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토레스의 첼시 이적 소식은 리버풀을 응원하던 나에게는 군대 간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서 나를 차버리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배신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제토라인으로 토레스와 짝을 이루던 제라드도 그를 이해한다고 말한 마당에 내가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토레스가 리버풀의 빨강이 아닌 첼시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오이디푸스처럼 스스로 눈을 뽑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파란 토레스라니 나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토레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파란색. 그러나 어째서인지 토레스의 등근육은 빨간색 유니폼을 입었을 때보다 더 도드라져보였다. 숨길 수 없다는 듯이 유니폼 위로 드러난 그의 등근육. 황홀해하며 TV화면을 정신없이 쓰다듬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 마음에 훅하고 깊숙한 자상을 남긴 토레스였지만 그의 등근육은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덧나지 않게 발라주는 연고처럼 약효가 좋았다. 생각해보면 토레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애초에 그의 하드웨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년의 얼굴, 짐승의 몸. 표범의 등처럼 탄력 넘치는 동시에 힘이 느껴지는 근육 앞에 반하지 않을 여자 어디 있겠는가?

피트니스에서 죽어라 운동하고 닭가슴살을 먹으며 근육을 키우는 남자들이 알아야할 사실이 하나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운동하는 거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근육을 키워도 상관없지만, 여자에게 어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 거라면 가슴, 복근보다는 등에 집중할 것!

가슴이나 복근은 옷을 벗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근육이다. 그러나 그 근육 자랑하려고 쫄티를 입는 순간 여자들이 눈을 돌릴 것이다. 제발 그것만은 하지말자. 등근육은 면티 하나만 입고 있어도 드러낼 수 있다. 팔을 움직이거나 뭔가 물건을 들 때 견갑골과 함께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거운 것을 들고 그녀보다 성큼성큼 몇 발자국 앞서 걸어 나가라. 그 믿음직한 등을 보이란 말이다.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애인씨가 달려와 도와주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하게 세워두고 이사센터 아저씨와 함께 등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물건을 날랐다. 나는 할 일이 없으니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책장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던 애인씨의 뒷모습. 나는 지금도 그때 등근육의 굴곡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골라준 겨자색 빈티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 분명 내 남자인데. 너무 익숙한 내 것인데 그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낯설고 새로워보였다. 그가 힘을 줄 때마다 등근육이 셔츠 위로 도드라졌다. 그 순간 이사고 뭐고 그에게로 달려가 그 등을 꼬옥 껴안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그대로 셔츠를 벗기고 그의 등에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 그런 등근육을 가진 남자와 섹스를 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어제도 같이 잔 남자였는데 완전히 달라보였다. 그래서 짐 상자들은 풀지도 않고 제일 먼저 침대부터 조립해 매트리스를 올리자마자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들을 벗어던지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짐승 같은 남자의 등근육은 나를 야성적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자기의 견갑골과 등근육을 지켜보면서 이미 나는 젖어버렸어.” 그랬다. 등근육은 어떤 최음제보다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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