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섹스 어필하는 쇼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자보고 싶다'는 성희롱보다 섹시함에 대한 최상급 찬사가 아닌가 싶다. 

곽정은의 발언도 그 맥락의 연장선이었다는 생각. 

물론 던져진 말만 보면 공중파라는 특성 상 무리수가 있었고 불쾌하다 여길 수 있지만

정말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이었다면 편집상에서 잘라냈어야 하는 것이다.

연출과 작가가 무리없다고 판단했다면 그 발언자보다 최종 결정자의 선택에 대해서 비난을 해야한다.



그 발언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에 집중을 해야하는데 

장기하가 곽정은에게 그렇게 말했으면 옹호하고 지지해주는 사람 하나없이 다들 변태 미친놈 취급할 것이라며

여성과 남성의 발언권의 차별에 대해 말하며 논점을 흐트리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가 여자한테 자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칭찬으로만 듣기에 불쾌한 지점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그 욕망을 일으키는 가치 기준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는지 묻고 싶다.


섹시함 소위 자보고 싶다라는 충동이 일게 만드는 성적 매력은 아주 중요하고 훌륭한 매력포인트이지만, 

그럼에도 남성의 섹시함과 여성의 섹시함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다르게 매겨지고 있다. 

남성의 섹시함은 다른 능력 +의 요소라면 여성의 섹시함은 섹시함에만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단순히 생물학적 여자라서(남성이 보았을 때 섹스 충동이 들 정도로 여성이라는 기호성을 가진) 

단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피해 사례를 고스란히 겪으며 자라난 여성과 

그런 불쾌한 경험이 부재한 남성이 섹시함에 대해 같은 태도를 가지기 힘들다.



사실 섹시함은 권력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남성들의 머릿 속에 자리잡고 있는 팜므파탈 봐. 

엄청한 매력을 가진 여자는 '남자들을 파멸시키지'라며 두려운의 대상이 되지만  

사실 그러기 전에 그 여성은 여성 무리에서 우선 은근하게 배척 당하고 온갖 루머의 대상이 된다. 

(물론 그럼에도 남자들은 그녀를 섹스대상으로 본다)



요즘 사회적 무리가 될 발언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데.. 

그닥 영향력도 없는 개인의 섹스 취향 혹은 욕망에 그토록 난리인건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 아무도 품어보지 않은 것처럼! 

어떤 말은 발화하면 솔직한거고 어떤 말은 무리라는 건지. 기준을 모르겠다.



(+) 평소에 자보고 싶은 사람 리스트 많은 1인이라 제 발 저려서 이러는 거 아님.

<섹스앤더시티>의 작가 신디 슈펙의 <러브 바이츠>에 1화가 떠오르는 사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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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연애 실용서를 읽는 사람들이 있다.

- 나 역시 일종의 그 분야에서 그런 종류의 책을 내는 사람이긴 하다.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조심하는 것이 소위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요소이다. 


좋은 연애를 위한 필수 과정은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이다.


전략적 연애기술과 남자가 좋아하는 여성적 태도로 위장하는 건 깊이있는 관계 맺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나에 대해서 할애를 할 필요가 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불안과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살펴본다면 상대가 채워줄 부분과 아닌 부분에 대한 구분이 가능해진다.

그런 것도 모르고 상대에게 제대로된 요구도 없이 상대가 자신을 채워 완벽하게 만들어 줄거라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 결코 가능할 리 없는 일을 바라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연애와 관련하여 남의 사연들을 읽는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고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연애 상담을 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소위 다른 사람들의 연애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들여다 보지 않는다.

네이트 판 같은 곳을 들여다보지 않는 건 내가 하는 상담만으로도 여자는 전부 쌍년같고 남자들은 개쓰레기이며 결혼생활은 불륜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도드라져 보인다고 모든 관계가 문제 투성이인 것은 아니다.

반듯한 사람들이 시선을 끌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과 연애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런 불안을 자극해서 남성 상담가들이 쓴 연애전략서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들이 서술하고 있는 케이스는 상담을 받으러 온 '문제가 있는 남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만족시킬 방법이라는 것이다.


제대로된 관계맺음이 무엇인지. 자신을 들여다 본 적 없는

소위 포식자나 사냥꾼에 어울리는 남자들에게 그들에게 맞는 먹잇감이 되라고 알려주는 책이란 거다. 

