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하나같이 가짜 오르가슴에 속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키스할 땐 신음소리를 꾸미지 못해.” “한겨울, 난방도 제대로 안된 방에서 섹스를 하는데도 땀을 흘린다면 만족했다는 증거야.” “발가락이 벌어지면 도달한 거야.” 거짓 오르가슴을 구분하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듣고 있으면 순진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복잡한 만족의 구조를 단순한 지표로 읽어내고 자신이 잘했다고 믿는다면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자신을 과신하기 시작하면 여자에게 섹스는 한없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애정을 품은 상대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느끼길 원하는 여자들은 섹스를 할 때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의 교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좋은 섹스란 좋은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친밀감이 밀도있게 차오를 때, 상대방에 오직 내게만 몰두한다는 게 느껴질 때. 그때의 쾌감은 클리토리스나 G스팟 같은 어떤 지점을 공략했을 때보다 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불행은 애정의 지속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데 있다. 사랑은 일상이 되고 섹스도 무덤덤한 습관이 된다. 상당수의 남자들은 기성품처럼 정해진 몇 가지 패턴만 이용해 섹스를 한다. 삽입과 사정 사이 몇 번 체위를 바꾼다 하더라도, 사정에 도달하는 체위는 어느 순간부터 비슷해진다. 한 사람과 몇 번의 섹스를 해보면 그가 쓰는 패턴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예술가처럼 창조성을 발휘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한 여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녀만을 위한 맞춤형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상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탐험은 하지 않고 늘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섹스를 한다면 오르가슴은 머나먼 은하계의 이야기가 된다.

몸의 내부에서 뭔가가 한창 올라오고 있는데 클리토리스에 자극을 주던 손을 멈춘다거나, 적당한 속도의 자극을 원하는데 갑자기 빨라지고 강해진다거나, 원치 않는데 체위를 바꾼다거나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오르가슴의 방해물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말로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기 민망하다보니 불만을 품은 채 남자에게 맞춰주게 된다. 섹스는 자연히 즐겁지 않게 된다. 오히려 피곤해진다.

그가 빨리 절정에 도달해 그 지겨운 피스톤 운동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를 쓰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만하면 됐어. 어서 마무리 짓자”라는 의미로 오르가슴을 가장(假裝)한다. 그에게 청각적 자극을 더 해주고 사정을 유도한다. 끝. 불만족스럽지만 더 이상 힘들거나 아프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한 끝.

삽입 후 재미가 반감해버리는 섹스, 의무적인 반응들. 여자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말하지 않는다면 남자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여자 입장에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숙해보이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고, 또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그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거짓 오르가슴으로 소리를 내질러도 진실은 침묵하다보면 진짜 오르가슴을 멀리 떠나보내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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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가 없어서 운동으로 성욕을 해결하고 있는데 이것이 긍정적인 것일까요?”라는 가련한 질문을 받았다. 해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운동의 효과를 의심하는 질문을 던지다니, 성욕이 잠깐 해소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욕구불만인 상태라는 걸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닐까?


배가 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식욕과 수면욕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혼자서도 충분히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섹스라는 행위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 성욕이라면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다만 내가 하고 싶다고 당연히 상대가 응해주는 것은 아니기에 성적 욕구가 충만한 미숙한 어린 남자들은 섹스할 대상이 없을 때 괴롭고 슬픈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성적 호기심과 에너지가 충만한 10대 남자애들에게 미봉책으로 제시하는 운동요법을 성인 남성에게 적용하여 “운동으로 성욕을 푸세요”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피트니스 센터에서 홀로 몸을 단련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몸을 부딪치고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축구나 야구 같은 사회성을 갖춘 운동이라면, 타인과 단절되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애써 운동을 하기 보다는 누군가와 몸을 섞고 싶어 한다. 운동을 하면서도 섹스라는 행위가 더 나은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욕구가 강한 남자들은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들 내부에 충족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사정이 목적이라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영상이나 책자의 보조를 받아 자위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섹스를 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섹스에 대한 욕구라기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필요한 성욕이란 것은, 육체적인 만족 이외에 정서적인 만족에 관련된 것일 텐데 일회적인 만남이나 대가를 지불하고 맺는 관계는 욕구를 해소해주기 보다는 허무함과 외로움을 더 절실히 느끼게 만들 뿐이다.

