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과정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둘다 에너지 공급이 필요할 정도로 격정을 쏟아낸 뒤,

속옷만 챙겨입은 채로

냉장고를 열어 재료 다 꺼내놓고

손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걸 나눠 먹은 뒤..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둘이 나란히

세면대 앞에 서서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가끔 서로의 칫솔을 바꿔 물었다가 으악 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

개운개운 민트향이 나는 채로 서로에게 쪽쪽 뽀뽀하는 것도.. 후훗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J  (0) 2013.03.03
붕대 감아줘  (0) 2013.01.14
애인 씨에게서 애틋함을 느끼는 포인트  (0) 2012.10.30
나의 단호함  (0) 2012.09.21
더워서 미뤄놓았던 일  (0) 2012.08.23
당신은 내게  (1) 2012.02.22

 

 

 


당신에게 헌신하고,

당신에게 완전히 빠져있는 나일지라도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함에 있어서

지지 이외의 감정으로

날 묶어두고 조정하려 한다면 단호해질 수밖에 없겠죠.

 

당신은 당신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최대한 누렸으면 해요.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을 기만하거나 배신할 그런 사람은 아니랍니다.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붕대 감아줘  (0) 2013.01.14
애인 씨에게서 애틋함을 느끼는 포인트  (0) 2012.10.30
섹스의 과정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1) 2012.10.28
더워서 미뤄놓았던 일  (0) 2012.08.23
당신은 내게  (1) 2012.02.22
그 곳  (4) 2011.12.04

 

 

 

으핫. 더워서 미뤄놓았던 일을 해야지..손을 잡는다거나, 꼬옥 안아주거나 하는 것. 체온을 전하는 일.

 

22도..적당한 때가 되었다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인 씨에게서 애틋함을 느끼는 포인트  (0) 2012.10.30
섹스의 과정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1) 2012.10.28
나의 단호함  (0) 2012.09.21
당신은 내게  (1) 2012.02.22
그 곳  (4) 2011.12.04
Sweet Little Lies  (0) 2011.10.18





Hachimitu


 

 

 

당신은 내게,

낙원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즐길 수는 없게 만들었다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섹스의 과정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1) 2012.10.28
나의 단호함  (0) 2012.09.21
더워서 미뤄놓았던 일  (0) 2012.08.23
그 곳  (4) 2011.12.04
Sweet Little Lies  (0) 2011.10.18
과거  (0) 2011.07.02

 

 

 

 

 


 

 

새벽 2. 그는 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다른 여자의 칫솔이 있는 방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 관계는 끝이 났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택시를 탔다.

몇 명의 여자가 이 집에 왔을까? 처음 그의 집에 왔을 때, 그가 자신의 공간을 보여준다는 설레임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몇 명이여도, 몇 십 명이여도 달라질 건 없었다. 도어락의 열 자리 번호를 누르는 그의 길고 하얀 손가락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집에 초대되는 여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방은 건조했다
. 불필요한 것은 전혀 없는, 아니 필요한 것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온기가 없는 방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얇은 원피스 하나에 코트만 걸치고 차가운 바람을 가르고 찾아간 그의 방은 추웠다. 술에 약간 취한 그와 술에 전혀 취하지 않은 내가 몸을 섞었다. 몇 년을 알아온 사이였다. 그가 안은 많은 여자들의 얼굴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와 잠자리를 갖는 건 내가 상상하던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를 조금 더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사람을 안는 일은 가끔 말보다 많은 게 전해질 때가 있다. 그의 소파에서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별한 남자에게 나는 왜 헤어졌는지 묻지 않았다
. 그가 먼저 말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그의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그의 첫사랑 말고는 궁금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그가 과거의 망령에 붙잡혀 있는 그런 뻔한 남자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먼저 잠든 그의 얼굴을 보면서 사랑과 연애와 섹스가 모두 별개인 이 남자의 머리와 가슴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시덥잖은 남자의 유혹을 받고, 시시한 섹스를 하는 것보다 그와 어울리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일이었다. 그와 등지고 누웠다. 춥지 않았다.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체온을 느끼면서 잠든 것도 아니었는데, 춥지 않았다. 나는 그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남향의 방, 나는 일찍 잠에서 깼다. 그의 얼굴은 평온한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 집에서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 그가 일어났다.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 가정식 백반이 깔끔하게 나온다고 했다. 아마 그 말은 무리해서 자신을 찾아와준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우리 둘은 수많은 와인병을 비워댔다. 하지만 밥을 같이 먹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사할 집에 들어올 가구가 오전 중에 배송된다는 문자를 받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아쉬워했다. 그것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는 다정했다. 다른 관계에서보다 그의 다정함을 내게 조금 더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다룰 줄 알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내 말에 귀기울이고, 나의 자존이 만족할만큼 칭찬을 쏟아냈다. 그것이 충족되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쪽에서 거리두기에 실패한다면 이 재미있는 관계가 끝나버릴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의 문자를 받았다. 반짝거리는 세면대, 고맙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내 안의 현모양처 같은 면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이미 틀려먹은 관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버려진 칫솔을 집어 들었다. 여자와 함께 살았던 집이라고 하기엔 실리콘 곰팡이가 가득한 세면대가 보기 싫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었다. 깨끗해진 그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와 그에게 키스를 했고, 그는 나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우리의 섹스는 성급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았다

