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하는 섹스, 특히 여자 둘에 남자 하나의 구성은 꽤 많은 남자들의 로망이다.
 
하지만 류가 자신의 쓰리섬 경험을 털어놓기 전까지 내게는 현실감이 부족한 일이었다.



“여자 둘에 남자 하나? 그런 섹스는 절대 안하지. 내 남자의 애정을 다른 여자랑 나누고 싶지 않다구.
게다가 고작 두 번 하고 나면 지쳐 나가 떨어지면서 어떻게 두 여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겠다는 거야?
두 여자가 한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거?
그건 포르노적 환상을 뛰어넘은 개굴개굴 개구라야.”


류는 '쓰리섬'에 대한 자기 취향은 확실했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
하룻밤에 두 번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자신의 옆에서 먼저 곯아떨어져 버리는 애인을 보며
언제나 말똥말똥한 눈을 한 채로 아쉬워하던 류였기에 자신에게 찾아온 쓰리섬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완벽하고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류의 사랑이 덧없이 끝나버리고 난 뒤,
류는 짧고 한정된 삶을 즐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다정다감하면서도 예쁜 얼굴을 가진 A가 류를 유혹했다.
A는 류가 호기심이 넘치고 충동적인 면이 있는 여자임을 간파했다.
몇 번의 섹스를 나누고 A는 자신의 친구 B를 류에게 소개시켜주었다.


A가 먼저 자리를 뜨고 B와 류만 단둘이 남았을 때, B는 류에게 키스를 했다.
B는 시니컬하기 짝이 없고 사랑 따위 믿지 않는 그런 남자였지만 굉장히 훌륭한 키스를 했다.
류는 그대로 B와 섹스를 했다.


“둘 다 여자를 다룰 줄 알더라구. 나쁘지 않았어. 그걸 알고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낯선 사람과 쓰리섬? 그건 결코 안 되지.
한 사람과 할 때도 마음에 안 들어서 짜증날 때가 있는데, 둘 다 그 모양이면 완전 엉망진창일 게 뻔하잖아.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순 없어.”



A와 B 그렇게 두 남자와 각각 관계를 지속하고 있던 어느 날,
류의 집에 그 둘이 와인을 몇 병 사들고 사이좋게 찾아왔을 때 류는 직감했다.
오늘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겠구나.
그들이 단순히 술 몇 잔 나누어 마시며 속 깊은 얘기나 해보자고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았다.

A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섹스를 하는 반면 B는 거칠고 격정적인 방식으로 류를 다루기에
그 둘의 강약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자신을 상대할지 내심 기대를 했다.


“둘이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는 걸로 봐서, 내가 처음은 아닌 것 같더라.
그 둘. 뭐랄까 안 해본 것 없이 여자를 너무 많이 안은 탓에 이렇게 자극적인 것으로 자신들을 몰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가여운 남자들이었지만 그런 허망한 섹스를 하면서도 기술은 좋아서 말야. 뭐랄까 나처럼 ‘애정 없는 섹스가 더 편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상대더라구.”