섹스를 통해 일상의 감각이 아닌 들뜨고 환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섹스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위이다. 그렇기에 탐욕을 부린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먹을 것에 집착하여 살이 포동포동 오르게 된다든지 잠에 취해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단지 더 많이, 더 자주 섹스하길 원한다고 하여 그렇게 행동한다면 타인과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과 섹스를 했다면 둘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심리적인 문제 상황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감당하고 해결해나가려면 욕구에 굴복하는 말랑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비열한 마음 대신 진심과 애정을 품을 때 성욕도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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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신선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러 나왔을 때 그가 뒤따라 나왔다. “안녕.” 오늘 두 번째 인사. 무리지어 있을 때 나눈 형식적인 통성명과 첫 번째 인사와는 달랐다. 그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사심을 담아 건넨 인사였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안녕.”라고 답했다. 나쁘지 않은 목소리, 호기심에 가득 찬 동그란 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나에 대한 호감이 그의 바디랭귀지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특별히 할 말은 없어 애꿎은 신발 앞코로 바닥만 툭툭 치고 서 있었다. “춥지 않아?” 그러고 보니 목도리와 외투도 벗어둔 채로 나는 티셔츠에 얇은 카디건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모직 코트를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난 좀 걸을 건데.” 그는 조용히 따라 걸었다.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불이 꺼져있었고 모퉁이 편의점만 마치 다른 세상인 냥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둘이 걷다 후미진 골목을 발견 했을 때 그가 내 손을 잡고 골목 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움켜잡고 한참동안 웃었다. 그는 내 웃음이 멈출 때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기다려주었다. 

“웃을 때가 아닌데.” 그가 말했다. “이건 마치 중학교 때보던 순정만화 같은 전개잖아.” “그렇다면 다음 장면이 뭔지도 알겠네.” 물론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수줍어할 필요가 없었다. 피하거나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이것이 단순히 충동적인 장난이라고 해도 내게 이런 감각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동안 마음에만 집중하느라 몸의 즐거움은 거리를 두고 있었던 터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괜찮은 방식의 유혹이었다. 



나는 그의 티셔츠 앞자락을 움켜잡고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는 혀를 제대로 움직일 줄 알았다. 입술을 핥아주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고, 이와 잇몸을 자극하는 방법도 알았다. 키스의 강약중간약 조절도 훌륭했다. 입맞춤에 취해있던 정신을 제3자의 눈으로 보내 이 사태를 바라보게 했다. 

 

 


그 순간 그의 키스가 나의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종이 한 쪽에만 물감을 묻혀 접었다 펼친 테칼코마니같은 키스였다. 키스만으로 온몸이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약간의 자만심도 밀려왔다. 도발적인 키스에 어울리는 손동작은 그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가 터질 것처럼 단단해진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의 손이 카디건 사이를 파고들 때 그를 밀어냈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 번호를 남겨주었다. 바깥 공기는 너무 차가웠고 손끝은 부서질 듯 시렸다. 긴 키스를 나누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다음날 약간의 숙취를 느끼며 일어난 오후, 물의 기운을 빌리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오는 그 순간, 발신자에 낯선 열세 자리 번호가 떴다. “안녕?”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귀여운 목소리, 나는 플로랄 향 대신 머스크 향이 가득한 바디로션을 온몸에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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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발단은 사소했다. 문제는 카카오톡이었다! 동생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는데 처음 연락을 하면서 전화 통화가 아닌 카카오톡을 날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내가 동생을 병신으로 키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고 비읍시옷이라는 소리에 동생이 발끈하고 말았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생으로부터 스마트한 세상에 적응 못하는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까다로운 여자라는 맹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비방은 가볍게 쳐냈다. 나는 또래보다 스마트폰과 IT 기계에 대한 적응력과 활용도가 높았다. 얼마 전에 혼자서 스마트폰 루팅을 해낸 것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방어에 성공한 뒤, 공격 패를 꺼내들었다.

내 주변의 여자들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처음 말을 거는 소개팅남에 대한 반응과 개념 있는 남자들의 지지 발언을 수집하여 보여주었다. 동생의 비난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대인배인 나는 병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도 없는, 추임새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먼저 사과를 건넸고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다.   

하룻밤 만남도 스마트폰의 어플로 쉽게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채팅을 하는 것처럼 특정 장소와 특정 매개를 이용해 공을 들이던 것과는 달리, 일하는 도중에도 이동을 하는 동안에도 손쉽게 섹스할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의도가 명확한 메신저에서 찌질하게 굴지만 않는다면 섹스는 성사된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마당에 이용료가 전혀 들지 않는 메신저로 소개팅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할 것이다. 쉽다. 쉬운 게 문제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운명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다. 로맨스는 그 단어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료 메신저를 이용하는 것처럼 편리하고 쉽다. 그만큼 끊어지기도 쉽고 빠르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면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는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첫 만남을 하기 전에 서로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교환하고 만날 약속을 정할 때는 카카오톡보다 전화가 바람직한 게 아닐까? 당장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진실됨으로 상대에게 다가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룻밤 인연이 아니라 짝을 찾기 위해 소개팅을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내 번호를 알려줬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르는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안냐세요’라고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인사를 건네면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들까? 나름 잘 나온 사진으로 골라 넣어둔, 실물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카톡, 카톡, 카톡’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물어볼 게 많으면 전화 통화를 권하겠다.