.





 

 

Jerry N. Uelsma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단호함  (0) 2012.09.21
더워서 미뤄놓았던 일  (0) 2012.08.23
당신은 내게  (1) 2012.02.22
Sweet Little Lies  (0) 2011.10.18
과거  (0) 2011.07.02
유이 3  (0) 2010.03.05
 



J는 말했다. "나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나는 너를 죽여버릴 거야." 그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면서 낮게 읊조렸다. 그는 정확하게 J가 하는 말을 들었고 왜 그런 말을 하는 거냐며 화를 냈다. J는 스튜를 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 다른 여자를 안는 건 용서가 되지 않는 일이니까." J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너의 가슴을 열고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심장을 꺼내버릴거야."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상관없었다. 어떤 말을 하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행동 뒤에 행동이 따르는 문제였으므로 J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 완성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식욕을 돋게 만들어주는 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옮겼다.

 

"걱정마, 독을 탄다든가, 가스를 마시게 한다든가,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거나, 차로 밀어버리진 않을 거야. 내 손으로 죽일거야." J는 그 정도의 에너지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겁 먹을 필요도,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나를 떠나면 그만이야. 비겁하게 나를 사랑하는 척하면서 다른 여자를 안는다면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뿐이야. 그런 일을 겪는다면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야만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내 손으로 죽이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 뿐이야."

 

괴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치정살인이 발생하는가? 수많은 범죄드라마의 절반 이상이 질투와 관계가 있다.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무서워할 필요도 화를 낼 필요도 없었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벌을 주겠다는 게 아니었다. J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J는 그와는 1년을 더 만나고 헤어졌다. 헤어지자고 말한 건 J였고 그는 수긍했다. 몇 달 정도 지나 J는 그가 안고 싶어질 땐 주저없이 연락을 했다. 그는 애인이 있었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J의 부름에 응했다. J는 단 한가지만 물었을 뿐이다. "그 여자도 네가 바람을 핀다면 널 죽이겠다고 말하진 않았지? 네가 죽는 게 아니라면 난 너랑 자고 싶어." 자신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그의 여자들은 겪게 만드는 것. 그건 J가 부린 심술이었다. 일부러 그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쁜 습관이었다. 그의 여자가 바뀔 때마다 그걸 알아차리고 J는 그를 불러냈다. 내 것이었을 땐 그가 이런 일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그를 살해하고 싶었지만 더이상 내 것이 아닌 남자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아도, 살인충동을 느끼지 않아서 좋다고 J는 생각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을 영화한 작품

<달콤한 작은 거짓말>를 반즈음 읽다가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어 피맛이 났다.
제길. 내가 애인 씨와 3년 정도 연애를 했을 때 느낀 기분.
일기에 써두었던 몇 가지 생각들이 소설의 주요 코드들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워서 미뤄놓았던 일  (0) 2012.08.23
당신은 내게  (1) 2012.02.22
그 곳  (4) 2011.12.04
과거  (0) 2011.07.02
유이 3  (0) 2010.03.05
유이 2  (2) 2010.03.05



 

그가 나를 찾아왔다. 5년 만의 재회. 헤어지기 전과 많이 달라진 것들, 여전한 것들 그리고 서로의 근황도 나누었다. 그는 여전한 목소리로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서투르지만 성실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무의미한 그 이야기를 예의상 생글거리며 듣고 있자니 피로해졌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 주째 이어진 장마 때문에 우울해져버린 나는 하루 종일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소재의 까끌까끌한 시원한 침구 위에 몸을 누일 수도 있었지만 아무런 온기가 없는 침대에서 혼자 잠들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차가운 외로움을 견디는 것일까?


나는 그를 내버려둔 채 몸을 씻었다. 그가 나를 찾아오면 온몸 구석구석 좋은 향이 베이도록 거품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몸을 씻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무기력과 열기를 씻어내기 위함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원피스를 걸치고 젖은 머리는 수건으로 감싼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가 떠나기 전과 달라진 내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책장에 올려놓은 나의 귀걸이며, 팔찌며, 장식품들을 만져보고 있었다. 나는 선풍기를 틀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날렸다. "그냥 두면 안 될까?" 그가 내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게 싫었다.

