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몸을 섞을 생각은 없었다. 헤픈 마음을 품고 그와 마주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왼쪽 가슴에 날카롭고 깊은 통증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살해되고 말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와 다시 볼 수 없어서 슬픈 건지, 내 사랑이 이런 식으로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 이별 후에 쏟아내는 말들은 들을 대답이 없다는 듯 휘휘 날리다 사라진다. 답은 어차피 알고 있었다. 

눈물을 참으려고 하면서 미간을 약간 찌푸렸나보다. 그는 손을 뻗어 그 주름을 만져주었다. 그 손끝이 너무나 따뜻해서 화가 났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온기란 애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것이었나 보다.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간을 타고 내려오며 콧날을 따라 입술을 더듬었다. 화가 난 마음으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것이 아슬한 경계를 깨버린 신호가 되었다. 그의 입술도, 입안을 파고드는 혀마저도 따스했다. 셔츠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움켜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때문에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담백한 사이, 물론 친구라고 하기엔 서로를 무성의 존재로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곁에 연인이 있다는 사실은 제자리를 지키게 만들었다. 제어를 해줄 만한 것이 해제된 상황, 그러나 앞뒤를 생각하지 않은 이런 충동적인 방식의 행위는 결론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를 밀어내지 못하는 마음, 체온과 살 냄새를 그리워하는 미약하고 굳건하지 않은 마음에도 화가 났다. 하지만 온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조금 더 강했다. 몸을 그에게 내맡겼다. 그의 행동은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어린 남자들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정성스러웠다. 스스로를 상처 내던 뾰족한 마음의 끝을 동그랗게 만들어주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품에서 안온함을 느끼는 것은 이상했다. 그러나 잘못하고 있다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바라고 있었다. 그 탐욕스러움을 이해했다는 듯 삽입하기 전 여자를 적당하게 흥분시키는 기술로써 누군가를 만지는 방식이 아닌, 겨울의 마음에 봄을 불어넣듯 온기를 전하기 위함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닫힌 눈꺼풀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마무리를 맺었다. 요요했다. 우리 둘은.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는 옷을 챙겨 입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나는 수분이 말라버려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선인장처럼 사막에 누워있는 듯 했다. 고요했고 눈물도 나지 않으니 잘된 일이었다. 

그때 벨이 울렸다. 열린 문 앞에 그가 서 있었다. 블루베리 라떼를 – 우울증 약처럼 기분이 처질 때면 마시곤 하는 그 음료를 내게 내밀었다. “그럼 푹 쉬어.” 그는 돌아섰다. 완벽하게 내게 딱 맞는 방식으로 위로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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