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하나같이 가짜 오르가슴에 속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키스할 땐 신음소리를 꾸미지 못해.” “한겨울, 난방도 제대로 안된 방에서 섹스를 하는데도 땀을 흘린다면 만족했다는 증거야.” “발가락이 벌어지면 도달한 거야.” 거짓 오르가슴을 구분하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듣고 있으면 순진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복잡한 만족의 구조를 단순한 지표로 읽어내고 자신이 잘했다고 믿는다면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자신을 과신하기 시작하면 여자에게 섹스는 한없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애정을 품은 상대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느끼길 원하는 여자들은 섹스를 할 때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의 교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좋은 섹스란 좋은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친밀감이 밀도있게 차오를 때, 상대방에 오직 내게만 몰두한다는 게 느껴질 때. 그때의 쾌감은 클리토리스나 G스팟 같은 어떤 지점을 공략했을 때보다 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불행은 애정의 지속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데 있다. 사랑은 일상이 되고 섹스도 무덤덤한 습관이 된다. 상당수의 남자들은 기성품처럼 정해진 몇 가지 패턴만 이용해 섹스를 한다. 삽입과 사정 사이 몇 번 체위를 바꾼다 하더라도, 사정에 도달하는 체위는 어느 순간부터 비슷해진다. 한 사람과 몇 번의 섹스를 해보면 그가 쓰는 패턴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예술가처럼 창조성을 발휘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한 여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녀만을 위한 맞춤형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상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탐험은 하지 않고 늘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섹스를 한다면 오르가슴은 머나먼 은하계의 이야기가 된다.

몸의 내부에서 뭔가가 한창 올라오고 있는데 클리토리스에 자극을 주던 손을 멈춘다거나, 적당한 속도의 자극을 원하는데 갑자기 빨라지고 강해진다거나, 원치 않는데 체위를 바꾼다거나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오르가슴의 방해물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말로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기 민망하다보니 불만을 품은 채 남자에게 맞춰주게 된다. 섹스는 자연히 즐겁지 않게 된다. 오히려 피곤해진다.

그가 빨리 절정에 도달해 그 지겨운 피스톤 운동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를 쓰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만하면 됐어. 어서 마무리 짓자”라는 의미로 오르가슴을 가장(假裝)한다. 그에게 청각적 자극을 더 해주고 사정을 유도한다. 끝. 불만족스럽지만 더 이상 힘들거나 아프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한 끝.

삽입 후 재미가 반감해버리는 섹스, 의무적인 반응들. 여자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말하지 않는다면 남자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여자 입장에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숙해보이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고, 또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그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거짓 오르가슴으로 소리를 내질러도 진실은 침묵하다보면 진짜 오르가슴을 멀리 떠나보내게 될 뿐이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물어주세요  (0) 2016.12.14
내 남자 특전(特典)  (2) 2012.11.21
가여운 삼촌 팬의 믿음  (2) 2012.11.15
료를 닮은 남자  (0) 2012.11.07
운동의 효과  (0) 2012.11.01
트렁크로의 초대  (0) 2012.10.25




“여자 친구가 없어서 운동으로 성욕을 해결하고 있는데 이것이 긍정적인 것일까요?”라는 가련한 질문을 받았다. 해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운동의 효과를 의심하는 질문을 던지다니, 성욕이 잠깐 해소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욕구불만인 상태라는 걸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닐까?


배가 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식욕과 수면욕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혼자서도 충분히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섹스라는 행위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 성욕이라면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다만 내가 하고 싶다고 당연히 상대가 응해주는 것은 아니기에 성적 욕구가 충만한 미숙한 어린 남자들은 섹스할 대상이 없을 때 괴롭고 슬픈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성적 호기심과 에너지가 충만한 10대 남자애들에게 미봉책으로 제시하는 운동요법을 성인 남성에게 적용하여 “운동으로 성욕을 푸세요”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피트니스 센터에서 홀로 몸을 단련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몸을 부딪치고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축구나 야구 같은 사회성을 갖춘 운동이라면, 타인과 단절되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애써 운동을 하기 보다는 누군가와 몸을 섞고 싶어 한다. 운동을 하면서도 섹스라는 행위가 더 나은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욕구가 강한 남자들은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들 내부에 충족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사정이 목적이라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영상이나 책자의 보조를 받아 자위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섹스를 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섹스에 대한 욕구라기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필요한 성욕이란 것은, 육체적인 만족 이외에 정서적인 만족에 관련된 것일 텐데 일회적인 만남이나 대가를 지불하고 맺는 관계는 욕구를 해소해주기 보다는 허무함과 외로움을 더 절실히 느끼게 만들 뿐이다.

