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입술이 살포시 포개졌다. 그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입을 살짝 벌려 낮은 탄성을 내뱉자 그것이 신호인 냥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마치 빨아들일 정도로 강렬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과연 이것보다 더 부드럽고 좋을까?'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다.

그 전날 동아리 MT, 성적 경험이 많은 것이 곧 자신의 매력이라고 믿는 한 선배가 어린 후배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던졌더랬다. "남자보다 여자의 입술이 훨씬 부드러워." 굳이 키스를 해보지 않아도 립밤이니 립글로스니 하는 것들로 평소에 관리를 꾸준히 잘 하는 쪽이 여자이니 당연히 그럴 법하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막상 키스를 할 때 체감하는 부드러움은 다르지 않은가. 지금 키스하고 있는 그의 입술도 까슬까슬하게 잘 트곤 했지만 키스할 때만큼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변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여자랑 하는 키스'에 사로잡혔다. 물론 성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해결되지 못한 호기심은 나날이 커져갔다. 나의 새로운 로망에 대해 알게 된 P양은 "현정, 좋아하는 립글로스는 어떤 맛이야?"라며 예쁜 립글로스를 바르고 기꺼이 그 상대가 되어주겠노라 나섰다.

박애주의자인 A양 역시 "키스는 좋은 거니까, 남자든 여자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중요한 거잖아. 너라면 해도 좋아"라며 욕구해소에 도움을 주겠노라 했다. 그녀들에겐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키스라는 행위 자체가 성적 긴장감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친구랑은 해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생애 여자와 키스를 해볼 절호의 찬스를 날려버리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인터넷 동호회의 모임이 있어 나가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동갑내기 여자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얌전하고 차분한 인상을 가진 그 여자 역시 나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술이 좀 취한 상태에서 흑기사, 흑장미를 부르며 소원으로 상대에게 키스를 하는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들 취기를 빌려 마음에 두고 있던 상대 혹은 연막의 상대를 지목하기 바빴다.

그 와중에 벌칙을 받게 된 나는 그녀를 지목했다. 다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지목에 꽤나 놀란 듯 했다. 왠지 오늘의 분위기라면 그녀도 OK할 것 같았다. 그녀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오랜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보니 흥분도 되고 오감이 집중되었다. 우리는 10초간의 짧은 키스를 나누었다. 그 선배가 말한 '더 부드럽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이로써 호기심 해결.

그녀와 키스를 마친 뒤, 나의 행동이 이 모임에 나온 남자들의 동물적 본능에 자극을 준 것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드라마 '프렌즈'나 미국영화에서 서양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중 레즈비언 커플과 섹스하는 것이 언급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의 눈에 어린 욕망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어색한 첫 모임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상냥한 미소, 달콤한 애교 한 번 날리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 여자와 키스를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와 다른 여자들이 눈독 들이고 있던 매력남을 수고스럽지 않게 낚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자랑 한 키스의 섹시한 효과라고 해야 할까?







 






"이 짐승!" 90년대 드라마에선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치근거리는 남자에게 뺨을 올려붙이며 내뱉던 단어가, 지금에 와선 정 반대의 의미가 되었다. 초콜릿 복근을 기본 옵션으로 한 야성적인 섹시미를 가진 남자를 뜻하게 되었으니, 짐승이라는 단어만큼 그 지위가 격상한 단어가 또 있을까? 이제 남자 연예인들에게 '짐승'은 '꿀'이라는 수식어만큼이나 달콤하게 원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노출이 등장하지 않는 요리 드라마의 보도 자료에도 남자배우들이 식스팩을 가진 '짐승남'이라고 홍보한다.

이 시대는 여자들로 하여금 짐승남을 욕망하게 만들고, 남자들은 초콜릿 복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짜 짐승남을 갖는 것도,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드라마 '추노' 속에 큰 주모는 왜 최장군의 목욕씬을 보며 하악거리지만, 왜 정작 그를 제대로 쓰러트리진 못했을까? 그것은 큰 주모가 최장군을 짐승남으로 만드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 반대로 혜원은 비록 드라마 속에선 민폐 108종의 된장 내숭 언년이지만 밋밋하고 허약해보이던 양반집 도령을 짐승 중의 짐승으로 만들어낸 조련사이며, 그 짐승을 사로잡고 있다.

