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입술이 살포시 포개졌다. 그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입을 살짝 벌려 낮은 탄성을 내뱉자 그것이 신호인 냥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마치 빨아들일 정도로 강렬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과연 이것보다 더 부드럽고 좋을까?'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다.

그 전날 동아리 MT, 성적 경험이 많은 것이 곧 자신의 매력이라고 믿는 한 선배가 어린 후배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던졌더랬다. "남자보다 여자의 입술이 훨씬 부드러워." 굳이 키스를 해보지 않아도 립밤이니 립글로스니 하는 것들로 평소에 관리를 꾸준히 잘 하는 쪽이 여자이니 당연히 그럴 법하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막상 키스를 할 때 체감하는 부드러움은 다르지 않은가. 지금 키스하고 있는 그의 입술도 까슬까슬하게 잘 트곤 했지만 키스할 때만큼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변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여자랑 하는 키스'에 사로잡혔다. 물론 성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해결되지 못한 호기심은 나날이 커져갔다. 나의 새로운 로망에 대해 알게 된 P양은 "현정, 좋아하는 립글로스는 어떤 맛이야?"라며 예쁜 립글로스를 바르고 기꺼이 그 상대가 되어주겠노라 나섰다.

박애주의자인 A양 역시 "키스는 좋은 거니까, 남자든 여자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중요한 거잖아. 너라면 해도 좋아"라며 욕구해소에 도움을 주겠노라 했다. 그녀들에겐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키스라는 행위 자체가 성적 긴장감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친구랑은 해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생애 여자와 키스를 해볼 절호의 찬스를 날려버리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인터넷 동호회의 모임이 있어 나가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동갑내기 여자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얌전하고 차분한 인상을 가진 그 여자 역시 나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술이 좀 취한 상태에서 흑기사, 흑장미를 부르며 소원으로 상대에게 키스를 하는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들 취기를 빌려 마음에 두고 있던 상대 혹은 연막의 상대를 지목하기 바빴다.

그 와중에 벌칙을 받게 된 나는 그녀를 지목했다. 다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지목에 꽤나 놀란 듯 했다. 왠지 오늘의 분위기라면 그녀도 OK할 것 같았다. 그녀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오랜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보니 흥분도 되고 오감이 집중되었다. 우리는 10초간의 짧은 키스를 나누었다. 그 선배가 말한 '더 부드럽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이로써 호기심 해결.

그녀와 키스를 마친 뒤, 나의 행동이 이 모임에 나온 남자들의 동물적 본능에 자극을 준 것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드라마 '프렌즈'나 미국영화에서 서양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중 레즈비언 커플과 섹스하는 것이 언급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의 눈에 어린 욕망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어색한 첫 모임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상냥한 미소, 달콤한 애교 한 번 날리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 여자와 키스를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와 다른 여자들이 눈독 들이고 있던 매력남을 수고스럽지 않게 낚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자랑 한 키스의 섹시한 효과라고 해야 할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