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뒤돌아서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그 사람의 등을 보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든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그 등을 보고 있노라면 쓸쓸해져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먼저 내가 돌아서는 사람, 돌아서서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 때문에 종종 냉정하다는 얘기를 듣곤 했지만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라 뒤돌아볼 수 없을 뿐이었다.

얼마 전 지하철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헤어진 그가 계속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내가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던 그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의 등을 봐주는 일은 강하면서도 다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그의 등을 볼 수 있는 순간은 지금 그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랑을 확인하는 그 순간이다. 그의 목선을 따라 내려와 어깨와 단단한 등에 입 맞추다 뒤에서 그를 꼭 끌어안을 때는 오히려 감격스럽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남자들에게 있어서 등이라는 신체부위는 섹스의 사각지대인 듯 하다. 키스를 하며 내 목을 감싸고 있던 그의 팔이 허리 즈음 내려온다. 정확히 내 티셔츠로 파고드는 그 강한 팔은 거추장스러운 셔츠와 브래지어를 순식간에 제거하고 가슴을 공략한다.

창의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다음 순서. 내가 몸을 비틀어 등을 보여도 나를 부침개 뒤집듯이 똑바로 눕힌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를 향한 집요한 여정을 계속할 뿐이다. 정말이지 ‘등’은 가방 멜 때만 쓰는 신체부위가 아니다.

등을 완전히 노출하게 되는 후배위일 때에도 등은 버림받은 존재다. 좀 더 강하게 삽입하기 위해 허리를 붙잡거나 어깨를 잡을 때에도 등은 완벽하게 무시된다. 시야에서 벗어난 가슴은 움켜잡으면서 눈앞의 등을 어루만져 주거나 키스하는 세심한 남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 순간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게 허리와 허벅지에 반동을 주며 움직일 때는 다른 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내 등은 그 순간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볼 때만큼이나 쓸쓸함을 느낀다.

손바닥, 손목 그리고 팔에 정성스러운 입맞춤을 하고 난 뒤 어깨와 목, 그리고 등으로도 따뜻한 그의 입술이 이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그런 다정다감한 키스는 공들여야 하는 척 섹스, 운 좋으면 뒤이어 한두 번. 그 이후에는 종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섹스에 있어서 등은 쉽게 잊히는 부위가 된다.

그러나 등을 애무하고, 적당한 힘을 줘서 척추뼈를 쓸어주는 방식의 어루만짐은 짜릿함 뿐만 아니라 충분한 만족감까지 준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그 곳까지 누군가 어루만져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섹스를 할 때 등을 빠뜨리지 않는 습관. 사랑받을 수 있는 비법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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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생물학적인 이유로 바람을 핀다고 쳐요. 그렇다면 여자들은 왜 바람을 피는 거죠?” 그렇게 물어본다면 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남성이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고 싶어 한다면 여성은 더 우월한 유전자와 결합하길 원한다. 그렇기에 현재 짝이 있더라도 더 강하고 매력적인 남성과 짝짓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는 남녀의 특성을 아주 단순하고 단편적으로 본 것이다.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생물학적 본능 이외에도 복합적인 이유로 정절을 지키기를 선택하거나 바람피우는 것을 선택한다.

바람을 피우는 일, 특히 여성에게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존재하곤 한다. 여자에게는 몇 년간 사귄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와 헤어질 마음도 없고 생에 마지막 사랑이길 원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태도가 예전만큼 열정적이지 않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집착이나 애정의 정도가 커진다. 그런 태도가 관계를 망칠 수 있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여자는 자신이 여전히 섹시한 존재이며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인지 타인을 통해 증명 받고 싶어진다. 애정결핍의 반작용이다. 그럴 때 여자의 주변에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능수능란하고 여자를 잘 다룰 줄 아는 남자가 있다면 그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용하게 된다. 하룻밤 혹은 몇 번의 섹스 정도면 여자도 그 상대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가 자신을 여전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사랑스럽지 않아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몹쓸 부정적인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 버릴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섹스를 통해 묘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내게 만족을 주는 사람은 새로운 관계의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여자는 여유를 되찾는다. 사랑의 표현방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 것이지 열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줄 수 있는 여유이다. 그가 변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힘들었던 여자는 타인과의 섹스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관계에 있어서 조급했던 마음을 한 발 뒤로 물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궁극적인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반복적으로 그 여자를 덮칠 수 있고 그때마다 타인과의 섹스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장기적으로 그 여자에게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방식의 바람은 자아존중감이 낮은 여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이며 이런 식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바람을 피는 이유다.