남자가 짐승이 되기 위해서는 복근 운동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초콜릿 복근은 자기 여자를 지켜내기 위한 과정 중에 도출된 산물일 뿐이다. 남자를 짐승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여자', 너무나 사랑하기에 반드시 지켜내야 할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기에 짐승으로서의 매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대길이 8년 동안 애타게 언년을 찾지 않았다면, 최장군이나 왕손이에 비해 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 백만 대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죽으면서도 '나의 왕비, 나의 아내, 나의 사랑'이라는 세 마디를 내뱉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감각적이면서도 잔인한 화면으로 가득했던 그 영화가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 2010년 새로 시작한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그나마 노출이 덜한' 장면 중에서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있다. 방송사 Starz에서 제작해서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인 역사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기원전 로마공화국 시절, 검투사로 전락한 트라키아인의 노예반란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TV판 '300'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상이 화려하고, 매회 두 번 이상 섹스 장면을 포함하고 있어 성인에게 있어서는 꽤나 즐거운 눈요기가 될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도 짐승남이 즐비하다. 헐벗은 남자들의 몸은 무척이나 훌륭하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면 여주인공들도 벗기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길들여지지 않을 야생의 짐승남인 주인공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수라의 섹스 장면은 옥시토신과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져 나올 정도로 에로틱하다. 저런 표정과 저런 동작으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도 스파르타쿠스는 노예로 팔려간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라는 로맨틱한 이유로 검투사가 되어 짐승남의 매력을 뿜어낸다.

타고나길 남자다운 근사한 남자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짐승이 되는 남자들을 우리는 진짜 짐승남이라고 부른다. 여자들이 욕망하는 짐승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관 속의 짐승남은 허상이며 환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짐승이 되는 남자를 바라지만 그 사랑 자체도 쉽게 변하는 세상 속에 살기 때문이다. 변치 않을 사랑을 받는 여자란 1%도 안 될 것이다.

현실에서 '남성호르몬 가득 차있음!' 그걸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근육질의 멋진 남자가 정령 한 여자에게 만족하리라 믿을 수 있을까? 남자를 진짜 짐승으로 만드는 여자가 내가 되길 바라겠지만 그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일간스포츠에서 칼럼보기








자신을 꾸미는 데 인색하지 않은 패셔너블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바지를 벗겨보니 어울리지 않게 사각 트렁크 팬티를 입고 있다면 그 남자는 아직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속옷에 대한 자기 주장을 펼치기 힘든,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대로 입는 남자.

당신이 고무 밴드 부분에서 'The Brave Man'이라고 적힌 팬티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새로운 브랜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면 100%, 카키나 군청의 무난한 색상, 그리고 착용감이 그리 나쁘지 않지만, 그것은 바로 군수용품 팬티. 그 남자는 제대하면서 군용 팬티를 용감하게도 제법 많이 챙겨가지고 나온 알뜰살뜰한(?) 남자이거나, 휴가 나오자마자 당신에게 달려든 군인 남자.

짝퉁 캘빈 클라인 팬티를 입고 있는 남자라면 허영심이 가득할 것이고, 캘빈클라인 진품 팬티를 입고 있다 하더라도 허영심 지수 몇 프로는 내재된 그런 부류. 그래도 속옷 브랜드까지 신경 쓰는 남자라면 섬세한 편에 속한다. 팬티에 무신경한 남자보다는 좋은 데이트에 이어 만족할만한 섹스를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자신감의 부재를 속옷의 화려함으로 커버하는 부류도 있으므로 - 브래지어 AA컵 사이즈의 여자가 보정패드를 두 개 즈음 넣고 가슴골을 잘 모아주는 브랜드를 선택하여 풍만한 가슴을 연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 팬티를 바로 벗겨 섹스로 돌진하기 보단, 여러 부분에서 주의를 기울여 세심한 관찰을 한 뒤 섹스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덜 실망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는 너무 흔해져버린 캘빈클라인 팬티 대신 돌체앤가바나, 아르마니 같은 브랜드의 무채색 계열에 무난하면서도 깔끔한 드로즈 스타일 팬티를 입었다. 우리는 만나면 서로를 재빨리 벗겨 내거나, 그 시간마저도 아까워 반 즈음 벗은 상태에서 서로를 탐했기 때문에 그가 팬티를 입고 있는 장면보다는 섹스가 끝난 뒤, 내 속옷을 주워 입으면서 바닥에 떨어져있는 상태로 보는 게 더 친숙했다.

