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발단은 사소했다. 문제는 카카오톡이었다! 동생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는데 처음 연락을 하면서 전화 통화가 아닌 카카오톡을 날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내가 동생을 병신으로 키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고 비읍시옷이라는 소리에 동생이 발끈하고 말았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생으로부터 스마트한 세상에 적응 못하는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까다로운 여자라는 맹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비방은 가볍게 쳐냈다. 나는 또래보다 스마트폰과 IT 기계에 대한 적응력과 활용도가 높았다. 얼마 전에 혼자서 스마트폰 루팅을 해낸 것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방어에 성공한 뒤, 공격 패를 꺼내들었다.

내 주변의 여자들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처음 말을 거는 소개팅남에 대한 반응과 개념 있는 남자들의 지지 발언을 수집하여 보여주었다. 동생의 비난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대인배인 나는 병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도 없는, 추임새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먼저 사과를 건넸고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다.   

하룻밤 만남도 스마트폰의 어플로 쉽게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채팅을 하는 것처럼 특정 장소와 특정 매개를 이용해 공을 들이던 것과는 달리, 일하는 도중에도 이동을 하는 동안에도 손쉽게 섹스할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의도가 명확한 메신저에서 찌질하게 굴지만 않는다면 섹스는 성사된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마당에 이용료가 전혀 들지 않는 메신저로 소개팅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할 것이다. 쉽다. 쉬운 게 문제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운명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다. 로맨스는 그 단어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료 메신저를 이용하는 것처럼 편리하고 쉽다. 그만큼 끊어지기도 쉽고 빠르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면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는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첫 만남을 하기 전에 서로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교환하고 만날 약속을 정할 때는 카카오톡보다 전화가 바람직한 게 아닐까? 당장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진실됨으로 상대에게 다가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룻밤 인연이 아니라 짝을 찾기 위해 소개팅을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내 번호를 알려줬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르는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안냐세요’라고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인사를 건네면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들까? 나름 잘 나온 사진으로 골라 넣어둔, 실물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카톡, 카톡, 카톡’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물어볼 게 많으면 전화 통화를 권하겠다.

적어도 첫 인사 정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중한 접근 방법이다.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올 때까지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못할 정도로 겁 많은 혹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남자라면, 만났을 때도 만족스러울 리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했을 때 쏟게 되는 정신적 에너지는 상당하다. 그렇기에 탐색 기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낫다.    

물론 카카오톡으로 보내오는 메시지만으로도 어떤 사람일지 예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메시지를 보내오는 타이밍이나, 반응속도, 이모티콘의 사용 정도, 화제를 꺼내는 방식이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한글맞춤법을 지키는 정도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목소리와 말투, 직접 대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과는 다를 수 있다. 전화할 용기는 없고 카카오톡이나 보내는 남자는 스스로 매력을 깎아 먹는 것이다.

특히 카카오톡은 친한 친구들과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에 관한 수다를 떠는 데 사용하고, 중요한 일은 문자나 전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구분 지어 사용하는 상대에게 카카오톡은 실례가 된다. 20대 초반의 어린이들도 아니고 나이도 들만큼 들어서 하는 소개팅의 첫 대화에 카카오톡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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