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생운동이라는 건 명맥만 유지되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잘못된 사회에 목소리를 드높이며 투쟁하다 의로운 피를 흘리는 건 영광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런 이유로 운동권에 속한 사람들은 좀 더 정의롭고 진보적이며 바르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본인들도 그런 걸 내세웠다. 


그런데 의식과 지성을 갖췄다는 이들이 대학생활 내내 벌이는 연애 소동을 가만히 지켜보면 의아한 일투성이였다. 함께 서울광장에 나가 시위를 하고 돌아와서는 밖에서는 분명 동지였던 여자 친구의 자취방에 대자로 드러누워 아버지 세대 코스프레를 한다. ‘밥 차려와라’, ‘리모컨을 달라’ 원룸의 제왕이 따로 없었다.

다른 한쪽에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흉내를 내며 자유연애라는 이름으로 허랑방탕한 자신의 생활을 정당화했다. 성해방이 진보인 냥 여자 후배를 꼬드기고 부추겨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이 된 줄 착각하다 농간에 놀아났다는 진실을 알게 된 뒤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주기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열혈진보활동가로 이름을 떨치던 선배는 술 취한 후배를 동아리방에 가두고 몹쓸 짓을 하려고 시도하다 적극적 저항으로인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 운동권 동아리에선 ‘피 끓는 젊은 남녀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선배를 옹호하고 후배에 대해서는 행실이 나쁘다는 소문을 흘리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했다. 그 덕에 그 선배는 아무런 반성 없이 휴학했고 복학 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더 어리고 아리따운 후배와 연애를 했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 부분에서는 진보적으로 다른 부분에서는 보수적이거나 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영웅이 되어 달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대항하면서, 자신이 권력자로서 위치한 여성 문제에서는 그 힘을 마구 휘두르며 약자에게 상처 주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진보라고 말하면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힘의 남용과 억압이 존재한다면 너무나 뻔뻔스러운 자기기만이다. 

당신들은 진보라고 믿으며 지지하고, 세상을 바꿔보자는 당신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정치적 무관심에서 개안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그들의 힘을 빠지게 만든 사건에 대해서 내버려두면 조용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마라. 사람들은 당신들에게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포즈에 지나지 않는 사과 따윈 필요 없다. 어떤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의 목소리를 내게 하고 당신들을 비판하게 했는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여성에 대한 당신들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교정되거나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여러 가지 몹쓸 편견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 휘두르는 것이 가식 없이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삐뚤어져 있는 생각과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임을 안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조금씩 바꿔나가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런 행동들이 모여서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의 위치를 반성해야 한다. 항상 약자인 사람도 항상 강자인 사람도 없다.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착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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