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몸을 섞을 생각은 없었다. 헤픈 마음을 품고 그와 마주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왼쪽 가슴에 날카롭고 깊은 통증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살해되고 말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와 다시 볼 수 없어서 슬픈 건지, 내 사랑이 이런 식으로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 이별 후에 쏟아내는 말들은 들을 대답이 없다는 듯 휘휘 날리다 사라진다. 답은 어차피 알고 있었다. 

눈물을 참으려고 하면서 미간을 약간 찌푸렸나보다. 그는 손을 뻗어 그 주름을 만져주었다. 그 손끝이 너무나 따뜻해서 화가 났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온기란 애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것이었나 보다.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간을 타고 내려오며 콧날을 따라 입술을 더듬었다. 화가 난 마음으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것이 아슬한 경계를 깨버린 신호가 되었다. 그의 입술도, 입안을 파고드는 혀마저도 따스했다. 셔츠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움켜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때문에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담백한 사이, 물론 친구라고 하기엔 서로를 무성의 존재로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곁에 연인이 있다는 사실은 제자리를 지키게 만들었다. 제어를 해줄 만한 것이 해제된 상황, 그러나 앞뒤를 생각하지 않은 이런 충동적인 방식의 행위는 결론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를 밀어내지 못하는 마음, 체온과 살 냄새를 그리워하는 미약하고 굳건하지 않은 마음에도 화가 났다. 하지만 온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조금 더 강했다. 몸을 그에게 내맡겼다. 그의 행동은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어린 남자들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정성스러웠다. 스스로를 상처 내던 뾰족한 마음의 끝을 동그랗게 만들어주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품에서 안온함을 느끼는 것은 이상했다. 그러나 잘못하고 있다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바라고 있었다. 그 탐욕스러움을 이해했다는 듯 삽입하기 전 여자를 적당하게 흥분시키는 기술로써 누군가를 만지는 방식이 아닌, 겨울의 마음에 봄을 불어넣듯 온기를 전하기 위함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닫힌 눈꺼풀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마무리를 맺었다. 요요했다. 우리 둘은.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는 옷을 챙겨 입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나는 수분이 말라버려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선인장처럼 사막에 누워있는 듯 했다. 고요했고 눈물도 나지 않으니 잘된 일이었다. 

그때 벨이 울렸다. 열린 문 앞에 그가 서 있었다. 블루베리 라떼를 – 우울증 약처럼 기분이 처질 때면 마시곤 하는 그 음료를 내게 내밀었다. “그럼 푹 쉬어.” 그는 돌아섰다. 완벽하게 내게 딱 맞는 방식으로 위로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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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폐렴도 앓았던 터라 추운 날에는 찬바람도 쐬지 않고 감기 증상이 약간이라도 보이면 재빠르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스스로에게 질병계의 트렌드세터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이번에 유행하는 무시무시하다는 독감에는 기필코 걸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부단히도 노력을 했다.

하지만 독감군의 열렬한 사랑을 받으며 병원침대에 누워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아픈 걸까요?”라고 징징거리는 환자 코스프레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멍석말이를 당한 것 같은 근육통과 마치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릴 것 같은 고열에 시달리고 내장의 배열을 바꿔놓을 듯한 끊임없는 기침으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같은 병원을 다니다보니 선생님은 단호하고 명료하게 나에 대한 처방을 내려주셨다. “아무래도 현정씨는 사랑하지 않을 때는 면역성이 제로가 되는 여자인 것 같군요!”

연애 사건이 끝나면 실연한 나의 마음은 아무런 이유 없이 육체적 고통을 이끌어낸다. 그럴 때마다 병원을 찾게 되고 아픈 이유를 설명하다보면 연인과 헤어진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별을 스스로 말하는 일. 친구들에게도 미처 알리지 못한 사실을 의사선생님께 예행연습을 하듯 먼저 고백하는 것이다.

심인성이 원인인 위염이나 허리통증 같은 건 이별을 납득하고 내가 그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차도를 보인다. 하지만 다음 연애 사건 사이, 공백의 기간에는 나의 백혈구들은 파업 선언이라도 하는 것인지 바이러스성 질병이 퍼지면 어김없이 당첨이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신 의사선생님의 진단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네, 저는 사랑 없이는 시들어버리고 말거예요.” 의사선생님 앞에서는 다소곳이 그렇게 말했지만 병문안 와준 친구들 앞에서는 “정말이지,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섹스인 것 같아. 아무래도 좋은 섹스를 해야 이 빌어먹을 감기가 떨어질 것 같아!”라고 말해버렸다.

