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뒤에서 나를 안았다. 뒷덜미에 머리를 파묻고 흡입력 있는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안돼. 미숙한 애들이나 함께 보낸 밤의 흔적을 눈에 띄는 곳에 남기는 거야. 그런 거 촌스러워.” 단호하게 거부하는 목소리가 그를 더 자극한 것일까? 목선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선을 따라 키스를 퍼붓던 그가 어깨를 깨물었다. 


놀람과 고통을 동시에 느낀 나는 치타에게 목을 물려 꺼져가는 생의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내는 가젤처럼 바동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는 두 팔로 나를 붙잡고 반동을 줄 때마다 그만큼 더 강해진 악력(顎力)으로 나를 물었다. 참으려 해도 입에선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뱉어낸 신음소리였지만 스스로를 흥분시킴과 동시에 그를 만족시키고 있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대신에 저항하기를 멈췄다. 그 역시 턱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하지만 내 허벅지에 닿은 그의 페니스는 빈틈없이 단단해져 있었다. 


다음날 침대에서 나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미묘하게 변한 몸을 관찰했다. 긴장감과 호르몬, 지난 밤 동안 그 둘은 적절하게 작용하여 몸을 탄력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좋은 섹스를 하고 난 뒤 즐기는 비밀스러운 유희. 거울 속 내 몸에는 그와 보낸 격정적인 시간이 새겨져있었다. 어깨에 선명하게 남은 잇자국. 그는 치열이 고른 편이여서 동그란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자국 주변으로 장난삼아 물었다고 하기에는 제법 심한 멍이 들어있었다. 그뿐 아니라 서로의 뼈가 부딪혔던 곳에도 고스란히 멍이 남아있었다.


잇자국이 남은 곳을 지긋이 눌러보았다. 통증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견딜만한 가치가 있었다. 둘의 격렬했던 몸짓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침대에 나를 눕히고 저돌적으로 내 몸 위에 올라탄 그의 무릎과 계속해서 부딪혔던 허벅지에도 멍은 남아 있었다.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던 그 자리에도 희미하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피부가 약해 멍이 잘 드는 체질인 것이 오히려 섹스를 재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 몸 구석구석 그가 만졌던 곳들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기억으로 몸을 쓰다듬을 때마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와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연쇄살인범의 희생자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잇자국과 멍을 생각한다면 끔찍스럽겠지만 내 몸에 남은 것은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라 내가 허락한 행위였다. 고통을 인내한 것은 나 자신이었지만 관계를 통제한 것도 바로 나였다. 


타인의 신체부위나 어떤 물건보다도 내 몸에 남아있는 멍을 통해 성적 쾌락을 되살릴 수 있었다. 우리 둘이 보낸 밤은 반듯하지 않은, 사악한 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섹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마술적이고 영적인 힘이 내안에서 차올랐다.


나의 사소한 성도착, 나만의 페티시즘. 그건 내 몸에 남겨진 멍자국이다. 사실 그 사람처럼 무자비하게 날 물어 줄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았다. 머릿속에 어떤 판타지를 품고 있든 현실의 나와 섹스를 하는 동안에는 정상 범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걸린 것처럼 남자들은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로 나의 소망을 좌절시켰다. 오, 제발. 그대여, 부디 날 물어주세요. 당신의 달콤한 입술보다 단단한 이를 내 몸에 박아주세요. 



