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방영된 '검사 프린세스', 종영 2회만을 남겨두고 서인우의 진심을 알게 된 마혜리는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 행동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지금 해줘’라고 애절하게 원하는 마혜리의 뺨을 쓰다듬어주던 서인우는 마혜리에게 키스를 한다. 키스를 하며 마혜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서인우의 팔이나, 서인우의 옷자락을 지긋이 잡던 마혜리의 손이나, 포개진 입술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혀의 움직임은 확실히 느껴지는 둘의 애틋한 키스를 연출한 방식 때문에 그 순간 저런 좋은 키스를 하고 싶어졌다. 부러우면 지는 것 같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키스를 한 적이 있었다.





H와 무슨 일로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뿌루퉁한 얼굴을 하고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상황이 불편하고 싫었다. 그래서 H에게 다가갔다. 아직 화가 안 풀렸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H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턱에 힘을 주고 완강히 거부하는 듯 했다. 나는 ‘나한테 화내지마, 미안해’ 그런 마음을 담아 아주 천천히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을 혀로 핥는 순간 그는 나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아 서로의 몸을 밀착시켰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키스는 서로를 먹어치울 것처럼 격렬해졌다. 15세 시청가의 트렌디 드라마와는 다른 진행. 담백하게 키스로 끝낼 제어장치는 없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섹스로 이어졌다.

섹스의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둘 사이에 있던 부정적인 긴장감은 확실히 사라졌다. 이래서 어른들이 부부는 싸워도 각 방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서로의 몸이 맞닿자, 가슴에 뭉쳐져 있던 감정 같은 것도 풀려버린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어색함, 나한테 화를 내고 있는 H를 보는 게 싫다는 이유로 우리가 싸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방안도 얘기하지 않고 그의 화를 풀어볼 요량으로 섹스를 한 건 완벽한 내 실수였다. H는 섹스 후 그 문제도 함께 종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섹스를 화해의 전략으로 사용하는 건 결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고 말았다.

H에게는 내가 먼저 달려들었지만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가 화를 내면 다짜고짜 달려들어 섹스를 하면 풀린다고 생각하는 몇몇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상한 기분을 달랠 수는 있을 것이다. 앙탈을 부리면서도 자신의 몸을 사랑해주는 연인의 손길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눈치껏 잘 해야 한다. 아직 화도 제대로 안 풀려서 정말 싫고 미워죽겠다의 감정 상태인데 섣불리 들이대다간 관계만 더 악화시킬 뿐이다.

연인 사이든, 부부 사이든 싸우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서로의 속마음과 문제 상황을 알아차리고 오해나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난 뒤의 섹스는 오히려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만들고 행복감을 더해줄 것이다.

그러나 싸움 후에 섹스로 둘 사이의 문제를 얼렁뚱땅 대충 넘어가고자 하는 건 결코 훌륭한 방법은 아니다. 섹스로 서로 거칠어진 마음에 보습을 했다면 싸운 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안하다는 의미가 담긴 키스, 화해의 섹스는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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