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씨와 처음 맞이하게 된 크리스마스, 나는 그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카르멘 일렉트라의 '에어로빅 스트립티즈'라는 동영상을 구해 스트립쇼의 기본 동작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유연함과 섹시한 웨이브를 겸비한 뒤, 이번 이벤트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의상을 갖추기 위해 속옷 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 티팬티와 가터벨트, 그리고 망사 스타킹 올블랙 세트로 완벽하게 준비한 뒤 시착을 해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슈퍼섹시였다. 자신감이 한껏 상승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결 들뜨고 북적거리는 곳에서 솔로부대들이 질투할 만큼 다정한 시간을 보낸 뒤,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애인씨를 침대에 앉혀놓고, 그루브한 음악을 틀었다. 나는 그 음악에 맞춰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하나씩 풀었다. 그 역시 조금씩 벌어지는 블라우스에서 눈에 떼지 못했다. 이후 전개는 당연히 격렬하고 흐뭇한 밤을 예상할 것이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체크무늬 플레어스커트를 벗어던지는 순간, 애인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읽게 되자, 나는 속옷 차림으로 굳어버린 채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한기를 느껴버렸다. 준비한 동작은 아직 많이 남아있고, 음악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이불 속으로 도망쳐서는 벌레처럼 몸을 돌돌 말아버렸다.

한 속옷브랜드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남성의 73%가 가장 선호하는 속옷으로 티팬티와 가터벨트, 그리고 망사스타킹을 골랐다. 실생활에서 그런 속옷을 갖춰 입는 건 불편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적 판타지로 남자들의 마음 한구석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로망을 실현시켜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나의 착한 애인씨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러나 애인씨는 73%의 남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템들은 과도하게 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속옷 차림이 된 내 모습을 보고 대퇴부에 자극을 느끼기 보단 지끈하고 두통을 느낀 것이다.

 

이불 속에서 누에고치 상태가 되어 있는 나에게 애인씨는 그런 야한 속옷을 입지 않아도 충분히 섹시하다는 말로 나를 위로하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공들여 준비한 것인데, 표정 하나로 망쳐놓은 그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 민망해져 버린 마음을 풀기란 쉽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끝낼 순 없었다. 나는 애인씨의 계속되는 사과에 짐짓 못 이긴 척 침대에서 일어났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결혼 첫날 밤 입으려고 사놓았던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브래지어와 팬티 세트를 옷장에서 꺼냈다. 순백색의 레이스로 장식된 청순하면서도 로맨틱한 속옷이었다.

 

그 속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가터벨트가 열어주지 못한 환상적인 밤의 문이 드디어 열렸다.

 

73%나 되는 남성의 전형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였기에 원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여성의 성적 로망이자, 첫날 밤 여성들이 선호하는 속옷에 더 잘 반응해준 그였기에 레이스가 찢어질 정도로 격정적인, 결코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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