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했던 첫 키스들을 한 번 떠올려봐. 생애 처음으로 했던 키스 말고,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과 처음으로 했던 키스들.” 두서없고 갑작스러운 요청에 나는 본론을 말하라고 다그쳤다. “나의 경우에 처음 하는 키스에서 다들 하나같이 침을 잔뜩 묻혔어. 내가 까다로운 게 아니야. 키스를 하며 얼굴에 침이 묻는 걸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니?”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긴장해서 그랬나보지.”

 

“그럴 땐 키스하던 그의 얼굴을 잡고 살짝 밀어내. 그리고 다가오지 못하게 그의 어깨를 한쪽 손으로 밀어 지탱하고 있어. 그러고 나선 다른 손으로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내. 물론 팔로 스윽 성의 없게 문질러버리면 NG!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예를 들면 한 때 유행했던 아이돌의 춤사위처럼 섹시하게 손가락 몇 개로 얼굴을 쓸어내는 거지.”

 

시선은 그에게 고정시킨다. 이때 손톱색이 와인이나 블랙 계열이라면 새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뤄 시각적으로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런 상태에서 얼굴로 가져간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인다면 남자들은 넋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제 엉망인 키스를 교정해야겠지. 주인을 보고 달려와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신없이 핥아대는 강아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걸 가르치는 거야. 도도한 고양이처럼 천천히, 꼼꼼하게 그러면서도 장난스러운 키스를 네가 보여주는 거야. 멍청한 녀석이 아니라면 상대가 받고 싶은 걸 자신에게 해준다는 걸 눈치 챌 거야.”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다가오지 못하게 밀어내면서 공을 들인 키스를 선보여야 한다. 혹여나 침이 그의 얼굴에 묻게 되면 손가락으로 닦아주면서 침이 범벅된 키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가 흥분해서 네게 달려들려고 해도 네가 원하는 방식을 충분히 보여주기 전까진 그가 네게 키스하지 못하게, 네가 하는 키스를 가만히 받고 있게 만들어.”
 

“키스 실력도 랜덤인 거지만 말야. 왜 나만 이렇게 키스를 못하는 애들을 만나는 거야?” 그녀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마지막 투정을 부렸다. “잘 생각해봐. 경험이 별로 없는 어린 애들은 제외하고, 두 번째 키스에서도 그렇게 침을 바르는 남자들이 많았어?”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두 번째 키스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대로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

 

“남자들이 그러는 거, 난 수컷의 영역표시라고 생각해. 아마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어.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러는 건 아니지만, 나도 돌이켜보면 꽤 많은, 그것도 경험도 충분한 남자들이 처음 하는 키스에서 내 입 주변을 침 범벅으로 만들곤 했어. 편하게 생각해. 잘 못하는 건 가르치면 되는 거고, 고쳐지지 않고 불쾌한 행동을 계속 한다면 다른 남자를 만나면 그만이야.” 그녀는 진심으로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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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일교차가 커져 차가워진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역시 이 치마인건가?’라고 생각했다.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할 수는 없었다. 아직 잠든 그를 내버려두고 먼저 나왔다. 택시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빛을 받아 강물은 반짝이고 있었다. 여자의 블랙 새틴 스커트처럼 매끄러워보였다.

 

여자의 치마는 무릎까지 내려왔지만 튤립 모양이었기 때문에 앉을 때는 허벅지가 살짝 드러났다. 엉덩이는 풍만하고 다리는 길어보이도록 만들어진 치마였다. 같은 소재의 딱 붙는 블라우스와 함께 입었을 때 여자의 몸은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인지 이 치마를 입고 출근한 날이면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 직원들의 눈빛이 흔들린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자가 퇴근하고 한 잔 할래요? 라는 말을 했을 때 사양하는 남자는 없었다.

 

여자는 호기심이 강했다. 이 남자랑 자보면 어떨까? 하는 은밀한 상상은 무료한 직장생활을 버티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몇 번의 연애가 끝나고 나니 결국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지겨워지기 위해서 하는 소모적인 행동 같았다. 여자는 연애보다는 섹스를 즐기기로 결심했다. 서로가 생동감 넘치게 궁금할 때 자보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진 않았다. 여자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질 생각도 없었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 서로의 몸을 맞춰가는 기간 같은 건 원하지 않았다. 옷을 벗었을 때 그의 반응과 태도가 궁금할 뿐. 섹스가 반복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적절한 상대를 선별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관계를 복잡하게 생각할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갈 사람들을 골랐다. 자신이 열린 태도를 갖추었다는 걸 교묘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잘 알았다. 그럴 때 여자의 치마는 섹스를 위한 유니폼이었다. 언제나 이 치마였다.