류는 포르노에서나 보던 체위를 자신이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좀 더 흥분했다.
한 남자와 섹스를 할 때 보다 몸의 구석구석까지 자극을 받았고, 류 역시 두 명의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몸을 좀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손을 쉬지 않고 놀리다보니 섹스가 끝나고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섹스를 하다 지쳐 잠든 적이 없는 류였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다.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쓰리섬'을 변태 플레이라고 뭐라고 하든 말든 지상 최고의 섹스였다고 자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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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사이에 우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 연애할 때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것이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기에 자연히 소원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혹은 본인이 연애를 하지 않을 때만 당장의 외로운 마음 달래보겠다는 심산으로 친한 척 연락을 하는 얄팍한 우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이웃사촌과는 한결같이 적당한 거리에서 친절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나갔다. 화장을 막 지운 민낯에, 앞머리를 올리고, 추리닝을 입은 상태로 맥주를 마시며 깔깔거리고 바보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울컥해서 우는 일도 가능했다. 동성 친구끼리도 그런 모습으로 과도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며, 이를테면 본인이 생각하는 ‘생애 가장 부끄러웠던 섹스’라는 주제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밥 먹을 사람이 없을 때 서로 불러내서 밥을 먹기도 하고,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맥주 한 잔을 청하기도 했다. 약국은 이미 닫은 늦은 밤, 파스나 밴드나 두통약 같은 것들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항상 이별하고 나면 며칠씩 앓아눕곤 하는 나를 위해, 혹은 병원에 입원한 그를 위해 병문안을 가는 것도 귀찮아 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주변에서는 쓸데없는 남자를 만나느라 시간 낭비 말고 옆에 있는 이웃사촌과 연애를 하라는 말도 듣곤 했다. 이성과 친구로 지낸다는 게 가능하느냐는 식이었다. 덩달아 내 동생도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남자친구들보단 나의 이웃사촌이 뭔가 더 매형 같고 좋다고 말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그는 소년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른스러웠고,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이고,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쉽게 우울모드를 가동하는 내게 엄격한 듯 하면서도 내 투정을 다 받아주고, 날 놀리는 듯 하면서도 적당한 위로를 해주는 꽤 괜찮은 남자였다. 대화도 잘 되고, 정치적 성향도 비슷하고, 음악 취향도 귀에 거슬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독특한 내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흔하게 만날 수 없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매력을 과신했던 당시엔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좋아하는 사이면서 관계를 우정에 한정해놓고 진전이 없는 그를 보며, ‘게이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적인 대화 방식에도 거부감 없이 잘 참여하고, 이해의 스펙트럼이 일반적인 남자들에 비해 확실히 넓었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 내가 그가 좋아하는 작고 귀여운 외형을 가진 여자가 아니고, 나 역시 그와 키스를 하거나 섹스를 하는 장면을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우정’의 상태로 지속 가능할 수 있었다. 새벽에 함께 술을 마시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알딸딸해져 술기운을 핑계로 스킨십을 시도하지 않는, 단지 옆에 있기 때문에 외로움을 덜어 주리라는 허튼 기대를 하지 않는 이 명료하고 명백한 우정은 남녀 간의 애정보다 더 강하고 튼튼했다.

하지만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듯이 이웃사촌은 유학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 지난주에 이사를 하고 본가로 돌아가 떠날 준비를 하는 그를 위해 송별회를 준비했다. 그렇게 즐겁고도 유쾌한 술자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그는 이제 나의 이웃사촌이 아니다. 칼럼 원고를 다 쓰고 남성적 시각으로 조언이 필요할 때 서슴없이 봐달라고 할 수 있는 친구, 연애를 하면서 좀 지질하다 싶은 하소연을 할 친구가 더 이상 곁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와 시간이 어쩔 수 없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그와 나누었던 3년간의 우정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한 적은 없지만, 어떤 좋은 섹스보다도 내게 큰 위안과 따뜻함을 주었던 그가 부디 자신의 꿈을 성취해 나가길, 나는 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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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빼먹지 않고 한 일은 등교하는 길에 만화방에 들려 순정만화 3~4권을 빌리는 것이었다. 소위 멀티가 가능했던 나는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보면서도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수업 중 필요한 대답을 추임새로 넣을 줄 아는 적극적인 학생이 교과서 뒤로 만화책을 읽고 있을 거라고 선생님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가끔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음소거가 되고 만화책 속에 빠져들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터프한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손목을 낚아채서 어디론가 끌고 나가다 마침 보이는 벽에 밀쳐놓고는 입술이 찢어지듯이 혹은 부르트듯이 둘 중 하나는 하게 될 듯한 거친 키스를 하는 장면이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ゲ-ムの名は誘拐), 히라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g@me의 한 장면



‘아, 이런 키스를 하고 싶어!’ 소녀의 마음 속 가득 울려 퍼지는 욕망의 음성만 귓가에 들릴 뿐이었다. 여기서 주의! 그렇다고 아무나 그래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이 키스의 전제조건은 나도 마음이 가는 상대인데,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원하고 있음을 표현해주는 방식으로서의 격함이지, 원하지도 않는 상대에게서 억지 키스를 받고 싶은 마음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알고 있다. 연애에 대한 쓸데없는 환상을 키워주는 순정만화의 폐해. 그러나 종이에서나 보던 그런 키스는 TV브라운관 속 드라마에서도 적극적으로 재생산되었다. 그렇다보니 스무살, 학교 기숙사에 모여 친구들과 키스에 대한 환상을 공유할 때에도 대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바로 그런 키스였다.