섹스를 통해 일상의 감각이 아닌 들뜨고 환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섹스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위이다. 그렇기에 탐욕을 부린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먹을 것에 집착하여 살이 포동포동 오르게 된다든지 잠에 취해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단지 더 많이, 더 자주 섹스하길 원한다고 하여 그렇게 행동한다면 타인과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과 섹스를 했다면 둘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심리적인 문제 상황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감당하고 해결해나가려면 욕구에 굴복하는 말랑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비열한 마음 대신 진심과 애정을 품을 때 성욕도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남자 특전(特典)  (2) 2012.11.21
가여운 삼촌 팬의 믿음  (2) 2012.11.15
료를 닮은 남자  (0) 2012.11.07
트렁크로의 초대  (0) 2012.10.25
지겨워지는 섹스  (0) 2012.10.17
아직 해보지 않은 일  (0) 2012.10.09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생운동이라는 건 명맥만 유지되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잘못된 사회에 목소리를 드높이며 투쟁하다 의로운 피를 흘리는 건 영광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런 이유로 운동권에 속한 사람들은 좀 더 정의롭고 진보적이며 바르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본인들도 그런 걸 내세웠다. 


그런데 의식과 지성을 갖췄다는 이들이 대학생활 내내 벌이는 연애 소동을 가만히 지켜보면 의아한 일투성이였다. 함께 서울광장에 나가 시위를 하고 돌아와서는 밖에서는 분명 동지였던 여자 친구의 자취방에 대자로 드러누워 아버지 세대 코스프레를 한다. ‘밥 차려와라’, ‘리모컨을 달라’ 원룸의 제왕이 따로 없었다.

다른 한쪽에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흉내를 내며 자유연애라는 이름으로 허랑방탕한 자신의 생활을 정당화했다. 성해방이 진보인 냥 여자 후배를 꼬드기고 부추겨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이 된 줄 착각하다 농간에 놀아났다는 진실을 알게 된 뒤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주기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열혈진보활동가로 이름을 떨치던 선배는 술 취한 후배를 동아리방에 가두고 몹쓸 짓을 하려고 시도하다 적극적 저항으로인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 운동권 동아리에선 ‘피 끓는 젊은 남녀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선배를 옹호하고 후배에 대해서는 행실이 나쁘다는 소문을 흘리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했다. 그 덕에 그 선배는 아무런 반성 없이 휴학했고 복학 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더 어리고 아리따운 후배와 연애를 했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 부분에서는 진보적으로 다른 부분에서는 보수적이거나 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영웅이 되어 달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대항하면서, 자신이 권력자로서 위치한 여성 문제에서는 그 힘을 마구 휘두르며 약자에게 상처 주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진보라고 말하면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힘의 남용과 억압이 존재한다면 너무나 뻔뻔스러운 자기기만이다. 

당신들은 진보라고 믿으며 지지하고, 세상을 바꿔보자는 당신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정치적 무관심에서 개안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그들의 힘을 빠지게 만든 사건에 대해서 내버려두면 조용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마라. 사람들은 당신들에게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포즈에 지나지 않는 사과 따윈 필요 없다. 어떤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의 목소리를 내게 하고 당신들을 비판하게 했는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여성에 대한 당신들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교정되거나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여러 가지 몹쓸 편견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 휘두르는 것이 가식 없이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삐뚤어져 있는 생각과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임을 안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조금씩 바꿔나가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런 행동들이 모여서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의 위치를 반성해야 한다. 항상 약자인 사람도 항상 강자인 사람도 없다.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착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무의 방식  (2) 2012.03.05
면역력 제로의 여자  (3) 2012.02.22
상담에도 예의를  (0) 2012.02.15
데칼코마니 키스  (2) 2012.01.10
카톡으로 말 걸지마  (4) 2011.12.26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  (9) 2011.12.21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신선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러 나왔을 때 그가 뒤따라 나왔다. “안녕.” 오늘 두 번째 인사. 무리지어 있을 때 나눈 형식적인 통성명과 첫 번째 인사와는 달랐다. 그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사심을 담아 건넨 인사였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안녕.”라고 답했다. 나쁘지 않은 목소리, 호기심에 가득 찬 동그란 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나에 대한 호감이 그의 바디랭귀지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특별히 할 말은 없어 애꿎은 신발 앞코로 바닥만 툭툭 치고 서 있었다. “춥지 않아?” 그러고 보니 목도리와 외투도 벗어둔 채로 나는 티셔츠에 얇은 카디건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모직 코트를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난 좀 걸을 건데.” 그는 조용히 따라 걸었다.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불이 꺼져있었고 모퉁이 편의점만 마치 다른 세상인 냥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둘이 걷다 후미진 골목을 발견 했을 때 그가 내 손을 잡고 골목 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움켜잡고 한참동안 웃었다. 그는 내 웃음이 멈출 때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기다려주었다. 