<음담패설-나는 소망한다, 금지된 것을> 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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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나같이 가짜 오르가슴에 속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키스할 땐 신음소리를 꾸미지 못해.” “한겨울, 난방도 제대로 안된 방에서 섹스를 하는데도 땀을 흘린다면 만족했다는 증거야.” “발가락이 벌어지면 도달한 거야.” 거짓 오르가슴을 구분하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듣고 있으면 순진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복잡한 만족의 구조를 단순한 지표로 읽어내고 자신이 잘했다고 믿는다면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자신을 과신하기 시작하면 여자에게 섹스는 한없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애정을 품은 상대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느끼길 원하는 여자들은 섹스를 할 때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의 교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좋은 섹스란 좋은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친밀감이 밀도있게 차오를 때, 상대방에 오직 내게만 몰두한다는 게 느껴질 때. 그때의 쾌감은 클리토리스나 G스팟 같은 어떤 지점을 공략했을 때보다 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불행은 애정의 지속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데 있다. 사랑은 일상이 되고 섹스도 무덤덤한 습관이 된다. 상당수의 남자들은 기성품처럼 정해진 몇 가지 패턴만 이용해 섹스를 한다. 삽입과 사정 사이 몇 번 체위를 바꾼다 하더라도, 사정에 도달하는 체위는 어느 순간부터 비슷해진다. 한 사람과 몇 번의 섹스를 해보면 그가 쓰는 패턴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예술가처럼 창조성을 발휘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한 여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녀만을 위한 맞춤형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상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탐험은 하지 않고 늘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섹스를 한다면 오르가슴은 머나먼 은하계의 이야기가 된다.

몸의 내부에서 뭔가가 한창 올라오고 있는데 클리토리스에 자극을 주던 손을 멈춘다거나, 적당한 속도의 자극을 원하는데 갑자기 빨라지고 강해진다거나, 원치 않는데 체위를 바꾼다거나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오르가슴의 방해물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말로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기 민망하다보니 불만을 품은 채 남자에게 맞춰주게 된다. 섹스는 자연히 즐겁지 않게 된다. 오히려 피곤해진다.

그가 빨리 절정에 도달해 그 지겨운 피스톤 운동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를 쓰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만하면 됐어. 어서 마무리 짓자”라는 의미로 오르가슴을 가장(假裝)한다. 그에게 청각적 자극을 더 해주고 사정을 유도한다. 끝. 불만족스럽지만 더 이상 힘들거나 아프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한 끝.

삽입 후 재미가 반감해버리는 섹스, 의무적인 반응들. 여자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말하지 않는다면 남자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여자 입장에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숙해보이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고, 또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그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거짓 오르가슴으로 소리를 내질러도 진실은 침묵하다보면 진짜 오르가슴을 멀리 떠나보내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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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섹스를 하며 계속해서 키스를 나누길 원했다. 서로 입을 맞추지 않을 때에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형용이 가득한 미사여구나 은유적인 표현들, 가끔은 직설적인 야한 말들을 내뱉었다. 동시에 나 역시 자신의 귓가에 ‘너랑 하는 게 좋다’와 같은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는 섹스 도중에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지금 좋은지 항상 물어봤다. 그럴 때마다 섹스의 리듬이 묘하게 깨졌다. 가빠졌던 호흡을 가다듬게 되고 K의 몸과 함께 움직이던 허리도 정적인 상태가 되었다.

“내가 내뱉는 신음소리나 몸의 반응만으로도 알 수 없는 거야?” K는 안도하지 못했다. 자신이 잘하고 있음을 그와 섹스를 하는 것이 내게는 즐거운 일임을 말로 표현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인정받고 격려받고 싶어 했다.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너랑 더 이상 섹스할 일은 없을 거야. 오늘도 내가 널 먼저 보고 싶어 했잖아.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K는 섹스 하는 도중 의식하고 그런 요구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섹스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내뱉고 마는 말이라고 했다. 하긴 K는 자신의 쾌락보다는 여자를 만족시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남자였다. 내가 충분히 느끼기 전에 먼저 사정을 해버리면 손가락을 이용해 후희를 선사할 줄도 아는 성실한 남자였다. 그러니 자신의 노력에 대한 어느 정도 보상, 립서비스를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기교를 과신하는 남자들에 비하면 K의 노력하는 자세는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나는 K가 자신이 항상 오르가슴을 선사해야 하고 만족감을 줘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주길 바랐다. 섹스파트너로서 K와의 관계를 지속함에 있어 나도 모르게 K의 바람이 부담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맨스가 없는 기간에도 정기적인 섹스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섹스는 애정을 확인하는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 너무 건조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유연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내게 섹스는 취미생활처럼 영유되어야 하는 일이다. 섹스를 한다는 사실 자체, 오르가슴이라는 부가적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함도 있지만 실은 누군가의 체온을 통해 지친 삶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가 끝난 뒤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짧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순간을 위해 섹스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내게 원하는 것을 이 관계에서 얻고 있다면 나도 K의 귓가에 그가 흡족해할만한 말을 속삭여주는 것이 옳은 일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필요에 의해 섹스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 남자 특전’은 남겨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섹스라이프를 지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여자들도 애정없는 섹스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섹스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섹스의 즐거움이 그 어떤 것에 비할 바가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기에 내 남자에게만 해줄 수 있는 것을 남겨두고, 구분을 지음으로써 나의 로맨스를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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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트위터에 실수로 올라온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웹상으로 병문안을 패러디한 사진들과 믿음이 부족하다류의 유머들이 올라오는 걸 지켜보았다. 그런데 소위 삼촌팬이라는 말하는 그들이 믿는 것’의 실체는 너무나 끔찍하고 가혹한 것이었다.