적어도 첫 인사 정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중한 접근 방법이다.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올 때까지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못할 정도로 겁 많은 혹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남자라면, 만났을 때도 만족스러울 리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했을 때 쏟게 되는 정신적 에너지는 상당하다. 그렇기에 탐색 기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낫다.    

물론 카카오톡으로 보내오는 메시지만으로도 어떤 사람일지 예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메시지를 보내오는 타이밍이나, 반응속도, 이모티콘의 사용 정도, 화제를 꺼내는 방식이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한글맞춤법을 지키는 정도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목소리와 말투, 직접 대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과는 다를 수 있다. 전화할 용기는 없고 카카오톡이나 보내는 남자는 스스로 매력을 깎아 먹는 것이다.

특히 카카오톡은 친한 친구들과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에 관한 수다를 떠는 데 사용하고, 중요한 일은 문자나 전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구분 지어 사용하는 상대에게 카카오톡은 실례가 된다. 20대 초반의 어린이들도 아니고 나이도 들만큼 들어서 하는 소개팅의 첫 대화에 카카오톡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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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방명록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섹스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분께 답 메일을 보내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솔직하고 당당한 동시에 감성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연애나 연애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케이블에서 끊임없이 재방송을 해주고 있는 '섹스앤더시티'나 이번 분기 일본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를 보면 그런 마음이 더 부추겨질 것이다.

칼럼니스트가 되면 드라마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거라 꿈꿀지 모르겠지만 매체 하나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만으로 '지미추'를 신고, '디올'을 입고, '핫 플레이스'만 골라 다닐 순 없다. 근사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헤픈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헤프다는 근거가 될 순 없다.

섹스 칼럼니스트 대부분이 평균치의 경험과 평균치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과 주변의 사례를 잘 조각내어 각색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시켜 글을 만든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희대의 카사노바들이 섹스 칼럼을 써야할 것이다. 이 일에 필요한 것은 분석력과 통찰력 그리고 관찰력이다.

섹스를 많이 하고, 잘 하고,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못 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방어막을 치겠다는 게 아니다. 연애와 사랑, 그리고 남녀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섹스를 빼놓는다는 것은 팥이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섹스를 언급하는 것뿐이다. 오직 섹스에만 관심사가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섹스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남자들의 관심이 ‘글을 쓴다’가 아닌 ‘섹스’에 맞춰져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섹스’라는 말이 그들을 자극시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러나 그 과도한 관심이 불쾌한 사건을 유발시킬 때가 있다.

평소 내 글을 관심가지고 읽어주시던 분이 내 SNS 계정에 접속하고 팔로잉을 했다. 그 SNS 계정은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정체성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축구를 보면서 같은 팀을 응원하는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세컨드 계정이라고 밝혀두고 섹스에 대한 욕망을 쏟아내고 있던 그 분의 SNS와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 분이 나를 팔로잉하자, 그 분처럼 세컨아이디로 활동하는 분들이 대거 나를 팔로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접속을 했더니 팔로워들의 프로필 사진이 전부 노출된 성기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다른 축구팬 팔로워들이 이걸 보면서 뭐라고 생각했겠는가. 게다가 이딴 거 보고 싶은 마음 없었다. 그닥 예쁘지도 않고, 예술적이지도 않은 적나라하기만한 병적인 사진들을 보며 흥분할 여자는 아무도 없다. 한 명, 한 명 차단을 하며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하는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분도 악의적인 의도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SNS가 어떤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보았더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일 하나하나는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어떤 날은 문득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하는 회의를 품게 만든다.

물론 이 일을 시작할 때 내게 닥칠 수 있는 불쾌감을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겪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는 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오래도록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렇기에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분들은 자제를 부탁드린다. 서로 예의는 지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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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폐렴에 걸려 2주간이나 앓아누워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데이트를 소홀히 하고 나가놀지 못하는 일이 지속되었다. 결국 나는 욕구불만에 빠져버렸다. 나의 꿈들이 나에게 강력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돼!”


직업적인 이유로 다른 사람에 비해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도 아니기에 평소 건전한 방식으로 나의 욕구를 해소해오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지금까지 무의식에서 성적 욕망을 읽어낼 징후는 없었다. 잘생긴 배우나 섹시한 가수를 떠올리며 ‘그와 함께 하는 아주 야한 꿈을 꾸고 싶어요’라며 빌고 빌어도 꿈속에서 그들과 뒹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몹쓸 꿈들이 내 밤을 장악하고 있다. 셔츠를 찢어 탄탄한 가슴 근육과 선명한 복근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로 누나들을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그 아이돌이 꿈속에 등장한 것이다. 꿈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그와 단둘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얼마나 많은 누나들이 그를 욕망하는지 생생하게 느끼던 터라 이건 횡재다 싶어 꿈꾸기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워낙 경쟁력 있는 상대이다 보니 꿈에서도 그를 노리는 세력과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차지하겠다고 덤벼드는 다른 여자를 밀어내려고 애쓰다보니 정작 눈앞에 훌륭한 몸을 두고 아무런 진도도 나가지 못한 채 잠에서 깨버렸다.