“웃을 때가 아닌데.” 그가 말했다. “이건 마치 중학교 때보던 순정만화 같은 전개잖아.” “그렇다면 다음 장면이 뭔지도 알겠네.” 물론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수줍어할 필요가 없었다. 피하거나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이것이 단순히 충동적인 장난이라고 해도 내게 이런 감각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동안 마음에만 집중하느라 몸의 즐거움은 거리를 두고 있었던 터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괜찮은 방식의 유혹이었다. 



나는 그의 티셔츠 앞자락을 움켜잡고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는 혀를 제대로 움직일 줄 알았다. 입술을 핥아주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고, 이와 잇몸을 자극하는 방법도 알았다. 키스의 강약중간약 조절도 훌륭했다. 입맞춤에 취해있던 정신을 제3자의 눈으로 보내 이 사태를 바라보게 했다. 

 

 


그 순간 그의 키스가 나의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종이 한 쪽에만 물감을 묻혀 접었다 펼친 테칼코마니같은 키스였다. 키스만으로 온몸이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약간의 자만심도 밀려왔다. 도발적인 키스에 어울리는 손동작은 그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가 터질 것처럼 단단해진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의 손이 카디건 사이를 파고들 때 그를 밀어냈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 번호를 남겨주었다. 바깥 공기는 너무 차가웠고 손끝은 부서질 듯 시렸다. 긴 키스를 나누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다음날 약간의 숙취를 느끼며 일어난 오후, 물의 기운을 빌리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오는 그 순간, 발신자에 낯선 열세 자리 번호가 떴다. “안녕?”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귀여운 목소리, 나는 플로랄 향 대신 머스크 향이 가득한 바디로션을 온몸에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면역력 제로의 여자  (3) 2012.02.22
상담에도 예의를  (0) 2012.02.15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4) 2012.01.30
카톡으로 말 걸지마  (4) 2011.12.26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  (9) 2011.12.21
욕구불만의 기록  (2) 2011.11.23







싸움의 발단은 사소했다. 문제는 카카오톡이었다! 동생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는데 처음 연락을 하면서 전화 통화가 아닌 카카오톡을 날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내가 동생을 병신으로 키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고 비읍시옷이라는 소리에 동생이 발끈하고 말았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생으로부터 스마트한 세상에 적응 못하는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까다로운 여자라는 맹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비방은 가볍게 쳐냈다. 나는 또래보다 스마트폰과 IT 기계에 대한 적응력과 활용도가 높았다. 얼마 전에 혼자서 스마트폰 루팅을 해낸 것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방어에 성공한 뒤, 공격 패를 꺼내들었다.

내 주변의 여자들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처음 말을 거는 소개팅남에 대한 반응과 개념 있는 남자들의 지지 발언을 수집하여 보여주었다. 동생의 비난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대인배인 나는 병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도 없는, 추임새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먼저 사과를 건넸고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다.   