 

 

 

 

 

남자들은 쉽게 흥분했다. 치마는 앞이 트인 디자인이라 단둘의 공간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키스를 나누며 여자의 허벅지 안으로 손을 넣는 건 쉬운 일이었다. 여자가 방어하지 않으므로 수월하기까지 했다.

 

살결보다 부드러워 스커트를 벗기기보다는 팬티만 내려서 못 견디겠다는 듯 급하게 삽입 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철저하게 콘돔을 사용하게 했지만 제대로 삽입도 못하고 스커트에 사정해버리는 미숙한 남자도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인내심을 갖기 어려운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틴 소재에 잘 지워지지 않는 단백질 정액의 흔적은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일출의 붉은 빛이 감도는 택시 안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여자는 치마 끝자락에 살짝 묻은 하얀 자국을 보며 다음부턴 치마는 곱게 벗어두고 섹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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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애를 시작한 리을이 서로 눈만 마주치면 화르르 타오르는 연인과의 시간을 자랑하면서 덧붙인 이야기는 바로 침대 위 음담패설이었다. 그동안 리을은 남자들이 자신을 안으며 흥분한 마음을 솔직하고 적나라한 언어로 내뱉는 것에 대해서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서 진정성은 결여된, 오로지 동물성만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탈적 관계에서는 모욕적이고 역겹다고 느꼈던 말이 이제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관계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은 여자가 침대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 기분에 한껏 빠져 신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리을을 보니 부러운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애인 씨는 섹스를 하면서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를 할 때 결코 저속한 단어는 쓰지 않는 정숙한 남자였다. 그렇다보니 우리의 섹스에는 어딘가 추임새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리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를 원한다는 말을 조금 더 원초적인 언어로 듣고 싶어졌다. 침대 위에서 어린 아이를 어르듯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뱉게 유도를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에겐 쉽지 않은 일인 듯 했다.

 

조금 더 야한 제스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내 안으로 들어오고 싶게끔 그를 흥분시키면서도 아직 문을 열 수 있는 주문은 듣지 못했다는 듯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밀어내거나 몸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 역시 침대 위에서 섹스를 하며 자연스럽게 내뱉게 되는 신음소리나 탄성 이외에 한 번의 사고가 필요한 언어를 내뱉는 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라 생각해서, 행동을 지시하는 말 이외에는 잘 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이러한 시도가 우리 둘 사이에는 달에 착륙하는 것만큼이나 진일보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는 ‘넣고 싶어’라고 작게 읊조렸다. 나는 짐짓 못들은 척 ‘뭐라고? 뭐라고 했어?’라고 되물었다. ‘넣고 싶어’ 그의 눈빛이 조금 더 흔들렸다. ‘응?’ 나는 한 번 더 되물었다. 그는 못 견디겠다는 듯 ‘박고 싶다구’라는 말을 내뱉었다.

 

박다라는 동사는 ‘두들겨 치거나 틀어서 꽂혀지게 하다. 가운데에 들여 넣다. 은밀히 넣어 두다’라는 뜻을 가진 ‘넣다, 삽입하다’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표준어이다. 그러나 어린 남자들 사이에서는 SEX를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그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그의 소년 같은 면모가 귀엽게 느껴졌다.

 

다만 하나의 부작용이 생겼다. 그날 밤이 지나치게 동물적이었던 탓에 그 동사가 너무 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못을 박아야하는데’ 라는 사소한 말도 볼이 빨개져서 못할 만큼 박다라는 단어는 인상이 깊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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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섹스가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도덕적이라거나 신념이 굳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일수도 있고 겁이 많은 사람일수도 있다.