환상이 가득하고 혈기왕성했던 그 시절에 격한 키스 사고는 내게 생기지 않았다. 내가 만난 현실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소심남이거나 매너남이었다. 서로 좋아하고 있는 게 뻔한데도 계속해서 키스할 타이밍을 놓치는 것 때문에 오히려 내 쪽이 엄청 안달을 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 번도 키스를 해보지 않은 미숙한 상태에서 먼저 덤벼들긴 싫었다.

결국 어찌어찌하여 그와 키스를 하긴 했지만 몽롱하게 다리에 힘이 풀리며 뭔가 취한 듯 하면서도 짜릿한 키스가 아니라 다소 나의 환상과는 괴리가 있는, 수줍고도 밋밋한 무색무취의 물맛 키스였다. 결국 그 일로 말미암아 순정만화에서처럼 수동적으로 키스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먼저 키스하는 일은 쉬운 여자라서가 아니다. 키스로 상대를 조금 더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지 잘하고 못하고의 테크닉을 판단하는 건 아니다. 우선 내가 먼저 키스를 하고 싶을 정도로 섹시한 남자인가 하는 것. 경솔하게 키스를 남발하는 타입은 아니므로 나를 행동하게 만들었다면 그만큼 내 눈과 마음에 꽉 차는 남자란 의미이다.

게다가 내가 먼저 한 키스에 대해서 ‘가벼운 여자’라는 식으로 곡해한다거나, ‘꼬신 건 그쪽이니, 굳이 내가 책임질 필요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남자인지 아닌지 재빠르게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내가 먼저 키스를 했던 남자 중에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가야 했던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키스 후 관계 정립이 손쉽게 되었다. 내 남자 획득! 그래서 남자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용지로 키스를 자신있게 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싶지 않고, 키스를 했는데 ‘정말 어디서 배워서 이 모양이야?’ 라는 생각이 드는 남자랑도 연애는 할 수 없다. 키스할 때조차 이기적인 혀놀림을 하며 나와의 리듬을 맞추지 않는 남자라면 옷을 벗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게다가 자신만만해하며 먼저 키스를 시도하는 남자들이야 말로 위험할 수도 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의 순정만화적 환상을 간파하고 그것을 연출할 줄 아는 잘 트레이닝된 바람둥이일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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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방영된 '검사 프린세스', 종영 2회만을 남겨두고 서인우의 진심을 알게 된 마혜리는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 행동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지금 해줘’라고 애절하게 원하는 마혜리의 뺨을 쓰다듬어주던 서인우는 마혜리에게 키스를 한다. 키스를 하며 마혜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서인우의 팔이나, 서인우의 옷자락을 지긋이 잡던 마혜리의 손이나, 포개진 입술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혀의 움직임은 확실히 느껴지는 둘의 애틋한 키스를 연출한 방식 때문에 그 순간 저런 좋은 키스를 하고 싶어졌다. 부러우면 지는 것 같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키스를 한 적이 있었다.





H와 무슨 일로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뿌루퉁한 얼굴을 하고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상황이 불편하고 싫었다. 그래서 H에게 다가갔다. 아직 화가 안 풀렸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H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턱에 힘을 주고 완강히 거부하는 듯 했다. 나는 ‘나한테 화내지마, 미안해’ 그런 마음을 담아 아주 천천히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을 혀로 핥는 순간 그는 나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아 서로의 몸을 밀착시켰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키스는 서로를 먹어치울 것처럼 격렬해졌다. 15세 시청가의 트렌디 드라마와는 다른 진행. 담백하게 키스로 끝낼 제어장치는 없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섹스로 이어졌다.