“맞아, 오메가3, 달맞이꽃기름, 비타민 그런 거 챙겨 먹는 것보다 정기적인 섹스가 훨씬 낫다니까.” 먹을 거 챙겨먹으면서도 짐승 남편 덕분에 결혼 3년차임에도 여전히 신혼생활을 즐기는 친구의 말에는 샘이 나고 말았다. “빨리 소개티잉~ 소개티잉~” 친구들 앞에서 스무 살에도 그러지 않았던 떼쓰기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자유방임과 스파르타식으로 단련된 우리의 우정은 ‘남자는 스스로 개척한다’를 기반으로 삼고 있기에 씨알이 먹힐 일이 없었다. “너, 아픈 거 맞구나.” 같은 반응이다.

"흥! 러브러브 파워! 에너지 충전! 이번 독감만 낫기만 하면, 내 목소리가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 사랑에 빠지고 말테니까! 면역성이 바닥치게 만들지 않겠어!" 나는 침대에 누워 소리쳤다. 콜록콜록 끊어지지 않는 기침이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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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연애 상담 요청 메일을 받을 때가 있다.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다독거림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정한 어조를 유지한다. 물론 아프게 쿠욱 쑤시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략의 짐작으로 경솔하게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최대한 그 입장을 헤아린 후에 하게 되는 따끔한 말이 있다.

그런 말이라도 진심을 담았기에 상대에게 납득이 된 것인지 돌아온 메일의 만족도를 보면 나쁘지 않은 연애 상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상담 후 진행되는 상황을 알려주며 관계를 잘 유지해나간다고 말해줄 때 정말이지 잠깐의 귀 기울임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가끔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도 사람이라 머리의 뚜껑이 열리며 증기가 뿌우하고 뿜어져 나온다. 상담이랄 게 없는 문제들을 내일 당장 지구 멸망이라도 오는 양 심각하게 물어오면 머리는 장식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이를테면 이런 사연이다. “여자 친구에게 키스를 하려고 다가가면서 이름을 불렀는데, 그게 하필 예전 여친 이름이었어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는 건가? 그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 조언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멍청함을 한껏 드러내놓고, 질문마저도 멍청하다니.

실수를 했다면 실수한 걸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대가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한다는 건 눈 앞에 펼쳐진 곤욕스러운 상황을 적당한 말로 대충 넘기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변명을 나보고 지어내달라는 말인가? 이건 상담을 요청하는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내게 메일을 보내기 이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말을 하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용서를 빌고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 ‘어떤’ 말이 그녀의 화를 풀어주는 키워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해답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사과를 했으니 당연히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하다. 상대에게 무한한 애정과 배려를 바라는 건 이기적이다. 이런 일로 헤어지자고 해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실수를 한 거란 걸 인지했으면 좋겠다.

물론 심각한 잘못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조차 해결할 방법을 자기 힘으로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연애하는 자신에게 만족하는 나르시스트일뿐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것 같아 상담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자신은 제대로 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툭 던지면 쉽게 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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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생운동이라는 건 명맥만 유지되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잘못된 사회에 목소리를 드높이며 투쟁하다 의로운 피를 흘리는 건 영광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런 이유로 운동권에 속한 사람들은 좀 더 정의롭고 진보적이며 바르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본인들도 그런 걸 내세웠다. 


그런데 의식과 지성을 갖췄다는 이들이 대학생활 내내 벌이는 연애 소동을 가만히 지켜보면 의아한 일투성이였다. 함께 서울광장에 나가 시위를 하고 돌아와서는 밖에서는 분명 동지였던 여자 친구의 자취방에 대자로 드러누워 아버지 세대 코스프레를 한다. ‘밥 차려와라’, ‘리모컨을 달라’ 원룸의 제왕이 따로 없었다.

다른 한쪽에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흉내를 내며 자유연애라는 이름으로 허랑방탕한 자신의 생활을 정당화했다. 성해방이 진보인 냥 여자 후배를 꼬드기고 부추겨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이 된 줄 착각하다 농간에 놀아났다는 진실을 알게 된 뒤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주기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열혈진보활동가로 이름을 떨치던 선배는 술 취한 후배를 동아리방에 가두고 몹쓸 짓을 하려고 시도하다 적극적 저항으로인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 운동권 동아리에선 ‘피 끓는 젊은 남녀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선배를 옹호하고 후배에 대해서는 행실이 나쁘다는 소문을 흘리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했다. 그 덕에 그 선배는 아무런 반성 없이 휴학했고 복학 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더 어리고 아리따운 후배와 연애를 했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 부분에서는 진보적으로 다른 부분에서는 보수적이거나 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영웅이 되어 달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대항하면서, 자신이 권력자로서 위치한 여성 문제에서는 그 힘을 마구 휘두르며 약자에게 상처 주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진보라고 말하면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힘의 남용과 억압이 존재한다면 너무나 뻔뻔스러운 자기기만이다. 