 

국민여동생이라는 둥, 첫사랑의 아이콘이라는 둥 원치 않게, 혹은 의도해서 만든 이미지를 뒤집어 쓴 여자 연예인들은 그것을 벗어던질 때 대중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기보다는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과 그에 대한 비난을 듣기 마련이다. 그 이미지에서 탈피하려 할 때에도 그 목적도 결과적으로는 상업적일 수밖에 없기에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연예인은 대중을 유혹하고 돈으로 환산된 그들의 욕망으로 살아간다는 걸 부정할 순 없으므로)

 

아이유는 남성들의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했고, 남성팬들은 삼촌이라 자처하면서도 너무나도 당당하게 조카뻘되는 아이돌을 성적으로 소비했다. 여기까지는 서로 모른척하면서도 합의한 사실이다. 그게 연예산업이니까.

 

 

 

 

그러나 계획되지 않은 실수를 (물론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연애스캔들이 아닌 섹스스캔들로 읽어내는 삼촌들의 능력에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들의 연애는 플라토닉하기만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삼촌은 믿는다라는 건 대체 뭘 믿는다는 것인지. 소녀 티를 갓 벗은 성인 여자가 처녀이길 믿는 것이 대체 뭐가 중요한 건가? 연애를 하더라도 처녀이길 바라고, '처녀'이기 때문에 좋아했다는 건 대단히 변태스러운 판타지를 대상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직접적인 섹스의 대상으로 아이유를 상상했다고 하면 솔직하기라도 하지. 어째서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처녀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유의 대척점에 있는 현아에게는 애초에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처녀에 대한 이중잣대.

 

더군다나 처녀라는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에 대해서 그들은 순결하게 보호해주는 입장이었나? 양심에 가책없이 정말로 조카에게 그러하듯 애틋했나? 자신의 상상 속에선 철저하게 욕망했을 그들이 아이유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자신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일이기에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신이 실현시키지 못한 일은 다른 사람은 행했다는 좌절감에서 오는 울분 때문인가. 그러는 거라면 불쌍하다 못해 지질하다. 참 못났다.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가 무엇인가. 사실 이 글도 길다. 한 줄이면 정리가 된다. 아이유가 그러든 말든 대체 댁들과 무슨 상관이냐.

 

여동생 이미지였는데 배반했다? 이미지를 소비하고 착각한 건 삼촌들이다. 조카는 자라서 연애를 하지 않나? 섹스를 하지 않나? 여동생은 여전히 여동생으로 머물러야 하나? 이 무슨 멍청한 생각이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국민여동생과 조카들 찾아 떠날 그대들 아닌가? 왜 아이유라고 자신의 이미지를 배반해서는 안 되는가?

 

 

 

 

엘리자베스 워첼이 자신의 책 <Bitch:음탕한 계집>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어느 한 소녀가 자신의 능력과 확고함 그리고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은 분명 얼마 동안은 못된 짓이고, 또 얼마 동안은 부모 가슴에 멍이 들게 할 만한 짓이다. 그 누구도 인간의 고통 앞에서 무심함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겠지만, 반역적이면서도 상스러운 그리고 때론 반사회적인 행동들은 하나의 명백한 선언이 된다.