하룻밤 만남도 스마트폰의 어플로 쉽게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채팅을 하는 것처럼 특정 장소와 특정 매개를 이용해 공을 들이던 것과는 달리, 일하는 도중에도 이동을 하는 동안에도 손쉽게 섹스할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의도가 명확한 메신저에서 찌질하게 굴지만 않는다면 섹스는 성사된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마당에 이용료가 전혀 들지 않는 메신저로 소개팅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할 것이다. 쉽다. 쉬운 게 문제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운명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다. 로맨스는 그 단어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료 메신저를 이용하는 것처럼 편리하고 쉽다. 그만큼 끊어지기도 쉽고 빠르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면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는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첫 만남을 하기 전에 서로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교환하고 만날 약속을 정할 때는 카카오톡보다 전화가 바람직한 게 아닐까? 당장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진실됨으로 상대에게 다가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룻밤 인연이 아니라 짝을 찾기 위해 소개팅을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내 번호를 알려줬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르는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안냐세요’라고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인사를 건네면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들까? 나름 잘 나온 사진으로 골라 넣어둔, 실물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카톡, 카톡, 카톡’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물어볼 게 많으면 전화 통화를 권하겠다.

적어도 첫 인사 정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중한 접근 방법이다.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올 때까지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못할 정도로 겁 많은 혹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남자라면, 만났을 때도 만족스러울 리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했을 때 쏟게 되는 정신적 에너지는 상당하다. 그렇기에 탐색 기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낫다.    

물론 카카오톡으로 보내오는 메시지만으로도 어떤 사람일지 예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메시지를 보내오는 타이밍이나, 반응속도, 이모티콘의 사용 정도, 화제를 꺼내는 방식이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한글맞춤법을 지키는 정도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목소리와 말투, 직접 대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과는 다를 수 있다. 전화할 용기는 없고 카카오톡이나 보내는 남자는 스스로 매력을 깎아 먹는 것이다.

특히 카카오톡은 친한 친구들과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에 관한 수다를 떠는 데 사용하고, 중요한 일은 문자나 전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구분 지어 사용하는 상대에게 카카오톡은 실례가 된다. 20대 초반의 어린이들도 아니고 나이도 들만큼 들어서 하는 소개팅의 첫 대화에 카카오톡은 어울리지 않는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담에도 예의를  (0) 2012.02.15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4) 2012.01.30
데칼코마니 키스  (2) 2012.01.10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  (9) 2011.12.21
욕구불만의 기록  (2) 2011.11.23
구강기의 발현  (0) 2011.10.20






얼마 전에도 방명록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섹스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분께 답 메일을 보내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솔직하고 당당한 동시에 감성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연애나 연애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케이블에서 끊임없이 재방송을 해주고 있는 '섹스앤더시티'나 이번 분기 일본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를 보면 그런 마음이 더 부추겨질 것이다.

칼럼니스트가 되면 드라마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거라 꿈꿀지 모르겠지만 매체 하나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만으로 '지미추'를 신고, '디올'을 입고, '핫 플레이스'만 골라 다닐 순 없다. 근사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헤픈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헤프다는 근거가 될 순 없다.

섹스 칼럼니스트 대부분이 평균치의 경험과 평균치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과 주변의 사례를 잘 조각내어 각색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시켜 글을 만든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희대의 카사노바들이 섹스 칼럼을 써야할 것이다. 이 일에 필요한 것은 분석력과 통찰력 그리고 관찰력이다.

섹스를 많이 하고, 잘 하고,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못 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방어막을 치겠다는 게 아니다. 연애와 사랑, 그리고 남녀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섹스를 빼놓는다는 것은 팥이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섹스를 언급하는 것뿐이다. 오직 섹스에만 관심사가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섹스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남자들의 관심이 ‘글을 쓴다’가 아닌 ‘섹스’에 맞춰져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섹스’라는 말이 그들을 자극시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러나 그 과도한 관심이 불쾌한 사건을 유발시킬 때가 있다.

평소 내 글을 관심가지고 읽어주시던 분이 내 SNS 계정에 접속하고 팔로잉을 했다. 그 SNS 계정은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정체성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축구를 보면서 같은 팀을 응원하는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세컨드 계정이라고 밝혀두고 섹스에 대한 욕망을 쏟아내고 있던 그 분의 SNS와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 분이 나를 팔로잉하자, 그 분처럼 세컨아이디로 활동하는 분들이 대거 나를 팔로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접속을 했더니 팔로워들의 프로필 사진이 전부 노출된 성기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다른 축구팬 팔로워들이 이걸 보면서 뭐라고 생각했겠는가. 게다가 이딴 거 보고 싶은 마음 없었다. 그닥 예쁘지도 않고, 예술적이지도 않은 적나라하기만한 병적인 사진들을 보며 흥분할 여자는 아무도 없다. 한 명, 한 명 차단을 하며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하는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분도 악의적인 의도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SNS가 어떤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보았더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일 하나하나는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어떤 날은 문득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하는 회의를 품게 만든다.