당신들은 진보라고 믿으며 지지하고, 세상을 바꿔보자는 당신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정치적 무관심에서 개안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그들의 힘을 빠지게 만든 사건에 대해서 내버려두면 조용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마라. 사람들은 당신들에게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포즈에 지나지 않는 사과 따윈 필요 없다. 어떤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의 목소리를 내게 하고 당신들을 비판하게 했는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여성에 대한 당신들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교정되거나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여러 가지 몹쓸 편견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 휘두르는 것이 가식 없이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삐뚤어져 있는 생각과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임을 안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조금씩 바꿔나가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런 행동들이 모여서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의 위치를 반성해야 한다. 항상 약자인 사람도 항상 강자인 사람도 없다.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착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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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신선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러 나왔을 때 그가 뒤따라 나왔다. “안녕.” 오늘 두 번째 인사. 무리지어 있을 때 나눈 형식적인 통성명과 첫 번째 인사와는 달랐다. 그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사심을 담아 건넨 인사였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안녕.”라고 답했다. 나쁘지 않은 목소리, 호기심에 가득 찬 동그란 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나에 대한 호감이 그의 바디랭귀지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특별히 할 말은 없어 애꿎은 신발 앞코로 바닥만 툭툭 치고 서 있었다. “춥지 않아?” 그러고 보니 목도리와 외투도 벗어둔 채로 나는 티셔츠에 얇은 카디건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모직 코트를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난 좀 걸을 건데.” 그는 조용히 따라 걸었다.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불이 꺼져있었고 모퉁이 편의점만 마치 다른 세상인 냥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둘이 걷다 후미진 골목을 발견 했을 때 그가 내 손을 잡고 골목 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움켜잡고 한참동안 웃었다. 그는 내 웃음이 멈출 때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기다려주었다. 

“웃을 때가 아닌데.” 그가 말했다. “이건 마치 중학교 때보던 순정만화 같은 전개잖아.” “그렇다면 다음 장면이 뭔지도 알겠네.” 물론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수줍어할 필요가 없었다. 피하거나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이것이 단순히 충동적인 장난이라고 해도 내게 이런 감각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동안 마음에만 집중하느라 몸의 즐거움은 거리를 두고 있었던 터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괜찮은 방식의 유혹이었다. 



나는 그의 티셔츠 앞자락을 움켜잡고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는 혀를 제대로 움직일 줄 알았다. 입술을 핥아주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고, 이와 잇몸을 자극하는 방법도 알았다. 키스의 강약중간약 조절도 훌륭했다. 입맞춤에 취해있던 정신을 제3자의 눈으로 보내 이 사태를 바라보게 했다. 

 

 


그 순간 그의 키스가 나의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종이 한 쪽에만 물감을 묻혀 접었다 펼친 테칼코마니같은 키스였다. 키스만으로 온몸이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약간의 자만심도 밀려왔다. 도발적인 키스에 어울리는 손동작은 그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가 터질 것처럼 단단해진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의 손이 카디건 사이를 파고들 때 그를 밀어냈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 번호를 남겨주었다. 바깥 공기는 너무 차가웠고 손끝은 부서질 듯 시렸다. 긴 키스를 나누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다음날 약간의 숙취를 느끼며 일어난 오후, 물의 기운을 빌리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오는 그 순간, 발신자에 낯선 열세 자리 번호가 떴다. “안녕?”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귀여운 목소리, 나는 플로랄 향 대신 머스크 향이 가득한 바디로션을 온몸에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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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발단은 사소했다. 문제는 카카오톡이었다! 동생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는데 처음 연락을 하면서 전화 통화가 아닌 카카오톡을 날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내가 동생을 병신으로 키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고 비읍시옷이라는 소리에 동생이 발끈하고 말았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생으로부터 스마트한 세상에 적응 못하는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까다로운 여자라는 맹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비방은 가볍게 쳐냈다. 나는 또래보다 스마트폰과 IT 기계에 대한 적응력과 활용도가 높았다. 얼마 전에 혼자서 스마트폰 루팅을 해낸 것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방어에 성공한 뒤, 공격 패를 꺼내들었다.