 

반대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 섹스를 욕망한다. 사랑하지 않더라도 섹스할 수 있는 사람들.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닌 섹스 자체의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부터 그런 방식에 몰두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다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상대를 기만하지 않는 선에서 두 성인의 합의로 이뤄진 섹스파트너라면 씁쓸한 측면이 있더라도 두 사람이 감당할 몫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섹스만 지속적으로 하는 관계라 하더라도 꽤 괜찮은 파트너를 찾기란 연인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상대에게 자신이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이 관계를 깔끔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배려와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그런 식의 감정은 어느 한 쪽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이 아니라 섹스만을 원하던 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관계는 서로를 신뢰하기도 어렵고 본래 그들이 원했던 것이 반하는 것이기에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다.

 

 

 

 

K는 섹스 상대로 여자친구가 있는, 덧붙여 K가 자신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남자를 파트너로 선호했다. 애인이 없는 남자들인 경우 K가 그들이 선호하는 여성에 가까운 경우 단지 섹스를 한 것뿐인데 애인의 지위를 획득한 것 마냥 행동하거나 징징거리며 데이트를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서 피곤하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있으면서도 섹스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남자들의 경우 깔끔하게 처신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감정적으로 들러붙을 일이 없어서 섹스만 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K는 둘 다 원해서 다양한 방식의 섹스를 시도하는 것은 좋지만 여자친구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던 성적 판타지를 섹스파트너랑 구현해보려고 드는 몹쓸 남자는 별로라고 했다. 섹스하기 전 드라이브를 하거나 가볍게 술 한 잔 하면서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더라도 긴장을 최대한 풀어줄 수 있는 남자, 욕구를 해소하고 난 뒤에 볼일 다 봤다는 싸늘해지는 게 아니라 늦은 밤이라면 집 앞까지는 데려다 주는 정도의 매너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섹스라는 행위로 서로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관계라 하더라도 한순간만큼은 서로에게 가장 밀착되어 있었던 관계였던 것만큼 그 정도의 예의를 보여주고 다음 만날 때까지는 쓸데없는 감정에 휩싸여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섹스파트너의 1등 조건이라고 K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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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스테리아>를 보고 왔다. 바이브레이터의 발명을 다룬 영화는 소재의 자극성에 비해 건전하고 발랄하고 올바르다. 청소년관람불가라는 판정이 의아스러웠다. 더 많은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이 이 영화를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영화는 성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에 있어서는 성별에 차이가 없으며, 여성이 성적으로 수동적이거나 남성에 비해 욕망이 적고 혹은 적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교정되는 데 기여할 것이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40%가 앓고 있다고 진단받은 난치성 여성질환 ‘히스테리아’를 치료하던 젊은 의사 모티머가 자신의 섬세한 손길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과로로 인해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위기에 처하면서도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하게 되었다는 단순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안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다. 그 당시 주체적이고 진보적인 여성의 소신 있고 당당한 발언은 자궁을 적출해내고 클리토리스를 제거해야 하는 심각한 병으로 치부되었으며, 치료를 행하던 의사를 포함한 남자들이 여성의 성욕과 오르가슴에 무지하다 못해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히스테리아>의 장면

 

 

 

여성들이 조금씩 강력하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실체도 없었던 히스테리아라는 날조된 병명은 사라졌다. 그러나 여성의 정신적 불안 상태는 자궁 이상이 아니라 여성을 자기편의대로 재규정하고 그에 맞는 삶을 살도록 강요한 남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단 하루만이라도 여자로 살아본다면 웃음이 아니라 피눈물이 나올 것”이라고 법정에서 항변하던 그저 평범한 여자의 목소리는 현재까지 유효하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듯 생계를 꾸려나가던 계층이 아니라 상류층 부인들의 하릴없는 병이 히스테리아였다 하더라도 그때보다 더 풍유로워진 이 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성적으로 불만족스럽고 히스테리컬하다는 진단을 받는다. 차라리 19세기였다면 병원을 찾아가 오르가슴을 선사받거나 바이브레이터라도 눈치 보지 않고 구매할 수 있었을 테니 성적 해방감의 총에너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고 만족스러울지도 모르겠다.

 

1880년 무렵 등장한 최초의 바이브레이터는 의사들이 진찰실에 두는 의료 기구였지만, 재봉틀, 선풍기, 전기주전자, 토스터와 함께 발명된 가정용 바이브레이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부드럽고 차분하고 활력있고 상쾌한 기분을 줍니다. 여성이 원하는 것을 잘 아는 여성이 발명했습니다. 자연은 생명과 함께 떨리고 진동하는 것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잡지 광고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2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성의 거침없는 성적 욕망은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히스테릭한 여성인 양 인식하게 된다.

