠. 연애란 예쁨 받고 예뻐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끊임없는 협상과 두 사람의 자아가 부딪히는 싸움의 장이라는 걸 아직 인지하지 못한 거죠.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기념일을 목전에 두고 하는 건 그다지 좋은 전략은 아닌 것 같아요. 왠지 이 기념일을 챙기지 않고 넘어가려고 치사한 이유를 대는 것 같아 보이잖아요. 이 모든 것이 서로의 다름을 마모시켜나가는 연애의 총체적인 문제이므로 평소에 서로의 연애관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게 좋겠죠. 설득이든 이해든 둘 다 쉬운 건 아닐겁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H군이 자신의 연애관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를 위해 빼빼로데이를 챙겼다는 그 마음을 알아야 하니까요. H군도 기념일에 대한 부담을 너무 크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이 여자친구에게 기념일이란 H군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해주는 날이라고 생각하니까 서로 타협점을 잘 찾아내길 바랍니다.




대학내일 717호Love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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