그럴 거라면 꿈에 등장하지나 말지. 너무나도 선명하고 생생한 꿈이었기에 하루 꼬박 아쉬워하며 보내야했다. 꿈에서도 그런 몸을 안아보지 못한다니. 나의 기구하고 비루한 운명을 저주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꿈속에서 드디어 성교를 하고 말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그 대상이 인지되지 않는 그런 꿈이었지만 그래도 꿈에서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는 것이 흡족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그는 삽입을 하고 난 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사정도 없이 자신의 페니스를 빼버렸다. 그러곤 우리의 섹스가 다 끝난 것 마냥 내 옆에 누워 팔베개를 해주고 나를 안아주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섹스를 하고 나니, 네가 더 예뻐 보여.”와 같은 손발이 오그라지다 못해 사라질 것 같은 대사를 내뱉는 게 아닌가. 아니 우리가 언제 섹스를 했단 말인가. 나는 꿈이지만 너무 화가 나서 그의 얼굴을 한 대 퍽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평소 억압된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 꿈이라는데 섹스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꿈이라니!!! 결코 달갑지않았다. 아무래도 꿈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히스테릭하고 신경질적인 내가 툭 튀어나오기 전에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겠다. 오늘 밤! 난 꿈 따윈 꾸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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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는 그와 입을 맞추는 순간에 그의 셔츠가 아닌 벨트로 손을 뻗었다. 몸을 밀착시켰을 때 허벅지에 닿은 묵직함에 흥분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 정도로 과감했던 적도 없었다. 그의 몸에서 페니스란 항상 마지막에, 혹은 보지 않아도 된다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위였다.

희주는 오럴섹스에 대해 항상 부채감 같은 걸 품고 있었다. 그가 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한 적도 많았다. 마음의 변화를 느낀 건 그와의 섹스에서 얻는 심리적 만족감 때문이었다. "나를 이토록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면 그에게 상을 주고 싶어." 하지만 그때도 희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입 안으로 그를 느끼면서도 그 실체를 똑바로 쳐다볼 순 없었다. 그것을 핥고 빨고 깨물면서 이것은 오직 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숨을 쉬는 게 편치 않았고, 흘러나오는 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난감했다. 목 안 깊숙하게 들어오는 물건의 길이감도 적잖게 불편하다고 느꼈다. “오럴섹스를 할 때 입으로만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손도 거들어야 해. 한 손으로 자극을 주는 거지. 손으로 감싸 잡은 만큼 입 안에서의 길이감도 줄일 수 있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럴섹스는 역시 의무감이었다. 희주는 오럴섹스를 통해서 자신도 쾌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의 것을 입으로 애무하는 동안 그 역시 희주의 것을 애무하는 69체위는 한 번쯤 호기심에 해볼 순 있어도 그다지 좋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희주는 자신이 원하는 자극이 아니라면 오히려 자신이 하고 있는 오렐섹스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그의 한쪽 다리에 올라타서 그것을 입에 넣었다. 자극을 느낀 그는 몸을 살짝 비틀며 다리를 움직였다. 희주는 그 찰라 클리토리스에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희주는 그의 몸에 최대한 밀착한 상태에서 오럴섹스를 했다. 그의 미묘한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몸도 자극을 받는다는 걸 깨달았다. 희주는 그 강도를 스스로 움직임을 더해 조절할 수 있었고 그를 위해 오럴섹스를 하는 도중에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입 안에서도 만족감이 부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아동의 심리성적발달단계에서 입으로 모든 쾌락을 충족시키는 구강기가 자신에게는 이제야 발현되는 기분이 들었다. 희주는 더 이상 그의 분신이 무섭지 않았고, 오럴섹스가 어렵지 않았다. 벨트를 풀고 그의 팬티를 벗겼을 때 팽팽한 긴장감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녀석에게 “안녕?”이라고 안부를 묻는다. 희주는 그런 자신이 대견스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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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와 멘티, 그들을 말한다

김현정(섹스 칼럼니스트)