 

J는 일본에서 사가지고 온 바이브레이터를 보여주었다. “솔직히 서른 넘어가면서 체력이 딸리는 걸 느끼거든. 과로로 인한 피로감도 그렇고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그렇고. 그렇다보니 섹스도 피곤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진심으로 내게 쾌락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은 전달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기계에 의존하기보단 온기가 있는 페니스가 더 좋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따스함을 섹스 자체의 즐거움보다 우위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위적이고 차갑기만 한 바이브레이터를 우리 사이에 끼워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히스테리아>를 보고 나오면서 인간은 결코 선사할 수 없는 그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었다. 나는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밤은 진동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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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유난스럽게 덥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견뎌보지만 자다 깨서 몇 번의 샤워를 반복해도 몸속의 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밤에 잠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올림픽 중계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왜 올림픽을 새벽에 하나요?’라며 투덜거리면서도 TV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새벽 네다섯 시가 되어 체력이 방전되면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면 시간은 두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옆집 재건축 현장의 소음이 날 깨웠다.

 

한 달 넘게 이런 패턴의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신경이 끊어질 것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변해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잠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등에 욕창이 생길지언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한 백 년 즈음 곯아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자려고 누워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헤롱거리는 데 잠들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의 반복이었다. 수면유도제도 소용이 없었다.

 

몸을 다른 식으로 혹사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섹스였다. 생생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섹스 말고 무얼 해도 즐겁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기력과 몽롱함이 뒤섞여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섹스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었다.

 

이럴 땐 움직임이 격할 필요는 없다. 10까지 달아오를 수 있다면 급작스럽게 그 수치를 0에서 10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흥분해 나가는 것이다. 몽롱한 상태를 깨트리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젖어가는 섹스가 필요한 것이다.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느긋하게 삽입을 한 다음에 서로의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몸안에 차 있는 그것의 형태를 꼭 붙잡고 있고 싶다는 듯 가만히 그리고 꽉 조인 상태로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섹스를 원했다.

 

섹스를 하는 내내 눈을 감은 채로 시각적 정보가 아닌 한껏 예민해진 몸이 받아들이는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다. 내 몸을 짓누르는 상대방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동시에 나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몸 속 어딘가 쌓였던 긴장을 풀어내는 섹스를 원했다.

 

그의 품에 가만히 안긴 채로 질의 근육만으로 그의 페니스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나는 엎드린 채로 그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다리에 힘을 줘서 절정에 오를 만큼의 자극을 더한 뒤 그렇게 포개진 채로 누워 있고 싶었다. 섹스가 끝난 뒤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그의 곁에서 곤히 잠들고 싶었다. 지독한 수면부족 상태를 나는 그렇게 종결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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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어젠 왜 그랬어?’라고 묻는 여자들이 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를 품고 상대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어느 쪽이든 앞으로 이런 소득없는 말은 금지어로 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질문은 묻는 쪽에게 ‘나는 멍청해요’라고 선언하는 것이 다름없다. 그 질문에 대체 어떤 답을 해줄 거라 믿는 것일까?

 

그의 의도가 파악이 되지 않았다면 그가 두 팔로 감싸 안을 때 혹은 입술에 입을 맞출 때 거절의 의사를 확실히 표시했어야 했다. 그 순간 남자가 바라는 것, 동시에 자신도 욕망했던 것을 다 즐겨놓고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는 그런 질문 같은 건 답답하기만 하다.

 