남자들이 사랑을 모르고 감정을 교류할 줄 모르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연애를 통해 훈련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책들이 여성으로 하여금 남자들을 잘못 트레이닝 시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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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건 남자의 능숙함이다. 

미숙하고 서툰 것은 곧잘 촌스러움이나 애정할 수 없음으로 결론이 나곤 한다.

나도 모르는 나를 잘 다뤄주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 한국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원하는 것은 참 많다라는

모 외국인의 아주 통찰력 있었던 발언에 기대어   


그럴 때 D가 해준 말이 있었다. 

"너도 능숙한 게 아니잖아. 그런 매끈함이 오히려 의심스러운 거 아냐?"


여자를 다룰 줄 안다고 자부하는 남자들은 여자를 있는 그대로 예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기 앞에서 옷을 벗길 수 있는지 아는 것뿐이다. 

본능적으로 사냥꾼. 대상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먹어치우기 위한 포식자의 기술인거지. 

그런 걸 능숙하다고 하더라







연애 상담를 하다보면 섹스를 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건 이런저런 건데 

그런 걸 하면 애인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혹은 애인에게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듣곤 한다. 

애인에게 안 되는 일을 누구랑은 해도 된다는 건가? 이상하지 않나?


음란한 혹은 변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적 판타지를 애인과 공유하길 꺼려하고 

그렇게 억눌린 욕구를 다른 사람과의 '일탈'적 섹스에서 시도하는 것만큼 불행한 섹스도 없지만 

여성 입장에선 밝히는 여자가 되는 부담감이 있을 것이다.

남성 입장에선 사랑 함에도 연인으로 하여금 섹스만을 위한 관계냐는 오해를 받는 게 싫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 괴상하고 초초 변태적인 걸 상상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봐야 하드코어한 야동 수준이겠지.  

그런데 가장 본능적이여야 할 순간에 써야하는 가면 때문에 섹스가 재미없어진다면, 

그래서 욕망 해소만을 위한 제3자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렇게 유지되는 연인 관계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애인이랑은 섹스 빼곤 다 잘 맞거든. 섹스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라고 변명하던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랑 섹스를 하지 말고 그런 소리를 하던가. 

죄책감이나 불만을 내게 토로하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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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씨가 블로그에 쓴 '연애'라는 글을 읽었다.


관계의 종말을 부추기는 건 을의 조급함이라.. 

고통을 드러내면 갑은 냉담해질 뿐이라는 사실은, 잔혹한 진실을 서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 을에게 그런 관계라도 고통을 참고 닥치고 유지하라는 건 

결코 을을 구원하는 메세지는 아닌 것 같다. 갑이 편해지기 위한 주문이지


갑님이 갑질하는 소리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조용히 있어라. 

찍소리 말고 이 관계를 유지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라. 

갑의 입장을 대변한.





연애도 권력 관계의 측면이 있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더 좋아하면 지는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 말이 싫었다. 
그게 진실이며 부정할 수 없지만 삐뚤어지고 싶었다. 
그를 내가 더 좋아했기에 갑의 자리를 기꺼이 내줬다.

하지만 그걸 회수할 힘도 내가 가지고 있다. 

그가 빛나는 건 내가 그 빛을 주어서이다.

그걸 알면 고통을 끊어내는 시도를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다보면 고통이 얕을 때 발을 빼는 단호함을 실천할 수 있다. 

잘못된 상대에게 힘을 내주지 않는 법을 익혀나가는 게 연애다.

연애란 적어도 그래야 한다.

회사가 갑질을 해대고 국가가 국민을 노예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랄 같은데 

연애마저 그렇게 되게 내버려둘 순 없다.



연애에서 갑질 중인 혹은 고백을 거절한 상대에게서 빠져나오려 할 때 
쉽게 길을 터주지 않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잃게 되는 건 싫어서 그 순간 나를 냉정한 사람으로 몰고 가며 
자신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그 순간에 갑자기 친절해지는 걸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구나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어떤 상황과 시기적 핑계를 대더라도 곧 다시 냉담해질 사람이다. 
믿고 싶고 기대하고 싶겠지만 그래봐야 돌아오는 건 배신감과 외로움과 낮아지는 자존감 뿐. 
나를 조정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남자들끼리 나누는 섹스의 경험담 혹은 모험담의 허와 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과시적인 수컷일수록 별 볼일 없다는 것이다. (77학개론의 가사와 같달까? - 너 쟤랑 잤어? 당근 얄짤이지. 입만 살아서는 반코 한코. 경험은 졸 많고 가리지도 않고 하지만 사실은 새빨간 다 구라 현실은 세운상가서 사온 빨간 마후라)