 

그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뭔가 말을 하려다 내게 손을 뻗었다. 머리칼에 닿을 것 같았다. 나는 살짝 움직여 거리를 두었다. 그의 행동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의 거리였다. 내겐 그의 땀 냄새마저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너에게서 비 냄새가 나." 그가 가진 고유의 냄새는 아니었다. 그게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는 좀 씻어도 되냐고 물었다. "수건은..." 화장실 옆 수납장의 첫 번째 서랍. 5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이었다. 그 역시 더 들을 필요도 없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의 거대한 몸이 내 몸을 덮고 있었다. 익숙한 살 냄새와 항상 그리웠던 무게.

형상기억합금처럼 내게 적당한 강도의 포옹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의 팔과 가슴. 나는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그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너의 페니스를 받아들일 수 있게 젖게 만들어줘. 들뜬 내 입에서 지금 넣어달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도록 그를 무는 건 우리 둘만의 비언어적인 신호였다.

 

재회의 목적이 섹스는 아니었다. 애정을 되찾아 보겠다는 거창하고 허황됨 마음도 둘에겐 없었다. , 휴식. 긴장감 없는 나른함을 원했다. 다만, 남자와 여자가 한 이불을 덮고 한 침대에 누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가. 우리는 수많은 슬픔 중 하나를 방지했을 뿐이었다.

세상에 여자는 너 하나뿐이라고 말했던 그였다. 5년 사이 그에게 몇 명의 사람이 여자로 받아들여졌는지 나는 모른다. ‘유일한 여자나는 그 말이 성실하게 들려 그를 꽤 오래 사랑했었다.

 

섹스가 끝난 뒤 그는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책갈피가 꽂혀있던 페이지부터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가 읽다 지치면 나는 이어받아 눈으로 읽었고 그렇게 조용히 책에 몰입해 있으면 그는 내게서 책을 빼앗아갔다. 눈을 흘기면 그는 다시 소리 내서 책을 읽었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우스꽝스러운 장면 묘사가 나오면 나는 웃었고, 그는 한 줄 줄글이 너무 짧아 끊어지는 부분이 많아서 소리내 읽는 게 힘들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다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책 읽는 소리도 조금 뒤에 멈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고 있음. 무방비의 나를 응시하고 있음.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중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는 눈을 떴다.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신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 그에게 다가가 흡입력 있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5년이 지나도 그를 작동시키는 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손으로는 그의 페니스를 더듬었다. 단단해져 있었다. 내게 반응하는 그의 페니스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었다.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느낌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고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백 번을 그와 했기 때문일까? 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냈지만 서로의 몸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너무나 차분했다.

 

그는 내 방을 나서며 읽을 만한 책이 없냐고 물었다. "없어." 그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백 권의 책이 책장에 꽂혀있었다. "언제 돌려받을지도 모르잖아." 나의 대답에 그의 표정은 흐려졌다. 그는 밤새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게 더 이상 서운하지 않았다.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내게  (1) 2012.02.22
그 곳  (4) 2011.12.04
Sweet Little Lies  (0) 2011.10.18
유이 3  (0) 2010.03.05
유이 2  (2) 2010.03.05
유이 1  (1) 2010.03.05







 

- 나는 특별하지 않아. 그런 말로 스스로를 위협하고 싶지 않아.
그런 단어로 날 현혹해선 안 돼. 나에게 아주 유혹적인 단어이지만
나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기 위한 거짓이란 걸 알고 있어.



유이는 연인이 아닌 남자 앞에서 옷을 벗은 건 처음이었고, 이 관계에서 도래할 감정, 예상하는 것보다 쓸쓸하거나, 기분 더러워지거나, 혹은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걸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곧, 유이는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워졌다.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으려고 만들어 놓은 가치관 따윈 이 관계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몸을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이 맞는 건지 그것은 또 올바른 것인지. 그에게 느끼는 쓸쓸함만큼 유이는 그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는 결코 바르게 보이지 않는 감정의 작용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호기심과 관심을 애정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 아니면 좋아하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그는 유이를 안은 뒤, 쉽게 유이의 손을 잡았다. 유이는 그때마다 그 손을 빼 주머니에 넣었다. 까탈스러운 여자애처럼 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몸을 섞었다고 해서 다음에 다시 자신의 몸을 만지는 일이 그에게 스스럼없는 일이 되는 건 원치 않았다.

