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사귀었지만 게임을 하는 남자인 줄 전혀 몰랐어요. 활동적이고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남자였으니까요. 그런데 15일 이후 그는 완벽하게 골방폐인으로 변해버렸어요.” 12년 만에 출시된 '디아블로3'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여자친구들의 원망어린 목소리야 말로 지옥의 문을 열기에 충분해보였다.

 

“제대로 열 받게 만드는 건 뭔지 알아요? 그래도 섹스는 하려고 덤벼든다는 거죠. 5일 동안 제가 본 거라곤 퇴근하자마자 샌드위치같이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걸 사들고 와서는 안녕 인사하고는 모니터에 시선 고정된 그의 뒷모습이었는데 말이죠.” 아시아 서버가 열리지 않아 북미 서버로 옮기고 새로 캐릭터를 키우고 디아를 잡는 광경까지 뾰로통한 얼굴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잠들기 전에 삐진 나를 찔러보는 거죠. 미안하다며 ‘내일은 데이트하자’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은근슬쩍 섹스모드를 가동하는 거예요.” “너도 같이 해버려. 네가 더 열혈폐인이 되어서 ‘아 저런 모습은 한심해서 안 되겠다’라는 걸 보여줘”라고 조언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일이 체질이 아닌 녀석인데다가, ‘게임을 한다’라는 행동 자체보다 ‘게임에 밀렸다’는 것이 진짜 불만이므로 '디아블로3'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남자들의 사냥본능을 충족시켜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파괴본능에 충실한 게임에 정신줄을 살짝 놓고 매달릴 수 있단 말인가.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여자친구에게 “넌 스타보다 재미있어”라는 말로 사랑고백을 했다. 그걸 듣고 여자친구는 의아해했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 정도라면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창 레벨업을 거듭하며 악몽 단계에 들어선 '디아블로3'를 버리고 데이트를 할 정도라면 그 마음에 반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불만을 제대로 이해하는 남자들은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끝을 봐야 빠져나오지 않을까? 끝을 봐도 새로운 캐릭터를 키워야 할 테고 아마 한동안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참에 게임과 바람난 남자를 버리거나 ‘No date No sex’라는 구호를 걸고 투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 이미 지옥에 들어가 있는 남자들에게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흘러버린 시간과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컴퓨터 주변, 뻐근한 어깨와 허리에 붙은 군살 그리고 사랑스럽던 여자친구가 악마로 변해버린 광경 혹은 홀연히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 있는 여자친구를 보지 않으려면 과유불급! 아무리 마약 같은 '디아블로'라고 하더라도 캐릭터 컨트롤처럼 자신을 컨트롤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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