 

여자들끼리의 섹스토크도 긍정적인 요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여자에게는 남자와 보낸 하룻밤이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한 유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십 대 초반 대부분  여자에게는 섹스가 미지의 경험인 그 시기에, 여성적 매력이 넘쳐나서 혹은 호기심이나 행동력이 뛰어나서 먼저 섹스를 경험하게 된 여자는 또래에게 자신이 겪은 그 밤을 과장, 미화시킨 채 전파한다. 미경험자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의 완전체가 섹스인양 유난스럽게 내뱉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상대의 애정을 확인하는 일’이 섹스였고 그 행동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고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샤랄라 해진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비록 염장과 민폐라 하더라도 관대함을 최대한 확장시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에 숨어 있는 의도가 상대를 무시하거나 괴롭히기 위함이라면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힘들다.

 

 

 

 

 

이십대 중후반이 되어서도 그런 어린 애 같은 태도를 고치지 못한 채, 주변의 모태솔로 혹은 싱글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섹스는 많이 해봐야 좋은 걸 알게 될텐데 그렇게 혼자 지내면 어떻게 하나’라거나 ‘네 주변에는 제대로 된 남자도 없고, 너는 남자 보는 눈도 없어서 맨날 이상한 애들에게 꽂히더라’며 ‘결국 문제는 너다’라는 화법으로 상대의 마음에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으며 섹스토크를 이어나가는 여자들과는 도무지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얼마나 대단한 경험과 만남을 하고 지내면 타인의 섹스를 걱정하고 훈수를 둘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것일까?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은 그런 식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상담해주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줄 때 우월감이나 안도감이 끼어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그런 감정은 배제시키고 상대의 자존감을 해치거나 자학하지 않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말 안에는 ‘내가 너보다 더 잘났다’는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가여운 것은 정말 잘난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내뱉는 여자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열등감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섹스와 관계맺음에 결코 초월적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와 그런 식으로 비교해 우위를 선점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괴롭히고 마는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런 여자의 주변에는 친밀한 사람들이 많아 보일 것이다. 애정을 드러내놓고 표현해줄 동성과 이성도 충분하다. 인기 많은 여자라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 또한 그런 여자들의 특징이다. 이성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 요소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자신의 치부나 약한 점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정을 호감으로 이끄는 본능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계를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의 감정을 ‘말’로서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걱정해주는 척 내뱉는 말로 상처를 입히는 동시에 “나는 너랑은 다르지. 나를 봐. 너는 나를 결코 따라오지 못할 걸” 이런 종류의 심리적 고문을 일삼으며 상대방을 깔아뭉갠다. 그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 약하고 현재 관계나 연애에 문제를 겪고 있는 자신과는 다른 여자인 것이다.

 

대단히 친한 관계도 아닌데도 섹스토크로 화제를 돌리며 상대의 여성적 매력을 부정하는 말을 내뱉고, 사람 좋은 척 걱정해주면서 자존심 상하는 말을 던지며 그것에 대해 미안하기는커녕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되레 탓한다면 그 관계의 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과 쉽게 나누지 못하는 섹스토크를 나눈다고 해서 그것이 친밀하고 돈독한 사이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서로 나누는 섹스토크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거나 자존감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흘러가야한다.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은밀한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 상처를 받는다면 상황이라면 떠벌리기를 멈추는 것이 옳다.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말이 이미 차고 넘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야 말로 현명한 선택이다. 

 

 

 

 

 

 

 

 

 






 

이 블로그를 만든 이후 유입키워드의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단어는 ‘쓰리섬’이었다.

 

남자들에게 섹스판타지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
대답하기 민망해하면서 “그래도 솔직하게 말한다면..” 쭈뼛거리며 답한 것도 쓰리섬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쓰리섬은 내가 칼럼의 소재로 삼았던 여자 한 명에 남자 두 명이 함께 하는 쓰리섬이 아닌 남자 한 명에 여자 두 명의 쓰리섬이리라.