'나를 쉽게 볼 줄 몰랐다. 나를 그저 하룻밤 상대로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라는 자기합리화는 지긋지긋하다. 정말 몰랐을까? 알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차라리 ‘아무 여자랑 자는 그런 헤픈 남자는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지. 그런 남자의 물건을 단단하게 만들다니 난 참 매력 있어. 후후. 즐거운 밤이었어’라고 정리하는 게 훨씬 더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관계를 연인으로 발전시켜보려는 욕망을 품는다는 건 참으로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행동을 하는지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른 척, 하룻밤 상대로 끝나진 않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희망에 기댄 건 유혹한 남자의 잘못이라기 보단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한 여자 쪽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거절하면 관계가 이상하고 어색해질까봐’ 그랬다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 미묘한 두려움과 어색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훗날 ‘난 그럴 줄 몰랐다’라고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도 하룻밤 그의 몸을 탐하고 말지'라는 생각이라면 그를 즐겨라. 하지만 그와 더 잘 되고 싶고,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주길 바란다면 섹스를 거절하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이로울 것이다. 소모적인 밀고당기기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발전가능성도 없고 나를 소중히 여겨줄 남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인지했을 텐데 쓸데없이 긍정마인드를 가동시켜 다음날 괴상한 소리를 내뱉게 만들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남자들에게 섹스는 단지 섹스일 뿐이다. 하고 싶어서 한 것뿐이다. 그게 잔혹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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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인 섹스는 여유롭고 평온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피부미용과 특히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30분의 섹스는 평균 150~250칼로리가 소모되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350칼로리까지 소모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어트 효과에 앞서 옷을 벗는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여자들은 비키니를 입을 때만큼이나 섹스를 하기 전에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남자들보다는 자기 몸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고 TV나 잡지 속의 모델이나 배우의 몸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다보면 아무래도 너무나도 인간다운 자신의 나체를 드러내는 섹스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타고나길 마르고 예쁜 몸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들 하지만 외형적으로 완벽한 여자들과의 섹스에서 ‘나랑 자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한다’라는 태도를 드러내며 섹스를 하는 내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나무토막처럼 누워 있어 아무런 감흥도 없고 오히려 자괴감을 느꼈다는 남자들의 증언에서 조금 위로를 얻도록 하자.

 

섹스를 즐기기 위해서는 외적인 자신감도 필요한 요소이지만, 좋은 섹스를 위해서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바로 근력과 유연함. 여성 상위 체위로 섹스를 할 때 여자는 자신의 다리, 특히 허벅지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허벅지 근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자극을 충분히 느낄 때까지 버틸 수가 없다. 30초도 안 돼서 다리가 아프고 움직이는 게 힘들다고 느낀다면 다리 근력을 키워주는 운동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하루에 10분이라도 꾸준히 다리의 힘을 키운다면 일주일 뒤 섹스는 운동하면서 느꼈던 고통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허리나 다리가 뻣뻣하다면 식초를 들이켜서라도 유연성을 길러보자. 물론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현란한 체위들을 소화하기 위함은 아니다. 여자들은 편할 것이라 생각하는 정상위는 편한 만큼 마찰의 쾌감 역시 밋밋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상위를 하면서 조금 더 특별한 자극을 받고 싶다면 한쪽 혹은 양쪽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비틀어 변형된 정상위 체위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서는 유연함이 필수요소이다.


몸이 휴대전화 폴더처럼 접힐 필요는 없지만 다리를 올리려면 낑낑거려야 하고 그걸 유지하는 것도 힘들기만 하다면 색다른 즐거움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섹스는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몸 전체를 이완시키면서도 고관절을 풀어주는 요가 동작 몇 가지만 지속적으로 연습한다면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다양한 자극을 즐길 수 있다.

 

때 이른 무더위가 다이어트에 대한 조급증을 부추기는 요즘이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도하기보단 생활 속에서 조금 더 열량을 소모하고 과하지 않은 운동을 매일 해나간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를 위해 좋은 섹스를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정기적인 섹스는 다이어트에 아주 효과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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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사귀었지만 게임을 하는 남자인 줄 전혀 몰랐어요. 활동적이고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남자였으니까요. 그런데 15일 이후 그는 완벽하게 골방폐인으로 변해버렸어요.” 12년 만에 출시된 '디아블로3'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여자친구들의 원망어린 목소리야 말로 지옥의 문을 열기에 충분해보였다.