 

- 사람들에게 있어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잖아.

 

외로움이 밀려와도 걸지 말았어야 했는데,  차라리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뻔히 알만한 다른 여자 중 하나가 전화를 받았더라면 오히려 더 나았을텐데. 그런 목소리로라면 차라리 받지 말지. 딱히 너랑은 전화로 할 얘기가 없다는 식의 목소리로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형식적인 안부를 주고받고 그가 전화를 끊자, 유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가 쉽지 않았다.

- 관계라는 말에는 사이가 존재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뭔가 존재해야 관계도 유지된다구. 그런데 봐, 우리 둘 사이엔 뭐가 있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넌 나와 너 사이에 선을 긋고는 내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막고 있어. 내가 너에게 있어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은 없어. 하지만 네 입으로 말했잖아. 내가 특별하다고. 너야말로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지. 적어도 내가 실수한 것 같다라는 기분은 들지 않게 해줬어야지.


-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외로움을 잊게 만들어 준다면 그걸로 가치가 끝날 뿐 그 행동 자체의 가치를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의미를 두지마. 그 순간의 애정만 즐겨. 섹스는 친밀감을 높여주는, 혹은 친밀감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식의 것이 아니야.


유이는 왜? 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유이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왜? 왜? 라고 투정부리고 싶었다. 유이는 자신에게 특별하다 라는 말해놓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내버려두는 그의 태도에 진력나버렸다.

 

결국, 그를 재수없는 부류에서 정리하여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파일로 분류하고 손이 닿지 않는 책장에 꽂아 두어야 한다. 유이에게는 결단이 필요했다. 

유이는 그가 어른스럽다고 믿었다. 자신이 가진 애정을 마음껏 내비춰도 물러서거나, 모른 척하지 않고 그걸 잘 조절해주고 처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 미숙했다. 그에게 기대를 했다가 실망한 것이 우선 제일 마음이 아팠고, 사람에게 기대한 자신의 태도에 기대감을 줄일 줄 모르는 자신의 어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유이는 그에게 애정을 품은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가 생각보다 자신을 가볍게 대한 것이 싫어졌다. 자세히 보면 비단 유이만을 그렇게 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이라고 유이는 생각하며 자신의 손상된 자아를 위로했다.

 

유이는 그에게 유일하지 않더라도 특별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대감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그 댓가로 쓸쓸함을 가슴에 안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유이를 찾아왔을 때, 유이는 감기약을 먹고 반즈음 몽롱해진 상태였다. 유이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나른한 눈을 하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병문안이라고 하기엔 격정적인, 그렇게 몇 번이나 유이는 절정에 다달았다. 그의 몸에서 벗어난 뒤, 마른 타월로 온 몸에 송글하게 맺은 땀을 꾹꾹 눌러 닦아냈다.등을 돌린 채 잠이 든 그의 곁에 누웠지만 유이의 몸은 노곤함을 느끼지 않았고 감기약에 섞인 수면제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신이 말똥해진 유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쓸쓸한 등짝을 발로 밀어버렸다. 깨지않고 그대로 엎어진 채로 잠들어 있는 그를 그대로 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깨울 마음은 없었다.

 


유이는 CD를 하나 골라 재생시켰다. 이 밤의 배경음악 정도로, 그가 음악 소리에 깨지 않을 정도로.
아트 블래키의 앨범 Moanin' 중 3번 트랙 Are You Real
트럼펫과 색소폰의 조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어쩌면 지금의 상황과 그닥 어울리지 않을 선곡일지도 모르지만 도입부 40초를 계속 리핏해가며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일에 대해 유이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자, 미묘한 간격을 두고 일시정지된 유이와 그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를 하는 그. 유이는 그가 수신되어오는 음성을 듣고 있을 때 악질적인 장난처럼 그에게 키스를 했고, 대답을 해야할 때 즈음에는 그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유이의 그런 행동은 그를 좀 더 도발시키기에 충분했고 그 둘은 전화통화로 방해받은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야하듯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다. 속이려 하는 자가 나쁘다. 하지만 그 순간 유이는 그의 비겁한 태도에 대해 질려하기 보다는 여자를 좋아하는 그래서 정기적으로 몇 명의 여자를 품에 안는 자신의 남자를, 그리고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그 여자애의 둔감한 직감을 경멸했다.

