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섹스가 끝나고 나면 귀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고흐와 같은 자화상을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의 과한 키스로 축축해져버린 나의 왼쪽 귀. 침 속의 아밀라아제가 내 귀를 소화시켜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귀는 건조한 상태로 유지되길 원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귀를 핥아대는 것은 원치 않는 전희였다. 그러나 정성을 다해 열심인 그에게 ‘그만해’라는 말로 분위기를 깰 순 없었다.

그 순간 알랭 드 보통이 쓴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 떠올랐다. ‘자신이 좋았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실행하는 것이 사랑의 묘한 습성.’ 내 반응도 살피지 않고 이토록 집중해서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들뜬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침수 위기의 내 귀도 구조하기 위해 자세를 바꿔 그를 눕혔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눈·코에 차례차례 입을 맞추었다. 그러다 귀로 방향을 전환했다. 귓불을 혀로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그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바로 ‘사랑의 묘한 습성’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몸의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흐뭇한 그의 넓은 어깨와 등판이 공략 대상이었다. 그의 견갑골에 키스를 하면서 손가락으로는 척추를 쓸어내렸다. 특히 4번과 5번 척추를 지날 때는 힘을 조금 더 주어 자극했다. 그는 몸을 살짝 비틀긴 했지만 그가 만족해할 만한 애무는 아닌 듯 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임을 그도 알아차리길 바랐다. 나는 그의 옆에 등이 보이도록 돌아누웠다. 그는 나의 목과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견갑골과 척추에 자극이 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뒤에서 나를 꼭 안으며 가슴에만 몰입할 뿐이었다. 그 순간 그를 발로 차주고 싶었다.


유독 특정한 부위에 성감이 확실히 몰려있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의 몸은 분위기와 사소한 배려 하나에 예상치 못한 부분까지 성감이 될 정도로 섬세하다. 그러한 몸이 하는 요구를 관계 도중에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손가락에서부터 천천히 내 팔 전체를 정성스럽게 키스한 뒤 나를 안아줘.’ 이런 식의 요구. 이런 설명적이고 긴 문구를 말하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이미 뇌에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의 남자에게 언어화된 표현은 수용되기 힘든 상황일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섹스 도중에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거나 주도적으로 리드를 하는 경우, 어떤 남자들은 100%의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라 49%의 의구심을 품는다. 섹스를 할 때 적극적이지 않다고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정작 밤이 되면 뜨겁게 불타오르는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여자의 과거를 의심하거나 자신의 체력적 한계가 부담스러워서 꺼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 남자도 존재한다는 것을 여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여자들은 섹스를 하면서 좋고 싫고의 자기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길 때가 있다.

그러한 입장 차이로 인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면, 혹은 ‘여자가 어떻게 해주면 좋아하더라’라는 그 섬세한 신호를 읽어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당신도 여자의 ‘묘한 습성’이 무엇인지 파악해보는 건 어떨까? 오늘 밤에는 당신이 늘 하던 순서나 방식의 애무가 아니라, 상대방이 해주는 걸 그대로 따라 해보길 권유한다. 상대방이 그걸 흡족해하고 당신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당신 역시 충만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촌스럽게 혹은 분위기를 깨며 물어보는 것 대신, 말이 필요 없는 이 몸의 대화를 통해 흡족한 섹스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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