 

“제대로 열 받게 만드는 건 뭔지 알아요? 그래도 섹스는 하려고 덤벼든다는 거죠. 5일 동안 제가 본 거라곤 퇴근하자마자 샌드위치같이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걸 사들고 와서는 안녕 인사하고는 모니터에 시선 고정된 그의 뒷모습이었는데 말이죠.” 아시아 서버가 열리지 않아 북미 서버로 옮기고 새로 캐릭터를 키우고 디아를 잡는 광경까지 뾰로통한 얼굴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잠들기 전에 삐진 나를 찔러보는 거죠. 미안하다며 ‘내일은 데이트하자’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은근슬쩍 섹스모드를 가동하는 거예요.” “너도 같이 해버려. 네가 더 열혈폐인이 되어서 ‘아 저런 모습은 한심해서 안 되겠다’라는 걸 보여줘”라고 조언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일이 체질이 아닌 녀석인데다가, ‘게임을 한다’라는 행동 자체보다 ‘게임에 밀렸다’는 것이 진짜 불만이므로 '디아블로3'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남자들의 사냥본능을 충족시켜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파괴본능에 충실한 게임에 정신줄을 살짝 놓고 매달릴 수 있단 말인가.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여자친구에게 “넌 스타보다 재미있어”라는 말로 사랑고백을 했다. 그걸 듣고 여자친구는 의아해했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 정도라면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창 레벨업을 거듭하며 악몽 단계에 들어선 '디아블로3'를 버리고 데이트를 할 정도라면 그 마음에 반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불만을 제대로 이해하는 남자들은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끝을 봐야 빠져나오지 않을까? 끝을 봐도 새로운 캐릭터를 키워야 할 테고 아마 한동안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참에 게임과 바람난 남자를 버리거나 ‘No date No sex’라는 구호를 걸고 투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 이미 지옥에 들어가 있는 남자들에게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흘러버린 시간과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컴퓨터 주변, 뻐근한 어깨와 허리에 붙은 군살 그리고 사랑스럽던 여자친구가 악마로 변해버린 광경 혹은 홀연히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 있는 여자친구를 보지 않으려면 과유불급! 아무리 마약 같은 '디아블로'라고 하더라도 캐릭터 컨트롤처럼 자신을 컨트롤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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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라디오를 듣다가 이런 사연을 접했다. 서로 사귀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매일 퇴근할 때마다 자신을 데리러 오고, 데이트를 하며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남자가 갑자기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겨우 마음을 정리하고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2년 뒤에 나타난 남자. 예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락을 하고 예전처럼 자신을 대하는데 그 남자가 또 다시 사라질까봐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보낸 여자도 예상하고 알고 있듯이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면 반드시 예전처럼 상처받고 아파하게 될 것이다. 관계가 진지해진다거나 무거워진다고 느낄 때마다 잠수를 타버리고 자신의 이기적인 필요에 의해서만 물 위로 올라오는 남자들이란 뻔하기 때문이다. 개 버릇 남 주지 못한다.

 

남자가 나타났을 때 예전에 '왜 그랬냐'고 따져 묻지 못한 여자. 결국 이 문제는 여자의 단호하지 못함이 문제다. 자존감과 자존심 둘 다 낮은 여자가 그 남자를 아무런 추궁 없이 받아준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이 잘못은 남자에게 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귀자' '이제 그만 헤어지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촌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없이 섹스까지 서로 나눈 관계에서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동을 하는 건 이해의 범주에 속하는 행위가 아니다. 결국 그 남자의 목적은 뻔했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도 외롭기 때문에, 자신에게 나쁘고 못된 남자라는 건 알지만 얼굴이 반반하거나 몸이 좋아서 혹은 완벽하게 혼자라는 사실이 싫어서 그리고 그 뻔한 게 좋아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로운 여자들에게 이 관계가 애정이라 착각하게 만들고 달콤함에 취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다 여자가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둘의 관계를 규정하려 들면 다시 물밑으로 꼬르륵 잠수를 타버릴 테니 말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남자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고, 그 여자를 나쁘지 않게 생각하지만 소중하게 생각한 적도 없는 것이다. 적당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여자, 한 때 설레는 마음만 충족한 것뿐이다.

 

이런 남자를 이해하려고 하거나, 이 남자에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무의미하다. 내가 만나는 남자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며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남자들을 이해하는 여자의 너그럽고 넓은 마음이 협소해지면 좋겠다.

 

남자들도 관계에 미숙하고 비겁한 이런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니까 다시 돌아왔다는 말은 변명이다. 그랬다면 그런 방식으로 숨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한 행동은 제대로 용서를 빌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약속하고 관계를 시작할 게 아니라면 괜히 마음 정리 끝난 여자들을 흔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거 다 업으로 쌓인다. 물론 애초에 천국가긴 글러먹은 남자지만, 지옥도 단계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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