유이와 그 여자애는 서로 얼굴은 알고 있지만 말을 섞은 적이 없기에 엄밀히 말한다면 타인이라고 해도 좋은 관계였다. 생면부지는 아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자신을 경멸할 빌미를 제공하게 된 그 여자아이가 가여웠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양"의 영역에 있는 여자들이 불쌍했다.
유이가 그에게 있어 "양"에서 "음"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순간
"양"의 영역에서는 알 수 없는 그를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추구한다. 잡학(박학한 것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다식한 부류의 사람들은 타인의 결핍된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 폭이 상대적으로 넓을 때가 있다.그 파장이 맞고, 포장이 교묘하게 눈을 가릴 때 사람들은 유혹 당한다.

유이는 타인의 심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것이야 말로 유이가 유혹자가 될 수 없는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킨다.유이는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고, 자신의 결핍에 대해 집요했다.

반면 그는 타인의 결핍된 부분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잘 간파했다. 결핍된 부분을 자신은 봐주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덫을 놓고 여자들이 자신을 갈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역시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는 천성적으로 유혹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과 함께 밤을 보내길 바라는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을 통해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충족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그에게 어울렸으며 본인 스스로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달콤하게 키스를 하며 유이의 옷을 한겹씩 벗겨냈다. 나체가 된 유이를 일으켜 세워서는 벽에 밀어 붙였다. 벽에 눌린 가슴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유이의 머리채를 낚아채어 목을 젖혔다. '헉'하는 소리를 내뱉기도 전에 그는 거칠게 유이의 입술을 탐했다. 주저없이 그리고 탐욕스럽게 유이의 안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유이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그런 행동의 이유가 심연에서부터 밀려나온 충동이 아님을 유이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가학적인 행동은 그저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그는 유이에게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독창적이진 않았지만
그러나 욕심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유이는 자신이 체험한 일을 미화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알고 싶었다. 추한 욕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끌리게 만드는 매력. 그것을 탐닉해 나가기엔 겁 많은 자신. 질투라는 저열한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 관심. 애정.
어쩌면 허영심을 채워주는 경험.

 

그는 유이의 허영을 교묘하게 자극해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길 멈추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유이를 위로하기 위해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느낄 에너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유이가 고민하는 것 혹은 혼란스러워하는 것들에 대해 직면하는 것은 귀찮은 것이었다. 본질은 교묘히 피해나가면서, 기분 좋은 방식의 것으로 위로하는 척 하기. 그저 유이가 원하는 방식의 섹스를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유이는 스스로에게 위안이 된다는 주문 같은 걸 계속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둘다 표면에서 겉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경계면을 부수고 뒤섞이게 만들 계면활성제 따윈 그 둘에게 필요치 않았다.유이는 멀리 떨어져있지 않고 밀착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라는 주문도 함께 외우고 있기 때문일까?

 
유이는 그의 마음을 추측할 뿐이다. 아니, 유이는 그의 마음을 모른다.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곳  (4) 2011.12.04
Sweet Little Lies  (0) 2011.10.18
과거  (0) 2011.07.02
유이 2  (2) 2010.03.05
유이 1  (1) 2010.03.05
Never Knows Best  (3) 2008.11.16




유이는 이곳에 들어와 전체요리를 보조했다. 자신의 파트를 배정받을 때, 시작부터 설거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가야할 길은 멀지만.

주방은 식당이 문을 열기 몇 시간 전부터 분주하다.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틈에도 유이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파스타 코너 쪽으로 눈길을 주곤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만들기에 그토록 감동스러운 맛을 내는 것일까? 친구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우연히 찾은 이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은 직후, 유이는 그 맛을 내는 비법을 알아내고 싶었다.

 


-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전체요리 담당에게서 몇 번의 핀잔을 듣고, 주방의 흐름을 깨고 나서야 유이는 저도 모르게 돌아가는 고개를 자신의 일 앞에 고정시킬 수 있었다.

 


냉정해 보이는 콧날,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입가, 가끔씩 내뱉는 거친 욕설.

 


런치가 끝나고, 디너가 시작되기 전의 휴식 시간, 오늘은 요깃거리는 올리브 해물 파스타였다. 게다가 오늘의 요리 담당은 그였다. 유이는 그때처럼 감동적인 맛을 기대했지만 파스타에서는 정확히 훌륭한 표준적인 맛이 날 뿐이었다. 한 개인의 개성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주문된 음식이 아닌 것을 내어놓을 때는 레시피를 따른다? 후루룩 면을 빨아 당기면서 유이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 글렀어.

 


배를 채운 뒤, 유이는 사교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방과 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왔다. 주머니에 넣어놓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 그런 태도로는 

 


날카로운 눈매로 유이를 노려보던 그는 유이의 입에 문 담배를 빼앗아 툭 분질러 바닥에 내던졌다.

 


- 손님 입에 들어갈 식재료를 만지는 그 손으로 담배를 피는 건 용납이 안 돼. 부주방장한테 들켰으면 넌 바로 잘렸을 거야. 다행인줄 알아. 