 

아이유의 사진이 하나의 선언이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연예계에 여성캐릭터란 너무나 한정적이다. 남자들이 욕망하는 것이 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수용할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좁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마돈나도 패리스힐튼도 대한민국에선 그저 신상이나 털리고 악플에 시달릴 것이다. 그녀들이 욕망의 대상으로 안주하기보단 '나의 욕망'을 보여주겠다며 드러내는 모든 행동들이 그저 무의미할 것이다. 남성의 욕망으로 머무는 것. 그렇게 안전하고 원하는대로만 될 거란 착각은 하지마라. 그녀들은 변하고 있고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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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 카세 료 닮았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무례하게 들렸을 수도 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첫인사도 하기 전에 내뱉은 말이었으므로. 그 말을 하고만 당사자인 나도 놀랐지만 그는 태연스럽게 “카세 료, 알아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오만해보일지라도 그는 내게 첫눈에 이끌렸다는 표현을 써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눈빛, 말투, 거리감에서 관심표명이 분명했다. 나 역시 카세 료를 닮은 남자가 해사하게 웃어주는데 싫을 리 만무했다. 말이 잘 통한다거나 공감대가 형성되어서라기보다는 나는 그의 얼굴에 대단히 끌리고 있었다.

 
누굴 닮았다는 사람들은 어딘가 어설프다. 그러나 그는 선한지 악한지 알 길에 없는 눈을 하고 고집스럽고 강단 있으나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을 줄 아는 남자였다. 부러질 듯 말랐지만 연약해보이지 않는 남자. 그러나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에 들게 만드는 카세 료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바닥이 빤한 이곳에서 같은 업종의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런 얼굴은 흔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연애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호감을 가진 두 남녀가 한 침대에서 눈을 뜨는 건 적당한 알코올 섭취와 (과해서는 안 된다. 취한 상태에서의 섹스는 무의미하다.) 약간의 솔직함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섹스가 필요한 청춘들이 아닌가.


그와의 섹스는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삭막하지도 그렇다고 다정이 지나치지도 않은 서로가 선을 잘 지킨 행위였다. 이를테면 파트너십이 좋았던 섹스라고 해야 할까. 주기적으로 데이트를 하고 몇 번의 밤을 함께 보낸 어느 날, 그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티셔츠를 입으며 ‘단지 섹스’로 끝나기보다는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쉽게 잘 수 있는 여자는 그저 섹스를 위한 상대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그저 그런 남자들과 다른 태도를 보여준 것은 자존감에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 역시 ‘그가 좋다’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면서 마주쳐야 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건 구실이 좋은 핑계였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카세 료’라는 환상을 안고 싶었다. 그의 얼굴과 몸에 내가 덮어씌워둔 모습이 아닌 ‘그’라는 사람이 보이는 게 싫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라는 사람에 대해서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첫사랑과 가슴 아프게 헤어진 뒤 오직 그 첫사랑의 대체물로 여자를 안는 남자의 심정과도 같은 것이랄까. 자고 난 뒤 밀려드는 허무함과 허망함, 아마 이해할 수 있는 남자들은 내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 우스꽝스럽다.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내가 담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들뜬 마음을 반영하듯 붉어진 두 뺨 그리고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들통 나버리고 마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내가 아닌 모습으로도 누군가를 안을 수 있고, 또 그 누군가는 나를 애틋하게 생각해준다는 게 참으로 거지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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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가 없어서 운동으로 성욕을 해결하고 있는데 이것이 긍정적인 것일까요?”라는 가련한 질문을 받았다. 해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운동의 효과를 의심하는 질문을 던지다니, 성욕이 잠깐 해소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욕구불만인 상태라는 걸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닐까?