내 주변의 여자들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처음 말을 거는 소개팅남에 대한 반응과 개념 있는 남자들의 지지 발언을 수집하여 보여주었다. 동생의 비난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대인배인 나는 병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도 없는, 추임새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먼저 사과를 건넸고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다.   

하룻밤 만남도 스마트폰의 어플로 쉽게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채팅을 하는 것처럼 특정 장소와 특정 매개를 이용해 공을 들이던 것과는 달리, 일하는 도중에도 이동을 하는 동안에도 손쉽게 섹스할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의도가 명확한 메신저에서 찌질하게 굴지만 않는다면 섹스는 성사된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마당에 이용료가 전혀 들지 않는 메신저로 소개팅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할 것이다. 쉽다. 쉬운 게 문제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운명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다. 로맨스는 그 단어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료 메신저를 이용하는 것처럼 편리하고 쉽다. 그만큼 끊어지기도 쉽고 빠르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면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는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첫 만남을 하기 전에 서로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교환하고 만날 약속을 정할 때는 카카오톡보다 전화가 바람직한 게 아닐까? 당장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진실됨으로 상대에게 다가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룻밤 인연이 아니라 짝을 찾기 위해 소개팅을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내 번호를 알려줬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르는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안냐세요’라고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인사를 건네면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들까? 나름 잘 나온 사진으로 골라 넣어둔, 실물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카톡, 카톡, 카톡’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물어볼 게 많으면 전화 통화를 권하겠다.

적어도 첫 인사 정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중한 접근 방법이다.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올 때까지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못할 정도로 겁 많은 혹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남자라면, 만났을 때도 만족스러울 리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했을 때 쏟게 되는 정신적 에너지는 상당하다. 그렇기에 탐색 기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낫다.    

물론 카카오톡으로 보내오는 메시지만으로도 어떤 사람일지 예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메시지를 보내오는 타이밍이나, 반응속도, 이모티콘의 사용 정도, 화제를 꺼내는 방식이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한글맞춤법을 지키는 정도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목소리와 말투, 직접 대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과는 다를 수 있다. 전화할 용기는 없고 카카오톡이나 보내는 남자는 스스로 매력을 깎아 먹는 것이다.

특히 카카오톡은 친한 친구들과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에 관한 수다를 떠는 데 사용하고, 중요한 일은 문자나 전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구분 지어 사용하는 상대에게 카카오톡은 실례가 된다. 20대 초반의 어린이들도 아니고 나이도 들만큼 들어서 하는 소개팅의 첫 대화에 카카오톡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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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방명록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섹스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분께 답 메일을 보내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솔직하고 당당한 동시에 감성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연애나 연애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케이블에서 끊임없이 재방송을 해주고 있는 '섹스앤더시티'나 이번 분기 일본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를 보면 그런 마음이 더 부추겨질 것이다.

칼럼니스트가 되면 드라마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거라 꿈꿀지 모르겠지만 매체 하나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만으로 '지미추'를 신고, '디올'을 입고, '핫 플레이스'만 골라 다닐 순 없다. 근사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헤픈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헤프다는 근거가 될 순 없다.

섹스 칼럼니스트 대부분이 평균치의 경험과 평균치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과 주변의 사례를 잘 조각내어 각색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시켜 글을 만든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희대의 카사노바들이 섹스 칼럼을 써야할 것이다. 이 일에 필요한 것은 분석력과 통찰력 그리고 관찰력이다.

섹스를 많이 하고, 잘 하고,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못 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방어막을 치겠다는 게 아니다. 연애와 사랑, 그리고 남녀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섹스를 빼놓는다는 것은 팥이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섹스를 언급하는 것뿐이다. 오직 섹스에만 관심사가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섹스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남자들의 관심이 ‘글을 쓴다’가 아닌 ‘섹스’에 맞춰져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섹스’라는 말이 그들을 자극시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러나 그 과도한 관심이 불쾌한 사건을 유발시킬 때가 있다.