섹스의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둘 사이에 있던 부정적인 긴장감은 확실히 사라졌다. 이래서 어른들이 부부는 싸워도 각 방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서로의 몸이 맞닿자, 가슴에 뭉쳐져 있던 감정 같은 것도 풀려버린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어색함, 나한테 화를 내고 있는 H를 보는 게 싫다는 이유로 우리가 싸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방안도 얘기하지 않고 그의 화를 풀어볼 요량으로 섹스를 한 건 완벽한 내 실수였다. H는 섹스 후 그 문제도 함께 종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섹스를 화해의 전략으로 사용하는 건 결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고 말았다.

H에게는 내가 먼저 달려들었지만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가 화를 내면 다짜고짜 달려들어 섹스를 하면 풀린다고 생각하는 몇몇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상한 기분을 달랠 수는 있을 것이다. 앙탈을 부리면서도 자신의 몸을 사랑해주는 연인의 손길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눈치껏 잘 해야 한다. 아직 화도 제대로 안 풀려서 정말 싫고 미워죽겠다의 감정 상태인데 섣불리 들이대다간 관계만 더 악화시킬 뿐이다.

연인 사이든, 부부 사이든 싸우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서로의 속마음과 문제 상황을 알아차리고 오해나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난 뒤의 섹스는 오히려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만들고 행복감을 더해줄 것이다.

그러나 싸움 후에 섹스로 둘 사이의 문제를 얼렁뚱땅 대충 넘어가고자 하는 건 결코 훌륭한 방법은 아니다. 섹스로 서로 거칠어진 마음에 보습을 했다면 싸운 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안하다는 의미가 담긴 키스, 화해의 섹스는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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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친구와 카페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녀석이 물었다. “안 한 지 얼마나 됐어?” 응?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입모양으로 ‘섹스’라고 했다. 으흠, 안 한 지 얼마나 됐지? 바로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다리털을 밀지 않은지도 꽤 되었잖아.

이건 싱글 생활을 즐기는 게 아니라,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금욕 생활을 하는 셈이었다. 그 질문이 뭔가 자극이 되었다. 연애를 안 하고 있다고 섹스리스하게 지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일주일이면 일곱 번은 해야 해!’ 라고 하던 섹스에 대한 열정은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무성인간처럼 지내고 있었다. 섹스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누구와?’ 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클럽에 가서 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럴 때 섹스할 수 있는 담백한 남자인 친구도 없었다. 역시 문제는 상대를 찾는 것이었다.

고민만 하다 기분을 전환하려고 미용실을 찾았다. 내 머리를 맡아주는 원장은 키는 좀 작지만 아이돌처럼 예쁘장하게 잘 생겼다. 1년 정도 꾸준히 이 미용실을 다녔고, 피트니스까지 같은 곳에 다니기에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는데 그날 따라 원장은 내 근황을 궁금해 했다.

요즘은 내 방 창문 앞에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창문 앞에 가서 ‘냐옹~’ 하고 울면 밥을 주냐고 물어봤다. ‘귀엽구나. 영업을 좀 잘 하시네’라고 생각하곤 그냥 웃었다.

그런데 그날 밤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 받자마자 ‘냐옹~’하고 우는 목소리. 고객카드에 써놓은 번호를 보고 전화를 한 미용실 원장. 집 근처에 있다며 자기도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고 했다. 하하, 고객카드에 집 주소도 적었었지. 이 늦은 밤에 예상치 못한 남자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고 보니 섹스에 대한 나의 강한 열망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인가 싶어 마음의 문도, 내 방의 문도 열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소위 작업남들이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쓸 만한 모성애를 자극하는 사연을 이야기하고, 보기와 다르게 여자에 별 관심도 없고, 섹스에도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바람둥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엿보였다.

하룻밤 섹스만을 위한 거라면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관심과 호감을 그쪽에서 먼저 표시했으니 못 이긴 척하며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는 팔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근사한 문신도 가지고 있었다. 문신있는 남자와 해보고 싶었던 나의 욕망도 채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와 입을 맞추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키스테크닉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이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진도를 나가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미용실 원장을 문 밖으로 내쫓고 말았다.