 


그는 유이의 머리를 툭 가볍게 치고는

 


- 개념이 없구나. 너

 

라고 말을 하곤 유이가 뭔가 반박할 틈을 주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유이는 화가 났다. 그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전략 없는 자신의 소박함에 화가 났다. 좋은 요리사가 될 거야. 인정받고 말거야. 라는 바람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양식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화가 났다. 유이는 그가 내던진 담배를 주워 주머니 속에 넣었다.

 

 

 

 


교묘하게 잘 감춘다고 생각했는데 유이를 꿰뚫어 본 그의 한 마디. 결코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유이는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알고 있단 식으로 행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모르니까 배우겠다에 쓸 수 있으니까. 그렇게 누군가가 알아봐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후련한 기분.

 


홀에 들어서자. 몇몇이 모여 수다를 떨거나,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유이의 눈은 그를 찾고 있었다. 홀에는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요리는 잊어버리고 쉬고 있는 그 시간에 홀로 주방에 서서 소스의 간을 보고 있었다. 그는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소금을 집어넣었다. 소스를 잘 저어 준 뒤, 그는 다시 맛을 보았다. 그는 만족이란 모를 것 같은 탐욕스러운 표정을 살짝 지었다. 

 


- 아까도 날 그렇게 쳐다봤지?

 


그 순간, 유이는 그가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이는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언저리에 닿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키스가 주는 자체적인 즐거움 때문이 아니었다.


- 너와 하고 싶었던 건, 네가 궁금했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는 건, 내겐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 나는 너와 내가 키스하는 그런 날을 상상하고 있었어.



유이는 재수없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가진 매력을 쉽게 무시하진 못했다.

그는 유이같은 여자를 다룰 줄 알았다. 아니 다양한 타입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여자들을 어느 선까지는 잘 다뤘다.

그와 키스를 하고도 한참 뒤에야 안 일이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듯, 여자도 꽤 있었다.

어리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자신감을 가진,  웃는 얼굴이 귀여운, 그러나 눈물이 그렁 맺힌 눈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스물 한 살 홀 서빙 아르바이트 여대생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저 고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그의 여자라는 자리까지 차지했다. 물론 조건은 간단했다. 일하는 공간 내에서는 티내지 않기. 그 여자아이는  조건을 잘 이행하면서도, 그와 관련있음직한 여자들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난 뒤 여자 탈의실에서

그와 소문이 무성했던, 그러나 결정적인 뭔가가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홀 매니저와 관계가 수다거리가 되었다. 홀매니저는 소문일 뿐이라며 그런 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듯 두 볼이 상기 되었다.  어리기 때문에 용기가 넘쳐나는 - 어쩌면 그 용기가 현명하진 않은 것일수도 있지만 - 여자 아이는

 - 어릴 때부터 여섯 살이나 어린 남자와 어울리는 여자는 어딘가 마녀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우리 매니저님은 그런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뭐 돈없고, 어린 남자애들은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편안한 나이 많은 여자를 좋아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그 사람이 어린 애도 아니구 말예요.
그런 소문이 왜 났는지는 이해가 안 되지만, 소문이라고 하기엔 심한 농담같은 구석이 있는데요.

 

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 자리에서 그렇게 웃는 건 그 여자아이 밖에 없었다.
홀 매니저는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배신감이나 분노가 밥벌이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홀 매니저는 다음 날에도 다음 다음 날에도 평소도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오늘의 파스타를 주문하던, 그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던 손님 하나는
어떻게 직감을 발휘했는지 그 여자애가 테이블을 담당해서 서빙을 할 때마다 못 잡아 먹어 안날난 사람처럼 괴롭혔다.
휴식 시간, 건물 옥상에서 여자아이는 그의 품에서 가녀린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고, 그는 그 눈물을 핥아주었다.
그 장면을 유일하게 목격한 유이는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그와 키스를 하면서 유이가 그토록 흥분했던 것은
그의 키스가‘초대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들여다 본 적 있겠지만,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을 그에게로의 초대.


고소한 크림소스와 야채향이 뒤섞인 키스가 격정적으로 바뀌었다.

 


- 이런 유치한 말을 하게 될진 몰랐지만, 너 맛있어.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유이는 그에게 왜 그랬냐고, 그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따져묻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이는 그와 유이 자신 둘 사이의 관계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 너, 애인 있는 남자와 또다시 키스해도 괜찮아?

유이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힘이 실려있진 않았다.

 

-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그리고 먼저 내게 키스한 건 너야.

- 처음부터 말했으면, 너와 키스할 수 있었을까?

