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신선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러 나왔을 때 그가 뒤따라 나왔다. “안녕.” 오늘 두 번째 인사. 무리지어 있을 때 나눈 형식적인 통성명과 첫 번째 인사와는 달랐다. 그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사심을 담아 건넨 인사였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안녕.”라고 답했다. 나쁘지 않은 목소리, 호기심에 가득 찬 동그란 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나에 대한 호감이 그의 바디랭귀지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특별히 할 말은 없어 애꿎은 신발 앞코로 바닥만 툭툭 치고 서 있었다. “춥지 않아?” 그러고 보니 목도리와 외투도 벗어둔 채로 나는 티셔츠에 얇은 카디건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모직 코트를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난 좀 걸을 건데.” 그는 조용히 따라 걸었다.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불이 꺼져있었고 모퉁이 편의점만 마치 다른 세상인 냥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둘이 걷다 후미진 골목을 발견 했을 때 그가 내 손을 잡고 골목 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움켜잡고 한참동안 웃었다. 그는 내 웃음이 멈출 때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기다려주었다. 

“웃을 때가 아닌데.” 그가 말했다. “이건 마치 중학교 때보던 순정만화 같은 전개잖아.” “그렇다면 다음 장면이 뭔지도 알겠네.” 물론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수줍어할 필요가 없었다. 피하거나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이것이 단순히 충동적인 장난이라고 해도 내게 이런 감각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동안 마음에만 집중하느라 몸의 즐거움은 거리를 두고 있었던 터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괜찮은 방식의 유혹이었다. 



나는 그의 티셔츠 앞자락을 움켜잡고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는 혀를 제대로 움직일 줄 알았다. 입술을 핥아주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고, 이와 잇몸을 자극하는 방법도 알았다. 키스의 강약중간약 조절도 훌륭했다. 입맞춤에 취해있던 정신을 제3자의 눈으로 보내 이 사태를 바라보게 했다. 

 

 


그 순간 그의 키스가 나의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종이 한 쪽에만 물감을 묻혀 접었다 펼친 테칼코마니같은 키스였다. 키스만으로 온몸이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약간의 자만심도 밀려왔다. 도발적인 키스에 어울리는 손동작은 그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가 터질 것처럼 단단해진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의 손이 카디건 사이를 파고들 때 그를 밀어냈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 번호를 남겨주었다. 바깥 공기는 너무 차가웠고 손끝은 부서질 듯 시렸다. 긴 키스를 나누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다음날 약간의 숙취를 느끼며 일어난 오후, 물의 기운을 빌리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오는 그 순간, 발신자에 낯선 열세 자리 번호가 떴다. “안녕?”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귀여운 목소리, 나는 플로랄 향 대신 머스크 향이 가득한 바디로션을 온몸에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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