저절로 굴러들어온 호박을 넝쿨째 차 버린 이 사건으로 친구 녀석에게 한동안 구박을 받긴 했지만 그때 내 머리 속에서는 ‘배고플 때 쇼핑하는 게 아니다’ 혹은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의 경고가 머릿속에 가득 울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틀은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3일째 되는 날부터는 잘 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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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가 한 번의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했다고 상상하면 끔찍하게 싫다. 그럼에도 결국 남녀간의 데이트에서도 남자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느냐에 따라 잠자리 가능 여부가 판가름 난다.

남편과 워커힐 벚꽃축제에 간 D는 4만 5000원이나 하는 샌드위치 세트를 산 뒤 남편의 구시렁거림을 들어야 했다. D는 새침하게 “나랑 데이트할 때였으면 그랬겠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D의 남편은 “그때였다면 45만원에 W호텔 방을 잡았겠지. 파산할까봐 결혼했다”라고 답했다.

농담처럼 주고받은 말이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한 번의 섹스를 위한 남자들의 고단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남편은 D와 데이트를 하면서 두 달 만에 300만원을 모아두었던 적금 통장을 탕진했고, 야근수당으로 카드 연체를 막아야했다. 그러곤 세 번째 여행을 떠나서야 겨우 첫 섹스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D는 비용을 지불한 것이 아까울 것 없는 방중술에 능통한 타고난 요부형 여자였기에 남편을 천국으로 인도했다. D같은 여자는 잭팟이나 마찬가지! 데이트가 아닌 서로의 목적에 부합한 원나잇이라 하더라도 술 좀 사주고 공을 들여 꼬드긴 예쁜 언니가 호텔 침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보단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란 식으로 가만히,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을 확률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룻밤이든 애인이 되어 여러 밤을 보내든 섹스에 지불하는 남자들의 비용은 만만치 않다. 괜찮은 얼굴과 성격으로 돈도 제법 벌고 있지만 그 돈을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마음먹은 이상, 여자를 사귀면 새어나가는 돈이 많다는 이유로 연애는 안 하기로 마음먹은 청춘들을 몇 안다.

사랑이 아니라 단지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야겠다는 마음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여성'을 찾는 것이 오히려 비용절감뿐만 아니라 수익을 획득하지 못한 노력에 대한 손실도 막아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게다가 데이트 상대에게 자기 취향의 섹스를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화대를 지불하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그 질이 보장된다.

남자들이 하루 데이트에 30만원을 쓰는 것이 ‘오늘 밤 섹스를 하겠노라’는 엉큼한 생각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섹스라는 것에는 동의하리라 믿는다. 물론 남자에게도 감정적인 교감이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진 않겠다. 매매로 이루어진 섹스는 건조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도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즉각적으로 여자를 사는 형태가 아닌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이중 잣대 때문에 섹스의 비용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잠자리를 하고 그 뒤에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지만, 섹스가 쉬운 여자는 헤어지기도 쉬운 여자. 머리보단 아래에서 반응이 먼저 오는 여자는 결국 결혼상대로는 적합하지 않은 여자라는 식의 판단. 남자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여자들의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쉽지 않은 여자가 되려고 한다.

D 역시 가볍게 연애를 하거나, 하룻밤 즐기고 끝낼 남자에게 가혹할 정도로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결혼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상대였기에 ‘쉽지 않은 여자’ 전략을 펼친 것이고, 그만한 투자를 했음에도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를 불안감을 갖게 만들어 결혼만이 답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남자들이 섹스를 즐기는 여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자기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똑똑한 여자들이라면 쉽게 옷을 벗어던지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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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토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남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배려 없는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보여줘야겠더라. 그래서 ‘우리도 한 번 찍어볼까?’라고 제안을 했더니 아주 신나서 덥석 물더라.” 삽입하고 한 시간이 넘도록 사정을 못하는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던 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디오 촬영을 감행했다. 애인에게 ‘넌 너무 오래해!’라고 말해서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간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우리의 섹스 풀타임을 담은 동영상을 같이 보는데 한 시간 동안 계속 ‘해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와 나 잘한다. 죽이는데’하면서 감탄만 하더라. 자기 아래에 누워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며 진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더라니까.”

