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는 대학가의 원룸촌에 살고 있다. 원룸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D가 사는 건물도 방음에 취약하다. 그렇다보니 옆방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주거환경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D는 이른 아침부터 “Oh~Oh~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많이많이 해.” 오빠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보겠다는 소녀들의 교태로운 목소리에 잠을 깨야한다. 옆방의 알람소리 때문에 새벽 3시에 잠든 D가 6시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의 목소리는 10분마다 꼬박꼬박 6번을 울리고 나서야 옆방 남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알람을 끈다.

야행성 인간인 D는 반복되는 알람소리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알람소리는 본인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들려오는 옆방 남자와 그의 여자 친구가 정사를 벌일 때 들리는 생생한 사운드까지 참아야 하는 것인지 D는 반문했다. 특히 옆집 남자의 여자 친구가 내지르는 너무도 선명한 교성.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을 정도로 그 소리는 지나치게 높고 간드러졌다.

D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내가 사는 원룸이 영국 뉴넘 칼리지의 기숙사라도 되는 것 같아. 옆방 남자에게 벽이 매우 얇으니 ‘야간 행동’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e메일이라도 보내야 할까봐.” 옆방에서 들려오는 사랑을 확인하는 동시에 성욕을 채우는 행위 자체는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여자의 꾸며낸 게 분명한 교성 소리는 너무나도 거슬린다는 것이다.

D는 그것이 가짜가 아닐까 의심했다. “'가짜'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매끄럽고 규칙적인 교성을 지를 수가 있는 거지? 지나치게 깔끔한 것, 규칙적인 것, 아름다운 것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옆방 남자는 여자의 뻔한 교성에 속아 넘어가겠지. 멍청한 녀석 같으니!”

D와 나 역시 섹스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니므로 “이웃을 배려해서 음소거 상태로 섹스하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와 같은 매체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날것 그대로의 상태보다 연출된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고 있음으로, 적당히 연출된 어느 정도의 신음소리는 섹스할 때 흥을 돋우어 준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겨운 섹스 앞에선 스스로 기분을 내볼 요양으로 평소보다 좀 더 교태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걸 방음이 안 되는 집에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서 괴로워할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임에 분명하다. 옆방 남자와 여자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랑에 빠져있는 것일까?

옆방 남자의 여자 친구는 AV의 여배우처럼 과장된 소리를 내면 남자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잘못된 성지식에서 비롯된 강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둔감한 D가 듣기에도 진실보단 거짓에 가까운 신음소리라면 그 남자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옆방 남자도 여자 친구의 신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건지 어떤 건지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 것보단 반응이 있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방음이 잘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옆방으로 소리가 넘어가게 내버려둠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난 이 여자를 이렇게 만족시키고 있어!’하며 자기 과시를 하는 타입의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생각과는 반대로 어쩌면 누구보다도 여자 친구의 교성을 곤란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옆방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서 여자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인지도.

옆방 남자와 여자에 대한 정답 없는 추측을 하는 와중에도 밤 11시가 넘어가자, D에게서 불평 가득한 문자가 왔다. <오늘은 참다 참다 벽을 두들겼는데도, 그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섹스를 하고 여자는 더 크게 교성을 질러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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