그날은 그의 벨트를 내가 쉽게 풀 수가 없어서 그는 버클을 풀기 위해 침대에서 잠시 벗어나야했다. 바지를 벗을 때 드러난 팬티. 그것은 무척이나 귀엽고 발랄했다. 하얀 바탕에 사랑스러운 연두와 노랑 그리고 분홍 땡땡이들이 가득했다.

그걸 보는 순간, 한껏 흥분했던 몸은 차가워지면서 차분해졌다. 둘이 함께 일 때 오로지 내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내게 정절을 요구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바람을 그에게 전한 적은 없었다. 그랬다한들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한 그가 한 여자와의 관계만으로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족감을 위해선 충분히 감내할만한 쓸쓸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팬티는 그가 직접 골랐을 리도 만무한, 내가 아닌 다른 여성 취향이 여실하게 드러난 혹은 커플 속옷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는 다른 여자의 존재를 완벽하게 숨겨왔지만 나는 그의 팬티만으로도 직감적으로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 필요한 예의에서 제대로 벗어나있는 그 팬티로 인해 섹스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졌다.

나는 침대로 다시 들어오려는 그의 가슴을 발로 애무하듯 살짝 밀어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키스를 할 듯 말 듯한 포즈로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몸이 문 앞에 도달했을 즈음 나는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모텔 복도로 쫓겨났다. 나를 만날 때조차 벗을 수 없었던 그 소중하고 의미 깊은 팬티만 입은 채.






 






M양이 극찬했던 콘돔브랜드여서 그런지
한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저는,
그 뒤로 오카모토社에서 나온 콘돔을 좋아하긴 했습니다.

이하, 상품정보 및 이미지 출처
http://www.mysdiary.com/
이미지 찾던 중에 센스있게 촬영한 홈페이지라
출처도 남김 겸 링크주소 남깁니다.






젤돔 2000

오카모토 제품의 S+he보다는 윤활유의 함유량이 떨어지지만
보통 제품보다 약 2배정도 많은 윤활유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을 원하신다면 이 제품을 쓰시면 좋겠네요.
S+he제품의 윤활유가 좀 부담스러운데 보통의 제품보다는
윤활유가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하시는 분들은
이 제품을 선택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활유 정도는 보통 < 젤돔 < S+he 제품 정도 되겠습니다.
초박형은 기본이오니, 사용하는데 불편함은 없으실 거에요.




스킨레스 3000

콘돔 끝에 달린 튀어나온 고무 부분을 정액받이라고 하는데요.
 이 제품은 그 정액받이를 없앤 제품입니다.
정액받이를 왜 없앴을까요? ^^
이 제품은 정액받이가 없어서 더 밀착이 잘 되고
그만큼 체온과 느낌을 잘 전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액이 흘러내릴 걱정은 안 하셔도 됨을 보장합니다.
앞으로는 정액받이가 없는 콘돔 시대를 열어갈 선두적인 제품입니다.
스킨레스 2000과 두께는 같으나 이런 특이사항으로
정말 낀 듯, 안 낀듯, 최고의 느낌을 전해주는 제품입니다.









콘돔 없는 섹스는
'독'이다.
비주얼 확실하죠?





콘돔 필히 지참하시고
'응응응'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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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말했다. "나는 '결혼도 하기 전에 해 버리면 엄마 얼굴은 어떻게 보지?'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서 결정적 순간이 오면 당혹스럽고 피하고만 싶었지. 하지만 자꾸 하자고, 하자고 보채는 걸 보니 내가 그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더라. 그래도 도저히 못하겠더라.

1년 넘게 사귀었는데, 계속 안 하겠다고 버티면 헤어질 것 같은 거야. 그제야 큰 맘 먹고 하자고 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완전 긴장했지. 걔도 서툴고 나도 처음이니 잘 될 리 없었어. 서로 낑낑거리다 너무 아파서 하다가 그만 두고 화장실에 가서 앉았지. 그런데 피가 나더라. '제길, 해버렸네. 난 망했다. 얘한테 시집 가야 되는 거구나.', '엄마가 알면 날 죽이겠지?' 그런 생각 들었어."

박이 공감한다. "나도 최대한 섹스를 유예시키고 있었어. 쉽게 해버리고 싶지 않았어. 진짜 내 상대를 만나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할 수 없더라. 그래서 20대 초반에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욕망만 가득 찬 어린 애들이랑 연애할 때는 몸에 손도 못 대게 했지. 버티다 보니 24살. 그땐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몸을 열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었어. 지금도 쉽게 해버리지 않은 건 잘 했다 싶어."