 

한 명의 여자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남자들이 대부분이건만 쓰리섬의 욕망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남자들은 AV, 포르노 영상을 보기 전부터 종족 번식에 대한 욕구가 강렬한 남자들은 섹스의 질보다는 섹스의 양에 조금 더 집착했을 것이다. 한 번의 섹스에서 두 번 삽입은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효율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 이토록 강렬한 열망을 느끼는 것이 아닐런지...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문란한 락스타나 체력이 좋은 스포츠스타에 열성적으로 미쳐있는 그루피가 아니라면 다른 여자와 함께 섹스를 시도할 용기를 내는 여자는 드물 것이다. 혹여나 운 좋게 여자친구가 쓰리섬을 허락한다손 치더라도 상대여자에게는 삽입을 허용하지 않는 배타적인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랬을 때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드라마 <Engtourage>에서도 에릭 머피의 여자친구인 슬로안은 그의 즐거움을 위한 쓰리섬을 제안한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에게 삽입하는 건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릭은 쓰리섬을 해본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삽입을 못했다는 이유로 슬로안의 친구를 욕망하며 괴로워한다. 그가 그런 갈등을 하고 있음을 눈치 챈 슬로안의 친구는 "쓰리섬을 경험하게 해준 멋진 여자친구한테 헌신해야할 것"이라는 충고를 남기고 떠난다.
 
어쨌거나 현실에서 당신이 여자들이 한 번 자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할만한 섹시가이이거나
엄청난 권력이나 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이런저런 장애도 많고 실질적으로 실현가능성 낮은 것이 쓰리섬이다.
그러니 더욱더 욕망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욕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쓰리섬을 욕망하는 남자들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생겼다.



어느 날 당신의 애인 혹은 아내가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쓰리섬이라면 해보록 하자.” 라고 제안을 한다.

당신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행복하고 즐겁고 그녀가 사랑스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다른 여자와 함께 하는 쓰리섬을 경험하고 나서,
다른 남자가 우리의 침실에 함께하는 쓰리섬도 해보고 싶다.”
라고 요구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당신은 그녀의 욕망을 받아들일 수 있나?
초록색 질투의 불에 휩쌓여 치정살인극으로 끝내지 않고
두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솔직한 당신의 속내가 궁금하다.










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꽃을 선물할까 합니다.
어떤 꽃을 좋아할까요?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머리 속엔 장미, 백합, 리시안셔스 이런 꽃 이름들 말고,
'왜 꽃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꽃 예쁘다. 아름답다. 향기롭다.
그것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다.
먹을 수도, 장식할 수도 없는, 시들고나면 아무 쓸모도 없는 선물이 말이다.
물론 선물이라는 게 꼭 실용적이여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꽃 선물은 낭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꽃 선물이라는 건 다발로 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분리수거해야 할지도 난감한 선물이다.

화혜업에 종사하시는 분에겐 그닥 반가운 답변이 아니겠지만
20대 중반만 지나도 꽃선물 자체만으로 좋아할 여자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분전환용 한 송이 정도는 기분 좋을 수도 있다.
비오는 날 수요일엔 빨간 장미꽃 한 송이.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다.
햇살 좋은 따뜻한 봄날, 프리지아 꽃 한 단 정도도 애교롭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가끔 그 정도는 여자 친구들에게도 선물 하곤 하니까.
그러나 우린 환심을 이끌어낸다에 목적을 두고 있기에
꽃보다는 가치가 있는 것.
오래 지니면서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상기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한 것이다.
일주일 뒤 시들고 마는 선물, 안 된다.

반짝거리면서도 녹슬지 않는 귀걸이나 목걸이.
선물하는 타이밍이 중요하긴 하지만 영수증을 동봉한
- 혹 그녀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교환이 가능하도록 
가방 이런 것들이 훨씬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여자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이 로망이었다고?
좋다. 그렇다면 선물하라. 하지만 꽃다발만 선물해서는 안 될 거다.
잊지마라. 꽃이 지고 나도 그녀 곁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을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수용성 윤활제의 경우 사용하다보면 금세 수분을 빼앗겨서 미끈거리는 정도가 약해지는데,
그럴 땐 윤할제를 더 바르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 

바로 침대 옆에 물 한 잔! 