- 글쎄, 잘 모르겠어. 나라면 하지 않을 일에 속하지만, 너였으니까. 그냥 나는 네가 좋아.

 

- 들키지 말자.

 

유이는 응이라고 대답하면서, 그 순간에는 그 일이 누구를 위해 좋은 일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키스를 계속 받을 수만 있다면 좋아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뇌가 정지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스물 한 살짜리 여자아이가 - 그 아이가 사랑을 믿든 그렇지 않든 간에 - 이 사실을 알면 상처받을테고, 둘의 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 그가 유이 자신에게 소속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여자아이를 위해서 들키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유이는 어느 순간, 진짜 이유를 알아버렸다.누구에게도 버림 받고 싶지 않은, 이별 따윈 견디기 힘들어 하는, 자기 자신이 상처받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였다.

그는 어떤 관계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들키지 말자라는 말은 결코 유이를 위한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홀 매니저에게도 그렇게 말했겠지.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Sweet Little Lies  (0) 2011.10.18
과거  (0) 2011.07.02
유이 3  (0) 2010.03.05
유이 1  (1) 2010.03.05
Never Knows Best  (3) 2008.11.16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0) 2008.10.02







- 거짓말 잘 한다

-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말 기분 나빠.
사실을 그대로 표현한 문장이라고 하더라도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
그리고 네가 일반의 도덕률로 날 평가하는 것도 우스워.

 

- 이런이런, 채식주의자들은 감정을 격앙시키지 않는다면서 
 

-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오는 건데.

 

- 동물이 도살 당하면서 느꼈을 불안, 분노.
뭐 그런 기운에서 벗어나기 위해 채식을 선택한 사람치곤 별거 아닌 단어에 격렬히 반응하니 의외라서?

 

- 아니, 네가 일부러 날 도발 시킬 의도로 던진 말이니까, 네 뜻대로 반응해준 것 뿐이야. 재미있어?

 

- 이런 반응은 재미없는데. 한 번 더 할까? 그런 감정이 섹스로 이어지면 재미있을 것 같아.

 

- 이런 감정으로 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암컷 사마귀처럼 조각조각 널 먹어야 풀릴 것 같거든.

 

- 드디어 채식 포기? 풀만 먹는 거 그만해. 내가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줄게. 응?

 

 

 

 

 

유이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안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장난스러웠다. 

나쁘다라는 수식어는 참으로 섹시하게 들린다. 나쁜 남자. 하지만 늘 나쁘기만 하다면 어떤 여자가 그의 곁에 붙어있겠는가? 나쁜 남자는 달콤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주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유이는 이해 불능인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쓸쓸함이란 서로에게 약간의 애정과 서로에게 맞은 표현 방식만 가지고 있다면 최소화 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노력하지 않았다.

 

유이는 말을 믿지 않는다. 특히 그가 하는 말들. 귀에 걸리는 달콤한 말은 언제나 유이의 두 볼을 붉게 물들이고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들뜬 깊이의 두 배가 넘는, 아주 깊숙한 허무함을 안겨주었다.

 

몸을 합친 사이라면 더욱더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자신을 열어보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유이에게 상처가 될 말을 정확하게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던졌으며, 자신을 꽁꽁 싸매고 아무 것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유이는 그를 안을 때마다 슬펐다.

 

그는 물과 같았다. 어느 새 유이 곁에 차 올라 있었고, 벗어날 수 없게 유이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발버둥칠수록 깊이 빠지는, 그 물에 유이는 자신을 내맡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온하게 물 위에 떠 있으면서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만큼 가라앉고 있었다.

 

유이는 그가 품에 안는 네 명의 여자 중에 하나였다. 유이는 노력해서 다른 여자들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수가 보이게 행동했다. 어렴풋이 그 여자들이 누구인지도 알 것 같았다. 유이와 그가 있는 세상은 협소했고, 둘은 공유하는 공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유이가 채식주의자가 될 거야. 라고 말한 그 날 밤. 모두다 퇴근한 고요하고 차가운 주방에서 그는 새우나 베이컨을 대신해서 버섯과 브로컬리, 그리고 콩을 넣어 유이가 선호하는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다. 유이는 그릇에 묻은 크림 소스를 한 방울도 남길 수 없다는 전투의지를 품은 사람마냥 긁어 먹었고, 그는 유이 입가에 묻은 크림을 핥아 먹었다. 그 둘의 첫 키스는 신선한 야채와 우유 냄새가 났다.

 

 

- 엄밀히 말하면 유제품도 먹어선 안 되는 거 잖아?

 

- 네가 날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 준 건데, 먹을 수 없어. 라고 할 순 없잖아.