배가 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식욕과 수면욕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혼자서도 충분히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섹스라는 행위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 성욕이라면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다만 내가 하고 싶다고 당연히 상대가 응해주는 것은 아니기에 성적 욕구가 충만한 미숙한 어린 남자들은 섹스할 대상이 없을 때 괴롭고 슬픈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성적 호기심과 에너지가 충만한 10대 남자애들에게 미봉책으로 제시하는 운동요법을 성인 남성에게 적용하여 “운동으로 성욕을 푸세요”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피트니스 센터에서 홀로 몸을 단련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몸을 부딪치고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축구나 야구 같은 사회성을 갖춘 운동이라면, 타인과 단절되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애써 운동을 하기 보다는 누군가와 몸을 섞고 싶어 한다. 운동을 하면서도 섹스라는 행위가 더 나은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욕구가 강한 남자들은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들 내부에 충족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사정이 목적이라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영상이나 책자의 보조를 받아 자위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섹스를 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섹스에 대한 욕구라기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필요한 성욕이란 것은, 육체적인 만족 이외에 정서적인 만족에 관련된 것일 텐데 일회적인 만남이나 대가를 지불하고 맺는 관계는 욕구를 해소해주기 보다는 허무함과 외로움을 더 절실히 느끼게 만들 뿐이다.

섹스를 통해 일상의 감각이 아닌 들뜨고 환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섹스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위이다. 그렇기에 탐욕을 부린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먹을 것에 집착하여 살이 포동포동 오르게 된다든지 잠에 취해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단지 더 많이, 더 자주 섹스하길 원한다고 하여 그렇게 행동한다면 타인과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과 섹스를 했다면 둘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심리적인 문제 상황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감당하고 해결해나가려면 욕구에 굴복하는 말랑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비열한 마음 대신 진심과 애정을 품을 때 성욕도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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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선 절대 안 할 거야!” 그가 인적이 드물고 어두침침한 곳에 차를 세우자 그간의 경험을 미루어 반사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속내를 들킨 듯 당황스러워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건 아니었다. 카섹스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얼렁뚱땅 분위기 타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단호하게 거절, 일말의 희망도 품지 못하게 냉정히 거절이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으로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애틋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키스를 나누는 것까지는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 우리 둘의 사적인 행위를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스릴을 주거나 색다른 감각을 자극하기보단 불편하고 불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아우디, 사브, 푸조 심지어 나의 드림카였던 BMW까지 차종을 막론하고 이 남자, 카섹스를 하기 위해 차를 산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카섹스에 대한 그들의 열망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 장단을 맞춰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서로의 몸을 탐닉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는데 섹스할 장소가 마땅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순간에는 나와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카섹스가 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느낄 때도 있었다.

 

좋다. 남자들은 베이비페이스가 아니라 뉴페이스를 좋아하고, 남자들의 이상형은 낯선 여자라는 쿨리지 이론을 최대한 존중해서 내가 새로운 사람은 될 수 없어도 색다른 섹스를 시도할 순 있다. 가터벨트도 좋고, 손을 묶어도 좋다. 코스튬을 하든, 볼기짝을 때리든 그런 건 맞춰갈 수 있지만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싫은 건 존중받아야 하지 않나. “선팅을 했으니까 밖에서 안 보여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포드의 토러스를 타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뒷좌석으로 넘어가 앉은 그는 내게 이쪽으로 오라고 재촉했다. “뒷좌석에서 하면 앞좌석 시트가 앞 유리를 가려주잖아.” 퍽이나 가려지겠다. 게다가 좌우에는 창문 없나? 밖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선팅한 유리창에 코를 박고 유심히 안을 들여다보는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기겁을 했다는 친구의 카섹스 경험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좋아. 누군가 볼까봐 그게 걱정이라는 거지?” 그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불편했던 마음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얼굴로 바닥만 툭툭 치고 있었다. “그럼 이리로 들어와.” 어딘가 거리감이 생긴 그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그는 뒷좌석에 없었다. 두리번두리번. 시트 너머 트렁크 속에 들어간 그는 이 안이라면 괜찮은 거 아냐?”라고 말했다. 정말 그 순간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 집요함. 하긴 우리 둘의 첫 데이트도 그의 끈질기고 성실한 시도 덕분에 시작되었지. 하여간 못 말리겠다.

