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친구와 카페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녀석이 물었다. “안 한 지 얼마나 됐어?” 응?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입모양으로 ‘섹스’라고 했다. 으흠, 안 한 지 얼마나 됐지? 바로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다리털을 밀지 않은지도 꽤 되었잖아.

이건 싱글 생활을 즐기는 게 아니라,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금욕 생활을 하는 셈이었다. 그 질문이 뭔가 자극이 되었다. 연애를 안 하고 있다고 섹스리스하게 지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일주일이면 일곱 번은 해야 해!’ 라고 하던 섹스에 대한 열정은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무성인간처럼 지내고 있었다. 섹스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누구와?’ 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클럽에 가서 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럴 때 섹스할 수 있는 담백한 남자인 친구도 없었다. 역시 문제는 상대를 찾는 것이었다.

고민만 하다 기분을 전환하려고 미용실을 찾았다. 내 머리를 맡아주는 원장은 키는 좀 작지만 아이돌처럼 예쁘장하게 잘 생겼다. 1년 정도 꾸준히 이 미용실을 다녔고, 피트니스까지 같은 곳에 다니기에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는데 그날 따라 원장은 내 근황을 궁금해 했다.

요즘은 내 방 창문 앞에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창문 앞에 가서 ‘냐옹~’ 하고 울면 밥을 주냐고 물어봤다. ‘귀엽구나. 영업을 좀 잘 하시네’라고 생각하곤 그냥 웃었다.

그런데 그날 밤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 받자마자 ‘냐옹~’하고 우는 목소리. 고객카드에 써놓은 번호를 보고 전화를 한 미용실 원장. 집 근처에 있다며 자기도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고 했다. 하하, 고객카드에 집 주소도 적었었지. 이 늦은 밤에 예상치 못한 남자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고 보니 섹스에 대한 나의 강한 열망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인가 싶어 마음의 문도, 내 방의 문도 열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소위 작업남들이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쓸 만한 모성애를 자극하는 사연을 이야기하고, 보기와 다르게 여자에 별 관심도 없고, 섹스에도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바람둥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엿보였다.

하룻밤 섹스만을 위한 거라면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관심과 호감을 그쪽에서 먼저 표시했으니 못 이긴 척하며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는 팔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근사한 문신도 가지고 있었다. 문신있는 남자와 해보고 싶었던 나의 욕망도 채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와 입을 맞추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키스테크닉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이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진도를 나가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미용실 원장을 문 밖으로 내쫓고 말았다.

저절로 굴러들어온 호박을 넝쿨째 차 버린 이 사건으로 친구 녀석에게 한동안 구박을 받긴 했지만 그때 내 머리 속에서는 ‘배고플 때 쇼핑하는 게 아니다’ 혹은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의 경고가 머릿속에 가득 울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틀은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3일째 되는 날부터는 잘 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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