물론 이 일을 시작할 때 내게 닥칠 수 있는 불쾌감을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겪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는 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오래도록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렇기에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분들은 자제를 부탁드린다. 서로 예의는 지키도록 하자.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4) 2012.01.30
데칼코마니 키스  (2) 2012.01.10
카톡으로 말 걸지마  (4) 2011.12.26
욕구불만의 기록  (2) 2011.11.23
구강기의 발현  (0) 2011.10.20
결정권을 존중해주세요  (0) 2011.10.04




희주는 그와 입을 맞추는 순간에 그의 셔츠가 아닌 벨트로 손을 뻗었다. 몸을 밀착시켰을 때 허벅지에 닿은 묵직함에 흥분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 정도로 과감했던 적도 없었다. 그의 몸에서 페니스란 항상 마지막에, 혹은 보지 않아도 된다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위였다.

희주는 오럴섹스에 대해 항상 부채감 같은 걸 품고 있었다. 그가 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한 적도 많았다. 마음의 변화를 느낀 건 그와의 섹스에서 얻는 심리적 만족감 때문이었다. "나를 이토록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면 그에게 상을 주고 싶어." 하지만 그때도 희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입 안으로 그를 느끼면서도 그 실체를 똑바로 쳐다볼 순 없었다. 그것을 핥고 빨고 깨물면서 이것은 오직 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숨을 쉬는 게 편치 않았고, 흘러나오는 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난감했다. 목 안 깊숙하게 들어오는 물건의 길이감도 적잖게 불편하다고 느꼈다. “오럴섹스를 할 때 입으로만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손도 거들어야 해. 한 손으로 자극을 주는 거지. 손으로 감싸 잡은 만큼 입 안에서의 길이감도 줄일 수 있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럴섹스는 역시 의무감이었다. 희주는 오럴섹스를 통해서 자신도 쾌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의 것을 입으로 애무하는 동안 그 역시 희주의 것을 애무하는 69체위는 한 번쯤 호기심에 해볼 순 있어도 그다지 좋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희주는 자신이 원하는 자극이 아니라면 오히려 자신이 하고 있는 오렐섹스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그의 한쪽 다리에 올라타서 그것을 입에 넣었다. 자극을 느낀 그는 몸을 살짝 비틀며 다리를 움직였다. 희주는 그 찰라 클리토리스에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희주는 그의 몸에 최대한 밀착한 상태에서 오럴섹스를 했다. 그의 미묘한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몸도 자극을 받는다는 걸 깨달았다. 희주는 그 강도를 스스로 움직임을 더해 조절할 수 있었고 그를 위해 오럴섹스를 하는 도중에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입 안에서도 만족감이 부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아동의 심리성적발달단계에서 입으로 모든 쾌락을 충족시키는 구강기가 자신에게는 이제야 발현되는 기분이 들었다. 희주는 더 이상 그의 분신이 무섭지 않았고, 오럴섹스가 어렵지 않았다. 벨트를 풀고 그의 팬티를 벗겼을 때 팽팽한 긴장감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녀석에게 “안녕?”이라고 안부를 묻는다. 희주는 그런 자신이 대견스럽다고 생각했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톡으로 말 걸지마  (4) 2011.12.26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  (9) 2011.12.21
욕구불만의 기록  (2) 2011.11.23
결정권을 존중해주세요  (0) 2011.10.04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0) 2011.08.31
스킨십의 절대기술  (5) 2011.07.12





"그의 입술이 가슴에서 배로 하강하기 시작했어. 그의 혀가 도달할 곳을 짐작할 수 있었지.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걸 굳이 막을 필요는 없잖아. 다리를 조금 더 벌리려고 하는데 내 예상을 깨고 ‘찌릿’ 자극이 온 곳은 다름 아닌 발가락이었어.”