 

 

 

 

김영하의 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 그게 아니라면 그걸 원작으로 한 영화 <주홍글씨>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트렁크 안에서의 정사를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 소설을 좋아했기에 뒷좌석의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며 고조되어 가는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숨이 좀 가파졌는데?” 엉큼하면서도 느끼한 말투로 나를 맞이하는 그를 보니 귀엽기도 했다.

 

둘은 관 속에 누운 (물론 무릎은 살짝 접은 상태였지만) 것 마냥 조용히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 트렁크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막상 서둘러 덤벼들지 않는 걸 보니 그 순간만큼은 신뢰해도 될 것 같았다.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었다. 에쿠우스보다 차체가 크다고 하더니 트렁크도 넓네. 굴러다녀도 되겠다. 생각보다 쾌적해서 좋다는 둥, 처음 차 트렁크에 들어와 보는 건데 나쁘지 않다는 둥, 안에서도 트렁크를 열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그 소설처럼 트렁크 안에 갇혀 죽는 일은 없을 거라는 둥.

 

콘돔은?” 이 질문은 무드를 깨는 게 결코 아니었다. 확실히 발동을 걸어보겠다는 의미하는 시동장치였다. “뒷주머니오히려 막상 그 순간에 콘돔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거나 허겁지겁 찾는 것이야 말로 산통을 깨는 일이었지. 그의 대답을 듣고 확실한 게 좋은 나는 그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안심이 되는 단단함. 그것이 첫 번째 흥분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시각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 어둠의 공간에서 촉각은 중요한 작용을 한다. 내가 옆에 있는데 딱딱해지는 내 남자만큼 섹시한 것도 없었다.

 

트렁크 공간이 다른 차에 비해 넓더라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둘이 포개져서 어떤 행동을 할 순 없었다. 내가 몸을 모로 세우자 그가 뒤에서 나를 안은 형태로 서로의 몸을 밀착했다. 손을 뒤로 뻗어 그의 페니스를 자극하면서도 허리와 골반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주었다. 못 견디겠다는 듯 내 어깨를 꽉 누른 팔의 힘을 느끼는 것도 좋았고 우리가 내뱉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려 다시 내 귓가에 닿는 것도 흥분되었다.

 

시선에 대한 걱정이 없으면서도 살에 닿는 야외의 서늘한 공기도 존재하고 동굴의 아늑함까지 갖추고 있어 트렁크 안에서의 섹스는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었다. 더듬더듬 옷을 챙겨 입고 나오느라 매무새가 제법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가 집 앞까지 모셔다 줄 테니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게다가 편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그토록 원하는 카섹스에는 성공한 것이니 오늘은 둘을 만족시킬만한,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는 찍어도 되는 그런 날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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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섹스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겨웠다. 결국 나는 올바르지 못한 질문을 그에게 던지고 말았다.

"왜 나랑 자는 거야?"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 이 관계를 지속할 생각이라면 해서는 안 될 말 중에 하나였다.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은 견딜 수 있지만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 그런 질문은 그저 몸과 몸의 관계에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랑 자는 거 재미없을 것 같아." 나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은 상호적인 것이니까. 그러나 주기적으로 서로를 찾는 상태에서 그런 말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그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굳이 내가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창의적이진 않았지. 앞으로 색다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면야..."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걸 모르진 않았다. 그 색다른 상황을 '연출'까지 하는 수고로움을 그와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그 답을 찾고 싶은 것이었다. 그에게 할 질문이 아니었다.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왜 지겨운 섹스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거지?" 서로의 몸을 사물적으로 대하는 관계는 분명 사랑하는 남자와 보내는 밤과는 다른 것이다. 건조함. 그 퍼석거림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쾌락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삭막함을 동반하고서도 서로의 몸이 일으키는 마찰력이 감동스러울리 없었다.

