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친구가 뛰는 경기도 아닌데, 대체 왜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너와 함께 축구를 봐야 하는 건데?” 우리는 JJ를 만나기 위해 퇴근 지옥길인 사당역을 빠져나와 5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줄을 선 끝에 수원행 버스를 탔다. 경기 관람도 하기 전에 이미 녹초가 된 우리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JJ는 캡틴 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지난번에 만날 땐 이대호 이름이 적힌 롯데 핑크색 저지를 입고 있지 않았니?” JJ는 호호호 거리며 별걸 다 기억한다며 쑥스러운 척을 했다. “그게 언제 적 얘기니, 나 이제 축구야. 축구가 최고라니까.” 월드컵이 끝난 후 주가가 확 올라가버린 귀염이 기성용이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의 동의도 없이 A매치 티켓을 끊고는 통보한 JJ에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멀리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온 KI를 한 번 보겠다는 마음으로 수원까지 왔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근황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남자의 진정한 매력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알지 못하는 주변 친구들이 ‘운동하는 남자는 뇌도 근육으로 되어 있을 것 같아 별로다’라며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을 때부터 종목을 가리지 않고 체대 다니는 애들만 섭렵했던 JJ. 현재 축구라는 종목에 안착할 때까지 배구, 탁구, 농구, 야구라는 공통점이라고는 구기종목인 것 밖에 없지만 일관성 있게 운동선수들을 만나왔다.

“내조가 별 게 아냐.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거, 나도 같이 좋아하는 게 내조지.” 남자친구가 훈련을 하느라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에도 쓸쓸해하거나 외로워할 틈도 없었다. 몸에 좋은 보양식을 손수 만들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시간을 일부러 내서 프로팀의 경기를 보러 다니며 해당 종목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아 나가는 것도 JJ의 주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그렇게 바쁘다보니 친구들을 만날 때도 항상 경기장으로 불러내는 그녀였다.

전반전에 윤빛가람과 최효진이 골을 터뜨린 이후 박지성과 기성용도 교체되어 살짝 지루한 감이 들기 시작한 후반 말미, 운동장을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는 축구선수들을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JJ가 말했다. “90분을 저렇게 달리는 체력은 말이야. 어떤 종목도 따라갈 수 없단 말이지.” 우리는 뭔소리냐는 식으로 JJ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함축된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만족스러운 섹스를 하려면 뭐가 중요하니?” JJ가 다그치며 물었다. 우리는 얼떨결에 대답한다. “발기의 지속력? 혹은 페니스의 단단함의 정도.” “그렇다면 발기의 메카니즘이 뭐니? 바로 혈액순환 아니겠어? 혈액순환과 직결된 게 무엇인니? 바로 폐활량 아냐!”

어떤 운동 종목보다 오래, 그리고 격하게 계속해서 뛰어다니는 축구가 최고라는 거다. 농구도 그렇지 않냐는 물음에 “아냐, 아냐. 걔들은 순발력은 있는데 지구력이 없어. 은근하게 오래 버티는 맛은 축구가 최고란 말이지.”

그렇게 축구선수를 예찬하는 JJ. 아무래도 그녀가 수영선수를 만나지 않는 이상, 구기 종목에서는 축구 선수 이외 다른 종목의 선수를 만날 것 같지 않았다. 하긴 세렝게티의 허약한 기린 같아 보이는 크라우치가 섹시 톱10 모델에 드는 자신의 약혼녀 애비 클랜시를 두고 매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용서를 받은 데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요인 외에도 다른 것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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