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직 '섹스'만이 목적인 관계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할 때 
그 말이라는 것은 "콘돔 써" 라고 말하면 "알았어"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은 펠라 하고 싶지 않아"라고 하면 "굳이 안 해도 돼" 라고 답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해서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섹스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 싫고 좋다라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그런 관계에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와 나보코프의 첫사랑에 대한 강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아트 블래키의 대범한 리더십에 대해 논하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 옳은 생명체인 고양이에 대해서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몇 년이나 살아왔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리는지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나이도 이름도 어떤 정보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섹스에 필요한 의사소통 이외에 그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다.
그 관계에서 대화가 대체 무슨 소용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잘 듣는 것이 훈련된 내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불거리지 않을수록 더 섹시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모른 채, 
동시에 나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무의미한 일에 절절하게 매달린다. 
그들이 나에 대해 안다고 나를 이해하는 것도 우리 사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없는 정보들을 나열하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인데 집요하게 물어댄다.
마치 자신들에게는 대화가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대화의 자질과 능력을 갖춘 남자들은 정말이지 드물다.
곡해하지 않고 듣는 법도 잘 모르면서
발화하는 내용들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들이 내뱉는 다정한 말들이란 대부분 여자와 자기 직전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좋은 대화상대인 남자들도 있으니까. 
내가 모든 남자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발끈하지마라. 내 글이 불쾌할 정도로 나쁜 것이 아니라 네 녀석이 찔려서 뜨끔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전제로 퍼블릭에 썼던 글은 여러모로 오해 가능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나는 대화 어쩌구 하는 남자들은 잘 믿지 않는다. 남자들의 언어란 결국 섹스일 뿐이라는 걸 굳이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지 않아도 늘 느끼면서 살아왔다. 




이 퍼플릭은 그날 다른 SNS에 A가 쓴 글에 대한 내 단상이었다. A의 글은 아래와 같다.

 "내 이상형은 예쁜 여자야"라고 하는 남자애들 중에 실제로 외모가 아닌 다른 데 꽂혀버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 "난 성격을 봐. 대화가 통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라고 공언하는 남자애들은 백퍼 외모에 꽂히더라. 나도 예외를 발견해 99퍼......라고 쓰고 싶으나 지금까지 보고 들은 케이스들 중에 예외는 없던데? 



A와 나는 먹물 남자들의 이중성에 대해 치를 떨며 까대곤 했다. 모르면 멍청해서 그렇다고 동정이나 할텐데 자기 유식은 만천하에 떠벌리면서 정작 행동이 필요할 땐 자신의 지식과 연결짓지 못하는 X 때문이었다. X는 공공연하게 대화 통하는 상대에 대한 열망을 말하고 다녔지만 그가 꽂혀서 졸졸 쫓아다니는 여자들은 그와는 대화가 통할 리 없는 영역의 그저 예쁜 여자들이었다. (비단 그 남자 하나만 그래왔던 게 아니라 피로감이 폭발한 것이다.) 자기 반성도 못하고 (물론 자기 반성하는 남자는 위선적이라고 버나드 쇼가 그랬던 것도 같지만) 그러면서 엄한 여자한테 들이대다 잘 안 되서 징징거리며 언어적 공해를 일으키는 그로 인해 다들 너무 질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맥락과 상관없지만 M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남자들이 더 이상 발기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왔을 때의 그 절망감이 왠지 이해가 간다. 언어를 잃은 하나의 식물로 남은 인생을 보내야 될테니까.



아니, 왜? 그걸 왜 이해를 해? 라는 생각이 든 거였다. 동정하지마. 자업자득이야.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베넷과 결혼한 이사도라는 정신분석학회에 취재차 참석했다가 에이드리언을 만나게 된다. 결혼의 안정감과 모험의 열정 사이에서 고뇌하며 여성의 삶과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고 있던 책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사도라를 그렇게 달콤한 말로 꼬여내던 에이드리언이 결정적 순간에 발기가 되지 않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남자에게 욕망과 섹스라는 것은 여자보다 더 강렬하고 마치 더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특히 그걸 대표하는 페니스라는 건 남자의 긴 인생을 두고 봤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 시기란 찰나일 뿐이다. 그것은 결국 늘 패배의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들에겐 겸허함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공포감 혹은 두려움을 정면에 마주하지도 못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나를 욕망한다고 말했으면서 나와 침대에 들어가서 제대로 서지 않는 페니스로 덤벼들던 남자들이 생각났다.
나를 꾀어내기 위해 술을 잔뜩 먹이다 보니 자기 주량을 넘어서서 자기 몸이 통제가 안 되는 남자도 있었고
자신의 판타지 속에 있던 내가 실재하자 지나치게 긴장한 남자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내게 뻔뻔하게 요구한 것은 펠라치오였다.
그렇게 하면 흐물한 그것이 단단해져서 내 몸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내게 모멸감을 준다. 
(사실 모멸감까지는 아니고 그저 그 남자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지만 
그 순간의 분함을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그렇다고 할까나.)
펠라치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할 수는 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규칙이 있었다. 만족스러운 섹스 후에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뤄지는 것이 펠라치오였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섹스로 이어지기 위해서, 난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쓰고 말았다. 

발기하려고 섹스하는 거면 그냥 입이랑 해. 나랑 하지말고. 잘 했기 때문에, 날 만족시켰기 때문에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위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것은 나는 절대 할 수 없다. "되게 까탈스럽네. 시발!" 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사랑한다.

그 사람이 나를 욕망하느냐 욕망하지 않느냐 하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백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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