생물학적인 본성이 그러하지만 우리는 사회라는 제도를 통해서 일부일처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관계를 맺을 때 지켜야 할 의리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불가피한 바람은 언제나 두 사람에게 불고 있다. 제도가 본능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그 제도가 어쩜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바람을 피운다는 건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람을 피우지 말라. 바람은 나쁜 것이다’고 단정 짓지는 못한다. 사람은 제각각 각자의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그 바람을 들키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다. 재주껏 피우지 못할 바람이라면 자제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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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에는 불효를 계획했다. ‘조상님, 죄송합니다. 성묘를 하러 갔을 때도, 차례를 지낼 때도 제 모습은 보시기 힘드실 거예요.’ 불호령이 떨어질까봐 아버지에게는 아직 알리지도 않았다. 일에 대한 열정을 이해할 줄 아시는 어머니께는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불효를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역시 어머니는 ‘추석 때 출장을 보내는 회사가 어디 있니?’ 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으셨다. “응, 바쁘면 좋은 거지. 일하는 게 남는 거다.” 나를 믿어주시는 어머니께 미안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바로 어머니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 추석 연휴기간, 나는 한국을 뜬다.

몇 달 전부터, 아니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어머니는 ‘나의 데이트’ 소식이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며 남자는 만나고 다니는 건지 궁금해 하셨다. 하지만 사귀는 남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봐야 어머니 눈에 차는 남자들은 없었다. 지금이야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비치는 아버지이지만 당시 기준으로 훤칠하고 잘생겼으며 소위 ‘간지’까지 겸비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한 어머니이기에, ‘내가 연애를 한다면 장동건이나 차승원은 돼야 하지’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셨다. 당연히 사윗감의 성품이나 경제력 이외에도 외모 역시 평가에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신다.

처음 연애할 때야 어머니께 조잘조잘 보고도 잘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어머니의 의견을 참고하기도 했지만, 이 남자랑 결혼할 거 아니고 연애 좀 하는 건데도 연애의 끝은 이별이 아니라 결혼이라고 생각하시는,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인 어머니이기에 데이트남의 정보를 공유해봐야 엄격한 기준에서 마음에 안 드는 몇 가지는 항상 지적받았다.

그렇다보니 어머니가 나서서 선을 볼 남자를 주선해 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에 나는 결혼을 하기엔 아직 어렸었고 좋은 남자에 대한 안목도 부족했던 때였다. 어머니가 소개해준 사윗감으로 걸맞은 조건을 가진 남자들은 준수한 외모는 가졌지만 성실하고 책임감이 너무나 강해 보였다. 군소리 없이 선 자리에 나가 참하게 앉아 있다 돌아오긴 했지만 스물다섯도 안 된 나에게 그들은 답답하고 심심한 남자로 분류될 뿐이었다.

그렇게 훅하고 세월이 흘렀다. 주변에 괜찮은 목록은 바닥났지, 딸의 나이 앞자리엔 숫자 3이 자리를 잡았지, 남자는 있는지 없는지도 알려주지 않지…. 조바심이 나신 어머니는 몇 달 전 결혼정보회사에 딸의 정보를 넘겨줄 마음을 잡수셨다.

도살장에 끌려간 돼지들이 등급을 받고 팔려나가듯, 몇 백의 돈을 내고 처참한 자기 등급을 확인해야 하는 그런 일이 달가울 리 없었다. “어머니, 가입비를 차라리 절 주세요. 그 돈에 좀 보태서 난 유럽 여행을 가겠어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영국을 찍는 겁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남자들이랑 자보는 겁니다. 비록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넘치는 글이 되겠지만 각국 남자들의 작업 방법이라든지, 밤의 테크닉을 비교하는 글을 쓰는 게 오히려 더 유용하고, 즐거울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물론 그렇게 말하진 못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매일하던 안부전화도 딱 끊고, 행여나 어머니의 전화가 오면 “회의 중이에요. 있다가 걸게요”라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러나 온 친척이 모이는 추석은?