우리들 중 가장 빨리 해치웠던 최는 말했다. "나는 말야. 그게 정말 나쁜 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인지 난 오히려 빨리 해 버리고 싶었어. 늘 어른들의 기대에 맞춰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짓눌림이 싫었던 탓인지 그걸 하는 순간에는 일탈하는 것 같아서 통쾌했어.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마치 창녀가 된 것 같은 기분 말야. 나도 타락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짜릿했어."

유심히 듣고만 있던 내가 물었다. "그런데 너네 말야. 할 때 다리에 힘은 푸냐?” 그 질문에 우리 모두 빵하고 터져버렸다. 우습게도 우리는 첫 섹스 이후로 여태껏 하체를 릴렉스시키고 편안한 마음으로 섹스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하면 마치 죄라도 짓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금기 따위 그녀 앞에 아무 것도 아닐 것처럼 보였던, 어둠이 밀려오면 쾌락의 탄성으로 가득 찬 밤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단 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조합, 묘하게 통하고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는 아니었다. 혈액형도 네 명 모두 달랐다. 별자리도 우리를 하나로 묶지 못했다. 그러나 이·박·최 그리고 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장녀였다.



장남들은 공감할 것이다. 남자들에게 장남 콤플렉스가 있듯이, 장녀들도 알게 모르게 부모님의 기대를 짊어지고 자라게 된다. 자유분방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인 환경에서 훌륭한 교육까지 받은 우리들이었지만, 믿을 만한 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 온 시간 동안 자신의 즐거움을 먼저 추구하려는 마음은 억압되어 있었다.

지금 당신이 만나고 있는 그녀가 장녀라면, 그녀에게 믿음직스럽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녀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나눠들 수 있는 남자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게 좋다. 그녀가 당신을 믿는다면 진도는 자연스럽게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섹스를 할 때 쉽사리 긴장을 풀지 못하는 장녀의 그녀라면 당신이 나서서 피임은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
섹스로 인해 그녀가 책임질만한 일이 전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안심한 그녀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신음소리도 삼키고 몸의 긴장도 잘 못 푸는 그녀에게 모든 즐거움을 몸으로 표현해도 좋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를 새로운 쾌락에 입문시켜 줄 수 있는 그대라면,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여자는 언제 관계를 맺고 싶은가?'이다. 단순하게 '언제'라고 말해줄 수 있으면 편하겠지만, 세상 모든 여자를 대변할 수 있는 답이란 없다. 그러나 섹스라이프를 시작한 이상, 여자에게도 하고 싶은 때는 분명히 존재한다. 육체적 쾌감 때문만이 아니라, 섹스가 주는 위로나 따뜻함은 정서적으로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언제 자발적으로 관계를 원했을까? '한 번만 하자'라고 칭얼거리지 않아도 그에게 가슴을 밀착시키고 그의 다리 사이로 내 허벅지를 밀어 넣으며 기꺼이 그를 흥분시키겠다는 적극적인 포즈를 취할 때는 언제였을까?

나의 경우에는 병문안을 온 그의 정성스러운 간호를 받을 때였다. 이 한 줄의 문장만 읽고 '유레카'를 외치며 감기에 걸린 애인을 찾아가 앓아 누워있는 그녀의 옷가지를 성급하게 벗기며 다짜고짜 덮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랬다간 그녀와 헤어질 때까지, 그녀가 울컥하는 순간마다 '짐승새끼'라는 욕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부적인 사항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그녀가 아프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와 병원에 함께 가주고, 죽을 끊여주고, 약을 먹여주고, 재워주며 자는 동안 뜨거워진 수건을 갈아주는 이런 행위들을 그녀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로맨틱하기엔 현대인은 바쁘다. 홀로 아픈 그녀도 그 정도는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동을 줄 여유가 없는 당신이라 하더라도 서러웁게 혼자 앓던 그녀의 감기가 차도를 보일 즈음엔 방문을 하도록 하자.

감기약에 취해 살짝 나른해 하고 있는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는 마음을 반드시 표시해라. 이마를 다정스럽게 짚어보며 '열은 많이 내려서 다행이네'라는 말도 해주고, '혼자 아프게 내버려둬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반드시 해라. 그럴 때 그녀의 눈꺼풀에 입을 맞춰주는 것도 좋다.