김현정씨는 현재 <일간스포츠>에 고정 칼럼을 기고하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하는 섹스 칼럼니스트다. 기획 편집자로 일하던 중,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솔직하고 발칙한 글들이 그녀를 섹스 칼럼니스트의 길로 안내했다. 김현정씨는 2009년 남성잡지 『아레나』에 자신의 첫 칼럼을 기고하며 섹스칼럼니스트로서의 신고식을 치렀다.
블로그 이름과 같이 그녀는 정말 생각보다 바람직하다. ‘섹스 칼럼니스트’라 한다면 흔히들 ‘쉬운 여자’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발칙하게,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섹스를 할 때 만큼은 상대에게 진실되라고 조언한다.
현재 그녀의 블로그에는 <일간스포츠>에 기고하고 있는 칼럼들을 모아놓은 코너 ‘뇌內[망상]극장’과 칼럼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무삭제 현정판’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하희진 학생(영화학과 1)
하희진 학생은 요즘 들어 친구들 사이에서 부쩍 소외감을 느낀다. 일년전만 하더라도 친구들 사이의 대화소재는 드라마 혹은 연예인 스캔들. 그러나 요즘은 모였다 하면 자연스레 섹스 공론장이 되어버린다.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만 난무하는 대화 속에서 그녀는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나도 빨리 해야하는 건가’, ‘혹시 내가 매력이 없어서 경험을 못한 건 아닌가’.
막연한 불안감과 초조함에 그녀는 점차 자신감을 잃어간다. 섹스 콤플렉스를 벗기 위해 하희진 학생은 ‘청춘’을 찾았다.

이창학 학생(경영학부 4)
이창학 학생에게 성관계는 풀어도 풀어도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그는 성관계엔 정석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에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에겐 섹스는 더 이상 환상이 아닌 현실이다.
그는 여자친구와 섹스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보다 즐거운 성관계를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섹스와 관련한 대화는 유리와 같다. 자칫하면 깨져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서로가 상처 받는 것을 원지 않지만, 상처가 두려워 침대위에서만 끙끙 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창학 학생은 용기를 내어 ‘청춘’의 문을 두드린다.
교복을 벗고 우리는 성(性)문을 열었다. 신세계다.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된다. 비로소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건만 알고보니 이곳도 쾌락만이 존재하는 천국은 아니었다. 어느 밤은 지옥이 되기도 하고 어느 새벽은 천국이 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는 험하고도 어렵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어려운 세계 속에 뛰어들고 싶은 게 청춘 아니겠는가. 성(性)벽에 가로막힌 수많은 20대 청춘을 대표해 하희진(영화학과 1)학생과 이창학(경영학부 4) 학생이 김현정 섹스칼럼니스트에게 SOS를 청했다.







하희진 학생 : ‘첫경험’이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쿨해지고 싶지만 첫경험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김현정 칼럼니스트 : 첫경험이 중요한 것은 맞다. 첫 섹스가 다음 섹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첫경험의 시기는 본인에게 달려있다. “우리 자자, 나 못믿니”라는 상대의 말에 이끌려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상대방의 마음을 탐욕스럽게 원해야 한다. 상대방의 벗은 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애정을 내가 몸으로 느끼고 싶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품은 애정을 몸으로 확인받고 싶을 때 첫경험을 하면된다.
하 : 각자 ‘처녀 마지노선’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23살 전까지 경험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이대로라면 23살까지도 첫경험을 하기 힘들 것 같다.


 나의 처녀 마지노선은 스물셋


김 : 어느 시기에 처녀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 조금 놀랐다. 10년전만 해도 처녀가 아니어서 문제가 됐다. 혼전에 순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성이 억압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처녀여서 억압받는다. 허나 사회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23살, 성경험이 없는 처녀가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절대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24살에 첫경험을 했다.
하 : 나도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초조하고 조바심이 난다.
김 : 그건 어쩔 수 없다. 본인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웃음).

이창학 학생 : 첫경험을 하기 전엔 스스로 환상을 만든다. 하지만 막상 섹스를 경험하고 나면 정말 별 게 없다. 첫경험 후 실망감에 많이들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
김 :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섹스에 대한 환상이 크다. 하지만 섹스는 밥 먹는 것, 자는 것과 같은 형식적인 행위다. 너무 많은 환상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첫경험에 기대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실망도 클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섹스를 시니컬한 태도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섹스는 일상인 것이다.

하 : 수많은 이론과 동영상을 접해도 실전은 100% 다를 것을 알고 있다. 첫경험에서 상대방에게 너무 엉성한 모습을 보이면 부끄러울 것 같다.
이 :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나.
김 : 맞다. 처음은 엉성할 수밖에 없다. 물론 타고난 사람이 있을 순 있겠다(웃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의 처음은 어설프다. 서로가 첫경험일 커플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처음은 절대, 네버, 결코 완전한 섹스로 이어질 수 없다. 끙끙거리며 몇 차례의 밤을 거쳐서야 “우리가 해냈어”하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초보를 거치지 않는 프로는 없다.