그래서 마감을 끝내놓고, 비겁하지만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장은 결혼할 생각도 없고요. 관심 좀 꺼주시겠어요?’라고 용감하게 맞서 싸워 봐야 그것이 진정 불효였다. 차라리 눈에 띄지 않는 것. 그리하여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 친가, 외가를 다 포함해도 첫 째인 나의 결혼 여부와 만나는 남자의 존재 유무가 화제가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선택인 동시에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 일이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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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타자만 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는 홈런 친 타자가 받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야구는 투수의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거죠.”

S는 스무 살 때부터 술자리에 남자가 한 명이라도 끼게 되면, 시시각각 돌발적으로 주제가 바뀌는 여자들의 수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나 자동차, 심지어 아직 출시되지 않은 IT제품에 대한 화제를 슬쩍 던지곤 했다.  그러면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을 잡은 것마냥 S가 이끄는 대화의 세계로 따라 들어오곤 했다. 구원 받은 그는 S처럼 말이 통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복하고 그것은 곧 호감으로 발전되곤 했다.

S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S는 그 인기를 누리면서도 어느 누구의 고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S는 야망이 큰 여자였다. 복잡한 화살표가 얽혀 있는 캠퍼스 내에서 연애할 마음은 없었다.



S는 졸업 하자마자 야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여자 신입이라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S는 눈에 띄지 않게 관찰자 모드를 유지했다. 대신 카페에 올라온 회원 소개란을 꼼꼼하게 읽었고 사진을 찾아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괜찮은 남자 리스트를 뽑아놓고, 야구 관람 정모 때 그들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몇 번의 정모 활동 이후 S는 한 명의 남자를 집중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잠실 근처에 자신 소유의 한의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자들이 혹할 만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야구광인 덕분에 간만 보여주다 공식적인 연애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가여운 남자였다.

S는 웬만한 남자 못지 않게 야구 룰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도 너만큼 잘 알고 있다' 작전은 쓰지 않기로 한다. '야구 아는 여자' 순간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다 알고 있다면 야구를 관람하면서 대화할 일 없이 그냥 경기만 보게 될 게 뻔했다. S는 야구 초보인 듯 그와 함께 야구 관람을 하며 룰을 하나하나 배우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에게 그녀보다 우월한 지위를 줌으로써 그녀를 보살펴주고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다.

"다음 타자는 번트를 노릴지도 모르겠네요." S의 적절한 상황 판단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까 번트·볼넷 그리고 데드볼 설명해주셨잖아요. 지금 노아웃 상태에 두 명이 출루해있으니 번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야구 관람 도중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재빠르게 응용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 S. 가르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호감도를 급상승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진 대사였다.



지난 14일은 화이트데이거나 일요일이기 이전에 잠실구장에서 두산과 LG의 시범경기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대략 1만 8000명의 관중이 외야석까지 꽉 들어차서 역대 시범경기 중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그리고 꽤 많은 커플들이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는 결혼 3년차인 S와 한의사 남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전략적 접근이긴 했지만 그 둘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사이좋은 커플이었다.


실제 연인 사이인 배우 윤진서와 야구선수 이택근. 게스 언더웨어의 “FANTA-G” 프로모션 화보 컷

 

 

여성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의 데이트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기,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기, 근사한 자동차를 타고 한적한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 하기. 그렇게 분위기 잡고 앉아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남자는 고삐에 묶인 송아지마냥 답답증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를 위해서 신상 구두와 연예인 가십에서 벗어나 남성이 좋아할만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데이트도 그가 좋아할만한 코스로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PC방의 커플 좌석이나 당구장에서의 데이트. 배려가 넘치고 센스 있는 여자로 보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SATC, Sex and the city
뉴욕에는 로맨스가 없다! 라고 선언하고 섹스에서 남자에게 바랄 것은 감성이나 감정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만다와
사랑이라는 감정에 냉소적인 미란다 사랑에 대한 환상 가득한 만년 소녀 같은 샬롯을 친구로 둔 캐리는
여자도 남자처럼 섹스할 수 있는가를 칼럼의 소재로 삼는다.