 

 

섹스를 하기 전 그는 다정하고 친밀한 사람처럼 장난스럽게 행동을 했다. 그러나 섹스를 하고 난 뒤엔 본인 스스로 어색하다 말할 정도로 뻣뻣하게 행동했다. 둘은 밋밋해졌다. 그의 팔베개를 베는 것조차 뭔가 잘못된 행동인 것처럼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사랑해선 안 될 여자, 혹여나 어떤 감정이라도 한 방울 섞일까봐 두려워 벌벌 떠는 것처럼 보였다. 몇 겹의 보호막을 둘러쌓고 자신을 드러내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낯선 남자와의 새로운 움직임.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내 몸을 만진 적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섹스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설렘을 안겨주었던 그였다. 분명 흥미로웠다. 다른 경험이라는 것은 흥분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시 행해졌을 때 기계적이었을 뿐이었다. 태엽시계를 감듯 주기적인 행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반복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도 반복되는 일인데 어째서 더 쉽게 지겨워지고 노력하기 싫어지는 것일까. 나는 이토록 에너지가 희박한 인간이었나. 섹스,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었나. 스스로 에너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인간. 타인에게 기대하지만 타인조차 그 한 번의 부싯돌이 될 뿐인 그런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버린 것. 그건 현명해진다는 느낌보다는 늙어간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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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 에르노처럼 두려움을 걷어 낸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그 사람이 떠나자 엄청난 피로가 나를 짓눌러왔다. 곧바로 집안을 정리하지 못했다. 나는 글라스, 음식 부스러기가 남아 있는 접시,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 방바닥과 복도에 흩어져 있는 겉옷과 속옷들, 카펫에 떨어져 있는 침대 시트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하나 어떤 몸짓이나 순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물건들을, 그것들이 이루는 생생한 무질서를 지금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것들은 미술관에 소장된 다른 어떤 그림도 내게 주지 못할 힘과 고통을 간직한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지니고 있기 위해 다음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중에서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껏 미혼 여성들에게 피임을 강조해왔고 나 역시 순간의 안일함으로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철저하게 피임을 해왔다. 콘돔을 사용했고 피임약을 복용할 때라도 콘돔을 사용하여 안전에 안전을 기했다.

 

타협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가임기간이 아닌 것이 분명할 때에 콘돔 없이 섹스를 하는 시도를 한 적은 있었다.(나는 굴복하고 말았지만 이 글을 읽는 미혼 여성에게는 절대 타협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안전한 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고 난 후에 생리예정일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불안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은 겪지 않는 게 좋다.) 물론 삽입한 채로 사정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액이 내 몸 안에 머무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임신을 계획하고 생식이 목적인 섹스를 하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는 결코 해볼 수 없는 경험인 것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 뒤 우리가 나눈 섹스의 기운과 그의 체취가 옅게 남은 이부자리에서 나오지 않은 채 온종일 침대 안에서 뒹굴다 느지막이 샤워를 하고 이불을 세탁기 안에 집어넣는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열정이 그 문장에서 느껴졌다.

 

“애인과 섹스를 하고 나면 둘 다 침대에 머물지 않고 재빨리 샤워를 하러 가는데 성실하고 꼼꼼하게 씻어내도 두어 번은 몸 안에 남은 정액이 흘러나와. 처음엔 이상이 생겨서 냉 같은 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씻어내는 걸로는 빠져나오지 않은, 내 몸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았던 그것이 나오는 거였어. 값비싼 속옷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질내사정을 한 날에는 팬티라이너를 써야해.”  

 

그러나 M의 실질적인 후기보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정할 때의 느낌이었다. 꿀과 라즈베리를 넣어 달달하면서도 새콤한 수제 요거트를 떠먹으며 M은 말을 이었다.

 

“사정을 한다고 해서 정액이 ‘발사’된다는 느낌이 주는 남자는 극히 드물어. 그가 사정했는지 내 몸이 인지 못할 때가 더 많아. 흘러나온다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지. 지금 애인과 5년  넘게 사귀는 단 하나의 이유는 건강함이 남달랐기 때문이었어. 지금껏 내가 자본 남자와는 다르게 그가 내 몸 안에 사정을 하면 자궁벽까지 가닿는 느낌이랄까나. 분명하게 그 순간이 느껴져. 나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체력도 약해서 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를 만나곤 다음 세대에 내 유전자를 극복할 만한 2세를 남길 수 있을 거란 기대감 같은 걸 가질 수 있었어.”