하 : 섹스는 곧 연애 문제로 직결된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하지않나. 연애를 하고있지 않다보니 스스로 ‘여자로서 매력이 없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김 :  첫경험이 늦어진다고 해서 매력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섹스는 나이가 차서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끌리는 상대와 갖게 되는 관계다. 그러나 ‘남자들이 날 어떻게 보기에 아직도 섹스를 못하는 거지? 내가 매력이 없나’라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이다.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이 : 자신의 매력에 대한 고민은 연애를 하면서도 드는 것 같다. 섹스를 하고 싶은데 상대방의 반응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비록 연애 중이지만 스스로의 매력에 의구심이 든다.
김 : 그럴 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 케이블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를 보면 3년을 만나도 키스밖에 안하는 커플이 등장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섹시함을 못 느낀다고 털어놓고 결국 이별한다. 연애라는 것은 두 이성이 만나며 자연스레 육체적인 관계를 동반할 수 밖에 없다. 플라토닉적 사랑뿐만 아니라 에로스적인 사랑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 : 제모, 향수, 속옷, 뱃살……. 첫경험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김 : 대부분 정작 준비해야 하는 것에 대한 준비는 부족한것 같다. 섹스의 본래 목적은 종족 번식, 즉 생식이다. 그걸 잊어선 안된다. 첫 섹스를 위한 첫 번째 준비물은 향수, 속옷이 아닌 콘돔이다. 상대방이 볼 뱃살을 걱정하기보단 다달이 배가 불러올지도 모르는 실수에 대한 걱정을 해야한다. 제모는 평소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 ‘팔에 털이 긴데 혹시 날 동물로 보진 않을까?’ 절대 아니다. 전신제모? 그런거 필요없다. 영화 <색계>를 보면 겨드랑이털도 안밀고 나온다. 결국 제모도 사회적인 관습일 뿐이다. 하지만 에티켓으로 통하고 있으니 적당히만 하면된다. 제모를 좀 덜 해도 애정전선엔 이상없다.
많이들 뱃살을 걱정하지만 실제 모델같은 몸매는 별로 없다. 섹스를 할 때 온 몸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간단하다. 불을 끄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뱃살을 보더라도 역시 애정전선엔 이상 없다.
이 : 몸을 이불로 적당히 가리고 섹스를 하는 방법도 있다. 남자는 준비할 것도 없이 몸만 있으면 가능한데, 여자는 참 준비할게 많아 보인다.

김 : 여자는 섹스를 마치 닫고 있던 성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향수며, 속옷이며 준비할게 많지만 사실 어린친구들의 경우 감상하는게 아니라 일단 벗기기에 바쁘지 않나(웃음). 여자친구가 아무리 예쁜 속옷을 입고와도 남자친구는 후크를 푸는데 집중한다. 정작 속옷에 신경을 써야 할 때는 권태기가 올 때다. 연인관계에 익숙해지다보면 여자들도 속옷 짝짝이로 입는다. 면팬티도 입는다. 피곤한데 어떻게 매일 실크를 입나. 하지만 권태기가 오면 서로 느슨해졌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한번씩 신경써줄 필요는 있다.
이 : 솔직히 남자의 입장에서 섹스를 할 때 책임감 때문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코 끼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 : 연인관계든, 단지 섹스를 하는 관계든 신의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 또한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섹스에 대한 부담이 뒤따르기 때문에 연애를 쿨하게 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 코끼지 않는 방법은 오직 피임뿐이다. 물론 남성분들에겐 충분한 답이 되진 않을 듯 싶다(웃음).


  가끔은 ‘어땠어?’라고 묻고 싶다 

이 : 관계 후에 나만 만족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혹시 여자친구는 만족하지 못한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땠어? 괜찮았어?’라고 말이다.
김 : 남자들은 가끔 지금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관계 도중 ‘좋아?’ 라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다(웃음). 그런 질문에 ‘응, 좋아’라고 대답하기도 웃기고 민망한 일이다. 섹스 중 이런 질문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 만약 상대가 만족했는지 궁금하다면 섹스가 끝난 후 귀엽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나 잘했지?”라고 물어보면 여자친구는 “으이그~!” 혹은 “에이, 짐승!”하며 남자친구의 어깨를 살포시 때릴 것이다. 너무 진지하게 만족감을 묻는 것은 부담을 주는 일이다. 장난스럽게 센스있는 분위기를 연출해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 좋다.

이 : 난 하기 싫은데 상대방이 원할 경우, 혹은 상대방은 하기 싫은데 내가 원할 경우에도 싸움이 일어난다.
김 : 이런 상황에선 감정 싸움이 생긴다. “니가 하기 싫을 때 나도 해줬잖아. 근데 넌 왜 안해줘?”라는 식의 감정싸움으로 커질 수 있다. 결국 대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오늘 말고 다음에 더 잘해줄게’ 혹은 ‘다음에 더 좋게 하자’는 식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 : 상대를 위해 억지로라도 해 주는 것은 좋지 않나?
김 :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억지로 할 경우, 이성의 몸을 사랑해 주는 섹스가 아닌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 컨디션에 따라 사정시기가 짧아질 때도 있다. ‘오늘은 왜이러지’라는 생각에 여자친구 보기 민망할 때도 있다.
김 : 사실 여자들은 성적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잣대가 별로 없는 반면 남자는 성적 능력을 평가 받을 수 있는 잣대가 다양하다. 성기의 길이, 굵기, 지속시간, 사정의 정도 등……. 개인적으로 섹스에 있어서 남자가 약자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비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사정을 빨리 하더라도 여자친구가 즉각적으로 ‘얘 안되겠네, 빨리 다른 사람 찾아야지’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 스스로가 주눅이 들뿐이다. 사회적으로 남성성을 강요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남자들이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한다.
   

