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찾아왔다. 5년 만의 재회. 헤어지기 전과 많이 달라진 것들, 여전한 것들 그리고 서로의 근황도 나누었다. 그는 여전한 목소리로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서투르지만 성실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무의미한 그 이야기를 예의상 생글거리며 듣고 있자니 피로해졌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 주째 이어진 장마 때문에 우울해져버린 나는 하루 종일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소재의 까끌까끌한 시원한 침구 위에 몸을 누일 수도 있었지만 아무런 온기가 없는 침대에서 혼자 잠들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차가운 외로움을 견디는 것일까?


나는 그를 내버려둔 채 몸을 씻었다. 그가 나를 찾아오면 온몸 구석구석 좋은 향이 베이도록 거품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몸을 씻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무기력과 열기를 씻어내기 위함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원피스를 걸치고 젖은 머리는 수건으로 감싼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가 떠나기 전과 달라진 내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책장에 올려놓은 나의 귀걸이며, 팔찌며, 장식품들을 만져보고 있었다. 나는 선풍기를 틀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날렸다. "그냥 두면 안 될까?" 그가 내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게 싫었다.

 

그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뭔가 말을 하려다 내게 손을 뻗었다. 머리칼에 닿을 것 같았다. 나는 살짝 움직여 거리를 두었다. 그의 행동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의 거리였다. 내겐 그의 땀 냄새마저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너에게서 비 냄새가 나." 그가 가진 고유의 냄새는 아니었다. 그게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는 좀 씻어도 되냐고 물었다. "수건은..." 화장실 옆 수납장의 첫 번째 서랍. 5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이었다. 그 역시 더 들을 필요도 없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의 거대한 몸이 내 몸을 덮고 있었다. 익숙한 살 냄새와 항상 그리웠던 무게.

형상기억합금처럼 내게 적당한 강도의 포옹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의 팔과 가슴. 나는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그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너의 페니스를 받아들일 수 있게 젖게 만들어줘. 들뜬 내 입에서 지금 넣어달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도록 그를 무는 건 우리 둘만의 비언어적인 신호였다.

 

재회의 목적이 섹스는 아니었다. 애정을 되찾아 보겠다는 거창하고 허황됨 마음도 둘에겐 없었다. , 휴식. 긴장감 없는 나른함을 원했다. 다만, 남자와 여자가 한 이불을 덮고 한 침대에 누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가. 우리는 수많은 슬픔 중 하나를 방지했을 뿐이었다.

세상에 여자는 너 하나뿐이라고 말했던 그였다. 5년 사이 그에게 몇 명의 사람이 여자로 받아들여졌는지 나는 모른다. ‘유일한 여자나는 그 말이 성실하게 들려 그를 꽤 오래 사랑했었다.

 

섹스가 끝난 뒤 그는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책갈피가 꽂혀있던 페이지부터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가 읽다 지치면 나는 이어받아 눈으로 읽었고 그렇게 조용히 책에 몰입해 있으면 그는 내게서 책을 빼앗아갔다. 눈을 흘기면 그는 다시 소리 내서 책을 읽었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우스꽝스러운 장면 묘사가 나오면 나는 웃었고, 그는 한 줄 줄글이 너무 짧아 끊어지는 부분이 많아서 소리내 읽는 게 힘들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다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책 읽는 소리도 조금 뒤에 멈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고 있음. 무방비의 나를 응시하고 있음.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중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는 눈을 떴다.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신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 그에게 다가가 흡입력 있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5년이 지나도 그를 작동시키는 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손으로는 그의 페니스를 더듬었다. 단단해져 있었다. 내게 반응하는 그의 페니스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었다.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느낌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고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백 번을 그와 했기 때문일까? 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냈지만 서로의 몸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너무나 차분했다.

 

그는 내 방을 나서며 읽을 만한 책이 없냐고 물었다. "없어." 그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백 권의 책이 책장에 꽂혀있었다. "언제 돌려받을지도 모르잖아." 나의 대답에 그의 표정은 흐려졌다. 그는 밤새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게 더 이상 서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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