K는 직립보행을 아직 시작하지 않아 깨끗하고 뽀얀 발을 가진 아기한테나 귀여워죽겠다고 말하며 발가락에 입 맞추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의 발에 그러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K의 발에 입 맞추었다. K는 “왜 그래, 간지러워. 하지마”라고 말하면서도 발을 감추거나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K의 말초신경은 그 행동을 멈추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는 새끼발가락을 입 안에 넣고 빨아들였다. 생전 처음 느낀 쾌감 때문에 K의 몸은 달아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한다고들 말하잖아. 그걸 행동으로 옮긴다면 발가락 키스일거야. 생각지 못한 의외의 부위잖아. 사실 나조차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곳이니 그 순간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어. 발가락 키스에 안 넘어갈 여자는 없어. 이건 절대 기술이야.”

K의 말대로 내 몸을 홀려놓고 격정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손길은 존재한다. 남자라면 궁금해 할 궁극의 스킨십 기술! 그러나 미안하게도 절대 기술은 없다. 단순하지 않은 여자의 몸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발가락 키스도 100% 효과를 발휘하는 기술이라고 볼 순 없다.

아까 샤워할 때 발가락 사이사이도 꼼꼼하게 거품을 내서 씻었던가? 힐을 신다보니 새끼발가락의 발톱이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발뒤꿈치 각질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런 저런 걱정으로 발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는 여자들도 많다. 그가 발을 공략한다면 부담스럽고 불편하며, 긴장만 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에로틱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기본에 충실한 고전적 터치가 여심을 흔들곤 한다. 나른한 섹스가 끝나고 긴장의 끈을 늦춘 채 그의 곁에서 선잠이 들었을 때였다. 무방비의 유약한 나를 바라보는 시선, 굳이 눈을 떠 확인하지 않아도 응시된 초점이 가진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어 그의 손이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고 내 뺨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그는 내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의 쾌감은 정수리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어느 한 구석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내 몸을 만져주고 핥아주고 빨아줄 때의 짜릿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그의 손길에서 내가 궁금해 하던 성실한 답이 보였다. 잠이 덜 깬 듯 몸을 뒤척이며 그의 품속에 안겼다. 나의 빈 곳을 채워주었던 그의 단단함이 허벅지에 닿았다. 딩동. 그가 들려준 답을 채점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의 허벅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발적 충동을 만들어 내는 그의 손길, 그것은 어떠한 기술이 아닌 진실한 마음이 담겨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강기의 발현  (0) 2011.10.20
결정권을 존중해주세요  (0) 2011.10.04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0) 2011.08.31
등근육을 키우세요  (3) 2011.02.22
나를 만나기 전 그녀  (6) 2010.12.08
섹스의 사각지대  (4) 2010.11.16





페르난도 토레스의 첼시 이적 소식은 리버풀을 응원하던 나에게는 군대 간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서 나를 차버리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배신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제토라인으로 토레스와 짝을 이루던 제라드도 그를 이해한다고 말한 마당에 내가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토레스가 리버풀의 빨강이 아닌 첼시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오이디푸스처럼 스스로 눈을 뽑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파란 토레스라니 나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토레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파란색. 그러나 어째서인지 토레스의 등근육은 빨간색 유니폼을 입었을 때보다 더 도드라져보였다. 숨길 수 없다는 듯이 유니폼 위로 드러난 그의 등근육. 황홀해하며 TV화면을 정신없이 쓰다듬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 마음에 훅하고 깊숙한 자상을 남긴 토레스였지만 그의 등근육은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덧나지 않게 발라주는 연고처럼 약효가 좋았다. 생각해보면 토레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애초에 그의 하드웨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년의 얼굴, 짐승의 몸. 표범의 등처럼 탄력 넘치는 동시에 힘이 느껴지는 근육 앞에 반하지 않을 여자 어디 있겠는가?

피트니스에서 죽어라 운동하고 닭가슴살을 먹으며 근육을 키우는 남자들이 알아야할 사실이 하나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운동하는 거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근육을 키워도 상관없지만, 여자에게 어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 거라면 가슴, 복근보다는 등에 집중할 것!