한 번 할 때마다 그곳이 쓸려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처음에는 ‘애정’으로 참아왔던 B는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길게 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그 남자와는 더 이상 연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B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 편이었다. 평생 남자라곤 모르고 살다 결혼을 하고 첫 섹스를 하게 된 K의 지인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한 시간 즈음 하는 걸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녀에게 섹스란 고통이며, 오르가슴이란 미디어가 만들어낸 거짓부렁일 뿐이었다. 남편이 다가오면 질끈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 시간만 참자’라는 의무감으로 버텼다.

어디 가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꾹꾹 참고 지내다 K에게 겨우 그 사실을 털어놓았고, K는 그것도 일종의 병이라고 병원치료와 부부 상담을 병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했다. K의 지인은 남편에서 조심스레 그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남편은 버럭 화를 내더니 ‘자신은 정상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길게 못해서 난리인데 복에 겨워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그런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 자신의 아내와 결혼도 안한 주제에 남의 부부 사이에 오지랖 넓게 참견한 K까지 싸잡아 욕을 해댔다고 한다.


짧게 하지 않으면 잘하는 거다? 그건 남자들의 대단한 착각이다. 한 시간 내내 삽입하고 피스톨 운동만 계속하면 여자 입장에서는 흥분도 가라앉고 질도 건조해진다. 너무 민감한 것도 탈이지만 너무 둔한 것도 문제다.

토끼처럼 튀어버리는 남자라면 차라리 미안함이라도 느끼고, 여자의 마음을 달래보려고 전희나 후희에도 공을 들인다거나 섹스 이외의 것으로 만회해 보려는 노력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여자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도 모른 채 길게 하는 남자(여자의 기쁨을 위해 사정을 참으려고 노력해서 그런 것도 아니면서), 도리어 그걸 잘한다고 믿고 있는 남자는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

빨리 사정해버리는 조루의 경우에도 남자들은 병원 가길 꺼려하지만 지루는 더욱 문제될 게 없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물론 비뇨기과를 찾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주어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라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그건 명백한 문제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의학의 힘을 빌려 고칠 수 있는 것이라면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섹스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동안 누워 ‘대주고’ 있는 느낌 밖에 받지 못하는 여자는 어디에서 섹스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과유불급. 적당한 게 제일 어렵지만 제일 좋은 것이다.









나이 어린 남자친구를 갖는 것. 이것은 나를 제법 능력있는 여자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남자들이 젊고 예쁜 트로피 와이프를 가지는 것과 다른 능력이다. 내가 가진 경제력이라는 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제력이 아닌 또 다른 매력, 나이 차도 제법 많이 나는 어린 남자를 사로잡은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동시에 나를 근사한 여자라고 생각해준다.

그런 주변의 반응을 느낄수록 어린 애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보다 근사한 건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계, 영계’하며 나이 어린 여자만 찾아대는 나이 든 남자들보다 훨씬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눈으로 현혹되기 쉬운 것보다는 다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줄 아는 남자, 그게 바로 그였다.

아무리 내 나이보다 두세 살은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나이에서 나를 바라보면 피부 탄력이 예전 같지 않은 ‘아줌마’, ‘골골대는 늙은 누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스무 살인 내가 예비역을 보며 촌스러운 ‘아저씨’, ‘공감대 형성이 안 되는 나이 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여자로 봐주었고, 순수함이 꽤나 훼손됐지만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다. 그는 사회적 경험의 수치는 낮았지만 정신적 성숙도는 내 또래의 남자들을 가볍게 능가한 상태였다. 어리다는 것은 생물학적 척도일 뿐이었지만 ‘어린데도 불구하고 이럴 수 있다니’. 그의 배려와 훌륭한 성품 때문에 어리다는 사실 자체도 미덕이 되었다.

특히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해 고마워할 일이 생겼다. 지난 주 금요일, 회식을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3차로 클럽을 가게 됐다. 피부가 애기처럼 뽀얗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귀여운 남자애가 우리 주변에서 춤을 추더니 나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누나, 그런 건 상관없고 말야. 가끔 만나서 나 밥 좀 사줘요”하는 거였다. 아, 두통. “누나~”라고 애교를 부리면 세상 누나들이 자신에게 다 녹을 거라 믿는 저 근거 없는 자신감과 개념없는 모습 덕분에 나이 어린 내 애인은 가치가 더욱 급상승했다.