입구가 넓은 그릇에 떠놓은 물을 침대 주변에 놓아두고
윤활제가 말라간다고 낄 때마다
손에 물을 조금 묻혀 마사지하면
금방 미끈거림이 제 역할을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재야고수 P양이 알려준 노하우를 나눠드립니다..^^





우선 본의아니게 트랙백 걸어둔 칼럼 때문에 제 주변에 '류'씨 성을 가진 친구에게 심려를 끼쳤네요.
- '암만 익명의 그녀고 해당인물이 내가 아니라 해도 나로 읽히는 걸, 해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라고 문자를 보내왔네요.
진심으로 조금, 미안합니다 >.<



칼럼을 쓰려고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이 글에서는
쓰리섬을 할 때 서로 지켜야할 것들을 명시해놓은 해외 웹사이트를 직역하고 본인이 코멘트를 덧붙여 놓았더라구요. 뭐 여자 둘에 남자 하나라는 방식의 쓰리섬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쓰리섬은 분명 어렵다. 하지만 한번 하기가 어렵지 일단 하게 되면 몇 배로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게 경험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래서일까. 쓰리섬을 할 때 주의할 점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은 서로의 룰을 정하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자극을 원하지만 서로에게 넘지 말아야할 것들은 정해놓고 서로를 존중해주는 가운데 쓰리섬을 지켜야한다는 것. 특히 두 명의 여성과 관계를 갖는 남성이라면 한 여성에게만 치우쳐 다른 여성에게 질투심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하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두 번째로는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줄 자세가 되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두 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는 남성이라면 한 명의 여성에게 삽입을 하더라도 입으로 여성의 몸이나 성기를 애무해줄 수 있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반대로 두명의 남성과 섹스를 하는 여성이라면 삽입을 하고 있는 남성 외의 다른 남성에게도 펠라치오 등의 립서비스(?)를 아끼지 말아야한다고 충고한다.


세 번째로는 노는 손 역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쓰리섬은 2+1의 관계이기 때문에 삽입이나 구강을 통한 애무를 제외하면 손이 모두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위치를 잘 활용해 손으로 상대의 몸을 잘 패팅할 필요가 있다. 황홀한 손놀림이 곧 상대의 쾌감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네 번째로 신중한 삽입이다. 앞서 말했듯이 남성이 한 여성에게만 신경쓴다면 다른 여성의 마음은 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성이 가진 물건은 하나. 삽입시간의 배분에 신경을 써야한다. 한 여성에게 삽입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다른 여성의 몸을 계속 터치해주고 삽입에 의해 여성의 몸이 달아올랐다 싶으면서 다시 빼 다른 여성의 몸에 넣는다. 이런 주기를 계속 반복하려면 역시 남성의 정력이 변강쇠급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안전의 문제다. 쓰리섬은 서로 원해서 하는 관계라 할지라도 역시 문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고 역시 성병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이트는 그래서 쓰리섬을 할 때 여성별로 다른 콘돔을 쓰기를 권장하고 있다. 콘돔을 끼고 있다 할지라도 한 여성의 성병 감염균이 다른 여성에게 옮겨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별로 다른 콘돔을 끼면서 쓰리섬을 할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다.


 



캘빈 클라인 광고에서는 포섬도 등장하는 이 마당에
쓰리섬을 단순하게 변태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순 없을 듯 합니다.
그저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 있고, 없고의 문제일 뿐,
다양한 섹스의 종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류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자 둘에 남자 하나는 남자들의 로망이지만, 제대로 감당이나 하겠냐는 거죠.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좋아요 ♡



그게 훨씬 위생면에서도 안전한 것 같아요.
다른 상대에게 삽입을 할 때마다 콘돔을 바꿔끼우는 성실한 남자는 없을 것 같고
그렇게 붕 뜨는 시간에 들뜬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면 곤란하잖아요..>.<


류에게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생각한 건
즐겁고도 재미있고 흥분되고 설레이는 쓰리섬을 위해서는
섹스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호감만 있는 상대들과 해야한다는 것.
둘 중 한 명에게 감정이 더 가 있는 상태라면 균형이 깨져버리고
셋 다 만족할만한 쓰리섬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겠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한다면 굳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자극의 정도를 높이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만으로 제게는 '엑스터시'역할을 하는 듯.


보통 권태스럽고 무료한 커플들 사이에서 쓰리섬을 하기도 한다지만,
새로 참여하게 되는 사람은 결국 조연 역할에 머물 뿐이라고 생각해요.
류가 했던 방식의 쓰리섬이 셋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일 것 같아요.


류는 그렇게 호기심에서 한 번, 그리고 분석적 측면에서 한 번 더 하고
그들과는 관계를 정리했다더군요.
두 번째 할 땐 처음 할 때만큼 흥분되지도 않았고
A와 B중 A에게 조금 더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B에게는 펠라치오를 하기 싫어져서 섹스의 밸런스를 깨버리고 말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이러니저러니해도
류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가 제일 좋다는 걸 아니까.
잠깐의 일탈 후 사랑할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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