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도 방명록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섹스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분께 답 메일을 보내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솔직하고 당당한 동시에 감성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연애나 연애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케이블에서 끊임없이 재방송을 해주고 있는 '섹스앤더시티'나 이번 분기 일본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를 보면 그런 마음이 더 부추겨질 것이다.

칼럼니스트가 되면 드라마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거라 꿈꿀지 모르겠지만 매체 하나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만으로 '지미추'를 신고, '디올'을 입고, '핫 플레이스'만 골라 다닐 순 없다. 근사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헤픈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헤프다는 근거가 될 순 없다.

섹스 칼럼니스트 대부분이 평균치의 경험과 평균치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과 주변의 사례를 잘 조각내어 각색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시켜 글을 만든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희대의 카사노바들이 섹스 칼럼을 써야할 것이다. 이 일에 필요한 것은 분석력과 통찰력 그리고 관찰력이다.

섹스를 많이 하고, 잘 하고,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못 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방어막을 치겠다는 게 아니다. 연애와 사랑, 그리고 남녀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섹스를 빼놓는다는 것은 팥이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섹스를 언급하는 것뿐이다. 오직 섹스에만 관심사가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섹스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남자들의 관심이 ‘글을 쓴다’가 아닌 ‘섹스’에 맞춰져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섹스’라는 말이 그들을 자극시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러나 그 과도한 관심이 불쾌한 사건을 유발시킬 때가 있다.

평소 내 글을 관심가지고 읽어주시던 분이 내 SNS 계정에 접속하고 팔로잉을 했다. 그 SNS 계정은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정체성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축구를 보면서 같은 팀을 응원하는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세컨드 계정이라고 밝혀두고 섹스에 대한 욕망을 쏟아내고 있던 그 분의 SNS와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 분이 나를 팔로잉하자, 그 분처럼 세컨아이디로 활동하는 분들이 대거 나를 팔로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접속을 했더니 팔로워들의 프로필 사진이 전부 노출된 성기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다른 축구팬 팔로워들이 이걸 보면서 뭐라고 생각했겠는가. 게다가 이딴 거 보고 싶은 마음 없었다. 그닥 예쁘지도 않고, 예술적이지도 않은 적나라하기만한 병적인 사진들을 보며 흥분할 여자는 아무도 없다. 한 명, 한 명 차단을 하며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하는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분도 악의적인 의도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SNS가 어떤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보았더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일 하나하나는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어떤 날은 문득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하는 회의를 품게 만든다.

물론 이 일을 시작할 때 내게 닥칠 수 있는 불쾌감을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겪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는 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오래도록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렇기에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분들은 자제를 부탁드린다. 서로 예의는 지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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