 

바람직한 연하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애쉬튼 커쳐와 데미 무어. 무려 15살 차이.
아무리 전신성형까지 마친 데미 무어라지만, 아들과 엄마 같이 나온 사진이 대부분이라 사진 고르는데 애먹었다.
the 70's SHOW의 꼴통 마이클 켈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 이토록 완벽한 연하남이라니.





연하와 데이트를 하거나 사귀는 것이 지금에와서 유별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 이런 저런 각자의 이유로 연하남과의 연애를 더 선호한다. 섹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금방 지치는’이 아닌 ‘금방 다시 서는’ 한 살이라도 어리기에 가능한 체력을 사랑하는 누나들도 있다.

긴장의 연속이자 정치적 권력 다툼 속에서 밥그릇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업군의 누나들은 연애 관계에서는 자기 말이라면 무조건 잘 따르고, 자신을 존중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어린 남자를 택하는 게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 소녀같은 누나들은 나이가 들수록 매번 더 나이가 어린 남자들과 연애를 하기도 한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아직은 순진하고 순박한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누나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한 영악한 연하남들도 생겨난다. 누나를 그저 자신을 사육해주고 보살펴줄 작은 엄마 즈음으로 생각하고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서로 필요하는 바가 일치한다면 성인 두 남자가 어떤 관계를 맺든 각자의 선택이지만, 어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순수함을 기대할 수 없는 ‘순수의 시대’는 아주 오래 전 퇴색된 듯한 이런 세태에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러나 내 어린 남자친구는 색 바랜 순수에 핑크빛을 번지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에게서 크나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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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는 대학가의 원룸촌에 살고 있다. 원룸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D가 사는 건물도 방음에 취약하다. 그렇다보니 옆방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주거환경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D는 이른 아침부터 “Oh~Oh~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많이많이 해.” 오빠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보겠다는 소녀들의 교태로운 목소리에 잠을 깨야한다. 옆방의 알람소리 때문에 새벽 3시에 잠든 D가 6시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의 목소리는 10분마다 꼬박꼬박 6번을 울리고 나서야 옆방 남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알람을 끈다.

야행성 인간인 D는 반복되는 알람소리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알람소리는 본인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들려오는 옆방 남자와 그의 여자 친구가 정사를 벌일 때 들리는 생생한 사운드까지 참아야 하는 것인지 D는 반문했다. 특히 옆집 남자의 여자 친구가 내지르는 너무도 선명한 교성.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을 정도로 그 소리는 지나치게 높고 간드러졌다.

D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내가 사는 원룸이 영국 뉴넘 칼리지의 기숙사라도 되는 것 같아. 옆방 남자에게 벽이 매우 얇으니 ‘야간 행동’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e메일이라도 보내야 할까봐.” 옆방에서 들려오는 사랑을 확인하는 동시에 성욕을 채우는 행위 자체는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여자의 꾸며낸 게 분명한 교성 소리는 너무나도 거슬린다는 것이다.

D는 그것이 가짜가 아닐까 의심했다. “'가짜'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매끄럽고 규칙적인 교성을 지를 수가 있는 거지? 지나치게 깔끔한 것, 규칙적인 것, 아름다운 것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옆방 남자는 여자의 뻔한 교성에 속아 넘어가겠지. 멍청한 녀석 같으니!”

D와 나 역시 섹스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니므로 “이웃을 배려해서 음소거 상태로 섹스하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와 같은 매체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날것 그대로의 상태보다 연출된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고 있음으로, 적당히 연출된 어느 정도의 신음소리는 섹스할 때 흥을 돋우어 준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겨운 섹스 앞에선 스스로 기분을 내볼 요양으로 평소보다 좀 더 교태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걸 방음이 안 되는 집에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서 괴로워할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임에 분명하다. 옆방 남자와 여자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랑에 빠져있는 것일까?