평소 내 글을 관심가지고 읽어주시던 분이 내 SNS 계정에 접속하고 팔로잉을 했다. 그 SNS 계정은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정체성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축구를 보면서 같은 팀을 응원하는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세컨드 계정이라고 밝혀두고 섹스에 대한 욕망을 쏟아내고 있던 그 분의 SNS와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 분이 나를 팔로잉하자, 그 분처럼 세컨아이디로 활동하는 분들이 대거 나를 팔로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접속을 했더니 팔로워들의 프로필 사진이 전부 노출된 성기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다른 축구팬 팔로워들이 이걸 보면서 뭐라고 생각했겠는가. 게다가 이딴 거 보고 싶은 마음 없었다. 그닥 예쁘지도 않고, 예술적이지도 않은 적나라하기만한 병적인 사진들을 보며 흥분할 여자는 아무도 없다. 한 명, 한 명 차단을 하며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하는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분도 악의적인 의도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SNS가 어떤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보았더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일 하나하나는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어떤 날은 문득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하는 회의를 품게 만든다.

물론 이 일을 시작할 때 내게 닥칠 수 있는 불쾌감을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겪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는 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오래도록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렇기에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분들은 자제를 부탁드린다. 서로 예의는 지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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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폐렴에 걸려 2주간이나 앓아누워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데이트를 소홀히 하고 나가놀지 못하는 일이 지속되었다. 결국 나는 욕구불만에 빠져버렸다. 나의 꿈들이 나에게 강력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돼!”


직업적인 이유로 다른 사람에 비해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도 아니기에 평소 건전한 방식으로 나의 욕구를 해소해오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지금까지 무의식에서 성적 욕망을 읽어낼 징후는 없었다. 잘생긴 배우나 섹시한 가수를 떠올리며 ‘그와 함께 하는 아주 야한 꿈을 꾸고 싶어요’라며 빌고 빌어도 꿈속에서 그들과 뒹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몹쓸 꿈들이 내 밤을 장악하고 있다. 셔츠를 찢어 탄탄한 가슴 근육과 선명한 복근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로 누나들을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그 아이돌이 꿈속에 등장한 것이다. 꿈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그와 단둘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얼마나 많은 누나들이 그를 욕망하는지 생생하게 느끼던 터라 이건 횡재다 싶어 꿈꾸기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워낙 경쟁력 있는 상대이다 보니 꿈에서도 그를 노리는 세력과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차지하겠다고 덤벼드는 다른 여자를 밀어내려고 애쓰다보니 정작 눈앞에 훌륭한 몸을 두고 아무런 진도도 나가지 못한 채 잠에서 깨버렸다.

그럴 거라면 꿈에 등장하지나 말지. 너무나도 선명하고 생생한 꿈이었기에 하루 꼬박 아쉬워하며 보내야했다. 꿈에서도 그런 몸을 안아보지 못한다니. 나의 기구하고 비루한 운명을 저주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꿈속에서 드디어 성교를 하고 말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그 대상이 인지되지 않는 그런 꿈이었지만 그래도 꿈에서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는 것이 흡족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그는 삽입을 하고 난 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사정도 없이 자신의 페니스를 빼버렸다. 그러곤 우리의 섹스가 다 끝난 것 마냥 내 옆에 누워 팔베개를 해주고 나를 안아주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섹스를 하고 나니, 네가 더 예뻐 보여.”와 같은 손발이 오그라지다 못해 사라질 것 같은 대사를 내뱉는 게 아닌가. 아니 우리가 언제 섹스를 했단 말인가. 나는 꿈이지만 너무 화가 나서 그의 얼굴을 한 대 퍽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평소 억압된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 꿈이라는데 섹스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꿈이라니!!! 결코 달갑지않았다. 아무래도 꿈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히스테릭하고 신경질적인 내가 툭 튀어나오기 전에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겠다. 오늘 밤! 난 꿈 따윈 꾸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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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는 그와 입을 맞추는 순간에 그의 셔츠가 아닌 벨트로 손을 뻗었다. 몸을 밀착시켰을 때 허벅지에 닿은 묵직함에 흥분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 정도로 과감했던 적도 없었다. 그의 몸에서 페니스란 항상 마지막에, 혹은 보지 않아도 된다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위였다.