 

M뿐만 아니라 결혼 후 출산까지 경험한 친구들에게도 그 느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호기심과 환상을 품기 마련이지만, 그녀들에게 질내사정이라고 하더라도 M이 경험한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인지되는 일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접근한 M과는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따듯하다. 아니 그 순간만큼은 데인 것처럼 뜨겁다고 느꼈어. 내 몸 안으로 뭔가 들어왔다는 느낌. 그리고 그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움찔거리면서 두세 번 이어지는데 그럴 때 힘을 주며 표정이 일그러지는 남편의 얼굴이 무척 사랑스러웠어. 애를 쓰고 있구나. 토닥거려주고 싶다 이런 느낌이야.” 갓 돌이 지난 잘생긴 아들을 둔 A는 처음으로 질 안에 사정을 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그렇게 회상하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지. 하지만 정액의 온도는 생경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이 아닌 내 몸 내부를 감싸주는 느낌이었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라서 그랬는지 의미를 더 부여하는 것 같지만 소중하게 느껴졌어.”

 

언제 체험하게 될지 모를 그 일에 대해서 나는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듯한 섹스라이프에 빈곳을 찾아낸 느낌. 그것까지 채우게 되는 순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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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어떤 성적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치 그런 생각은 전에 해본 적도 없다는 듯, 그런 질문을 받고 이제야 생각해본다는 태도를 취하며 한참을 뜸들이다 어쩔 수 없이 말해주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포르노를 접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 온 남성과는 달리 섹스에 대해서 말하지 않도록 혹은 섹스를 좋아하는 것을 내색이라도 한다면 헤픈 여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거라는 사회적인 관습과 교육 아래서 자라난 여성이라면 더욱더 그런 태도를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성적인 공상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여긴다. 잠깐이라도 음란한 환상을 품었던 자신에게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낀다. 성적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표현하는 걸 두려워하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상상을 해보는 것은 섹스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욕구 불만에 빠져서 그런 것도 아니고 성도착증도 아니다.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적인 남녀 관계를 맺는 것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치료가 필요한 것일 테지만, 섹스를 조금 더 즐기길 원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성적 환상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것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떠한 감각이나 기억, 소리, 향기 같은 것들도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환상을 통해서 현실에서는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강렬한 욕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서 내부에서 밀려오는 원초적인 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섹스는 관능적이다. 애초에 점잖은 행위가 아니다. 자신의 도덕이나 신념과 충돌하는 상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을 검열하지 말고 마음 속 욕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말하기 불편한 것이 나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스스로도 혼란스럽고 이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기쁘게 만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나를 그대로 반영해서 성적 환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에 잠재된 나의 욕망이므로 섹스를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성적 환상은 말 그대로 머릿속의 공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서 그런 공상을 즐기고 그 욕망에 대해서 함구한다. 공상이라는 말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는 일이다. 이런 상상은 일상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다른 사람들은 섹스에 대해서 어떤 환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그런 것을 공유할 기회가 없고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보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생긴다. 나 역시 성적환상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혹여나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성적 환상을 공유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척이나 유의미한 일이다. 동시에 현재 관계를 맺는 대상과 그것을 내밀하게 공유하는 것은 에로틱한 열정을 샘솟게 만들어 준다.

섹스란 지극히 현실적인 행위임에도 그것을 통해 일상에서 탈출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섹스는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런 행위에 두 사람의 상상력이 더해진다면 억눌러져 있던 무언가가 열정적인 것으로 변할 것이다. 환상을 통해서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고 순수해질 수 있다. 자신을 초월하고 창조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익숙해서 지겹다고 여긴 상대에게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만들어주고 의무감으로 하던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성적 환상을 공유한 뒤, 그것을 정교하게 실현하지 않더라도 일부분을 섹스에 접목시켜 나간다면 두 사람의 친밀감은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성적 환상을 품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섹스를 시작했다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궁극의 섹스는 어떤 것이지 꿈꾸어보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때 그것은 실현가능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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