옆방 남자의 여자 친구는 AV의 여배우처럼 과장된 소리를 내면 남자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잘못된 성지식에서 비롯된 강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둔감한 D가 듣기에도 진실보단 거짓에 가까운 신음소리라면 그 남자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옆방 남자도 여자 친구의 신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건지 어떤 건지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 것보단 반응이 있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방음이 잘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옆방으로 소리가 넘어가게 내버려둠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난 이 여자를 이렇게 만족시키고 있어!’하며 자기 과시를 하는 타입의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생각과는 반대로 어쩌면 누구보다도 여자 친구의 교성을 곤란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옆방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서 여자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인지도.

옆방 남자와 여자에 대한 정답 없는 추측을 하는 와중에도 밤 11시가 넘어가자, D에게서 불평 가득한 문자가 왔다. <오늘은 참다 참다 벽을 두들겼는데도, 그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섹스를 하고 여자는 더 크게 교성을 질러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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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타자만 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는 홈런 친 타자가 받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야구는 투수의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거죠.”

S는 스무 살 때부터 술자리에 남자가 한 명이라도 끼게 되면, 시시각각 돌발적으로 주제가 바뀌는 여자들의 수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나 자동차, 심지어 아직 출시되지 않은 IT제품에 대한 화제를 슬쩍 던지곤 했다.  그러면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을 잡은 것마냥 S가 이끄는 대화의 세계로 따라 들어오곤 했다. 구원 받은 그는 S처럼 말이 통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복하고 그것은 곧 호감으로 발전되곤 했다.

S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S는 그 인기를 누리면서도 어느 누구의 고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S는 야망이 큰 여자였다. 복잡한 화살표가 얽혀 있는 캠퍼스 내에서 연애할 마음은 없었다.



S는 졸업 하자마자 야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여자 신입이라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S는 눈에 띄지 않게 관찰자 모드를 유지했다. 대신 카페에 올라온 회원 소개란을 꼼꼼하게 읽었고 사진을 찾아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괜찮은 남자 리스트를 뽑아놓고, 야구 관람 정모 때 그들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몇 번의 정모 활동 이후 S는 한 명의 남자를 집중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잠실 근처에 자신 소유의 한의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자들이 혹할 만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야구광인 덕분에 간만 보여주다 공식적인 연애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가여운 남자였다.

S는 웬만한 남자 못지 않게 야구 룰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도 너만큼 잘 알고 있다' 작전은 쓰지 않기로 한다. '야구 아는 여자' 순간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다 알고 있다면 야구를 관람하면서 대화할 일 없이 그냥 경기만 보게 될 게 뻔했다. S는 야구 초보인 듯 그와 함께 야구 관람을 하며 룰을 하나하나 배우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에게 그녀보다 우월한 지위를 줌으로써 그녀를 보살펴주고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다.

"다음 타자는 번트를 노릴지도 모르겠네요." S의 적절한 상황 판단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까 번트·볼넷 그리고 데드볼 설명해주셨잖아요. 지금 노아웃 상태에 두 명이 출루해있으니 번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야구 관람 도중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재빠르게 응용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 S. 가르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호감도를 급상승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진 대사였다.



지난 14일은 화이트데이거나 일요일이기 이전에 잠실구장에서 두산과 LG의 시범경기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대략 1만 8000명의 관중이 외야석까지 꽉 들어차서 역대 시범경기 중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그리고 꽤 많은 커플들이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는 결혼 3년차인 S와 한의사 남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전략적 접근이긴 했지만 그 둘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사이좋은 커플이었다.


실제 연인 사이인 배우 윤진서와 야구선수 이택근. 게스 언더웨어의 “FANTA-G” 프로모션 화보 컷

 

 

여성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의 데이트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기,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기, 근사한 자동차를 타고 한적한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 하기. 그렇게 분위기 잡고 앉아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남자는 고삐에 묶인 송아지마냥 답답증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를 위해서 신상 구두와 연예인 가십에서 벗어나 남성이 좋아할만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데이트도 그가 좋아할만한 코스로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PC방의 커플 좌석이나 당구장에서의 데이트. 배려가 넘치고 센스 있는 여자로 보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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