희주는 오럴섹스에 대해 항상 부채감 같은 걸 품고 있었다. 그가 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한 적도 많았다. 마음의 변화를 느낀 건 그와의 섹스에서 얻는 심리적 만족감 때문이었다. "나를 이토록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면 그에게 상을 주고 싶어." 하지만 그때도 희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입 안으로 그를 느끼면서도 그 실체를 똑바로 쳐다볼 순 없었다. 그것을 핥고 빨고 깨물면서 이것은 오직 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숨을 쉬는 게 편치 않았고, 흘러나오는 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난감했다. 목 안 깊숙하게 들어오는 물건의 길이감도 적잖게 불편하다고 느꼈다. “오럴섹스를 할 때 입으로만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손도 거들어야 해. 한 손으로 자극을 주는 거지. 손으로 감싸 잡은 만큼 입 안에서의 길이감도 줄일 수 있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럴섹스는 역시 의무감이었다. 희주는 오럴섹스를 통해서 자신도 쾌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의 것을 입으로 애무하는 동안 그 역시 희주의 것을 애무하는 69체위는 한 번쯤 호기심에 해볼 순 있어도 그다지 좋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희주는 자신이 원하는 자극이 아니라면 오히려 자신이 하고 있는 오렐섹스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그의 한쪽 다리에 올라타서 그것을 입에 넣었다. 자극을 느낀 그는 몸을 살짝 비틀며 다리를 움직였다. 희주는 그 찰라 클리토리스에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희주는 그의 몸에 최대한 밀착한 상태에서 오럴섹스를 했다. 그의 미묘한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몸도 자극을 받는다는 걸 깨달았다. 희주는 그 강도를 스스로 움직임을 더해 조절할 수 있었고 그를 위해 오럴섹스를 하는 도중에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입 안에서도 만족감이 부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아동의 심리성적발달단계에서 입으로 모든 쾌락을 충족시키는 구강기가 자신에게는 이제야 발현되는 기분이 들었다. 희주는 더 이상 그의 분신이 무섭지 않았고, 오럴섹스가 어렵지 않았다. 벨트를 풀고 그의 팬티를 벗겼을 때 팽팽한 긴장감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녀석에게 “안녕?”이라고 안부를 묻는다. 희주는 그런 자신이 대견스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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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일정 기간 집중해서 충분하고 다양한 섹스를 경험하고 나면 어떤 섹스 앞에서도 초연해지는 면이 생긴다. 모험을 함께 한 상대의 성숙함 정도에 따라 섹스에 대한 호감도 그 기간 결정이 된다. 호불호가 어떻게 갈리든 섹스 자체의 즐거움은 무시할 수는 없다. 여자도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매력적인 남성을 보고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미혼 여성이 죄책감 없이 긍정적으로 섹스를 즐기는 방법은 연애 밖에 없다. 연애와 결혼 관계 이외에서의 섹스는 여자들에게 이중잣대로 평가된다. 그러나 연애나 결혼을 한다고 해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섹스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J는 여섯살이나 어린 대학 초년생의 남자친구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순진하고 순수하고 귀여운 면모에 반하고 저돌적으로 도전한 남자다움에 이끌렸다. 몸의 대화는 이르게 시작되었다. J는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래서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여섯 살 많던 예전 남자친구와 비교하면 에너자이저 같은 그의 체력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미숙하지만 열성적인 그의 성적 소망과 에로틱한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침대에서 벗어나려 하면 조금만 더 침대에 머물러 주길 바라며 자신의 몸을 만져주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침대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과도하게 많아졌다. 연애 초창기 햇살 아래 손을 꼭 잡고 길을 거니는 추억은 없었다. 둘은 습하고 비밀스러움만을 공유하고 있었다. J는 남자친구와 다른 것들을 함께 하길 유도했지만 모든 데이트는 서둘러 끝나고 둘만의 공간에서 섹스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J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둘이 집에 머물러 있다하더라도 섹스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거부권을 행사했다. 7번 즈음 못하겠다고 몸을 뺐을 때 남자친구는 무섭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섹스를 해주지 않으면 다른 여자를 만날 수밖에 없어.” J는 순간 욱해져서 그의 이마에 콩하고 쥐어박았다.

“유치하게 그런 소리를 내뱉는 걸 보니 대책 없는 어린이구나! 그런 이유로 우리 둘 사이의 신의를 포기하겠다면 나도 이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 세상의 여자친구들이 마스터베이션 대용이라도 된다고 생각해? 물론 한창하고 싶은 시기라는 건 이해하지만 연애 관계에서 내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면 넌 무얼 했니?”

연애나 결혼이 남자들의 섹스보장권이라고 생각하는, 그래서 여자친구가 있을 땐 당연히 자신의 성적욕구를 풀 수 있다고 믿는 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일이다. 하고 싶을 때 사회적 모순적인 상황 때문에 즐거움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하기 싫을 때도 응해줘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부당하다. 여성의 성적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 이 시점에 필요한 건 여성의 욕구를 이해할 수 있는 남자의 따뜻함과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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