캐리는 26살, 29살 심지어는 31살 때의 실수였던 섹시하고 잘~하는 커트를 실험 대상으로 정한다.
침대 위에서 아쉬워하는 커트를 내버려두고 냉정하게 일어나는 순간의 희열을 느끼며,
‘여자도 그럴 수 있다, 성공했다.’라고 생각한 순간,
남자들이 좋아라 하게 문란하고 정서 결핍에 걸린 여자같이 굴어야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결론에 캐리는 힘이 빠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캐리 역시 말은 거칠게 해도 여전히 사랑에 대한 환상이 큰 여자잖아.) 

클럽 ‘카오스’에서 나와 택시를 잡지 못하고 있는 캐리에게 나타난 Mr .Big
(차세대 도날드 트럼프로 불리는, 물론 그보다는 훨씬 잘 생겼고 머리 숱도 많다.)

그의 차 안에서 캐리는 자신을 성문화 인류학자라 소개하며 자신이 쓰는 칼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남자처럼 섹스 하는 여성에 대한 기사 자료를 모으는 중이라면서, 빅에게 당신도 아무 생각 없이 섹스만 하지 않냐고 묻자, 빅은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캐리는 남자 맞냐고 반문한다. 빅은 캐리에서 사랑해 본 적이 없군. 이라고 말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빅은 참으로 바람직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 순간 캐리는 자신에게 갑자기 몰아친 강풍의 기운으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자고 싶은 기분과 불안을 느낀다.



빅의 차에서 내린 캐리.
빅에게 “당신은 사랑을 한 적이 있나요? Have you ever been in love?”라고 묻는다.
빅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오만한 표정으로 SATC를 통틀어 유일하게 기억되는
빅의 명대사 “Abso-fucking-lutely.”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진다.
(누구나 이때까지는, 빅이 로맨틱하고 멋진 남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_-)

들어보자, 빅의 "abso-fucking-lutely."





SATC는 첫 편부터 순수의 시대는 끝났으며, 더 이상 로맨틱 영화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시작으로 하여 몇 가지 (당시로서는 흥미를 끌만한 – 이젠 너무 많이 얘기되어 새로울 게 없는) 화두를 던진다.


왜 멋진 미혼 여성은 많은데 멋진 미혼 남성은 없을까?
남성은 성공한 여성을 두려워한다. 남자를 얻고 싶다면 입을 다물고 정석을 따르세요
여자들은 왜 그렇게 까다로운 거냐? 왜 키가 작거나 뚱뚱한 남자는 만나지 않는 거냐?
(뉴욕 여자치고 멋진 남자 열 명을 차지 않은 여자는 없을 거다라는 식의 말에 미란다는
성찰 끝에 간단하게 답을 내려준다. 키가 작거나 뚱보나 가난뱅이도 만나봤지만 차이가 없다.
그들도 잘생긴 사람처럼 똑같이 자기 중심적이다.)

이런 식의 화두들은 역시 사랑의 대상, 이해의 대상으로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닌, 한 쪽만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사랑하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한없이 가벼워지려고 한 것 같다.

샬롯의 정절을 존중해준다면서도, 자신의 욕구는 해소해야 한다면서
클럽 '카오스'로 달려간 유명한 미혼남 커포티 던컨이나
오늘은 재워줄 수 없다는 상대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도 바쁘다며 말하곤
섹스의  쾌락으로 자신의 슬픈 얼굴을 지워버리는 사만다도


그저, 상처받는 것이 무서운 아이의 모습인 걸.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보수적이다

물론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발랑 까졌을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이다

그 사람 앞에서만큼은
어떤 순진한 처녀보다도 나를 갖고 싶게끔 만들 수 있고
어떤 노련한 창녀보다도 더 그를 흥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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