성적 판타지, 변태로 보일까봐 말 못한다

하 : 섹스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장소인 것 같다. 누구나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소에 대한 판타지가 있지 않나. 하지만 막상 상대에게 말하기 힘들 것 같다.
김 : 특정 장소에 대한 판타지를 나쁜 것이라고도, 이상한 취향이라고도 볼 수 없다. 상대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판타지를 쉽게 말 할 수 없는 것은 ‘변태로 보일까봐’서다. 그러나 개인이 가진 판타지를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 순 없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둘만 좋다면 전혀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이 :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서로 말하기 민망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김 : 물론 민망하다. 특히 관계 도중엔 무드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에 몸으로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여자의 경우 때로는 삽입한 채로 있는 그 느낌이 좋을 때도 있다. 이럴 땐 다리를 이용해 상대의 허리를 감싸는 것이다. 남자가 바보가 아니라면 알아차린다. 상대의 몸에 대해서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섹스에도 센스와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침대에서 행위를 할 뿐 침대 밖에서 섹스토크를 나누려하지 않다보면 문제가 생겨도 해결이 안된다. 처음엔 민망하겠지만 침대 밖에서의 대화도 필요하다. 처음엔 부끄럽겠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이 : 남자의 입장에선 오럴섹스를 원할 때가 있다. 오럴이 일반적인 섹스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꺼려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김 : 여자들도 동영상을 보기 때문에 오럴섹스가 섹스의 일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또한 남자친구가 원한다면 해줘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도 갖고 있다. 하지만 섹스에 입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연인간의 애정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자도 오럴섹스에서 오는 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원한다면 여자친구에게 표출을 해보는 것이 좋다. 만약 여자친구가 거부할 경우 ‘아, 지금은 아닌가보다’하고 기다려주면 된다. 여자들 역시 지금은 아니지만 남자친구가 원하고 있음을 나름 생각하게 되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 남자들의 성기크기가 여자들에게 실제로 중요하게 작용하나
김 : 작용 안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남성 성기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여성의 질 크기에 따라서 이 사람의 것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잘 맞는 것이 중요하다. 성기의 크기가 잘 맞았을 때를 속궁합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이 : 피임약이 여성의 몸에 안좋다고 들었다. 피임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이 궁금하다.
김 : 복용하는 피임약은 개인마다 호르몬이 다르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 후 처방받는 것이 가장 좋다. 피임약 복용보다 보편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것이 콘돔이다. 콘돔은 비싸고 좋은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고무느낌이 나서 싫다’ 혹은 ‘너와 나 사이에 이물질을 원치않는다’ 하는 남성들을 위해 오카모토사의 ‘스킨레스 3000’을 추천한다.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얇다. 또한 질이 건조하거나 신체적 반응이 잘 오지 않는, 여성들을 위해 오카모토사의 ‘젤돔 2000’을 추천하고 싶다. 윤활유가 함유되어 있어 통증을 느끼는 여성들을 위해서도 좋다.

하 : 마음이 통한 다음 섹스를 할 수도 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섹스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 스스로 선택하면 되는 문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의 마음을 먼저 확인하고 섹스를 해야 맞는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관계를 가졌다가 아닐 경우, 여자는 본인이 실수한 것이 몸에 남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고 즐거운 섹스 생활을 저해하게 된다.

하 : 여자가 남자보다 섬세하다고 하지만 막상 여자들은 스스로의 몸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나 역시 섹스를 하기 위한 스스로의 몸 탐구가 부족한 것 같다.
김 : 즐거운 섹스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여성에게도 자위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자들이 자위 하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신이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부위나 만짐의 강도 등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섹스를 할 때에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즐겁고 건강한 섹스를 위해선 남녀 모두가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그의 입술이 가슴에서 배로 하강하기 시작했어. 그의 혀가 도달할 곳을 짐작할 수 있었지.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걸 굳이 막을 필요는 없잖아. 다리를 조금 더 벌리려고 하는데 내 예상을 깨고 ‘찌릿’ 자극이 온 곳은 다름 아닌 발가락이었어.”

K는 직립보행을 아직 시작하지 않아 깨끗하고 뽀얀 발을 가진 아기한테나 귀여워죽겠다고 말하며 발가락에 입 맞추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의 발에 그러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K의 발에 입 맞추었다. K는 “왜 그래, 간지러워. 하지마”라고 말하면서도 발을 감추거나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K의 말초신경은 그 행동을 멈추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는 새끼발가락을 입 안에 넣고 빨아들였다. 생전 처음 느낀 쾌감 때문에 K의 몸은 달아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한다고들 말하잖아. 그걸 행동으로 옮긴다면 발가락 키스일거야. 생각지 못한 의외의 부위잖아. 사실 나조차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곳이니 그 순간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어. 발가락 키스에 안 넘어갈 여자는 없어. 이건 절대 기술이야.”