 

 

 

유이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어째서 자신을 품었는지는.

그러나 유이가 그를 원했다는 것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이는 수줍어하는 표정을 버렸다. 몰두하고 있음.

 

- 너 나랑 할 때, 요리 하면서 짓는 표정 짓는 거 알아?

 

-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 그래서 너 때문에 미칠 것 같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게 힘들어.

 

- 네가 나가면 되겠네. 나는 여기서 수석 요리사가 될 때까지 버틸 거야.

 

- 날 내보내고 싶은 거야?

 

- 상관없어. 네가 있든 없든. 넌 내 경쟁자는 아니니까.

 

- 윽, 상처 주는 말인데.

 

- 그 정도로 상처 따윈 받지 않은 거 알아. 진짜 상처가 되었다면 상처 받았단 말도 안 할 거잖아. 넌.  

 

 

 





유이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등 뒤로 한 채, 벗어놓은 속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그는 다리를 쭈욱 뻗어 엄지발가락으로 유이의 등뼈를 쓸어내렸다. 유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 내가 쓸쓸해지는 일 따윈 그만 할래. 이제 오지마.

 

그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유이의 말을 농담처럼 여겼다.

 

- 넌 실력도 있고 스카웃 제의도 많이 받으니까, 아예 다른 레스토랑으로 가 버렸으면 좋겠어.
하지만 나 편하자고 그런 걸 요구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까, 지금 일어나서 나가주면 좋겠어.

 

그는 이내 먹던 과자를 뺏긴 아이처럼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소용없어. 이제 안 통해. 그런 표정.


- 제법 잔인한 구석이 있다

 

- 그렇게 만든 건 너야. 우리 관계를 항상 먼저 포기한 건 너였어.

그 뒤에 힘겹게 추스리고, 눈물을 닦고, 쓸쓸함을 이겨내고

이런 모든 과정을 나는 너와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 해냈던 거라구.

   

- 당신, 쎄구나.

 

- 내 말투 따라 하지마. 특히 그 당신이라는 말. 하지마.

너한테 그건 오직 너 하나를 가리키는 2인칭이 아니라 당신이 웃어준 다수 여자들을 향해,

모두들 그 당신이 자신이라고 믿게 만드는 주문 같은 거잖아.

난 그런 뜻으로 그 단어 쓴 적 없어. 그러니까 어설프게 따라 하지마.

 

- 왜 그래? 너답지 않게?

 

- 내가 누군데? 넌 내 이름을 불러준 적도 없어. 넌 나다운 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 넌 나를 통해,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 너의 필요를 충족시킨 것 뿐이지, 나라는 존재가 필요했던 순간은 없었어.

 

-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 더 많이 예뻐 해 줄게.

 

- 이제 필요 없어, 그런 거. 너도 내가 하는 말 하나도 신경 안 써도 돼. 나 역시 네가 나를 피곤한 여자라 생각하든 말든 전혀 관심 없으니까.

 

유이의 목소리엔 흥분도,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수도 없이 연습해서 기계처럼 딱 맞아 떨어져 버리는, 그런 건조한 말들의 연속이었다.

 

- 어차피 너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내 이름이 그렇잖아.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유이하지. 네가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다면, 겁 내지말고, 몸 사리지 말고 네가 먼저 사람을 마음으로 좋아해 봐.
상대의 마음을 홀리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좋아해주라고. 계산적이잖아. 상처받을 마지노선이 조금이라도 보이려 하면 도망가고, 어쩔 때보면 넌 흑심만 있는 연필 같아. 말만 잘하지 궁극적으로는 하룻밤 품에 안고 잘 따뜻한 여자를 구하는 거 뿐이잖아.
너 매력있어. 상당하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넌 알면 알수록 건조해서 부서져 버릴 것 같아. 혹은 타인의 감정이나 슬픔 따위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동조도 할 수 없는 사이코 패스이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어. 네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바로 그런 유형일 거야.

 

유이는 알고 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 베풀어 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감정적으로 궁핍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몸보다 마음을 먼저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자기 곁에 오래 두지 못하고 금세 싫증을 내거나, 지친 여자가 먼저 떠나간다는 것을.

 

네 명의 여자. 그 중에 유이는 마라톤을 하듯 가장 오래 버텼지만.

그 길에서 유이는 자기가 완주해야 할 코스는 이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다.

 

 




'차가운 달콤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  (0) 2011.07.02
유이 3  (0) 2010.03.05
유이 2  (2) 2010.03.05
Never Knows Best  (3) 2008.11.16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0) 2008.10.02
내일도 나를 사랑해줄건가요?  (0) 2008.09.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