관계의 전 단계로써의 키스가 아니라, '차라리 내가 감기가 옳아 네가 빨리 완쾌되는 게 낫겠다'는 의미의 제스처로써 그녀의 입에 짧은 뽀뽀를 해주는 것도 좋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토닥토닥 해주는 것은 기본 옵션이다. 뭐가 이리 복잡하고 닭살스러운 거냐고 투덜거리지 않길 바란다. 그녀를 감복시킬수록 그녀의 빗장 해제는 수월하게 이뤄진다.

그랬다. 혼자 아픈 것도 익숙해질 때였지만, 마음을 다해 나를 걱정해주는 그의 모습은 믿음직스러웠고 섹시했다. 여자들은 '보살핌을 받고 있다' 혹은 '그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남자에게서 섹시함을 느낀다. 그런 느낌을 받을 순간은 각자가 각양각색이겠지만, 나에게 그럴 때란 바로 그의 병문안이었다.




'아프다고 한 거 거짓말 아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안았다. '나를 돌봐주어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감기약 때문에 몸의 감각이 내 것 같지 않아서인지 평소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자극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와 하나 된 즐거움 뒤엔 감기도 빨리 낫는 느낌이다. '감기엔 약보다 양기?'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효과가 금방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아픈 나를 너무 배려해서, 그를 유혹하는데도 안 해주고 그냥 나를 재우려고 하면 서운해진다. 섭섭해지고 만다.

그러나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듯이, 이토록 섹시한 감기약에도 약간의 부작용이 따르긴 한다. 그가 앓아눕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감기약과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극대화되는, 의사가 처방해주지 않아도 되는 근사한 약을 알고 있었다. 격렬하지 않아도 좋은, 조금 더 높은 체온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일상적이지만 섹시한 약을 복용하면 되니 감기 따위 문제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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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스가 끝나고 나면 귀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고흐와 같은 자화상을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의 과한 키스로 축축해져버린 나의 왼쪽 귀. 침 속의 아밀라아제가 내 귀를 소화시켜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귀는 건조한 상태로 유지되길 원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귀를 핥아대는 것은 원치 않는 전희였다. 그러나 정성을 다해 열심인 그에게 ‘그만해’라는 말로 분위기를 깰 순 없었다.

그 순간 알랭 드 보통이 쓴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 떠올랐다. ‘자신이 좋았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실행하는 것이 사랑의 묘한 습성.’ 내 반응도 살피지 않고 이토록 집중해서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들뜬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침수 위기의 내 귀도 구조하기 위해 자세를 바꿔 그를 눕혔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눈·코에 차례차례 입을 맞추었다. 그러다 귀로 방향을 전환했다. 귓불을 혀로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그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바로 ‘사랑의 묘한 습성’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몸의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흐뭇한 그의 넓은 어깨와 등판이 공략 대상이었다. 그의 견갑골에 키스를 하면서 손가락으로는 척추를 쓸어내렸다. 특히 4번과 5번 척추를 지날 때는 힘을 조금 더 주어 자극했다. 그는 몸을 살짝 비틀긴 했지만 그가 만족해할 만한 애무는 아닌 듯 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임을 그도 알아차리길 바랐다. 나는 그의 옆에 등이 보이도록 돌아누웠다. 그는 나의 목과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견갑골과 척추에 자극이 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뒤에서 나를 꼭 안으며 가슴에만 몰입할 뿐이었다. 그 순간 그를 발로 차주고 싶었다.


유독 특정한 부위에 성감이 확실히 몰려있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의 몸은 분위기와 사소한 배려 하나에 예상치 못한 부분까지 성감이 될 정도로 섬세하다. 그러한 몸이 하는 요구를 관계 도중에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손가락에서부터 천천히 내 팔 전체를 정성스럽게 키스한 뒤 나를 안아줘.’ 이런 식의 요구. 이런 설명적이고 긴 문구를 말하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이미 뇌에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의 남자에게 언어화된 표현은 수용되기 힘든 상황일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섹스 도중에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거나 주도적으로 리드를 하는 경우, 어떤 남자들은 100%의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라 49%의 의구심을 품는다. 섹스를 할 때 적극적이지 않다고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정작 밤이 되면 뜨겁게 불타오르는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여자의 과거를 의심하거나 자신의 체력적 한계가 부담스러워서 꺼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 남자도 존재한다는 것을 여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여자들은 섹스를 하면서 좋고 싫고의 자기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길 때가 있다.

