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여자는 언제 관계를 맺고 싶은가?'이다. 단순하게 '언제'라고 말해줄 수 있으면 편하겠지만, 세상 모든 여자를 대변할 수 있는 답이란 없다. 그러나 섹스라이프를 시작한 이상, 여자에게도 하고 싶은 때는 분명히 존재한다. 육체적 쾌감 때문만이 아니라, 섹스가 주는 위로나 따뜻함은 정서적으로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언제 자발적으로 관계를 원했을까? '한 번만 하자'라고 칭얼거리지 않아도 그에게 가슴을 밀착시키고 그의 다리 사이로 내 허벅지를 밀어 넣으며 기꺼이 그를 흥분시키겠다는 적극적인 포즈를 취할 때는 언제였을까?

나의 경우에는 병문안을 온 그의 정성스러운 간호를 받을 때였다. 이 한 줄의 문장만 읽고 '유레카'를 외치며 감기에 걸린 애인을 찾아가 앓아 누워있는 그녀의 옷가지를 성급하게 벗기며 다짜고짜 덮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랬다간 그녀와 헤어질 때까지, 그녀가 울컥하는 순간마다 '짐승새끼'라는 욕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부적인 사항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그녀가 아프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와 병원에 함께 가주고, 죽을 끊여주고, 약을 먹여주고, 재워주며 자는 동안 뜨거워진 수건을 갈아주는 이런 행위들을 그녀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로맨틱하기엔 현대인은 바쁘다. 홀로 아픈 그녀도 그 정도는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동을 줄 여유가 없는 당신이라 하더라도 서러웁게 혼자 앓던 그녀의 감기가 차도를 보일 즈음엔 방문을 하도록 하자.

감기약에 취해 살짝 나른해 하고 있는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는 마음을 반드시 표시해라. 이마를 다정스럽게 짚어보며 '열은 많이 내려서 다행이네'라는 말도 해주고, '혼자 아프게 내버려둬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반드시 해라. 그럴 때 그녀의 눈꺼풀에 입을 맞춰주는 것도 좋다.

관계의 전 단계로써의 키스가 아니라, '차라리 내가 감기가 옳아 네가 빨리 완쾌되는 게 낫겠다'는 의미의 제스처로써 그녀의 입에 짧은 뽀뽀를 해주는 것도 좋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토닥토닥 해주는 것은 기본 옵션이다. 뭐가 이리 복잡하고 닭살스러운 거냐고 투덜거리지 않길 바란다. 그녀를 감복시킬수록 그녀의 빗장 해제는 수월하게 이뤄진다.

그랬다. 혼자 아픈 것도 익숙해질 때였지만, 마음을 다해 나를 걱정해주는 그의 모습은 믿음직스러웠고 섹시했다. 여자들은 '보살핌을 받고 있다' 혹은 '그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남자에게서 섹시함을 느낀다. 그런 느낌을 받을 순간은 각자가 각양각색이겠지만, 나에게 그럴 때란 바로 그의 병문안이었다.




'아프다고 한 거 거짓말 아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안았다. '나를 돌봐주어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감기약 때문에 몸의 감각이 내 것 같지 않아서인지 평소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자극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와 하나 된 즐거움 뒤엔 감기도 빨리 낫는 느낌이다. '감기엔 약보다 양기?'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효과가 금방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아픈 나를 너무 배려해서, 그를 유혹하는데도 안 해주고 그냥 나를 재우려고 하면 서운해진다. 섭섭해지고 만다.

그러나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듯이, 이토록 섹시한 감기약에도 약간의 부작용이 따르긴 한다. 그가 앓아눕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감기약과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극대화되는, 의사가 처방해주지 않아도 되는 근사한 약을 알고 있었다. 격렬하지 않아도 좋은, 조금 더 높은 체온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일상적이지만 섹시한 약을 복용하면 되니 감기 따위 문제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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