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는 이곳에 들어와 전체요리를 보조했다. 자신의 파트를 배정받을 때, 시작부터 설거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가야할 길은 멀지만.

주방은 식당이 문을 열기 몇 시간 전부터 분주하다.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틈에도 유이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파스타 코너 쪽으로 눈길을 주곤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만들기에 그토록 감동스러운 맛을 내는 것일까? 친구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우연히 찾은 이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은 직후, 유이는 그 맛을 내는 비법을 알아내고 싶었다.

 


-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전체요리 담당에게서 몇 번의 핀잔을 듣고, 주방의 흐름을 깨고 나서야 유이는 저도 모르게 돌아가는 고개를 자신의 일 앞에 고정시킬 수 있었다.

 


냉정해 보이는 콧날,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입가, 가끔씩 내뱉는 거친 욕설.

 


런치가 끝나고, 디너가 시작되기 전의 휴식 시간, 오늘은 요깃거리는 올리브 해물 파스타였다. 게다가 오늘의 요리 담당은 그였다. 유이는 그때처럼 감동적인 맛을 기대했지만 파스타에서는 정확히 훌륭한 표준적인 맛이 날 뿐이었다. 한 개인의 개성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주문된 음식이 아닌 것을 내어놓을 때는 레시피를 따른다? 후루룩 면을 빨아 당기면서 유이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 글렀어.

 


배를 채운 뒤, 유이는 사교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방과 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왔다. 주머니에 넣어놓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 그런 태도로는 

 


날카로운 눈매로 유이를 노려보던 그는 유이의 입에 문 담배를 빼앗아 툭 분질러 바닥에 내던졌다.

 


- 손님 입에 들어갈 식재료를 만지는 그 손으로 담배를 피는 건 용납이 안 돼. 부주방장한테 들켰으면 넌 바로 잘렸을 거야. 다행인줄 알아. 

 


그는 유이의 머리를 툭 가볍게 치고는

 


- 개념이 없구나. 너

 

라고 말을 하곤 유이가 뭔가 반박할 틈을 주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유이는 화가 났다. 그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전략 없는 자신의 소박함에 화가 났다. 좋은 요리사가 될 거야. 인정받고 말거야. 라는 바람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양식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화가 났다. 유이는 그가 내던진 담배를 주워 주머니 속에 넣었다.

 

 

 

 


교묘하게 잘 감춘다고 생각했는데 유이를 꿰뚫어 본 그의 한 마디. 결코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유이는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알고 있단 식으로 행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모르니까 배우겠다에 쓸 수 있으니까. 그렇게 누군가가 알아봐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후련한 기분.

 


홀에 들어서자. 몇몇이 모여 수다를 떨거나,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유이의 눈은 그를 찾고 있었다. 홀에는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요리는 잊어버리고 쉬고 있는 그 시간에 홀로 주방에 서서 소스의 간을 보고 있었다. 그는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소금을 집어넣었다. 소스를 잘 저어 준 뒤, 그는 다시 맛을 보았다. 그는 만족이란 모를 것 같은 탐욕스러운 표정을 살짝 지었다. 

 


- 아까도 날 그렇게 쳐다봤지?

 


그 순간, 유이는 그가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이는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언저리에 닿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키스가 주는 자체적인 즐거움 때문이 아니었다.


- 너와 하고 싶었던 건, 네가 궁금했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는 건, 내겐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 나는 너와 내가 키스하는 그런 날을 상상하고 있었어.



유이는 재수없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가진 매력을 쉽게 무시하진 못했다.

그는 유이같은 여자를 다룰 줄 알았다. 아니 다양한 타입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여자들을 어느 선까지는 잘 다뤘다.

그와 키스를 하고도 한참 뒤에야 안 일이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듯, 여자도 꽤 있었다.

어리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자신감을 가진,  웃는 얼굴이 귀여운, 그러나 눈물이 그렁 맺힌 눈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스물 한 살 홀 서빙 아르바이트 여대생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저 고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그의 여자라는 자리까지 차지했다. 물론 조건은 간단했다. 일하는 공간 내에서는 티내지 않기. 그 여자아이는  조건을 잘 이행하면서도, 그와 관련있음직한 여자들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난 뒤 여자 탈의실에서

그와 소문이 무성했던, 그러나 결정적인 뭔가가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홀 매니저와 관계가 수다거리가 되었다. 홀매니저는 소문일 뿐이라며 그런 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듯 두 볼이 상기 되었다.  어리기 때문에 용기가 넘쳐나는 - 어쩌면 그 용기가 현명하진 않은 것일수도 있지만 - 여자 아이는

 - 어릴 때부터 여섯 살이나 어린 남자와 어울리는 여자는 어딘가 마녀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우리 매니저님은 그런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뭐 돈없고, 어린 남자애들은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편안한 나이 많은 여자를 좋아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그 사람이 어린 애도 아니구 말예요.
그런 소문이 왜 났는지는 이해가 안 되지만, 소문이라고 하기엔 심한 농담같은 구석이 있는데요.

 

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 자리에서 그렇게 웃는 건 그 여자아이 밖에 없었다.
홀 매니저는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배신감이나 분노가 밥벌이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홀 매니저는 다음 날에도 다음 다음 날에도 평소도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오늘의 파스타를 주문하던, 그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던 손님 하나는
어떻게 직감을 발휘했는지 그 여자애가 테이블을 담당해서 서빙을 할 때마다 못 잡아 먹어 안날난 사람처럼 괴롭혔다.
휴식 시간, 건물 옥상에서 여자아이는 그의 품에서 가녀린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고, 그는 그 눈물을 핥아주었다.
그 장면을 유일하게 목격한 유이는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그와 키스를 하면서 유이가 그토록 흥분했던 것은
그의 키스가‘초대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들여다 본 적 있겠지만,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을 그에게로의 초대.


고소한 크림소스와 야채향이 뒤섞인 키스가 격정적으로 바뀌었다.

 


- 이런 유치한 말을 하게 될진 몰랐지만, 너 맛있어.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유이는 그에게 왜 그랬냐고, 그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따져묻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이는 그와 유이 자신 둘 사이의 관계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 너, 애인 있는 남자와 또다시 키스해도 괜찮아?

유이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힘이 실려있진 않았다.

 

-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그리고 먼저 내게 키스한 건 너야.

- 처음부터 말했으면, 너와 키스할 수 있었을까?

- 글쎄, 잘 모르겠어. 나라면 하지 않을 일에 속하지만, 너였으니까. 그냥 나는 네가 좋아.

 

- 들키지 말자.

 

유이는 응이라고 대답하면서, 그 순간에는 그 일이 누구를 위해 좋은 일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키스를 계속 받을 수만 있다면 좋아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뇌가 정지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스물 한 살짜리 여자아이가 - 그 아이가 사랑을 믿든 그렇지 않든 간에 - 이 사실을 알면 상처받을테고, 둘의 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 그가 유이 자신에게 소속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여자아이를 위해서 들키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유이는 어느 순간, 진짜 이유를 알아버렸다.누구에게도 버림 받고 싶지 않은, 이별 따윈 견디기 힘들어 하는, 자기 자신이 상처받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였다.

그는 어떤 관계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들키지 말자라는 말은 결코 유이를 위한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홀 매니저에게도 그렇게 말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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