K의 말대로 내 몸을 홀려놓고 격정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손길은 존재한다. 남자라면 궁금해 할 궁극의 스킨십 기술! 그러나 미안하게도 절대 기술은 없다. 단순하지 않은 여자의 몸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발가락 키스도 100% 효과를 발휘하는 기술이라고 볼 순 없다.

아까 샤워할 때 발가락 사이사이도 꼼꼼하게 거품을 내서 씻었던가? 힐을 신다보니 새끼발가락의 발톱이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발뒤꿈치 각질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런 저런 걱정으로 발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는 여자들도 많다. 그가 발을 공략한다면 부담스럽고 불편하며, 긴장만 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에로틱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기본에 충실한 고전적 터치가 여심을 흔들곤 한다. 나른한 섹스가 끝나고 긴장의 끈을 늦춘 채 그의 곁에서 선잠이 들었을 때였다. 무방비의 유약한 나를 바라보는 시선, 굳이 눈을 떠 확인하지 않아도 응시된 초점이 가진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어 그의 손이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고 내 뺨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그는 내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의 쾌감은 정수리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어느 한 구석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내 몸을 만져주고 핥아주고 빨아줄 때의 짜릿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그의 손길에서 내가 궁금해 하던 성실한 답이 보였다. 잠이 덜 깬 듯 몸을 뒤척이며 그의 품속에 안겼다. 나의 빈 곳을 채워주었던 그의 단단함이 허벅지에 닿았다. 딩동. 그가 들려준 답을 채점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의 허벅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발적 충동을 만들어 내는 그의 손길, 그것은 어떠한 기술이 아닌 진실한 마음이 담겨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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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토레스의 첼시 이적 소식은 리버풀을 응원하던 나에게는 군대 간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서 나를 차버리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배신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제토라인으로 토레스와 짝을 이루던 제라드도 그를 이해한다고 말한 마당에 내가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토레스가 리버풀의 빨강이 아닌 첼시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오이디푸스처럼 스스로 눈을 뽑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파란 토레스라니 나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토레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파란색. 그러나 어째서인지 토레스의 등근육은 빨간색 유니폼을 입었을 때보다 더 도드라져보였다. 숨길 수 없다는 듯이 유니폼 위로 드러난 그의 등근육. 황홀해하며 TV화면을 정신없이 쓰다듬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 마음에 훅하고 깊숙한 자상을 남긴 토레스였지만 그의 등근육은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덧나지 않게 발라주는 연고처럼 약효가 좋았다. 생각해보면 토레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애초에 그의 하드웨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년의 얼굴, 짐승의 몸. 표범의 등처럼 탄력 넘치는 동시에 힘이 느껴지는 근육 앞에 반하지 않을 여자 어디 있겠는가?

피트니스에서 죽어라 운동하고 닭가슴살을 먹으며 근육을 키우는 남자들이 알아야할 사실이 하나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운동하는 거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근육을 키워도 상관없지만, 여자에게 어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 거라면 가슴, 복근보다는 등에 집중할 것!

가슴이나 복근은 옷을 벗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근육이다. 그러나 그 근육 자랑하려고 쫄티를 입는 순간 여자들이 눈을 돌릴 것이다. 제발 그것만은 하지말자. 등근육은 면티 하나만 입고 있어도 드러낼 수 있다. 팔을 움직이거나 뭔가 물건을 들 때 견갑골과 함께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거운 것을 들고 그녀보다 성큼성큼 몇 발자국 앞서 걸어 나가라. 그 믿음직한 등을 보이란 말이다.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애인씨가 달려와 도와주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하게 세워두고 이사센터 아저씨와 함께 등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물건을 날랐다. 나는 할 일이 없으니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책장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던 애인씨의 뒷모습. 나는 지금도 그때 등근육의 굴곡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골라준 겨자색 빈티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 분명 내 남자인데. 너무 익숙한 내 것인데 그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낯설고 새로워보였다. 그가 힘을 줄 때마다 등근육이 셔츠 위로 도드라졌다. 그 순간 이사고 뭐고 그에게로 달려가 그 등을 꼬옥 껴안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그대로 셔츠를 벗기고 그의 등에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 그런 등근육을 가진 남자와 섹스를 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어제도 같이 잔 남자였는데 완전히 달라보였다. 그래서 짐 상자들은 풀지도 않고 제일 먼저 침대부터 조립해 매트리스를 올리자마자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들을 벗어던지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짐승 같은 남자의 등근육은 나를 야성적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자기의 견갑골과 등근육을 지켜보면서 이미 나는 젖어버렸어.” 그랬다. 등근육은 어떤 최음제보다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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