그러한 입장 차이로 인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면, 혹은 ‘여자가 어떻게 해주면 좋아하더라’라는 그 섬세한 신호를 읽어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당신도 여자의 ‘묘한 습성’이 무엇인지 파악해보는 건 어떨까? 오늘 밤에는 당신이 늘 하던 순서나 방식의 애무가 아니라, 상대방이 해주는 걸 그대로 따라 해보길 권유한다. 상대방이 그걸 흡족해하고 당신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당신 역시 충만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촌스럽게 혹은 분위기를 깨며 물어보는 것 대신, 말이 필요 없는 이 몸의 대화를 통해 흡족한 섹스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영화 '2012'에서처럼 지구가 온갖 자연재해로 망가진다면 살아남기란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두당 10억 유로, 한화로 대략 1조 7002억 원이 넘는 돈을 내면 거대한 방주의 탑승권을 살 수 있다는 설정이지만 웬만한 부자들이 아니고서야 다 죽게 생겼다.
 
고대 마야인들의 예언대로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간은 고작해야 2년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내게는 스피노자처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연함 따윈 없다.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도 없다. 내 의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니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정해서 지구 멸망까지 앞으로 한 시간이 남아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지구 종말의 순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거나 전화통화를 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기도를 하며 마지막 순간을 보내겠다고 말한 사람들도 3%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 수치의 세 배, 9%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생애 마지막 섹스'를 하겠다는 것. 10명 중 1명은 죽기 직전 섹스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선택했다.


 
나는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과 마지막 통화를 나눈 뒤엔 나만의 프로젝트를 실행할 것이다. 우선 마릴린 먼로의 분장을 할 것이다. 종말이 기운이 감돈다 싶었을 때 적금을 깨서 미리 사둔 고전적인 스타일의 금발 가발를 장착하고 페라가모에서 구입한 11cm 킬힐을 신을 것이다. 마릴린 먼로하면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지하철 환풍기 위에서 치맛자락을 나부끼던, 영화 '7년만의 외출' 속 그 장면에서 입었던 흰색 홀터넥 드레스도 입을 것이다. 그것이 내 생애 마지막 복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죽을 테니까 범법 행위를 하나 할까한다. 내 평생의 호기심인 엑스터시 복용 혹은 마리화나 흡입을 해볼 것이다. 환각 상태에서의 섹스. 이성을 완전히 놓은 상태에서의 섹스를 해보고 싶다. 지구 종말이 아니라면 나의 뇌건강을 위해서 선택하지 않을 옵션 중 하나이지만, 죽기 직전이니까 미련 없이 과감하게 약을 삼키고, 연기를 빨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섹스심벌의 코스프레를 한 채 여성상위의 체위로 내 생애 가장 몽환적이고 야한 섹스를 할 것이다. 화산이 터져 당장 죽게 생겼는데도 섹스를 나누다 그대로 화산재를 덮어쓰고 그 형태가 보존된 폼페이의 '지금도 섹스 중인' 유적들처럼 그렇게 황홀한 황천길을 택할 것이다.

당신은 지구 최후의 순간, 어떤 섹스를 하고 싶은가?







아직 첫 키스도 해보지 않았던 스무 살의 봄, 친구의 기숙사 방에서 뒹굴거리다 그 녀석이 소장하고 있던 'Kiss'라는 만화책을 읽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은 헤비스모커에, 피아노를 잘 친다. 여자 주인공은 키스만으로 상대가 무슨 담배를 피는지 잘 알아맞히고, 키스를 할 때 그에게서 나던 희미한 담배냄새를 그리워한다. 이 책은 키스에 대한 망상을 키워주는 데에 한 몫 톡톡히 했다. 흡연자와의 키스. 그 만화책 덕분에 내게는 기대되는 일이 되었다.



마츠모토 토모의 KISS 중에서
 



세 번째 남자는 드디어 흡연자. 그는 던힐 맨솔을 피웠다. 키스를 했을 때 베이스노트만 남은 휴고보스의 머스크향과 만화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희미한 담배냄새가 어우러져 좀 더 흥분되었다. 좋은 키스였다.