가슴이나 복근은 옷을 벗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근육이다. 그러나 그 근육 자랑하려고 쫄티를 입는 순간 여자들이 눈을 돌릴 것이다. 제발 그것만은 하지말자. 등근육은 면티 하나만 입고 있어도 드러낼 수 있다. 팔을 움직이거나 뭔가 물건을 들 때 견갑골과 함께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거운 것을 들고 그녀보다 성큼성큼 몇 발자국 앞서 걸어 나가라. 그 믿음직한 등을 보이란 말이다.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애인씨가 달려와 도와주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하게 세워두고 이사센터 아저씨와 함께 등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물건을 날랐다. 나는 할 일이 없으니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책장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던 애인씨의 뒷모습. 나는 지금도 그때 등근육의 굴곡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골라준 겨자색 빈티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 분명 내 남자인데. 너무 익숙한 내 것인데 그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낯설고 새로워보였다. 그가 힘을 줄 때마다 등근육이 셔츠 위로 도드라졌다. 그 순간 이사고 뭐고 그에게로 달려가 그 등을 꼬옥 껴안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그대로 셔츠를 벗기고 그의 등에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 그런 등근육을 가진 남자와 섹스를 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어제도 같이 잔 남자였는데 완전히 달라보였다. 그래서 짐 상자들은 풀지도 않고 제일 먼저 침대부터 조립해 매트리스를 올리자마자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들을 벗어던지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짐승 같은 남자의 등근육은 나를 야성적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자기의 견갑골과 등근육을 지켜보면서 이미 나는 젖어버렸어.” 그랬다. 등근육은 어떤 최음제보다 효과적이다.









'뇌內[망상]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정권을 존중해주세요  (0) 2011.10.04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0) 2011.08.31
스킨십의 절대기술  (5) 2011.07.12
나를 만나기 전 그녀  (6) 2010.12.08
섹스의 사각지대  (4) 2010.11.16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5) 2010.11.02



안방 문을 여는 것은 금기가 아니었다. 그날 아침도 정민은 평소대로 “엄마, 밥 안 줘?”하며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나 정민이 문을 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부모님은 깊이 잠들어있었다.

일요일 아침, 늦어진 식사준비에 배가 고파진 정민은 짜증을 부릴 생각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보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불도 덮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잠들어있는 부모님의 몸을 아침햇살만이 감싸고 있었다.

열일곱에 그런 장면을 목격한 것은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키스할 때마다 가슴을 만지려고 별 수를 다 쓰는 남자친구 때문에 섹스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탐구를 하고 있던 정민이었기에 부부라면, 그것이 나의 부모라고 하더라도 섹스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생각할수록 이 모순적인 상황에 정민의 머리는 오류가 날 것 같았다. 두 분의 삶에 섹스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지난 번 부부싸움에서 결국 아버지는 손을 들었고, 어머니는 코뼈가 주저앉아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아버지는 폭력을 사용했지만 정민은 과민한 어머니를 말리기 위한 행위였음을 알고 있다. 이번에도 부서진 전화기는 어머니가 던져 못 쓰게 된 열네 번 째 전화기였다.

일러스트ⓒ이은아
정민은 항상 싸우는 부모님을 보며 두 분이 그냥 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복한 아이인 척 가장할 수 없게 편모 혹은 편부의 자녀가 되는 걸 은연중에 두려워했다. 화목한 가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민은 ‘부모님 이혼’이라는 서류로 증명되지 않았기에 친구들 앞에서 혹은 선생님 앞에서 언제나 좋은 환경에서 반듯하게 자란 아이인 척 하며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애썼다.

그런 부모님이 사랑하는 사이에서 하는 행위라는 섹스를 했다니, 열일곱의 정민은 섹스와 사랑을 동격에 두었고 그 순간은 안도했다. 부모님이 섹스를 한 그 며칠간의 집안 분위기는 상당히 부드러웠고, 어쩌면 늘 꿈꾸며 간절히 바라던 행복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싸움은 그 뒤로도 계속 되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고 더 이상 부모님과 한 집에 살지 않아도 되었을 때 정민은 진심으로 자신만의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정민은 남자와 싸우지 않았다. 평화를 유지했지만 결국 매번 어긋나 버렸고 한 사람과 정착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정민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부딪히고 싸워야 할 순간,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면 그의 입에 혀를 넣어 진한 키스를 하며 곧장 그를 흥분시켜버렸다. 그의 허리벨트를 풀고 곧장 페니스를 애무했다. 싸움을 피할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 섹스만 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처럼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도피한 채 과도하게 시도하는 섹스, 아무리 남자들이 섹스에 열광한다 치더라도 정민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섹스가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정민의 실수였다.




이코노미스트 1073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