그 후로도 입술에 남은 느낌과 그 때 맡았던 향이 그리웠다. 만화에서처럼 키스만으로 담배를 알아맞힐 수 있게 된 건, 보헴이라는 담배가 나왔을 때였다. 음주 시 몽롱한 기분을 좀 더 유지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흡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선택했던 담배였기에 보헴을 피우면 그 특유의 향 때문에 알아맞힐 수 있었다. 시가향이 옅게 배인 키스는 탐닉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만화처럼 해냈다는 기쁨에 들뜬 애송이일 뿐이었다. 제대로 현실적인 헤비스모커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니코틴에 절은 냄새가 나서 조금만 가까이 가도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헛구역질이 날 정도인 남자를 만나보지 않았던 것이다.

거리를 두고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다.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올라탄 그의 차. 차 안에서 음악을 틀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3분 즈음 지나자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 탁한 공기. 내 코는 유독한 냄새를 감지했다. 그가 말할 때 특히 심해졌다. 냄새의 근원은 그였다. 그러나 왜 냄새가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잠깐 차를 세우더니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겠다고 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불쾌감은 배가되었다. 바로 담배가 원인이었다.

그건 지금껏 내가 맡았던 담배 냄새와는 차원이 틀렸다. 재떨이를 한 달간 비우지 않으면 날 법한 그런 냄새? 하루에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운다는 남자들과 키스를 했을 때도 이렇게 지독한 냄새를 맡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유별났다. 체질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은 알고 있을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것일까?

나는 도저히 그와의 키스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니코틴 냄새에 기절하든지 토해버릴 것 같았다. 그가 그 전에 연애를 하고, 키스를 하고,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나쁜 냄새였다. 그의 애인이셨던 분은 이 모든 고역을 사랑으로 참아내셨단 말인가? 열반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닐까?

실로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나의 후각은 그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몸의 체취와 결합된 니코틴 냄새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 정도라면 양치질과 구강청결제, 향수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흡연자라면 절대 할 수 없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흡연자와의 키스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나를 반성했다.











20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동생 방을 청소해주다가 책상 밑에 놓여있던 팩색에서 '원초적 본능'을 발견했다.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였기에 보지 않았던 영화. 무삭제 감독판이라니 호기심도 생기고해서 비디오의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전라의 남녀가 영화 초반부터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곧이어 여자는 남자의 몸 위로 올라타더니 그의 손목을 침대에 묶어버린다. 그렇게 주도권을 행사하며 허리를 유연하게 사용하는 샤론 스톤을 보고 있노라니 살짝 호흡이 가빠지고 침이 꿀꺽 넘어갔다. 여자인 내가 봐도 흥분되는 섹스씬이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에로틱스릴러 장르에서 이를 능가할만한 영화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영화 <원초적 본능> 중에서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내가 상대방을 묶는 건 몰라도, 내가 묶인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한 후배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물어왔다. "저는 침대에 묶여서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남자친구한테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제가 변태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요?" 나는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왜 묶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단순하고 간단하게 답하자면 늘 비슷한 패턴의 섹스가 재미없어진 것이다. 늘 하던 대로가 아닌 새로운 방식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묶이는 것일까? 미디어에서 다루는 뻔하지 않는 방식 중에서 그나마 그것이 손쉬운 축에 속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위기구를 이용한 섹스, 애널섹스, SM플레이, 역할극에 비하면 실크스카프로 손목을 묶이는 게 덜 번거롭고 덜 부끄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섹스에 밴디지를 이용하는 것이 '나 변태?'라고 고민할 문제인가? 둘이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했다면, 묶어놓은 상태에서 얼음송곳으로 찌르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함이 보장된다면 무얼 하든 상관없다. 남들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지 않는가. 어떤 식으로 즐길지 선택하는 것은 둘이 결정할 문제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나는 묶이는 걸 원해'라고 말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관계라면 후배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둘 다 모험심이 강하고 상대방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라면, 섹스를 할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섹스만을 위한 관계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이에다가, 한쪽이 섹스에 있어서 점잖은 타입라면 내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묶인 채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변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말도 못하고 답보상태를 유지한다면 욕구불만의 게이지는 점차 상승하고 말 것이다. 평소와 다르게 해보고 싶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설령 '에잇 변태'라는 소리를 듣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하면 된다.

의중을 묻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싫다고 했는데도 찌질거리며 하자고 매달리는 게 나쁜 것이다. 서로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손을 묶는 정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불편이다. 변태적인 요구가 결코 아니다. 베개 밑에 숨겨놓았던 실크스카프로 그의 몸을 쓸어주듯 애무하며 교태를 부리며 말해보라. 그런 분위기에서 정색하며 싫다고 말한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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